28:1 네가 네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삼가 듣고 내가 오늘 네게 명령하는 그의 모든 명령을 지켜 행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를 세계 모든 민족 위에 뛰어나게 하실 것이라
28:2 네가 네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청종하면 이 모든 복이 네게 임하며 네게 이르리니
28:3 성읍에서도 복을 받고 들에서도 복을 받을 것이며
28:4 네 몸의 자녀와 네 토지의 소산과 네 짐승의 새끼와 소와 양의 새끼가 복을 받을 것이며
28:5 네 광주리와 떡 반죽 그릇이 복을 받을 것이며
28:6 네가 들어와도 복을 받고 나가도 복을 받을 것이니라
28:7 여호와께서 너를 대적하기 위해 일어난 적군들을 네 앞에서 패하게 하시리라 그들이 한 길로 너를 치러 들어왔으나 네 앞에서 일곱 길로 도망하리라
28:8 여호와께서 명령하사 네 창고와 네 손으로 하는 모든 일에 복을 내리시고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주시는 땅에서 네게 복을 주실 것이며
28:9 여호와께서 네게 맹세하신 대로 너를 세워 자기의 성민이 되게 하시리니 이는 네가 네 하나님 여호와의 명령을 지켜 그 길로 행할 것임이니라
28:10 땅의 모든 백성이 여호와의 이름이 너를 위하여 불리는 것을 보고 너를 두려워하리라
28:11 여호와께서 네게 주리라고 네 조상들에게 맹세하신 땅에서 네게 복을 주사 네 몸의 소생과 가축의 새끼와 토지의 소산을 많게 하시며
28:12 여호와께서 너를 위하여 하늘의 아름다운 보고를 여시사 네 땅에 때를 따라 비를 내리시고 네 손으로 하는 모든 일에 복을 주시리니 네가 많은 민족에게 꾸어줄지라도 너는 꾸지 아니할 것이요
28:13 여호와께서 너를 머리가 되고 꼬리가 되지 않게 하시며 위에만 있고 아래에 있지 않게 하시리니 오직 너는 내가 오늘 네게 명령하는 네 하나님 여호와의 명령을 듣고 지켜 행하며
28:14 내가 오늘 너희에게 명령하는 그 말씀을 떠나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아니하고 다른 신을 따라 섬기지 아니하면 이와 같으리라
< 행복 >
신명기28:1-14
세상에서 가장 흔하면서 가장 정의하기 어려운 말이 행복이라는 말이다.
행복이란 과연 무엇인가?
어떤 사람은 없던 것이 생기면 행복하다고 느끼고,
어떤 이는 아픈 아이가 고침을 받으면 행복하다고 느낀다.
집이 없던 사람이 집을 사도 행복하고
학교를 다니던 아이가 성적을 잘 받아도 행복하다고 말한다.
세상에 어느 곳이나 행복이 있는듯하다.
하지만, 또 어떤이는 행복을 찾아 수없는 땀과 인생을 바쳐서 행복을 찾으려고 노력한다.
과연 행복이란 무엇인가?
그전에 목회자가 뭐하는 사람인가부터 좀 짚고 넘어가려한다.
목회자는 교회를 하나님의 뜻대로 다스리고,
하나님을 대신하여 일하는 사람이기도하다.
그런데 그 하나님의 뜻, 하나님을 대신하는 일이 뭔가하는 것이다.
사람마다 좋아하는것이 다르고 은사도 달라서 다르게 정의 할수도 있지만,
나는 목회자는 '성도의 행복을 위해서 사는 사람'이라 감히 정의해 본다.
단, '하나님의 뜻을 따라'가 전제이다.
단지 행복을 위해서라면 세상에서 웃고 즐기는것과 다를바 없다.
개그맨도 웃음을 통해 행복을 줄수 있고,
요리사도 좋은 음식을위해 행복을 줄수 있다.
그러나 하나님의 뜻을 따를 때 우리는 참 행복을 느낄수 있고, 가질수 있는것이다.
하나님께서 주시기를 원하시는 행복은 뭔가?
참 행복이 뭔가를 생각해보려한다.
참, 행복은 하나님의 명령, 말씀에 그대로 녹아 있다.
우리가 언제 행복한가?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때 행복하다.
그 말씀이 뭔가?
율법이다.
그렇다.
바로,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것이다.
그 말씀을 우리가 따를때 우리는 행복하다.
자보자.
왜 하나님께서 하나님 사랑, 이웃 사랑을 그렇게 고집스럽게 우리에게 요구하시는가?
