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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동은 말이 아니라 삶이다.
말의 감동은 하루를 움직이고
삶의 감동은 영혼을 움직인다.
왜 우리가 그리스도로 인해 영혼이 변화되는가?
예수그리스도는 온 우주를 버리고
자신의 삶으로 우리를 사셨기 때문이다.
말이 아니라 삶 전부를 걸었기에
우리의 영혼이 지옥에서 천국으로 움직이는 것이다.
성도들이 어느 정도 감동을 받고
어느 정도 말씀에 은혜를 받는다.
그러나 그 후에 변화가 일어나지 않는다.
왜 그런가?
말로 사람을 감동시키고 사람을 변화 시키려 하기 때문이다.
내가 사람을 변화시키려 하기 때문이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하는가?
일차적으로 성령이 말하게 해야 한다.
그리스도 예수로부터 받은 말씀,
그분의 사역에 근거한 말씀을 전할 때 그 말씀이 능력이 있고 영혼의 변화가 있다.
기도 가운데 영감을 얻고 하늘로부터 음성을 듣고 깨달음을 통해
말씀을 전할 때 영혼이 변화되는 것이다.
그것이 우리가 사역자로 말씀을 전할 수 있는 근거이다.
그러나 우리는 육체를 입은 몸으로 살아간다.
그래서 사람은 말씀 듣지 않고
눈에 보이는 사람을 보게 된다.
믿음이 깊은 사람은 눈에 보이는 현상 너머의 하나님을 볼 수 있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아직 이 단계에 이르지 못한다.
그래서 몸이다.
그래서 목사를 보고 사람을 보게 되는 것이다.
세상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않고
말씀을 전하는 그리스도인을 보게 된다.
말씀을 통한 영적 변화도 있으나
사람을 보면서 영적으로 성장하고 도전 받고 변화되는 것도 하나님이 쓰시는 방법이다.
하나님은 말씀을 통해 은혜도 주시고
사람을 통해 감동도 주시며
자연법칙 속에서 하나님을 보게도 하신다.
그래서 때로는 message 가 아니라 messenger 가 더욱 중요하다.
말씀의 내용이 아니라 말씀을 전하는 전달자가 내용을 대신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하루의 감동은 말로 되지만
삶의, 영혼의 감동은 삶이라는 것이다.
우리의 고민이 뭔가?
그럴듯한 내용을 전달하는 것이 아니라
내용을 전하는 전달자로서의 삶이 고민인 것이다.
세상이 교회를 향하여 돌을 드는 이유는
교회가 전하는 내용이 문제가 아니다.
내용을 담은 교회가 문제인 것이다.
세상은 언제나 교회를 향하여 기준을 정하고 있다.
적어도 교회는 어떠해야한다는 기준이 있다.
세상은 그렇다 할지라도
교회는 그렇지 않아야한다는 말이다.
그래서 예수님은 예수님 자신이 전하는 복음을
전파하셨고 가르치셨지만
자신이 그렇게 사셨다.
그래서 예수님은 우리가 복음의 내용에 맞는 삶을 살도록
끊임없이 요구하셨다.
복음은 삶이지 말이 아니다.
그리스도인은 삶으로 증명하는 것이지 말로 소리치는 사람들이 아니다.
손해를 볼 줄도
희생할 줄도
섬길 줄도
사랑할 줄도 알아야 한다.
그런데 손해 볼 때 이익을 챙기고
희생할 때 자신이 아니라 남에게 그 희생을 강요하고
섬겨야 할 때 다른 사람이 아닌 자신을 섬기라 하고
사랑해야 할 때 다른 사람이 아닌 더욱 자신을 사랑해 달라고 외치는 것이다.
내가 청년들에게 자주 하는 말이 있다.
말로 조지지 마라~
삶이 아니라 말로 조지지 마라는 것이다.
말로 다 떼우려 한다는 것이다.
삶이 없는 말은 악이다.
결국 그 악은 교회를 죽이고 하나님의 이름을 욕되게 하는 것이다.
예수님이 이 땅에 왜 오셨는가?
하나님은 말씀으로 세상을 창조하셨다.
온 우주와 하늘과 땅과 지구의 모든 것을 말씀으로 창조하셨다.
그런데 하나님은 사람을 흙으로 지으시고 생기를 불어넣으셨다.
사람은 말씀이 아닌 흙으로 지음받았고 그리고 생기를 통해 사람이 되었다.
다른 것은 다 말씀으로 되지만 사람은 말씀으로 안 되는 것이다.
사람의 습성은 말이 아니라 생기가 들어와야 변화되는 것이다.
마른 뼈가 살아나는 것은 말씀이 아니라 생기가 들어와야 한다.
주 여호와께서 이 뼈들에게 이같이 말씀하시기를
내가 생기를 너희에게 들어가게 하리니 너희가 살아나리라[겔37:5]
우리의 죄를 말씀으로 사하실 수 있다.
그러나 그분은 직접 오셔서 몸으로 우리의 죄를 대신 속죄하셨고
속량하셨으며
구속하셔서 영생의 길을 내셨다.
이것은 말씀이 아니라 몸소 행해야하는 문제이다.
죄는 말의 문제가 아니라 몸의 문제, 흙의 문제이다.
그래서 삼위 하나님은 전부를 다 걸고 이땅에 오셨고
전부를 걸고 자신의 삶으로 우리에게 생명을 주셨다.
이상하지 않은가?
천지를 말씀으로 창조하신 하나님께서 말씀이 아닌
몸으로 이 땅에 오셔서 몸소 죽으셔야 하셨는가?
왜 전부를 다 걸고 이 땅에 오셔서 우리를 위해 사셨는가?
