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y me?" 2편
신명기 7장 1-11절 말씀을 묵상하면서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모습을 보여주시며
나의 과거를 기억나게 하신다.
그리고 지난 하나님의 역사를 한번 정리해 보라는 마음을 주셔서 1편에 이어 2편을 시작한다.
두려움은 나의 소속이 어딘지 모를 때 온다.
예수를 믿고 내가 싸웠던 한가지는 바로 제사와의 싸움이었다.
불신가정에서 나오는 모든 사람들의 고민은 바로 제사이다.
불같은 친척들과 할머니, 그리고 부모님을 생각하면 일년에 5-6번씩 지내는 제사는 죽음이었다.
그러나 그때 하나님께서 나에게 또 다시 말씀을 통하여 내 안에 생명의 능력을 주셨다.
제사 때문에 식음을 전패하고 방에서 고민할 때 하나님은 이 말씀을 주셨다.
'몸은 죽여도 영혼은 능히 죽이지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말고
오직 몸과 영혼을 능히 지옥에 멸하시는 자를 두려워하라'[마10:28]
하나님은 그때부터 결정적인 순간에 말씀으로 찾아오셨다.
제사를 지내지 않아야겠다 결심하고 기도하였으나 막상
제사를 지내는 순간 두려움이 왔다.
사람들이 두려웠다. 어떻게 해야하나?
내 마음을 아시는 하나님은 말씀으로 담대함을 주신다.
제사를 지내는 순간 나는 절하지 않고 아무말 없이 서 있었다.
이상한 일이 일어났다. 아무도 나에게 왜 절을 하지 않느냐고 묻는 사람이 없다.
하나님께서 나에게 뭘 어떻게 하셨는지 알 수 없다.
그 시간부터 지금까지 내 앞에서 사람들이 말을 못하게 하셨다.
내 안에 죽음을 넘어선 능력을 사람들이 보게 된 것인가?
하나님께서 또 한 순간을 말씀으로 넘어가게 하셨다.
우리가 사실 두려워하는 것은 결국 한가지이다.
사람들이 나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그 사실이 나를 두렵게 만든다.
영원을 소유한 사람은 육체에 매이지 않는다.
단지 육체가 걸림돌일 뿐이다.
그러나 몸을 죽일 수 있는 사람, 몸만 어떻게 할 수 있는 세상보다
영혼과 몸을 모두 주관하시는 하나님을 인정할 때 우리는 육체를 넘는 담대함을 얻는다.
모세가 두려워한 실체
모세가 사실 떨기나무에서 하나님을 뵙고 하나님의 사명을 받는다.
하지만 우리가 아는대로 모세가 그 사명을 잘 받아들이지 않았다.
우리는 모세가 하나님이 보여주시는 이적과 소명을 그대로 받은 줄로 생각하지만,
사실 성경을 잘 보면 모세는 그렇지 않다.
모세는 사명을 거부하다 하나님께서 길에서 죽이려 하셨다.
다음에 그 상세한 내용을 설명하기로 하고,
왜 모세가 하나님을 만나고도, 이적을 보고도 사명을 거부했는가를 생각해 보자.
모세는 한가지 두려움이 있었다.
'사람들이 나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사람들에 대한 두려움이 있었다.
역사적으로, 또 개인적인 측면에서 모세는 자신을 세상 가운데 드러내기가 두려웠다.
그래서 모세는 끝까지 하나님 앞에 어쩔 수 없이 가다 죽을 뻔한 사건을 경험한다.
예수님은 가이사랴 빌립보 지방에 이르러 제자들에게 물었다.
'사람들이 나를 누구라 하느냐?'
예수님은 사람들이 나를 어떻게 생각하느냐를 궁금해 하셨지만,
그것이 예수님을 두려움으로 몰고가진 않았다.
그분은 세례를 받고 명확하게 자신이 누구인지 하나님으로부터 들으셨다.
자신이 누구인지 모르면, 내가 누구에게 속해있는지 알지 못하면
우리는 늘 두려움에 떨게된다.