하나님의 율법은 전제가 있다했다.
우리의 잘됨, 우리의 복, 우리의 행복을 위해서 존재한다했다.
언제 그것이 가능한가?
율법의 전부인 하나님사랑, 이웃사랑을 할때 우리는 행복할수 있다.
행복은 우리 안에 없다.
하나님이 주셔야한다.
오늘 성경 28장은 복에 관한 말씀이다.
복, 행복이다.
진정한 행복은 하나님의 축복이 임할때온다.
우리안에있는 행복감은 단지 감정이다.
완전한 행복이 아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면 행복을 하나님이 주실뿐 아니라 내안에 숨어 있던 행복,
잃어버렸던 행복의 감각이 살아난다.
우리가 사랑안에 있을때 우리는 행복을 느낀다.
그래서 하나님의 사랑을 우리가 느낄때 우리는 너무 행복해진다.
그 사랑때문에 수많은 사람은 순교의 자리도 기쁨으로 갔다.
사랑을 느낄때 우리는 다 주어도 된다는 생각이든다.
사랑은 받을때 뿐 아니라 줄때에도 행복을 느낀다.
하나님의 사랑을 받을때만 아니라
하나님을 사랑할때도 우리는 행복을 느낀다.
왜냐하면 사랑은 인격이다.
상호작용이 사랑이다.
외사랑은 질투가 된다. 타는 불이 된다.
마찬가지로 이웃을 사랑할때 우리는 참 행복을 느낀다 .
하나님의 사랑을 인격적으로 주고 받는 사람은 반드시 이웃을 사랑하게 된다.
사랑을 나눌때 세상에 없는 행복을 느낀다.
세상의 행복은 없어지는 안개와 같다.
그것이 나쁜것은 아니나 영원하지 않다.
우리가 마찬가지로 우리가 언제 사랑을 더 깊이 느끼나?
사랑의 교제가 있을때이다.
하나님과의 교제,
이웃과의 사랑의 교제가 있을때 우리는 행복을 느낀다.
왜 예수님께서 어린시절을 표현할때
[눅2:52]예수는 그 지혜와 그 키가 자라가며 하나님과 사람에게 더 사랑스러워 가시더라
라고 표현을 했을까?
예수님은 하나님과 사람과 사랑의 교제를 나눈것이다.
주고받는 사랑의 관계가 사랑을 만들고 행복을 만든다.
우리가 언제 가장 행복한 마음이 드는가 곰곰히 생각해보라.
부모님의 사랑안에 충분히 거할때.
아내와 남편으로부터 충분히 사랑을 받는다는 마음이들때 우리는 행복하다고 느낀다.
사람의 육체와 마음은 사랑으로 채워져야 움직이는 호르몬과 감성의 주머니가 있을것이다.
사랑을 받을때 실제 육체적 작용으로 행복한 호르몬이 배출될것이다.
그래서 실제 행복한 마음을 느낄수 있을것이다.(의학적으로 확인한것은 아니지만 충분히 가능하다)
그래서 신명기서의 율법은 결국 두가지다.
하나님사랑, 이웃사랑!
도덕법, 의식법, 시민법 그렇게 나뉘지만 결국 두가지로 결론지어진다.
예수님도 그것을 아시고 두 계명을 주셨고,
뿐만 아니라 서로 사랑하라 하셨다.
사랑은 주고 받을때 행복하다.
사랑은 인격이다.
구체적으로 생각을 해보자.
언제 행복한가?
첫째로 나를 위한다고 느낄때이다.
하나님이 나를 위하여 일하시고 사람들이 나를 위해서 일할때 우리는 행복을 느낀다.
내가 나를 세울때는 얼마나 인생이 비참한지 모른다.
내가 나를 세운다고 세워지는 것이아니다.
하나님이 나를 세우시고, 사람들이 나를 위해야 진짜 행복을 느낀다.
모세는 자기가 스스로 리더가 된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나를 세웠다는 자부심이있다.
그것이 행복을 준다.
다윗도 스스로 세운것이아니라 하나님께서 세우셨다는 믿음이 있었다.
그래서 그는 고통의 시간동안 수많은 찬양으로 하나님께 사랑의 고백했다.
[시3:6] 천만 인이 나를 둘러치려 하여도 나는 두려워 아니하리이다
우리가 세상을 살며 힘들때 하나님께서 나를 위하신다고 느낄때,
사람들이 나를 위하여 수고한다고 느낄때 우리는 천만인이 나를 치려한다해도
당당하게 일어설수 있는 근거가 된다.
