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색

성도를 받치는 두 기둥- 목회

성도를 받치는 두 기둥- 목회

 

 

 

 

 

 

 

 

 

 

 

 

 

 

 

교회는 하나님의 은혜로 세워졌음을 전제로 한다.

 

하나님의 백성은 그 은혜위에 부르받았음을 전제로한다.

 

그런데 어떤 교회는 풍성한 기쁨 가운데 자라고

 

어떤 교회는 그렇지 못한 경우가 많다.

 

무엇이 차이가 있고 무엇이 다른다.

 

 

하나님의 은혜가 미치지 않은 곳이 없고 하나님의 사랑이 없는 곳이 없는데

 

왜 기쁨으로 사는 교회,  성도가 있는가 하면

 

그렇지 못한 교회가 있는가?

 

일단 사명이나 교회의 본질을 어떻게 하느냐하는 방향성의 이야기를 접어두고

 

성도의 입장에서 생각해보자.

 

 

성도들은 무엇을 따르고 무엇에 마음이 움직이는가?

 

한국교회의 성도들의 마음을 한번 진단해보자.

 

 

 

먼저 성도는 교회생활속에 자부심으로 산다.

 

 

무슨 말인가?

 

성도들은 하나님의 구원의 은혜로 살지만 신앙생활하는 가운데

 

교회속에서 살게 된다

 

그 교회는 성도들의 가장 많은 신앙의 기본이 되며 삶의 중심이 된다.

 

그 성도들은 교회가 어떤 교회인가?

 

담임목사님은 어떤 분인가?

 

교회가 어떤 일을 하는가로 자신들의 신앙의 힘으로 삼는다.

 

 

좀더 살펴보면,

 

예를 들어 자신들의 형편이나 여건이 주를 위해 무언가를 하고

 

봉사하고 섬기고 활동하는데 많은 제한이 있다.

 

그래서 자연 그들의 시선은 그들의 어떤 신앙에 대한 갈증과 욕구를

 

다른 어떤 것으로 대치하려하는데 그 첫번째 대상이 사역자들이다.

 

그래서 자신들의 사역자가 좋은 사역자,

 

즉 높은 학벌에, 뭔가 내세울 어떤 것으로 자신들의 위치와 벨류를 결정지으려한다.

 

그래서 최든 어떤 교회는 박사 학위를 가진 목사를 청빙한다고

 

자기들끼리 결정하고 그런 사람을 찾는다고 한다.

 

 

그래서 그런 목사를 구하고 얻게되면 자신들의 신앙과 삶의 질도 높아지는 것으로 여긴다.

 

그리고 그 목사가 다행히 사역도 목회도 설교도 잘하면

 

스스로 자부심안에 충만함을 가진다.

 

그래서 자신들의 소임을 다한 것처럼 착각하고 그저 교회를 다니는 것으로

 

하나님의 뜻을 다 이룬것으로 여기고 평안하게 산다.

 

 

문제는 이런 상태로 지속이 되고 좋은 모습으로 계속 되면 좋은데

 

산다는 것은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한국교회의 문제는 다 여기에 속한다.

 

교회 지도자들이 시작은 좋은나 시간이 갈수록 약해지고

 

문제가 발생하고 좋을때는 보이지 않던 약점들이 보이고

 

실수를 하게 되면서

 

성도들은 그들의 자부심에 흠이 가기 시작하면서

 

행복해 하지 않는 다는 것이다.

 

그들의 행복의 근거를 자부심에 두고 있기 때문이다.

 

 

자부심은 자존감과 다르다.

 

자부심은 나 아닌 다른 사람에 의해 세워지는 마음이다.

 

그래서 내가 믿었던 사람들, 교회, 지도자들이 문제가 생기면

 

그들은 신앙에 회의를 느끼고 급기야 그들로 인해

 

신앙을 잃어버리고 교회주위를 방황하기에 이른다.

 

 

거의 대부분의 성도들이 겪는 문제이다.

 

왜 이런 문제가 발생하는가?

 

그것은 신앙의 그본이 하나님이 아닌 사람에 두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들의 행복의 근원 신앙의 근원을 자부심에 두기 때문이다.

 

 

자부심은 행복의 척도에 2-30%를 차지한다고 개인적으로 생각한다.

 

무시할수 없고 또 어떤 사람들속에 속해 있느냐는 아주 중요하다.

 

하지만 그 행복의 척도가 나의 행복 전부를 차지하게 해서는 안된다.

 

 

 

자부심은 중요하다.

 

그러나 그 자부심이 내 신앙의 전부를 차지하게 해서는 안된다.

 

 

내가 그렇게 생각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심판하시고 하나님 앞에 섰을때 하나님과의 대화 때문이다.

