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1 이스라엘아 들으라 네가 오늘 요단을 건너 너보다 강대한 나라들로 들어가서 그것을 얻으리니 그 성읍들은 크고 성벽은 하늘에 닿았으며
9:2 그 백성은 네가 아는바 장대한 아낙 자손이라 그에게 대한 말을 네가 들었나니 이르기를 누가 아낙 자손을 능히 당하리요 하거니와
9:3 오늘날 너는 알라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맹렬한 불과 같이 네 앞에 나아가신즉 여호와께서 그들을 파하사 네 앞에 엎드러지게 하시리니 여호와께서 네게 말씀하신 것같이 너는 그들을 쫓아내며 속히 그들을 멸할 것이라
9:4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들을 네 앞에서 쫓아내신 후에 네가 심중에 이르기를 나의 의로움을 인하여 여호와께서 나를 이 땅으로 인도하여 들여서 그것을 얻게 하셨다 하지 말라 실상은 이 민족들이 악함을 인하여 여호와께서 그들을 네 앞에서 쫓아내심이니라
9:5 네가 가서 그 땅을 얻음은 너의 의로움을 인함도 아니며 네 마음이 정직함을 인함도 아니요 이 민족들의 악함을 인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들을 네 앞에서 쫓아내심이라 여호와께서 이같이 하심은 네 열조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하신 맹세를 이루려 하심이니라
9:6 그러므로 네가 알 것은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이 아름다운 땅을 기업으로 주신 것이 네 의로움을 인함이 아니니라 너는 목이 곧은 백성이니라
9:7 너는 광야에서 네 하나님 여호와를 격노케 하던 일을 잊지 말고 기억하라 네가 애굽 땅에서 나오던 날부터 이 곳에 이르기까지 늘 여호와를 거역하였으되
9:8 호렙 산에서 너희가 여호와를 격노케 하였으므로 여호와께서 진노하사 너희를 멸하려 하셨느니라
9:9 그 때에 내가 돌판들 곧 여호와께서 너희와 세우신 언약의 돌판들을 받으려고 산에 올라가서 사십 주야를 산에 거하며 떡도 먹지 아니하고 물도 마시지 아니하였더니
9:10 여호와께서 두 돌판을 네게 주셨나니 그 판의 글은 하나님이 친수로 기록하신 것이요 너희 총회 날에 여호와께서 산상 불 가운데서 너희에게 이르신 모든 말씀이니라
9:11 사십 주야가 지난 후에 여호와께서 내게 돌판 곧 언약의 두 돌판을 주시고
9:12 내게 이르시되 일어나 여기서 속히 내려가라 네가 애굽에서 인도하여 낸 내 백성이 스스로 부패하여 내가 그들에게 명한 도를 속히 떠나 자기를 위하여 우상을 부어 만들었느니라
9:13 여호와께서 또 내게 일러 가라사대 내가 이 백성을 보았노라 보라 이는 목이 곧은 백성이니라
9:14 나를 막지 말라 내가 그들을 멸하여 그 이름을 천하에서 도말하고 너로 그들보다 강대한 나라가 되게 하리라 하시기로
9:15 내가 돌이켜 산에서 내려오는데 산에는 불이 붙었고 언약의 두 돌판은 내 손에 있었느니라
9:16 내가 본즉 너희가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 범죄하여 자기를 위하여 송아지를 부어 만들어서 급속히 여호와의 명하신 도를 떠났기로
9:17 내가 그 두 돌판을 내 두 손에서 들어 던져 너희의 목전에서 깨뜨렸었노라
9:18 그리고 내가 전과 같이 사십 주야를 여호와 앞에 엎드려서 떡도 먹지 아니하고 물도 마시지 아니하였으니 이는 너희가 여호와의 목전에 악을 행하여 그를 격노케 하여 크게 죄를 얻었음이라
9:19 여호와께서 심히 분노하사 너희를 멸하려 하셨으므로 내가 두려워하였었노라 그러나 여호와께서 그 때에도 내 말을 들으셨고
9:20 여호와께서 또 아론에게 진노하사 그를 멸하려 하셨으므로 내가 그 때에도 아론을 위하여 기도하고