가난도 고난도 우리의 행복을 좌우하는 것이 못된다.
단지 우리의 행복을 좌우 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나를 세우신다는 믿음,
사람들로부터 받는 나를 아끼는 마음이 행복을 만들어 낸다.
우리가 사람들에게 행복을 줄수 있는 충분한 자격을 가지고 있다.
나로 인해 사람들이 행복해 질수 있는 엄청난 큰 위력을 가지고 있다.
우리는 서로의 행복을 위해 서로 위하는 대접하는 아끼는 삶을 표현해야한다.
그래서 예수님은
[마7:12]그러므로 무엇이든지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 이것이 율법이요 선지자니라
라고 하시면서 서로를 위해 위하라고 한다.
왜냐하면 그때 우리는 행복을 가질수 있기 때문이다.
작은것 하나라도 좋은것을 보면 나누어보라.
그곳에 행복이 있다.
내가 행복을 가지고 싶다면 상대방도 그러고 싶다.
그럼 이웃을 위해 작은 초코렛이라도 준비해서 주면 그는 나로 인해 행복해 할것이다.
내 입장에서가 아니라 그 사람입장에서 생각해보고
나도 그렇게 받으면 좋겠다. 나도 위함을 받으면 좋겠다라고 생각한다면
먼저 나누고 베풀고 위하라 그럼 하나님께서 성경을 완성하는 우리에게
하나님의 행복을 줄것이다.
하나님으로부터가 아니어도 우리가 다른 이를 위하는 순간
내안에 호르몬과 감정의 주머니가 행복의 게이지를 올려줄것이다.
둘째로, 하나님의 뜻을 알때 행복하다.
왜 이런 고난이 나에게 있는지?
왜 이런 아픔이 나에게 있는지 알지 못할때 우리는 힘들다.
그런데 섬광같이 하나님의 뜻을 발견할때 우리는 무릎을 치면서 아~하고는 행복해 한다.
비록 고난의 길이라도 이 길을 주시는 하나님의 뜻을 발견하는 순간
하나님의 예비하심과 준비하심과 나를 사랑하심을 알게 된다.
그때 우리는 행복하다.
모세는 자신을 향한 하나님의 뜻을 알고 받아들일때 기꺼이 그길을 갔다.
그 길을 돌아보며,
그 인생을 돌아보며
모세는 그 시간이 축복임을 고백한다.
그 설교가 오늘 하는 설교이다.
가난하기도하고 아픔의 시간이기도하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왜 이런 시간을 주셨는지 알게 된다면,
우리를 향한 그분의 뜻을 발견한다면 우리는 행복할것이다.
엠마오로 가는 두 제자가 절망가운데 있다.
언제 그들의 가슴에 뜨거움이 생겼나 살맛이 생겼나?
예수님께서 말씀을 풀고, 하나님의 뜻을 발견할때이다.
성경은 다윗의 행복은 하나님의 뜻을 좇아 섬기다가 잠들었다 말한다.(행13:36)
다윗의 행복은 하나님의 뜻을 평생 좇아 살았기 때문이다.
성령이 우리를 위하여 간구할때 무엇을 근거로 간구하는가?
하나님의 뜻이다.
[롬8:27]마음을 감찰하시는 이가 성령의 생각을 아시나니 이는 성령이 하나님의 뜻대로 성도를 위하여 간구하심이니라
사도 바울이 서신서마다 서두에 사용하는 말은 자신이 사도가 된것이
하나님의 뜻으로 되었다고 고백한다.
자신이 사도된 하나님의 뜻을 발견할때 바울은 고난과 핍박가운데 기쁨으로 삶을 살았다.
고난도 하나님의 뜻이라고 알때 우리는 행복을 느낀다.
기쁨을 발견하고 감사의 제목을 발견한다.
십자가가 하나님의 뜻임을 알때 예수님은 그길을 말없이 가셨다.
근심도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근심이 있다. (고후7:9)
나를 향한 하나님의 뜻을 발견하기 바란다.
그길이 어떤 길이든지 어떤 상황이든지 발견할때 우리는 행복을 찾을것이다.
세째, 하나님의 일하심이 내 삶에 느껴질때이다.
모세는 그의 삶을 통하여 하나님이 일하셨음을 느꼈다.
그렇게 40년동안 감격의 시간을 보낸 모세가 느꼈을 행복은 이루 말할수 없었을것이다.