7:1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를 인도하사'
우리는 하나님께서 인도한 사람들이다.
우리는 우리의 몸이 세상사람들로부터 평가받는것으로 좌지우지 될 존재가 이미 아니다.
사람들은 더러 세례요한이라고도 하고, 엘리야라고도 하고 예레미야나 선지자중에 하나라고 한다는 말에
예수님은 그렇다면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고 당당하게 물으셨다.
베드로의 대답은 명답이었다.
'주는 그리스도시요. 하나님의 아들입니다'
'이것을 알게한 것은 혈육이 아니라 하나님 아버지로부터이다'
우리가 우리가 누구인지 아는 순간 우리는 천국을 흔드는 사람이 된다.
우리의 존재가 하늘을 풀고 하늘을 매는 존재가 되는 것이다.
두려움은 우리가 누구인지 알지 못할 때 세상이 주는,
육체를 제어하는 하나의 도구이지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영혼이 하늘과 통한자, 영혼이 하늘과 맞닿은자는 이미 천국의 주도권을 가지고
세상을 주도하는 자인 것을 기억해야 한다.
하나님은 우상을 버릴 때 그것을 나에게 은혜로 주셨다.
하나님께로 돌아설 때 이미 나는 세상의 사람이 아니다.
그일후에 영적으로 하나님 앞에 더욱 깊어져 갔다.
고등학교 3년은 기도의 깊이를 더해가는 시간이었다.
영적인 스승
가장 감사한 것은 좋은 영적인 스승을 만난것이다.
박흥철목사님!
당시 강도사님으로 시작된 만남은 거의 10년을 그 밑에서 영적훈련을 받을 수 있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사람을 훈련 시킬 때 영적 사람을 통하여 훈련시키신다.
나는 박목사님을 통하여 여러 영적 훈련들을 받게된다.
영적감각,
말씀에 대한 자세,
설교의 스타일 등등.
사람을 두려워 않고 말씀으로 기준삼아 사는 배짱을 박목사님을 통하여 배우게 된다.
군대가기전 23살까지 그분 밑에서
구속사적 설교와 성경공부,
일을 할때 행정절차,
성경공부인도,
수련회와 여러 봉사들의 준비와 기획 진행, 공연의 준비와 공연발표.
행정문서의 작성과 주보제작 등등.
이미 나이 23에 그런것들은 다 섭렵하게 되었다.
가장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관점을 가지는 훈련과 하나님 앞에 사는 삶의 자세이다.
말씀을 볼때 '하나님께서'라는 관점으로 보게 하시고,
설교도 '하나님께서 어떻게 행하셨는가?
'이본문을 통하여 하나님께서 뭘 말씀하시고 싶어하시는가?'하는 등등의 말씀에 대한 훈련들을 통해
인생의 가장 기초적이고 영적 기본이 되는 훈련들을 그분을 통해서 하게 된다.
이미 그때 성경의 '톨레토트'(창세기의 기록은 각 족장별로 기록이 되어 후대 저자가 그렇게 묶어서 기록했다는 내용)나,
출애굽기의 구속사적 관점으로의 공부,
마태복음의 왕으로 오신 그리스도, 사복음서의 권별 주제 특징 상관관계 등등
신대원에서 배울법한 것들을 그분을 통하여 배우게 되었다.
그런 기초하에 하나님은 이때부터 말씀에 대한 훈련들을 하기 시작하셨다.
성경에 대한 지식과 함께 개인적으로 성경을 어떻게 묵상하고 적용을 통하여
삶에 어떻게 그 하나님을 연결하고 체험하는지 구체적으로 훈련하게 하셨다.
단 하루도 큐티를 하지 않으면 밥을 먹지 않았고,
대학에서 없던 프로그램과 성경공부인도, 수련회 등등 할수 있는 여러 다양한 활동들을 통해
리더로서의 훈련들을 하게 하셨다.