9:21 너희의 죄 곧 너희의 만든 송아지를 취하여 불살라 찧고 티끌같이 가늘게 갈아 그 가루를 산에서 흘러내리는 시내에 뿌렸었느니라
9:22 너희가 다베라와 맛사와 기브롯 핫다아와에서도 여호와를 격노케 하였느니라
9:23 여호와께서 너희를 가데스 바네아에서 떠나게 하실 때에 이르시기를 너희는 올라가서 내가 너희에게 준 땅을 얻으라 하시되 너희가 너희 하나님 여호와의 명령을 거역하여 믿지 아니하고 그 말씀을 듣지 아니하였나니
9:24 내가 너희를 알던 날부터 옴으로 너희가 항상 여호와를 거역하였느니라
9:25 그 때에 여호와께서 너희를 멸하겠다 하셨으므로 내가 여전히 사십 주야를 여호와 앞에 엎드리고
9:26 여호와께 간구하여 가로되 주 여호와여 주께서 큰 위엄으로 속하시고 강한 손으로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신 주의 백성 곧 주의 기업을 멸하지 마옵소서
9:27 주의 종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을 생각하사 이 백성의 강퍅과 악과 죄를 보지 마옵소서
9:28 주께서 우리를 인도하여 내신 그 땅 백성이 말하기를 여호와께서 그들에게 허락하신 땅으로 그들을 인도하여 들일 능력도 없고 그들을 미워도 하사 광야에서 죽이려고 인도하여 내셨다 할까 두려워하나이다
9:29 그들은 주의 큰 능력과 펴신 팔로 인도하여 내신 주의 백성 곧 주의 기업이로소이다 하였었노라
“한국교회여 기억하라”
신명기9: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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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신명기 9장은 어떤 의미에서 이스라엘과 너무나 흡사한 상황인 것을 본다.
이스라엘이 광야 40년을 죽을 고생을 해서 지나왔다.
요단 이편에 두지파반이 거할 땅도 전쟁을 통해서 얻게 되었다.
이스라엘 백성이 단 한번도 가지지 못한 영광을 누린 상태이다.
요셉의 가족 70명이 후에 엄청난 인구와 재산과 땅을 얻은 것이다.
실로 하나님의 축복이 아닐 수 없다.
그런데 오늘 모세가 가나안을 보는 곳에서 설교를 하면서 특별하게 ‘기억하라’는 단어를 사용하고 있다.
7장 19절과 8장 2절, 8장 18절 그리고 9장 7절 이다.
이 네 번의 ‘기억하라’를 묵상하며 하나님은 불현듯 한국교회를 향하여 마음을 주신다.
내가 한국교회를 이렇다 저렇다 평가할 처지도, 할만한 자격도 없다.
단지 마음을 주셔서 이스라엘과 한국교회를 오버랩해서 말씀을 생각해보고자 한다.
첫 번째, 너를 처음부르신때를 기억하라. (7:19)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를 인도하여 내실 때에 네가 목도한 큰 시험과 이적과 기사와 강한 손과 편 팔을 기억하라
그와 같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가 두려워하는 모든 민족에게 행하실 것이요"
바로와 애굽에서 하나님께서 어떻게 역사하셨는지를 기억하라는 말씀이다.
한마디로 종에서 처음으로 나오는 과거의 그 시간을 기억해 보라는 말이다.
예수를 처음 만날 때, 그때를 기억해보라는 말이다.
400년을 종으로 살면서 죽을 고생을 하고 미래도 소망도 없이 살던 백성을 종에서 해방시켜 주셔서
하나님을 예배하는 백성이 되게 하신 것을 기억해 보라는 말이다.
한국은 반만년 역사동안 수 없는 외세침입과 우상숭배, 미신숭배, 샤마니즘으로 피폐할대로 피폐해진 영적 상태에서 살았다.
집집마다 제사는 한달이 멀다하고 지냈고, 온 동네마다 미신을 섬기는 무당은 얼마나 많았으며,
입구에 하나씩 있는 큰 나무는 동네를 지키는 신령이 있다고 온갖 제사는 다 지내지 않았는가?
먹을 것이 없어 죽어가는데도 제사는 목숨걸고 온 양식을 다 팔아서라도 지내던 한국이다.