비록 수많은 사람들과 시간동안 당했을 아픔은 말할수 없지만,
그래서 더욱 자신의 삶을 통해 하나님의 일하심을 발견할때 그는 행복했을것이다.
어제 한 집사님을 만났다.
아프리카에서 20년동안 고생도 많았다.
지금은 30여명의 직원을 거느린 사장이 되어 넉넉한 삶을 사신다.
하지만, 그분의 마음에 내 평생 하나님을 위해 일한것이 얼마 없다며
가슴아파하는 모습을 보았다.
우리가 좀 넉넉하게 되고,
바라는 것들이 이루어져도 나를 통해 일하심을 느끼지 못할때
우리는 허전함을 느낀다.
돌아보면 내 인생 무엇했나 마음이 아플것이다.
하나님 나를 사랑하심을 알기 때문에 더욱 주를 위해 내 삶이 사용되어지기를 갈망할것이다.
모세는 오늘 그것때문에 행복한 죽음을 기다리고 있을것이다.
우리의 삶에 하나님의 일하심의 흔적이 있게 해야한다.
내가 행복한것은 내 뜻을 이룰때가 아니라
나를 통해 하나님이 일하심이 드러날때이다.
솔로몬은 부귀영화를 다 누렸다.
그런데 그의 마음에 행복이없다.
왜?
그의 삶이 하나님의 일하심속에 있지 않아서이다.
그는 그 자신을 위해서 살았다.
겨우 성전을 지었다.
그것으로 끝이다.
하나님의 일하심이 없는 물질과 부와 명예는
'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라고 고백할수 밖에 없다.
물질이 문제가 아니다.
많아도 행복을 누린다.
없어도 행복을 누린다.
단지 하나님의 일하심 속에 있을때 이다.
아무리 작은것이라도 하나님이 주셨다고 느낄때
우리는 행복함을 느낀다.
크고 작고의 문제가아니다.
높으냐 낮으냐의 문제가 아니다.
하나님이 주셨고, 예비하셨음을 느낄때 우리는 깊은 행복을 느낀다.
하나님께서 아담에게 하와를 주셨을때
그는 최고의 고백을 했다.
하나님께서 그에게 주셨기 때문이다.
왜 가나안이 천국인가?
하나님께서 예비하시고 주셨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눈이 항상 그위에 있기 때문이다. (신11:12)
하나님께 내 삶이 사용되어짐을 느낄때 우리는 행복을 느낀다.
그 행복은 세상어디서도 얻을수 없는 행복이다.
하나님께로부터오는 영원한 행복이다.
넷째로 함께함을 느낄때이다.
사랑은 함께함이다.
왜 우리가 한 사람을 사랑하면 결혼을 하고 싶은가?
오랫동안 함께 하고 싶어서이다.
사랑하면 그렇게 된다.
하나님도 우리를 사랑하신다.
그래서 신,구약을 통틀어 '내가 너희와 함께한다'라는 수없는 약속을 하셨다.
우리가 정말 행복하다고 느낄때는 '함께함'을 느낄때이다.
사람이 사람과 살면서 가장 행복할때는 내 마음과 생각이 함께하는 사람을 만날때이다.
내 생각을 이해하고 알아주고 받아주는 사람을 만나면
우리는 행복함을 느낀다.
평생을 살면서 마음과 생각으로 함께하는 사람이 많다는것은 복이 많은 사람이다.
어려울때 말없이 함께 해주는 사람이 많다는것은 천복이다.
사랑을 받는다는 것은 함께한다는 것이다.
내가 누군가로부터 함께있고,
또 내가 누군가에게 함께 하는것이 사랑이다.
행복이다.
예수님의 말씀이 기억난다.
'세상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을것이다'(마28:20)
예수님은 아신것이다.
우리의 행복은 지금 이 순간 하나님과 함께함이라는 것을!
아담과 하와가 잃어버린것은 바로 이 함께함에 대한 행복이다.
이땅에서 수없이 찾아보지만 하나님의 함께함이 아니고는 찾을수 없는 이 행복을
수없는 인류가 찾고 또 찾아 헤메고 있다.
뭔가 함께함으로 채울수 있을줄 생각하고
더 많이 가져서 내곁에 두려고 하고,
두 많이 모으고,
더 많이 쌓아서 채우려하지만,
하나님의 함께함이 아니고는 채울수 없는 것이다.
에덴동산은 하나님의 함께함을 누린곳이 에덴동산이다.