 

네가 이렇게 산아온 이유가 무엇이냐라고 하나님께서 물으시면

 

나에게 자부심을 줘야할 교회, 지도자, 목사, 리더들때문입니다라는 말은

 

하나님 앞에서 핑게가 되지 않는다.

 

하나님은 마지막에 자부심으로 평가하지 않고 다른 한가지로 평가하신다.

 

 

 

그것이 무엇일까?

 

 

보람이다.

 

 

성도를 떠 받치는 두 기둥중 하나는 자부심이다.

 

그리고 보람이다.

 

 

무슨 말인가?

 

 

내 신앙의 근간은 다른 사람에 의해서 살아가는 것과 내스스로 살아내는 것이 있다.

 

다른 사람에 의해서 사는 것은 자부심이다.

 

그것은 나의 어떤 것으로 결정되는 것이 아니다.

 

그저 내 교회, 담임목사, 장로, 선교사, 부교역자, 구역장 등

 

내가 아는 사람들에 의해서 결정이 되는 것이다.

 

교회가 어떤 일을 하고 어떤 사역을 하고 지도자가 어떤 사람이냐에 따라 내 신앙의 전부가

 

바뀌는 모습은 자부심에 전부를 걸어서 그렇다.

 

물론 그것이 중요하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우리가 잊어서는 안되는 한가지는 하나님은 그것으로 우리를 평가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하나님은 무엇으로 우리를 평가하는가?

 

 

보람이다.

 

 

내가 어떤 일을 했느냐로 우리를 평가하신다는 것이다.

 

 

그래서 한국교회의 시각과 의식의 방향성을 바꾸어야한다.

 

자부심에서 보람으로!

 

 

이전에는 다른 사람에 의해 나 행복의 전부를 결정했다.

 

그들이 좋으면 내가 행복하고 그들이 문제면 나도 행복하지 않는것으로 산다.

 

요즘 성도들의 기준이 높아지고 기대치가 높아지면서

 

그들의 평가 기준에 살아남고 존경받을 사람이 얼마나 되며 그런 교회가 얼마나 될것인가?

 

 

 

물론 교회가 좋아야하고 우리의 지도자가 좋아야한다.

 

하지만 하나님은 그것이 우리의 마지막 평가 기준이 아님을 말씀하신다.

 

 

마태복은 25장에는 세가지 비유가 나온다.

 

열처녀비유와,

 

달란트 비유와,

 

양과 염소를 나누는 비유다.

 

 

여기에 내가 속하고 무리에 속한 어떤 것으로 평가한다는 말은 없다.

 

단지 내가 어떤 것을 했느냐로 평가하신다고 했다.

 

이 문제는 다음에 한번더 글로 정리하려한다.

 

다만,

 

우리의 신앙의 형태가

 

다른 사람의 어떤 정도에 따라 달라짐이 아니라

 

내가 어떤 것을 행하느냐로 바뀌는

 

자부심에서 보람으로의 변화가 일어나야한다.

 

 

서구 교회와 한국교회의 가장 다른 특징중 하나는

 

개인화와 공동체화이다.

 

 

서구교회는 철저히 개인화이다.

 

그래서 교회가 어떤 일을 하고 무엇을 하고보다 내가 어떤 것을 삶을 살것인가에 더 관심을 가지고

 

교회안에서도 교회의 방향성 안에서 내가 어떤 일을 감당할 것인가에 더 관심을 가진다.

 

하지만 한구교회는

 

개인이 무엇을 하느냐보다 교회가 어떤 일을 하고 목사가 어떤 사람이고하는 것에 더 관심을 가진다.

 

 

하나님의 평가 기준은 교회이지만

 

그 교회의 구성원인 성도는 보람을 잡아야한다.

 

 

내가 어떤 일을 해야할 것인가에 더 관심을 돌려야한다.

 

교회가 어떠하냐는 내가 어떤 사람이 되느냐로 결정된다.

 

오직 자부심에만 목숨을 걸고,

 

내가 어떤 것을 하는것에는 관심이 없다면

 

하나님 앞에 섰을때 할말없는 성도가 되는 것이다.

 

 

 

나의 목회, 사역의 방향은 늘

 

하나님 앞에 섰을때 할말 있는 성도가 되게 하는 것이다.

 

 

우리의 삶이 다 하나님 앞에 섰을때

 

무슨 할 말이 있겠는가 마는

 

그래도 주님은 물으신다.

 

네 교회가 무엇을 하다 왔느냐가 아니라

 

네가 무엇을 하다가 왔느냐를!

 

 

자부심에서 보람으로 의식을 변화시켜라.

 

그것이 우리 교회가 살 길이고

 

하나님 나라가 세워지는 길이며

 

하나님 앞에 섰을때 할말 있는 성도가 되는 것이다.

 

 

 

 

 

 

 

 

 

Pastor Seo

Pastor Se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