삼천리 방방곳곳에서 우상숭배와 어리석음으로 지냈던 백성이 바로 한국 백성이다.
우리 할머니도 장독위에 물 한그릇 떠놓고 조상에게 날마다 빌던 분이셨다.
우리 외할머니는 신이 내려 젊음을 마귀의 앞잡이를 하던 분이셨다.
그래서인가?
한국은 소망이 없는 나라처럼 보였다.
큰 도시를 제외하면 대나무 걸린집이 한집 건너이고, 날마다 굿판이 벌이지는 곳이 한국이었다.
가난으로 소망이 없던 나라, 우상숭배로 하나님을 모르던 나라가 대한민국이다.
제사를 지내지 않을것이라고는 상상도 할 수 없고,
수 없는 무당이 사라져 갈것이라고는 생각도 할 수 없는 나라였다.
하지만, 하나님은 한국을 택하셔서 선교사들을 보내셨고,
그들의 피를 통해 복음의 피가 뿌려지기 시작했다.
각국의 선교부가 한국을 도별로 정해서 경상도는 호주가, 경기도는 침례교가 하는 식으로
선교정책을 통해서 복음이 시골 구석까지 전해지게 된 것이다.
그런 피뿌림을 통해서 한국교회는 하나님의 복을 통해 우상이 물러가고 가난이 물러가고
한국 역사상 한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경제적 축복을 누리게 되었다.
이스라엘이 애굽을 나오면서 재물을 수 없이 챙겨 나온 것과 같다.
우상을 멀리하고, 종에서 나오니 하나님께서 예배의 축복도 주시고 경제적 축복도 동일하게 주신 것이다.
하나님의 주권적인 역사이다.
한 선교사는 일본을 가기로 했고,
한 선교사는 중국을 가기로 했다.
어떤 선교사는 인도로 가기로 했다.
하나님께서 그들의 마음을 바꾸셔서 다 한국으로 오게 하시고,
어떤 선교사는 한국 땅을 밟자마다 죽게 되고,
어떤 선교사는 자녀들 마저 다 죽게 되고 수 없이 그렇게 죽어간 선교사들의 묘가 양화진에 있다.
이름도 모를 수 많은 선교사가 대한민국을 위해 피를 뿌림으로 우리가 지금 우상과 마귀의 종으로부터, 가난의 종으로부터
해방되어 여기 세계와 어깨를 나누는 자리까지 오게된 것이다.
모세는 오늘 이스라엘에게 우리가 어디서부터 나왔는지 기억하라는 것이다.
바로로부터, 애굽으로부터 나온 것을 기억하라고한다.
한국이 지금 이렇게 형편이 좋지만, 우리가 이전에 어떤 형편이었는지,
우리가 어떤 모습으로 살았었는지를 기억하라는 말이다.
불가능한 일들이 수 없이 일어난 한국의 역사를 보며 이것이 과연 누구의 덕으로 되었는지
한번 기억해 보라고 가슴치며 이야기 하고 있다.
둘째로 기억해야할 것은 한국교회의 아픔을 기억하라는 것이다.(8:2)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 사십 년 동안에 너로 광야의 길을 걷게 하신 것을 기억하라
이는 너를 낮추시며 너를 시험하사 네 마음이 어떠한지 그 명령을 지키는지 아니 지키는지 알려 하심이라"
하나님은 순교의 피를 통해 한국교회를 축복하셨다.
한국은 선교사가 들어오기 전에 이미 성경이 번역되어 성경이 먼저 들어온 축복의 나라이다.
가장 젊은 선교사, 가장 높은 교육을 받은 수준 높은 선교사가 다 한국으로 왔던 축복의 나라이다.
그래서 그들이 학교를 세우고, 병원을 세웠다. 한국의 가장 좋은 대학과 병원은 다 선교사들이 세운 것들이다.
이런 일들을 통해 한국교회는 엄청난 부흥과 축복의 은혜가 이어진다.
하지만 한국교회가 자기의 역할을 다하지 못했을 때, 하나님은 우리에게 아픔을 주셨다.
