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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적성숙, 신앙의 성장이란 무엇인가? 4편(체질)

영적성숙, 신앙의 성장이란 무엇인가? 4편(체질)

 

 

 

 

 

 

 

 

 

 

 

영적성숙, 신앙의 성장이란 무엇인가? 4편

 

 

 

 

 

영적성숙, 신앙의 성장에 대해서 고민하고 있다.

 

그것은 눈의 변화, 들음의 변화, 말의 변화라 했다.

 

그 의미는 하나님의 눈, 하나님의 관점을 가지는 것이고

 

들음으로 가치의 변화, 기준의 변화를 가지는 것이고

 

그 변화된 관점과 가치로 말할 때, 말의 능력을 경험하게 된다 생각해 보았다.

 

 

그럼 최종적으로 그것만 하면 되는가?

 

마지막 한 가지가 충족되어야 완성된 성숙으로 나갈 수 있다.

 

 

그것이 뭔가?

 

 

 

 

그것은 체질의 변화이다.

 

 

 

 

체질이라고 하는것은 '지속성' 을 포함한다.

 

 

 

진정한 성숙은 단회적 행동을 말하지 않는다.

 

한번 그렇게 하는 것이 아니다.

 

변화된 성질, 체질을 유지하는 것을 말한다.

 

 

 

죄된 몸으로 체질이 변화되는 것이 하루 아침에 되는 것은 아니다.

 

하루 아침에 눈과 귀와 말이 변하지 않는다.

 

 

'그 큰 시험과 이적과 큰 기사를 네 눈으로 보았느니라

그러나 깨닫는 마음과 보는 눈과 듣는 귀는 오늘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주지 아니하셨느니라(신29:3-4)


 

 

체질은 광야 40년을 지나야 변한다.

 

광야를 주신 이유가 그것이다.

 

보고 듣은 것을 깨닫도록 한다.

 

결국 하나님께서 깨닫게 하고 싶은 한가지는 무엇인가?

 

 

 

 

'주께서 사십 년 동안 너희를 광야에서 인도하게 하셨거니와 너희 몸의 옷이 낡아지지 아니 하였고

너희 발의 신이 해어지지 아니하였으며

너희에게 떡도 먹지 못하며 포도주나 독주를 마시지 못하게 하셨음은

주는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이신 줄을 알게 하려 하심이니라 (신29:5-6)

 

 

하나님은 보고 듣고 하는 모든 이유는 한가지이다.

 

주는 하나님 여호와임을 알게하려 하시는 것이다.

 

하나님이 그 목적이다.

 

하나님을 알고 그분처럼 생각하고 그분처럼 듣고 그분처럼 말하게 하는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의 성품을 닮게 하신다.

 

 

체질의 변화는 40년이 걸린다.

 

각자가 다르다.

 

세월이 가는 동안 꼭 잡아야하는 한가지는 하나님의 성품이다.

 

 

 

 

 

 

우리가 그것을 닮고 가질 때 우리는 참 성숙의 자리에 있게 된다.

 

하나님의 성품 중에 가장 위대한 것은 성실, 신실이다.

 

인내도 좋으나 인내도 신실이라는 것이 빠지면 인내는 두고 보는것이 된다.

 

사랑도 좋으나 하나님의 신실함 때문에, 변하지 않는 성품 때문에 빛이 나는 것이다.

 

 

하나님의 변함없으심!

 

그것이 하나님의 체질이다.

 

 

우리에게 필요한 마지막 고지는 체질의 변화로 변함없는 모습이다.

 

 

 

한번 잘 본다고 한번 하나님의 관점을 가진다고 우리가 천국가는 순간까지 보장되지 않는다.

 

한번 잘 듣는다고 가치의 변화가 왔다고 해서 우리가 변화된 기준으로 살지 않는다.

 

 

오늘 모세가 말하는 이스라엘의 참 모습은 체질의 변화,

 

환경이 좋아져도 너희의 모습 그대로를 항상 지키라고 요구한다.

 

 

 

 

모세는 이스라엘에게 한 단어를 가지고 두 가지 모습을 설명한다.