그것이 몸의 비밀이다.
전부의 비밀, 다(all in)를 거신 비밀이다.
그리스도는 말씀이 아닌 몸으로 오셨다.
그것이 전부를 의미한다.
하나님은 자신의 능력으로 세상을 창조하셨다.
그것이 말씀이다.
그러나 말씀의 진정한 의미는 몸을 포함한다.
그분의 성품이 온전히 반영되는 몸을 포함한다.
그래서 하나님은 말씀만이 아닌 말씀의 본체이신 몸으로서의 그리스도가
직접 전부, 다를 거신 사역을 하셔야만 했던 것이다.
그리스도인은 말로 사는 자가 아니다.
그리스도인은 몸으로 증명해 내는 자들이다.
말은 전부가 아니다.
나의 전부는 몸을 포함한다.
그래서 예수님은 사랑을
몸과 마음을 다하여 라고 그 범위를 정해주셨다.
그것이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셨던 방법이고
우리가 세상을 향하여 주어야 할 희생이다.
그래서 사랑은 받은 자 만이 줄 수 있다.
받지 못한 어린 아이는 사랑할 준비가 되지 않았다.
그래서 초신자
어린 아이는 많은 사랑을 받아야 한다.
그것을 아시는 하나님은
아이들을 향한 어른들의 마음속에 사랑을 심으셔서
수 없는 사랑을 솟아 붓도록 하셨다.
그리고 신앙의 초신자들에게 많은 사랑의 기적들을 체험하도록 은혜를 베푸신다.
우리의 삶은 전부를 걸지 않으면 하나님의 뜻을 좇아갈 수 없다.
전부를 걸 때
전적인 믿음으로 말과 삶이 전부를 드릴 때 하나님의 뜻은 온전하게 이루어 진다.
한국교회는 값싼 복음으로 지냈다.
단지 예수를 믿으면 구원 받는다는 너무 가벼운 기독교로 전락해 버렸다.
말과 함께 삶을 통한 전부를 걸지 않으면
한국교회는 소망이 없다.
전부를 걸어야 하나님의 전부를 받는다.
하나님은 자신의 전부를 주어서 우리의 빚 전부를 탕감해 주셨다.
[마18:32]이에 주인이 그를 불러다가 말하되
악한 종아 네가 빌기에 내가 네 빚을 전부 탕감하여 주었거늘
그래서 십자가 지시기전 한 과부의 사건을 통해 우리에게 전부를 걸라고 말씀하신다.
[막12:44]그들은 다 그 풍족한 중에서 넣었거니와
이 과부는 그 가난한 중에서 자기의 모든 소유 곧 생활비 전부를 넣었느니라 하시니라
[마13:46] 극히 값진 진주 하나를 발견하매 가서 자기의 소유를 다 팔아 그 진주를 사느니라
그래서 예수님은 우리가 하나님을 향하여 전부를 다하여 사랑하라고 하신다.
[마22:37]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셨으니
예수님은 우리에게 전부를 거셨고
전부를 주셨다.
왜냐하면 우리는 하나님께 전부였기 때문이다.
그런데 우리는 많은 것 중에 하나로 하나님을 대한다.
그래서 우리는 우리의 전부, 다를 걸지 않는다.
하나님은 전부로 우리를 대하고
우리는 일부로 하나님을 대한다.
그것이 가장 큰 문제이다.
때로 하나님은 선택할 수 없는 길로 우리를 몰아가신다.
왜 그런지 궁금하고 답답하고 힘들기도한다.
이유는 간단하다.
하나님은 우리가 하나님께 전부를 걸도록 하시기 위함이다.
야곱은 모든 상황에서 전부를 걸었다.
이유는 간단하다.
돌아갈 길이 없기 때문이다.
요셉은 주어진 삶에 전부를 걸었다.
이유는 쉽다.
선택할 수 있는 다른 수가 없기 때문이다.
야곱은 요셉은 예수님의 삶을 보여준다.
우리를 향하여 전부를 거시는 주님이다.
우리가 조금만 다른 곳에 눈을 돌려도 질투하시는 하나님이다.
[신4:24]네 하나님 여호와는 소멸하는 불이시요 질투하시는 하나님이시니라
왜 하나님은 우리를 질투하시는가?
왜냐하면
하나님은 우리에게 전부를 거셨기 때문이다.
우리는 왜 하나님을 질투하지 않는가?
내가 선택할 수 있는 많은 것 중에 하나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우리가 그분처럼 되기를 원한다.
하나님은 우리가 예수님처럼 되기를 원한다.
예수님은 하나님께 전부를 걸었다.
하나님은 우리도 예수님처럼 전부를 걸기를 원하신다.
잘 생각해야한다.
에덴동산을 아담이 떠나는 순간 이 세상은 하나님이 잡은 세상이 아니다.
이 세상은 하나님도 전부를 걸지 않으면 안되는 세상이다.
하나님은 예수님을 통해 하나님이 가지신 전부를 걸었다.
예수님을 보냈고 죽였고
그리고 성령도 지금 사역하고 계신다.
이 세상에서 우리가 살 길은
전부를 걸어야만 가능하다.
전부를 걸지 않으면 하나님의 전부를 얻지 못한다.
나는 늘 질투했다.
왜 하나님은 저 사람은 저만큼의 것을 주고 나는 없는지~
나는 안다.
전부를 건 사람이 가지는 마음을!
전부가 아니면 되지 않는 세상에서
하나님이 전부를 거신 것처럼
나도 전부를 걸고 하나님을 향하여 나아가야 한다.
하나님은 늘 전부로 이야기 하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