이스라엘이 광야 40년을 지난것처럼 낮아지게 하시고 겸손하게 하시며
말씀의 권위를 위해 광야를 지낸 시간을 기억하라는 것이다.
일찍이 복음이 한국에 들어왔으나 그것을 바르게 받지 않자 일본을 통해 한국을 넘기셨고,
일본이 하나님보다 더 높다고 자만하니 핵폭탄을 통해 일본을 밀어버리셨고,
평양에 대 부흥 운동이 일어나서 동방의 예루살렘이라 일컬음을 받았지만,
그곳에 김일성 동상이 세워지고 교회가 복음을 온 나라로 전파하지 않으니 6.25를 통해서
모든 목사님들을 남한으로 보내셨고, 삼일교회에서 회개기도하니 맥아더를 통해서 다시 회복하는 은혜를 주셨다.
교회가 복음으로 다시 일어서서 방방곳곳에 교회가 세워져 하나님의 축복이 일어선다 싶었지만,
88올림픽을 통해 외국 여행 자유화가 되었지만, 교회들이 선교하지 않자 IMF를 주셔서 외환위기를 주셨고,
그후에 교회들이 선교에 박차를 가해 세계선교 2위국이 되게 하셨다.
한국교회가 국민소득 2만불 시대가 되고 교회가 성장하는데 자기들만 잘 먹고 자기 교회의 이름만 내는데 혈안이 되고,
교회가 부패하자 아프카니스탄 선교팀 피랍사건을 통해 두 명의 순교자가 나오게 되어
온 나라가 교회를 핍박하고 교회를 지탄하여 하나님의 이름이 땅에 떨어지는 결과가 되었다.
TV에 나오는 수 많은 연예인들이 교회를 다닌다고 하고, 교회가 다른 어떤 것보다 많은 것이 이 나라의 형편이 되었다.
이 때에 성경은 또 우리에게 ‘기억하라’는 말씀을 주셔서,
우리가 좋을 때, 기적을 체험할 때, 잘나갈 때 하나님은 우리가 잘 못하면 아픔을 주시고
광야를 걷게 하신다는 것을 기억하라고 하신다.
이스라엘이 광야 40년을 걷게된 것이 기적과 축복을 보고 경험한 바로 그 후의 일이다.
우리가 이렇게 잘 사는것, 우리가 형편이 좋은 것이 하나님 없이
우리가 잘해서 된 것으로 착각해서는 안된다고 성경은 말한다.
기적을 체험하고 은혜를 체험하고 수중에 돈이 좀 들어오고
신앙생활을 하는데 별 어려움이 없는 그때 이스라엘은 하나님을 잊었다.
환경을 보고 살면 하나님을 잊게 된다. 이렇게 이룬 것이 내가 한 것처럼 착각하게 된다는 말이다.
그 때, 죽을 고생한 것을 기억하라는 것이다.
하나님은 한국교회가 결정적으로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지 못하고 자기들만 배부르고 하나님의 사명과
하나님의 마음을 헤아리지 못할 때, 고통이 온 것을 기억하라는 말이다.
세째로 여호와가 물질의 복을 주셨음을 기억하라(8:18)
"네 하나님 여호와를 기억하라
그가 네게 재물 얻을 능을 주셨음이라 이같이 하심은 네 열조에게 맹세하신 언약을 오늘과 같이 이루려 하심이니라"
아프리카보다 12배가 작고,
미국에 비해 50배가 작으며,
일본보다도 작고,
중국보다는 더더욱 작은 나라이다.
일제시대에는 말도 할 것이 없고,
6.25후 아무것도 남아 있지 않은 폐허의 나라였다.
단지 남은 것이라고는 부흥을 경험했던 북한의 목사님들과 모든 성도들의 눈물의 기도, 회개의 기도였다.
그것이 한국을 살렸고,
교회가 살아나고,
하나님만 섬기는 신앙이 회복되자 알게 모르게 나라는 살고
대한민국은 세계 10위의 경제력을 가지게 되었다.
우상을 섬기고,
가난과 어둠의 종이었던 한국이 복음을 믿고 말씀을 믿고,
하나님을 섬기니
애굽에서 이스라엘이 나올 때처럼 재물의 복, 물질의 축복이 몰려온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주신 기억하라의 세번째이다.