그래서 하나님은 수없는 말씀으로 너희와 함께 하겠다고 약속하고 약속하고 약속하신다.
그래서 하나님은 예수님의 다른 이름을 '함께함'이라고 지었다.
그 이름이 '임마누엘'이라 했다.
[마1:23]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 이름은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하셨으니
이를 번역한즉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 함이라
하나님은 인간이 잃어버린 행복의 핵심을 아신것이다.
그것이 < 하나님과 함께함 > 이다.
사람들은 사람으로부터 그것을 채우려고 사람을 옆에 두려한다.
하지만 사람으로 채워지는것이 아니다.
하나님으로부터의 함께함이 전제 되어야
사람과 더불어 함께함이 영원한 행복이 된다.
에덴동산은 하나님과 함께함 더하기 사람과 함께함일때 에덴동산이 된다.
그래서 가나안은 천국으로 비유되는데 하나님사랑, 이웃사랑을 하나님은 요구하신다.
십자가를 기억하라.
행복은 십자가를 거친다.
행복은 하나님과의 관계와 이웃의 관계가 모두 회복될때 온다.
목회란 무엇인가?
그런 차원에서 서두에 물었던 목회란 무엇인가에 대한 답을 찾아보자.
하나님의 뜻을 따라 성도들의 행복을 위해 사는 존재가 목회자이라 했다.
그 하나님의 뜻은 바로 하나님과 함께하고 이웃과 함께하는 사랑의 삶이다.
목회자는 성도들이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도록 돕는 자이다.
모세는 그런 삶을 살다 간것이다.
왜 복음을 전해야하는가?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삶을 위해서이다.
왜 기도하는가?
왜 말씀을 보는가?
왜 설교를 듣는가?
행복을 위해서,
하나님과 함께함 이웃과 함께함이다.
초대교회는 그것이 회복된 교회였다.
사랑이 기억났다.
예수님께서 수없이 가르쳤던것이 언제 기억이 났는가?
성령께서 오시면 예수님이 가르치고 말한 모든것을 기억나게 하신다했다.
[요14:26]보혜사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시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시리라
오순절 성령사건을 통해 성령이 오셨다.
그리고 그들이 예수님의 가르치신 핵심, 가르치신 본질을 발견한것이다.
그래서 그들은 자기의 소유를 팔아 나누고 함께하기 시작했다.
'믿는 사람이 다 함께 있어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
또 재산과 소유를 팔아 각 사람의 필요를 따라 나눠 주고
날마다 마음을 같이 하여 성전에 모이기를 힘쓰고 집에서 떡을 떼며 기쁨과 순전한 마음으로 음식을 먹고
하나님을 찬미하며 또 온 백성에게 칭송을 받으니 주께서 구원받는 사람을 날마다 더하게 하시니라'(행2:24-27)
성령은 함께하는 영이다.
성령은 상하관계를 회복하는 영이다.
뭘 회복하나?
나뉜것, 흩어진것, 깨어진것을 회복한다.
하나님과 나뉜것,
사람과 나뉜것,
말이 흩어진것,
깨어진 관계를 회복한다.
함께할때 행복을 누리게 된다.
목회자는 깨어진 그 관계를 묶는 사람이다.
하나님을 사랑하게하고
이웃을 사랑하게하고
함께하는 자리를 만들고
함께 하고 싶도록 성령의 힘을 통해 그분이 하시고싶어하는 그 일을 수종드는 자이다.
나는 그 일을 하고 싶다.
내안에 그토록 뜨겁게 열망하는 그 일들을 나는 하고싶다.
나는 그 일을 통해 행복하고싶다.
나를 통해 사람들이 행복한 삶을 사는것을 보고싶고
그로 인해 행복해하는 하나님의 마음을 느끼고 싶다.
어떤 사람이 말한다.
사역자는 소명을 따라 산다고
나는 또 말한다.
내가 하고 싶은것과 하나님이 원하시는것이 일치한다면
그것은 천명이라고!!!
나는 그천명을 받았기에 오늘도 행복이다.
선교를 나올때 나는 교회앞에 그렇게 말했다.
'나는 행복한 선교사입니다'
평생 나는 행복한 사람으로
수많은 사람의 행복을 위해서 사는 사람으로 살고싶다.
그래서 내가 천국가서 하나님 앞에섰을때
'하나님이 그렇게 주시고 싶어하는 행복을 위해서 일하다 왔습니다'라고 말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