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초에 아담에게 모든 조건이 갖추어졌다.
하나님도 있고,
함께할 사람도 있다.
그러나 그것으로 사람은 살지 못한다.
그래서 하나님은 사명을 주셨다.
세상을 다스리고 정복하는…
그것은 아담의 위치에서 해야 할 사명이다.
예수를 믿었다고
교회를 다닌다고 우리는 살지 못한다.
사는 것이 사는 것이 아니다.
살아도 사는 것이 아니고
왜 사는지 의미를 찾지 못한다.
내가 주어진 현장에서 나의 사명은 무엇인가?
그것을 찾지 못하는 인생은 끊임 없이 어둔 터널에서 사는 것과 같다.
내 인생의 생명은 사명속에 존재할 때이다.
하나님은 반드시 그분이 찾아 오실때는 사명과 함께 찾아오신다.
예수를 믿고 사명을 발견치 못한 인생은 반쪽 인생이다.
아브라함을 찾아오신 하나님,
모세를 찾아오신 하나님,
요셉을 찾아오신 하나님,
그리고 절망 가운데 물고기를 잡는 베드로에게 찾아오신 주님.
모두 그분이 찾아오셨지만,
결국 사명으로 결론이 난다.
사명 없이 하나님을 믿음은 반쪽이다.
목회를 한다고
선교를 한다고
그것이 자신의 사명이 될 수 없다.
예수를 믿고 교회를 다닌다고 그것이 사명이라 말할 수 없다.
교회의 몸된 지체로,
부름 받은 사명자로 하나님의 명확한 나의 사명을 발견하고 그것에
목숨을 걸 때 우리는 참 행복의 삶을 유지하게 된다.
배우 김혜자씨는 수 없는 배우의 삶을 살았지만
돌아서서 채워지지 않는 허전함을 채울 수 없어
몇 번의 죽음을 생각했다 한다.
삶의 의미를 찾을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다 아프리카 아이들을 만났다.
그리고 그녀는 다시 살고 있다.
그녀의 한마디가 기억에 남는다.
"내가 아프리카 아이들을 살린 것이 아니라 아프리카의 아이들이 나를 살렸습니다. "
세상의 화려한 삶을 살아도
아무리 삶을 열심히 살아도
그것이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사명이라는 확신이 들지 않을 경우
인생의 허무함과 허전함은 다시 나를 찾을 것이다.
그럼 이 사명이 나에게 어떻게 확인될 수 있는가?
첫째, 나의 물질과 나의 시간과 나의 에너지를 전부 드려도 아깝지 않을 것이란 생각이
드는 것이 나의 사명이다.
둘째, 나의 생명을 드려서 이 일을 위해서 드리겠다는 마음이 드는 것이 사명이다.
셋째, 밥을 먹지 않아도 이 일을 하면 즐거운 것이 사명이다.
사명의 삶을 살고 결과는 어떤가?
그 사명의 삶을 살면서 나타나는 결과는
첫째, 나의 사명을 통해 사람이 세워지면 하나님이 나에게 주신 사명이 맞다.
둘째, 나의 사명을 통해 교회가 행복해지면 하나님이 나에게 주신 사명이 맞다.
셋째, 나의 사명을 통해 내 안에 말할 수 없는 새로운 에너지와 아이디어가 떠오른다.
사명 없는 생명은 없다.
우리는 교회를 세우는 지체로 부름 받았다.
하나님 나라를 세우는 동역자로 부름 받았다.
그 말은 사명으로 말한다는 것이다.
사명이 있을 때 우리의 생명은 춤을 춘다.
사명 없는 인생은
살았으나 죽은 인생이다.
나를 위해서 사는 삶은 사명이 없다.
그러나 주를 위해서 사는 삶은 반드시 사명이 찾아온다.
사명이 없는가?
나를 위해서 살지 않고 주를 위해 살기로 작정하라.
그리고 무엇을 할 때 내 영혼이 춤을 추는지 관찰하고 기도하고 확증하라.
그리고 남은 삶을 사명자로 살아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