한국은 가장 좋을 때이다. 어렵다고들 하지만 전 세계는 더 힘들다.
그래도 한국은 살만하다.
아프리카만 해도 죽을 지경이다.
흑인들은 여전히 하루에 두끼만 먹어도 잘 먹는 것이다.
그것도 아침은 빵 한조각이다.
몇일전 타운하우스 가드너가 돈 7000원을 빌리러 왔다.
집에 전기를 켜야하는데 돈이 없단다. 아이들도 있어 너무 힘들다는 것이다. 추워 죽을 지경이라는 것이다.
아침마다 문밖을 나가면 수 많은 사람들이 내어놓은 쓰레기 봉투를 뒤진다.
뭐라도 먹을 것, 뭐라도 건질 것이 없는지 찾는 것이다.
한국은 그렇지 않다. 반만년 역사중에 가장 잘 먹고 잘 입는다.
교회는 간식이 남아돌고, 아이들에게 간식을 주면 이런 것은 안먹는다며 버리고 간다.
교회마다 선교여행이다해서 외국은 기본으로 다니고
회식이라도 하면 상상할 수 없는 돈을 지불한다.
이것을 문제라고 말하는 것은 아니다. 각 교회의 형편과 여건이 다르기 때문이다.
한가지 중요한것은 한국교회 역사상 가장 좋은 시절을 보내고 있다는 말이다.
이 때, 한국교회가 어디로 갈지를 방향을 잡고 가지 않으면,
믿음의 결단을 하지 않으면,
바른 말씀으로의 행함이 없으면 또 고통의 40년이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좋을 때, 살만할 때, 뭔가 할 수 있을 때 하나님의 뜻을 구하고,
왜 이런 경제적 축복을 주셨는지 분별하라는 말이다.
예루살렘 교회가 초대교회 때, 가장 좋을 때 하나님께서 핍박을 허락하셨다.
이유는 복음은 온 세상에 전파하기 위해서이다.
평양 대부흥 운동이 있고 난 후, 하나님은 목사들을 흩으셨다.
가야할 곳을 향하여 복음을 전하라는 것이다.
한국의 환율이 안정되고 선교할 기회가 있을 때 선교하지 않으니 한국에 IMF를 통해 아픔을 주셨다.
온 나라가, 교회가 기도하고 선교해서 다시 제자리로 돌아왔다.
선교도 제대로 하지않고, 한국교회가 자기 교회 이름만 내고, 자기 사명을 감당하지 않으니 순교의 피를 흘리게 하셨다.
한국은 더 나은 나라가 될 것인가?
한국교회가 더 수준 높은 교회가 될 것인가의 기로에 서 있다.
하나님은 우리가 사명을 감당하지 못할 때, 하나님의 뜻을 따르지 않을 때
광야 40년 생활이 있음을 기억하라고 하신다.
여기서 더 나은 것은 하나님께서 주셔야한다.
축복을 주실만큼 주셨다.
뭘 더 바라는가?
전세계 일등이 되면 그때 하나님의 뜻을 따를 것인가?
아니다. 지금이다.
지금 그뜻을 구하고 따라야 일등도 있고 영광도 있다.
복음을 잡을 때,
교회 중심의 삶,
성막 중심의 삶,
말씀 중심의 삶은 어떤 형태로든지 물질의 축복을 가져온다.
한국은 하나님께서 주신 이 물질의 축복을 기억하고
그 복이 어디서 왔는지 기억해야한다.
다 쓰러져가는 집에 다섯식구가 살던 때를 기억한다.
새벽이면 연탄을 갈아야하기 때문에 누군가 시린 바람 맞으며 집게로 연탄을 갈아야 하고,
'아차!'하고 타이밍을 놓친 채, 잠을 자면 온 방이 냉방이 되어 아침마다 콧물을 흘렸던 시절이 얼마전이다.
셋방에 살며 우리 부모님께서는 시장바닥에 자판을 펴고 찬바람을 맞으며 지낸 세월이 얼마전이다.
도시락 반찬 김치에 콩나물이 한결 같던 시절이 얼마전이다.