뿐만 아니라 터미널 선교회를 통해 학교에서 뿐아니라 터미널에서 근 2년을 매주 나가서 전도하는 훈련을 하게된다.
학교에서는 리더로서 성경을 공부시키고 가르치고 훈련시키고,
터미널전도를 통해서 사영리를 전하고 전도하는 훈련을 하게 된다.
놀라운 것은 매주 나가면 성령께서 만나실 때 사영리를 통해 예수를 믿고 영접하는 사람들을 아주 많이 보내주시고
복음 증거의 삶을 살게 하셨다.
지나보면 감사한 것이 좋은 영적스승을 만나게 되고 그분을 통해 그 시간대에 경험할 수 없는 깊은 세계를 경험한 것과
좋은 리더의 삶을 통해 어떻게 삶을 살아야 될지도 결정하게 되는 중요한 계기가 된 것이다.
돌이켜보면 마친 성경공부 교제가 백여권이고,
나가서 2년 동안 사영리로 복음을 전하고 영접하는 현장을 목격하고,
각종 훈련들을 받도록 인도하신 것은 하나님의 세심한 베려가 아닐 수 없다.
이때 하나님으로부터 소명을 받게 되는데...
나이 20에 하나님으로부터 소명을 받게 된다.
사역자로의 헌신이다.
많은 은혜가 있었다.
하나님은 처음부터 작정하고 부르시고 세우셔서 사역자로 부르시길 원하셨던 것이다.
그런데 나는 나를 보니 자신이 없었다.
아는 것도, 가정도 뭐하나 할 수 있는 것이 없을것 같았다.
무엇보다 내가 아는 그 당시 사역자는 그 수준이나 모습이 나 같은 사람과 달라보여 그 길을 가기에 용기가 나지 않았다.
기도가 깊이 들어가면 하나님은 부르시고 나는 '주님 나는 부족합니다'라는 시간이 반복되었다.
그래서일까 나는 결국 10년 늦게 사역을 하게된다.
하나님이 부르실 때 가면 아무리 어려워도 하나님께서 하시나 내 모습을 보고 가면 결국 가지 못한다.
이때부터 나를 보지 않고 하나님만을 보면서 가는 습관이 되었다.
10년을 돌고 느끼게 된 것이 결정적일 때 하나님의 음성에 순종하지 않으면 짧지 않은 인생에 10년을 허비할 수 있다는 것이다.
아니 성경은 기본이 40년이라고 말한다.
사사기에 나타나는 년수는 기본이 몇 십년이다.
'아차!' 하며 하나님의 뜻을 나도 모르게 흘려버리면 한 사람의 인생이 송두리째 날아가 버린다.
우리는 어떤 결정을 해야하는 순간이 온다.
이때는 이미 하나님께서 그 결정을 받아들일 경험과 체험과 말씀의 의미를 주셨을 때이다.
그래서 받아들이면 되는데,
눈앞에 보이는것,
환경이나
더욱이 자신을 돌아보면 결단코 앞으로 나아가지 못한다.
이때는 내 안에 그분의 음성, 그분의 부르심을 따라가야 하나님의 뜻을 볼 수 있다.
그런 세월을 보내다 군대를 가게 된다.
군을 통해 영적 원리 한 가지는 사람을 의지 하지 말라는 것이다.
군대도 아는 형님을 통해서 좋은곳에 배치를 받게 되어 있었는데
나는 38선 바로 밑에서 근무하게 되었다.
'왜일까?'를 수 없이 질문했다.
이유는 한가지다.
내가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고 사람을 의지 한것이다.
기도하지 않고 아는 형님을 통해 배치를 받으려 한것이 문제였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사람이 사람을 통해 일하지 않고 오로지 하나님만으로 일하고 그분께 의뢰하기를 원하신다.
우리가 사람이 아닌 하나님만 의지하기를 원하셔서 그것을 깨닫게 하기 위해서 나를 먼곳으로 보내셨다.
그리고 행정을 배우고 최우수사병과 행정 최우수 사령관 표장도 받게 되었다.