 

 

그 단어는 '항상'이다.

 

 

한가지는 우리가 항상 여호와를 거역했다고 말하면서

 

[신9:24]내가 너희를 알던 날부터 옴으로 너희가 항상 여호와를 거역하였느니라

 

 

이제는 항상 지키라고 요구한다.

 

[신11:1]그런즉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여 그 직임과 법도와 규례와 명령을 항상 지키라

 

 

 

이 '항상'이라는 단어는 하나님으부터 나왔다.

 

하나님의 눈은 항상 우리 위에 있다고 말씀하시면서 그분의 신실함을 표현한다.

 

 

[신11:12]'네 하나님 여호와의 눈이 항상 그 위에 있느니라'

 

그 하나님의 체질때문에 하나님이 그러하시니 우리도 하나님에 대하여 그러하기를 원하신다.

 

 

그래서 체질의 변화를 '항상'이라는 단어로 표현하고 계신 것이다.

 

 

 

 

신약에서도 그 단어를 쓰고있다.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살전5:16-18]

 

 

기뻐하고, 기도하고, 감사하는 것에 전제는 '항상'이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그것을 원하시고 계시는 것이다.

 

 

그래서 그것이 힘들 줄 아니, 하나님은 그것이 되도록, 예수님은 항상 함께 계시겠다고 약속하셨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마28:20)

 

 

 

사도바울의 신실함은 여기에 있다.

 

성도를 위한 기도에 항상 기도한다고 말한다.

 

'항상 내 기도에 쉬지 않고 너희를 말하며'(롬1:9)

 

 

사도 바울은 기도 뿐만이 아니다.

 

거의 전 신앙의 영역에서 '항상'이라는 단어로 자신의 체질 변화를 언급한다.

 

복종하며, 복음을 전하며, 선을 행하며, 감사하며...

 

수도 없는 항상의 조건은 그를 따른다.

 

 

하나님을 본자,

 

하나님의 음성을 들은자,

 

하나님의 모든 사람들의 공통점은 바로이 '항상'이다.

 

지속성이다. 체질의 변화이다.

 

 

 

이것을 위해서 우리는 자연 세계를 봐야한다.

 

그분의 일하심은 항상이라는 말로 대신한다.

 

항상 일하시고 자연 만물은 그분의 일하심으로 유지된다.

 

 

 

 

 

그러나 이것이 어디 말같이 쉬운가?

 

어렵다.

 

'항상'은 앞서 말한 눈과 귀와 말이 같이 움직일 때 가능한 것이다.

 

 

보지 못하면 듣지 못하고,

 

듣지 못하면 말하지 못하고,

 

말하지 못하면 행할 수 없다.

 

 

왜 모세에게 떨기나무로부터 하나님을 만나도록 허락하셨는지 생각해보라.

 

사람을 만드시고 그 감각을 잘 아시는 하나님이시다.

 

눈으로 보지 않으면 사람은 믿을 수 없다.

 

눈으로 보지 않고 믿는 것이 쉽지 않아 예수님은 보지 않고 믿는 것이 복되도다라고 말씀하신다.

 

여기서 말하는 '복되도다'라는 복은 최고의 복, 최고 행복한 복을 말한다.

 

이것은 하나님으로부터의 최고의 복이다.

 

그래서 예수님은 보지 못하는 사람을 긍휼히 여기시고 그들을 많이 고쳐주셨다.

 

그들의 안타까움을 아시는 예수님이다.

 

 

 

 

하지만, 일반적인 순서는 보는 것이 먼저이다.

 

 

그래서 우리에게 눈에 보이는 사역자와 말씀과 하나님의 일들을 보게 하신다.

 

이것을 보면서도 관점의 변화가 없으면 다음이 힘들다.

 

하지만, 볼 수만 있다면 그 다음은 또 자연스럽게 오게 된다.

 

 

 

거지 나사로와 부자의 비유에서 부자가 지옥에서 사람들을 보내 자기 가족을 구원해 줄 것을 요구하자

 

모세와 선지자 즉, 사역자와 말씀을 보고 듣지 않으면 그 다음은 없다고 결론을 내신다.