언제 우리가 마당도 안나가고 문을 열어주며,
언제 우리가 집집마다 자동차에 컴퓨터에 설겆이를 하며 전화며 인터넷이며 TV를 다 보았는가?
언제 한국이 살을 빼기 위해서 굶는다는 것을 상상이나 했는가?
집집마다 외국 한번 다녀오지 않은 사람이 없을만큼 언제 우리가 그렇게 부유했는가?
이전에는 미제, 일제 물건을 가지면 그렇게 자랑했는데
이제는 외국 가면 살 것이 없고 한국 것이 좋다고 겨우 몇 가지 선물만 사오는 시대가 되었는가?
마음만 먹으면 먹고 싶은 것 먹고,
마음만 먹으면 하고 싶은 것 하고 사는 시대가 대한민국 오천년 역사에 이런 시절이 있었는가?
그때와 지금 시대의 한 가지 다른 것은 하나님을 믿는다는 것, 그 외에는 다른 것이 단 하나도 없다.
정치는 혼란스럽고,
외세는 늘 우리 나라를 넘보고,
사회는 우울하고
미래는 늘 불투명한 시대를 우리는 늘 살았다.
단 하나 다른것
하나님 말씀이 오시니 이 나라가 재물의 축복이 함께 온 것 말고는 다른 것이 무엇인가 말이다.
한국교회여!!!
넷째는 우리가 여호와를 격노케한 것을 기억하라고 한다. (9:7)
성경은 말하기를 우리가 늘 하나님을 거역한 사람이라고 말한다.
애굽을 나온 후로 늘 하나님을 격노케 했다고 말한다.
왜 하나님께서 격노하셨나?
하나님을 인정하지 않으면 하나님은 격노하신다.
애굽에서 나온 것, 광야를 지난 것은 다 하나님께서 인도하신 것이다.
그런데 배가 좀 부르니까,
형편이 좀 나아지니까
내가 좀 살만 하니까 한다는 말이 ‘내가 좀 잘해서 그렇지’라고 한다.
‘내가 노력해서, 내가 잘 열심히 해서, 내가 좀 타고난 것이 있어서’라는 말로
하나님이 하신 일임을 기억하지 못한다는 말이다.
"네 하나님 여호와를 잊어버리게 되지 않도록 삼갈지어다"(8:11)
"두렵건대 네 마음이 교만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잊어버릴까 하노라"(8:14 )
하나님은 이런 말을, 아니 마음을 볼 때 격노하신다.
그래서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을 다 쓸어 버리려고 하셨다.
하나님이 가장 싫어 하는 것 한가지는 하나님 아니어도 내가 잘한다는 마음이다.
내 공로를 내세우는 것이다.
자기 자랑이다.
자기의 이다.
다른 사람보다 내가 좀 잘한다는 것이다.
좀 더 벌고, 좀 더 공부를 잘하고,
내 자식이 내가 잘 가르쳐서 그렇다고 생각하는 것!
나의 의다.
하나님은 우리가 하나님을 알던 날부터 지금까지 늘 그렇게 해왔다는 것이다. (9:24)
그래서 하나님께서 격노하던 그것을 기억하라는 말이다.
하나님이 뭘 싫어하고 다 쓸어버리기까지 하시는지 기억해 보라는 말이다.
하나님은 사람들이 자기의에 빠지는 것을 제일 싫어하신다.
하나님이 하셨다는 고백, 믿음의 고백이 아니라,
자기가 잘나서,
자기가 재주가 많아서,
자기가 가진 것이 많아서 라는 생각 자체를 무조건 싫어하신다.
이런 생각은 하나님께서 한꺼번에 쓸어버리는 가장 빠른 지름길이다.
한국 교회는 지금 여기에 빠져있다.
그래서 한국교회는 자기 이름을 내려고 한다.
한국교회 사람들은 자기 자랑에 빠져있다.
하나님의 도우심,
하나님의 축복,
하나님께서 인도하심이 아니라
처음 복음의 감격과 은혜가 사라지니까
자기들이 잘해서 교회가 이만큼 되고
나라가 이만큼 사는 것으로 생각한다.
교회가 이만큼 성장했고, 성장에 내가 이만큼 기여했다고 목에 힘을 준다.