하나님은 세밀하게 일하시고 나의 약함을 채워 가심을 발견한다.
두 명의 만남
제대후 내가 만난 두 명의 영적 사람은 김동인 목사님과 나의 아내이다.
김동인 목사님은 내가 제대 후, 얼마지 않아 전도사님으로 오셨고 나는 같은 중등부 교사로 일하게 된다.
그후로 함께한 세월이 지금껏 15년이다.
나는 나의 신앙체질을 볼 때 아는것을 표현해 내는데 아주 부족했다.
세밀하고 자신의 실체와 말씀을 분석하고 정의하고 어떤 일들을 조정하는 능력이 탁월한 목사님과 함께한 시간은
일차적으로 목사님을 통해 하나님은 나를 조정하고 조절하고 균형을 맞추는 작업을 하셨다.
정확히 기억은 나지 않지만 하나님은 건 10년을 목사님을 통해서 듣기만하게 하셨다.
그러면서 나의 한쪽으로 가 있는 신앙에 중심을 잡도록 엄청 긴 시간을 훈련시키신 것이다.
아마 김목사님이 아니었다면 나는 신앙 세계의 한쪽만을 가지고 그것이 전부인 것으로 여겼을 것이다.
김동인목사님은 아마 앞으로 할 말이 많을 것 같아 아내 이야기로 넘어가 보자.
제대 후, 학교를 다니면서 마음에 온 것은 미래를 위해 기도해야겠다는 생각이었다.
그래 방학을 이용해서 짐을 싸서 교회 종탑방으로 올라갔다.
40일을 기도하고 금식하고 말씀을 읽는 시간으로 보냈다.
그때 진로와 배우자를 위해 기도했는데
감사하게 배우자에 대한 말씀을 주셨고, 지금의 아내를 주셨다
아내를 향한 확신의 말씀은
'아담이 이르되 이는 내 뼈 중의 뼈요 살 중의 살이라 이것을 남자에게서 취하였은즉 여자라 부르리라 하니라
이러므로 남자가 부모를 떠나 그의 아내와 합하여 둘이 한 몸을 이룰지로다'(창2:23-24)
이 말씀으로 아내를 주셨고, 함께 마음으로 온것은 연약한 그릇이라는 마음을 주셨다.
내가 섬기고 사랑해야할 아내지만 나에게 주신 아내는 연약한 그릇으로 주셨다는 말이다.
그래서 나는 늘 아내를 연약한 그릇으로 여기고 사랑해야 하나님의 말씀에 맞게 살 수 있다.
감사하게 여지껏 처음 마음처럼 살고있다.
하나님으로부터 시작한 만남은 갈수록 기쁨이 있다.
말씀으로 시작한 만남은 하나님께서 책임지신다.
그것을 아내를 통해 지금껏 말씀하시고 확증하신다.
아내와 결혼 후, 하나님은 사역에 대한 마음을 너무 강하게 주신다.
할 수도 안할 수도 없는 환경으로 몰아 가시면서 결국 사역을 할 수 밖에 없는 상황으로 인도하셨다.
기도속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들었다.
사명을 말씀으로 받았다.
요21장15절부터 말씀!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내 양을 먹이라'
그때 나는 눈물로 기도하면서 물었다.
'하나님 왜 나입니까? 이미 20살때 기도했지만 나는 너무 부족하고 연약합니다. '
'나보다 잘난 사람, 똑똑한 사람, 환경이 좋은 사람이 많은데 왜 나입니까? '
거부할 수 없는 음성에 나는 그렇게 솔직히 물었다.
하나님은 그렇게 대답을 하셨다.
'많은 사람중에 네가 더 많이 부족하다 그래서 내가 너를 쓴다'
이 말씀 앞에 나는 주체할 수 없는 눈물과 함께 모든 것을 내려놓고 확증하고 주님으로부터 사명을 받았다.
'더 많이 부족해서 쓰시겠다면 드리겠습니다.'라고 대답하며 본격적인 사역의 길이 시작된다.
