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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에 열심을 내지 마라

말씀에 열심을 내지 마라

 

 

 

 

 

 

 

 

 

 

 

 

말씀에 대해서 열심을 내라고 한다.

 

그런데 말을 요즘은 성도들이 오해를 하고 있는듯하다.

 

말씀에 대해서 열심을 내라는 말은

 

성경을 몇독씩 하라는으로

 

기도를 많이 하라는으로

 

어떤 일을 열심히 하라는으로 결론을 낸다면 말을 잘못 이해하고 있다.

 

 

 

우리가 염두에 두어야하는 것은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의 의이다.

 

의는 예수님으로부터 독사의 자식이라는 욕을 먹어도 한참을 먹었다.

 

말씀에 대한 열심은 그런 뜻이 아니다.

 

 

 

 

말씀에 대해서 열심을 낸다는 것은

 

바리새인이나 율법사나 서기관처럼 신앙생활에 열심을 낸다는 것이 아니다.

 

 

 

 

말씀에 대해서 열심을 낸다는 것은

 

결국

 

자기 자신에 대해서 철저한 자기부인과 회개에 열심을 낸다는 것이다.

 

자신의 방법을 버리고

 

자신의 죄를 그리스도 십자가 앞에 내려놓고

 

그리스도만을 의지하며 성령으로 산다는 것을 말한다.

 

 

 

 

말씀에 대한 열심은 결국

 

< 자기가 죽는 것 > 이다.

 

 

 

 

뭔가를 열심을 내야한다로 간다면

 

성경을,

 

복음을 바르게 이해하지 못한 것이다.

 

 

 

열심을 내지 말라는 말이 아니다.

 

그러나 자기부인,

 

자기 의를 내려놓지 않는 열심의 마지막은

 

결국 바리새인과 서기관처럼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높아지고,

 

잘나가고,

 

세상적으로 이름이 높아지는 것이 우리의 목적이라면

 

예수님을, 말씀을, 성경을 잘못 이해하고 있는 것이다.

 

 

 

 

 

말씀에 대한 열심은

 

결국 회개의 열심이고

 

결국 자기부인에 대한 열심으로 결론이 난다.

 

 

 

 

자기부인,

 

회개가 없는 착함과 열심은 결국

 

독사의 자식,

 

바리새인과 서기관의 의과 다를바가 없다.

 

 

 

 

말씀과 기도에 열심을 낸다는 것은

 

아예 생각지 않아야 한다.

 

열심은 결국 자기 의로 결론이 난다.

 

열심은 나를 높이는 이유와 근거가 된다.

 

 

 

 

욕망의 씨앗이 열심이다.

 

그렇다면

 

말씀과 기도의 열심의 마지막이 무엇인가?

 

 

 

회개이다.

 

 

 

 

 

말씀의 실천이

 

말씀의 열심이 아니다.

 

 

 

 

내가 무너지는 것이 말씀의 열심이다.

 

내가 무너져야 성령께서 일하신다.

 

내가 무너지고

 

내가 말씀앞에 죽어지는 것이

 

그리스도가 필요하고

 

그분의 용서가 필요한 근거이다.

 

열심은 그리스도를 필요치 않게 만든다.

 

바리새인과 서기관은

 

자신들의 열심으로 예수님을 필요치 않다 여겼다.

 

 

 

 

 

성령은 내가 세상에 대하여 죽을 성령이 나를 이끄신다.

 

원리를 알지 못하면

 

나는 아직도 율법 안에서 사는 것이다.

 

 

 

 

 

말씀이 나에게 오면

 

나를 보게 된다.

 

 

나에게는 의가 없다.

 

나에게는 선이 없다.

 

그것을 깨닫는 것이 말씀이 하는 일이다.

 

 

 

 

그런데 말씀이 와서 깨닫는 것이

 

내가 열심히 해야겠다고 결심한다면

 

율법으로 돌아가게 하는 것이다.

 

 

 

 

기억해야한다.

 

율법에 최고점에 있는 사람들이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았다.

 

 

 

 

 

말씀은 철저히 나를 죽이는 것에  열심을 내게한다.

 

그어떤 행위에서도 나를 죽이는 것이 말씀에 대한 열심이다.

 

 

 

 

아담이 실패한 것은

 

자신을 죽이지 못해서 실패했지

 

어떤 열심이나 사명이나 행위가 문제의 원인이 것이 아니다.

 

 

 

 

 

말씀은 자신을 회개케 하고

 

자신을 부인하며 자기 의를 죽이는 것이다.

 

 

 

 

우리가 말씀을 붙잡고 어디로 달려가야 하는가 ?

 

더욱 죄를 드러내고

 

더욱 우리의 악을 드러내는 것이다.

 

 

 

 

그래서 용서하시는 하나님만이 길이 되는 것이다.

 

용서하시는 십자가가 보이는 것이다.

 

하나님의 구원,

 

생명의 길이 보이는 것이다.

 

 

 

말씀은 나를 더욱  죄를 보게하고

 

더욱 악을 보게하고

 

세상속에 묻혀사는 나를 보게한다.

 

 

 

 

말씀에 열심을 내야한다.

 

그래야 그리스도가 사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