어떤 장로님은 새로운 젊은 목사가 부임을 왔는데
올 때부터 몇 년이 지난 지금까지 온갖 방법으로 목사를 힘들게 한다고 한다.
이유가 뭔가를 알아보니 부임해서 자기에게 인사를 하러 오지 않은 것이 괘씸해서 지금까지 그렇게 한다고 한다.
장로님이 교회에 큰 공로를 세웠다고 여기는 모양이다.
내가 교회를 세우는데 큰 공을 세웠다고 생각한다.
내가 아니면 교회가 세워지지 않았다고 여긴다.
내가 말씀을 잘 전하니까 교회가 이만큼 성장했다고 생각한다.
내가 능력이 있어서 사람들이 나를 존경한다고 생각한다.
내가 그래도 열심히 뛰어 다녀서 이만큼이라도 성장했다고 생각한다.
그런 생각을 하는 순간, 그 사람은 바람처럼 날라간다.
추호라도 나의 의가 자리 잡으면 우리는 망한다.
그런 의가 목사에게라도, 장로에게라도 있다면 그 교회는 말씀의 영광이 사라진다.
하나님을 격노케 하는 것이다.
격노는 하나님의 마음이 화로 불 붙는다는 단어다.
한번 불 붙으면 끄기 어렵다.
하나님은 소멸하는 불이요, 질투하는 하나님이다.
자기의를 버려야한다.
나의 재주 있음을 내려 놓아야 한다.
나의 말 잘함을 내려 놓아야 한다.
나의 세상적 실력과 지식을 내려 놓아야 한다.
하나님께서 주신 것이다.
하나님이 하신 것이다.
다 하나님의 공로이다.
그것이 추호라도 사라지고 내가 그 속에 자리 잡고 있다고 하면
그것은 선악과를 만지는 것이고,
바벨탑을 쌓는 것이다.
결단코 하나님께서 한국교회를 싫어하는 이유는 자기공로이다.
자기 자랑이다.
자기의 이다.
이 자기의는 신약에 와서 그대로 심각성을 드러내고
하나님과 예수님께서 얼마나 싫어하시는지 그 중요성을 말씀하고 있다.
신약에서, 산상보훈에서, 예수님께서 가장 좋지 못한 모습으로 말한 것이 바로 자랑, 자기의 이다.
사랑하라고 하시고 난 후에 바로 말씀하신것이 구제하고 자기의를 나타내지 않도록 하라고 하신다.
하늘의 상이 없다고 하신다.
왜?
하나님께서 제일 싫어하시는 것이다.
외식하지 말라고 또 바로 말씀 하신다.
자랑하지 말라는 말이다.
사람들에게는 부족하다고 하면서 마음 속 깊은 곳에서는 자기 자랑을 하고 싶어 미친다.
그래서 가만히 들어보면 자기자랑이다.
그래서 구제할 때도 오른손이 하는 것을 왼손이 모르게 하라고 하셨다.
이유는 하나다.
나의 구제가 자랑이 되지 않게 하라는 말이다.
어찌 내 오른손이 하는 것을 왼손이 모를수 있나?
같은 한 사람의 손인데!
그저 구제하면 그것으로 끝내라는 것이다.
자랑으로 여기지 말라는 말이다.
다른 사람이 모르게 하기전에 내가 그것을 자랑으로, 의로 여기지 않는 마음을 가지라는 말이다.
은밀하게 하면 하나님이 갚으신다고 강조한다.
그래서 기도 자체도 자랑의 도구가 아니라 본질적으로 하나님과의 관계,
이웃과의 관계가 실제적으로 적용되어야 함을 말씀하신다.
그래서 진정한 기도는 용서를 포함한다.
용서가 포함되지 않는 모든 기도는 자신의 자기 자랑에 사용된다.
용서는 자기 희생이다. 그것이 기도다.
금식도 마찬가지다.
사람에게 보이려고 하지 말라
한마디로 자랑하지 말라는 것이다.
그래서 그 후에 모든 것을 하나님이 아시는데 뭐가 걱정이냐 염려하지 말라고 하신다.