첫 신대원을 시험쳤다.
직장생활하다 두 달 공부하고 쳤는데 될리 없다.
시험친 다음날 면접보는 새벽 꿈에 하나님께서 시험에 떨어 졌다고 말씀하셨다.
다음에는 시험을 칠 수 있는 여건이 되지 않아 넘어가고
그 다음에 시험을 쳤다.
중간에 우여곡절이 많지만 넘어가자.
시험치고 면접보고 내려와서 본당 3층에서 기도하는데 하나님께서 한시간동안 말씀하셨다.
'내가 너를 인도할 것이다. 이스라엘을 인도한 나의 강한 편팔과 능력의 손으로 너를 인도할 것이다'
많은 말씀을 하셨지만 핵심적인 내용은 그것이다.
이미 보지 않아도 신대원을 간다는 확신이 왔다.
그렇게 시작된 신대원의 생활과 사역은 하나님의 능력의 팔이 나를 가장 높은곳으로 인도하셨다.
사역으로는 주일학교와 찬양팀, 방송실, 청년회를 맡으며 섬기게 하셨고,
하는 사역마다 좋은 사람을 붙여주셔서 은혜가운데 성장함을 보게하셨고,
열매를 맺게하셨다.
좋은 사람들은 나로 하여금 나의 약함을 채우시는 하나님의 손길을 느끼게 해주었다..
신대원에서의 공부는 이상한 이야기이지만 그렇게 재미있을 수가 없었다.
교수님들의 이야기를 다 알아 듣겠고,
공부도 어렵지 않게 할 수 있었다.
평생 공부하면서 가장 좋은 성적으로 지내는 시간이 되었다.
졸업할 때 교수님 두분으로부터 이야기를 들었다.
졸업고사로 낸 논문은 어디 내놔도 손색이 없다고 하셨다.
신대원의 양교수님^^께서(알만한 사람은 다안다) 직접 전화까지 주셔서 참 탁월한 논문이라고
칭찬까지 해주셨는데,
나는 이 전화가 나의 신대원 생활의 의미를 하나님께서 주셨다고 믿는다.
이렇듯 하나님은 어리석은 자를 그분의 강하고 능력의 팔로 인도하심을 경험하게 하셨고
귀하게 준비된 시간들을 마무리 할 수 있었다.
왜 나 입니까?
사람들이 묻는다.
왜 이스라엘을 택하셨냐고?
성경 표현대로 그냥 사랑하셔서이다.
다른 민족보다 우리의 수효가 적어서라고 하나님은 말씀하신다.(신7:7)
우리는 이스라엘이 처음부터 좋은 이유,
남다른 이유를 가지고 있어서 하나님께서 선택하셨다고 생각한다.
아니다.
아브라함은 원래 우상섬기는 집안의 아들이고,
야곱은 속이기를 잘하고 약은 사람이다.
모세는 살인자가 되어 도망을 하였다.
요셉은 철없는 사람이었다.
이전에는 몰랐다.
조건이 되고 지혜롭고 슬기로와야 하나님이 사용하시는 것으로...
그래서 나는 하나님의 첫 부르심에 죄송하다고 부족하다고 나같은 사람이 할 수 있겠냐고 반문했다.
그래서 나는 10년을 광야에서 돌았다.
내가 자격이 된다면 하나님은 우리에게 필요가 없다.
자격없는 우리를 부르셔서 그분의 자녀 삼으시고 세우셔서
그분이 영광을 받으시기에 합당하도록 하신다.
처음 나를 부르실 때와 지난 시간 인도하신 하나님을 보면 특별한 부르심임을 알게 된다.
나는 그것이 모든 사람이 다 그렇게 부르시는지를 신대원 졸업 후에 알았다.
모두 다 그렇게 체험하고 경험하고 훈련하고 성경에 대해 많은 지식으로 하나님께서 인도하시는 줄 알았다.
참 무지함이 하나님을 힘들게 만든다.