 

 

 

우리가 보고 듣는다면 체질의 변화 삶의 변화의 지속성을 유지 할 수 있다.

 

 

행동을 변하려 하지 말고 그분의 눈과 관점과 가치를 가지면 가능하다.

 

왜 행동, 삶의 지속적인 변화가 어려운가?

 

완전히 변화된 가치와 관점이 없어서이다.

 

 

행동을 변하려 하지 말고 내면을 변화시키라.

 

그러면 행동하게 될 것이다.

 

 

 

 

감정에 따라 움직이는 것은 성숙이 아니다.

 

내 감정을 믿지 말라.

 

감정을 따르지 말고 원칙을 따르라.

 

하나님의 원칙이 뭔지 알고 따르면

 

하나님은 감정도 주신다.

 

 

감정은 세상이 주는 것일 확률이 많다.

 

하늘의 좋은 것들은 아버지께로부터 아버지의 원칙을 따를 때 온다.

 

감정을 따라가면 원칙은 만날 수 없다.

 

 

 

그럼 어떻게 체질의 지속성이 가능한가?

 

 

언젠가 앞선 글에도 기록했지만,

 

한번 들은것, 아는 한가지를 할 때 또 할 마음이 생기고,

 

한번 순종할 때 변화되는 환경과 사람들을 통해 또 할 마음이 생기도록 하신다.

 

 

가장 쉬운 방법은 하나님으로부터 들은 말씀, 감동이 오면

 

그때 순종해보면 또 할 수 있는, 내가 볼 수 있는 일들이 벌어진다.

 

그럼 눈이 보이는대로 따라가면 하나님을 느낀다.

 

 

 

씨를 뿌리는 비유가 있다.

 

씨를 뿌린다는 의미는 생명의 지속성을 말한다.

 

 

말씀은 계속 자라기를 원하는 성질을 가진다.

 

그 씨가 햇빛을 보이면 자라고,

 

물을 주면 자라고

 

좋은 거름을 주면 자란다.

 

 

말씀이 올 때 자라는 환경을 주라.

 

행할 수 있는 공간을 주라.

 

 

말씀을 지식으로 내 속에 머물러 둔다면

 

우리는 자리지 못한다.

 

말씀이 자라도록 한번의 행동이 그 다음 생명을 만들어내고

 

하고 싶은 마음, 할 마음이 온다.

 

 

 

 

그 한번의 행동이 다음을 만들어 내지 못한다.

 

 

어느정도 지나면 자연생태가 되어 스스로 가게된다.

 

 

그때까지만 가면 된다.

 

 

 

 

자연을 만드신 하나님의 영적 원리는

 

자연속에 그대로 녹아 있다.

 

세상을 보면 하나님의 일하시는 원리가 보인다.

 

 

 

체질의 변화는 먼 것이 아니다.

 

내가 이미 본 것, 들은 것을 통해 한번의 결단된 행동으로

 

그 다음은 자연스럽게 오게 된다.

 

 

문제는 그 마음이 와도 우리가 결단하고 다음 행동을 잡지 않아서이다.

 

 

하나님을 가까이 하면 그도 우리를 가까이 하사 행동에 힘을 실어주실 것이다.

 

 

 

그것을 가능케하는 가장 유일한 한가지는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다.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고

 

뜻을 다할 때 오직 그것이 된다.

 

 

세상 무엇보다 하나님 사랑이 내 맘에 있을 때 우리는 진정한 성숙에 이르게 된다.

 

 

 

영적성숙의 마지막단계이자 전부인

 

하나님을 사랑하는 우리가 되어야 할 것이다.

 

 

신명기의 모든 말씀의 핵심은 바로 이것이다.

 

 

 

 

 

이스라엘아 들으라

 

우리 하나님 여호와는

 

오직 유일한 여호와이시니

 

너는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

 

 

 

 

 

 

 

 

 

Pastor Seo

Pastor Se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