내가 나의 행위를 자랑해야 사람들로부터 인정받고 존경받고 세움받는다고 생각하는데 아니다.
하나님이 아시니 걱정말고 보물을 하늘에 쌓고,
즉, 하나님 앞에서만 행하고 사람들이 알아주지 않아
세상살이가 걱정되더라도 믿음으로 하나님께만 구하면 다 된다 그렇게 말씀이 연결이 되는 것이다.
그래서 사람에게 자랑하고 의를 내세우려고 하지말고,
하나님께 찾고 구하면 하나님이 주신다는 말씀이다.
외식하는 자는 하나님께는 구하지 않고 세상의 관점으로 사는 사람이다.
거룩한 것을 개에게 주지 말고, 진주를 돼지 앞에 주지 말라는 말이 뭔가?
거룩한 것은 영적인것,
우리가 행한 선과 의들이다.
진주는 우리가 이루어 놓은 보석같은 열심과 행적이다.
그런 것들을 자랑해서 다 날리지 말라는 말이다.
자랑하는것은 그 좋은 수고를 개와 돼지에게 주는 것과 같다는 것이다.
개와 돼지는 우리의 좋은 것으로 도리어 욕을하고 시비걸고 악하게 이용해서 우리를 물어뜯는 사람들이다.
한국교회는 자기의에 빠져있다.
내가 잘해서, 우리가 잘해서가 만연해있다.
그래서 다른 사람을 돌아보지 않고 자꾸 자기 스스로 높아지려고 한다.
자기 이름을 내려고한다.
왜 교회에 사람을 모으려고 하는가?
그 속을 가만히 들여다 보면 진정한 하나님의 나라보다
뭔가 이름을 한번 내보려는 마음이 도사리고 있다.
비전을 따라가고 영혼을 세우기 위함이 아니라 내 존재,
내 가치를 한번 높여 보려는 마음이 자리잡고 있다.
그래서 선교도 진정한 선교가 아닌 이름을 내기 위해서 서로 경쟁하듯이 한다.
다 하나님께서 격노케하는 것들이다.
그래서 사람들이 우상을 만들고,
목이 곧은 백성이 된다고 경고하신다.
다 자기를 드러내고 높이고 채우고 자랑하기 위한 것이다.
자기의에 빠지면 교회가 영적으로 막힘을 느낀다.
자기 자랑이 드러나기 시작하면 목회자는 영이 흐려진다.
본인들은 모른다.
교회는 모르게 된다.
어디서 잘못되었는지!!!
바벨탑의 핵심은 우리의 이름을 내자이다.
아담의 선악과의 핵심은 하나님처럼 되는 것이다.
오순절 성령의 역사로 나타난 특징은 내 것, 네 것이 사라졌다.
예수님이 오시면서 우리의 공로는 사라졌다.
오직 예수의 공로가 나를 살리게 된다.
한국교회여! 자기의 자기자랑에서 벗어나라.
하나님을 격노케 하지 말라!!!
하나님은 오늘 나에게 이 말씀을 하고 계신다.
이것은 한국교회를 향한 말씀이 아닌 내 안에 이런 의식을 주심으로
어떻게 교회가 가야할지를 보여주신다.
어리석은 자가 결코 한국교회의 위대함을 업신여기지 않는다.
그러나 어디로 가야할지 말씀 하시는 하나님 앞에 우리는 울어야 하고 통회해야 하고 길을 돌이켜야 한다.
그것이 우리가, 우리의 자손들이 살길이다.
피를 토하는 심정으로 나는 그렇게 외치고 싶다.
한국교회여 기억하라!!!
한국교회가 살 길은 기억하는 것이다.
1. 한국교회가 과거에 하나님께서 우리를 어떻게 역사하셨는지 기억하는 것이다.
2. 한국교회가 언제 아픔을 가졌는지 기억하는 것이다.
3. 우리가 하나님을 격노케 한 것을 기억하는 것이다.
우리의를 내려 놓아야한다. 자랑하지 않고 자기 이름 내지 않고 순수하게 영혼을 섬기는 교회가 되어야 한다.
그런데 한가지 의문이 간다.
이런 아픔과 하나님을 격노케 했음에도 한국교회가 여기까지 왔는가 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