아무것도 없는 자를 부르셔서 세우시는 능력의 하나님!
철없는 요셉을 세우기 위해 지내야하는 수많은 훈련과 눈물을 통해 그분은 그분의 일을 하심같이
하나님은 어리석고 조건없는 자를 부르셔서 그분의 영광을 받으신다.
하나님은 왜 나같은 사람을 부르셨는가?
왜 나를 사랑하시는가?
한마디로 말한다면,
나는 다른 사람보다 더 많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여호와께서 너희를 기뻐하시고 너희를 택하심은 너희가 다른 민족보다 수효가 많기 때문이 아니니라
너희는 오히려 모든 민족 중에 가장 적으니라 '(신7:7)
하나님은 우리의 약함을 사랑하신다.
하나님은 우리 뜻대로 일할 수 있는 능력의 사람을 부르시지 않고
그분을 철저히 의지하고 사랑하는 사람을 부르신다.
돌아보면 나의 약함이 축복의 시작이다.
더 많이 부족한 것을 감사하게 여기고 하나님께
사용될 수 있음을 기뻐하는것이 우리의 마땅한 바다.
나는 오늘도 하나님 왜 나를 부르셨나요? 라고 묻는다면
그분은 변함없이 네가 더 많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너를 통하면 내가 더 많이 영광을 받을것 같아 너를 불렀다라는 말씀을 하실 것이다.
그래서 나는 교만할 수 없다.
오늘도 그날 받은 '네가 다른 사람들보다 더 많이 부족하기 때문이다'라는
말씀을 생각하면 가슴에서 올라오는 눈물과 감격에 머리를 숙인다.
나는 체질적으로 교만할 수 없다.
처음 하나님께 나아갈 때 내 속에 부적을 가졌고,
우상을 섬겼으며,
하나님의 뜻보다 세상과 사람을 의지하고,
무엇하나 조건을 가지지 못한 사람인 것을 하나님은 아신다.
그 하나님 앞에 나는 늘 부족한 사람인 것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
하나님은 하나님께서 드러나시길 좋아하신다.
하나님께서 일하셔서 하나님이 드러나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기에 민족의 수효가 적은 이스라엘을 사용하신다.
더 많이 부족한 나를 하나씩 만들어서 영광 받으시는 것을 즐기시는 하나님이다.
부적을 들고 교회를 오고 제사를 지내는 가정에
무엇하나 잘난것 없고 연약한 자도 넉넉히 사용하시는 그분의 강하고 능력의 편팔과 권능이
모든것을 바꾸어 놓으시는 능력의 하나님이시다.
모세는 신명기 7장을 통해
우리의 약함이 곧 하나님의 능력이라고 말씀하고 있다.
성령은 우리의 약함을 도우시려고 존재한다.
'성령도 우리의 연약함을 도우시나니'(롬8:26)
우리가 약하다고 고백하고 그분을 사랑할 때
하나님은 세상에서 가장 존귀한 자로 우리를 세우실 것이다.
하나님은 오늘도 약한자를 찾으시고 부족하다 고백하는 자를 통해 그분의 놀라운 일을 행하신다.
[시34:18]여호와는 마음이 상한 자에게 가까이
[시51:17]하나님의 구하시는 제사는 상한 심령이라
[마12:20]상한 갈대를 꺾지 아니하며
[고후11:30]내가 부득불 자랑할진대 나의 약한 것을 자랑하리라
이스라엘이 약할 때 하나님께서 일하신 것처럼
나의 약함을 통해 일하신 하나님을 말하라는 음성을 듣고 지난 시간들을 돌아보았다.
마음이 급해 세밀하게 놀랍게 일하신 하나님의 일들을 상세히 표현하지 못해 죄송한 마음이다.
한번은 정리해야겠다 싶었는데 하나님께서 기회를 주셔서 정리를 해봤다.
혹 오해가 없기를 바라며 그분만이 내 삶을 통하여 영광 받으시기를 소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