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회복 11편- 만물! 세상의 회복
하나님은 세상을 다스리고 정복하며 통치하도록 하셨다?
왜?
하나님의 것을 잘 관리하고 잘 영위하도록 하신 것이다.
하나님의 세상을 사람을 통하여 대리통치 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창조의 질서에 맞게 사람이 만물을 통치할 때 세상은 아름답게 사람에게 유익을 주며
사람이 살기에 불편함이 없는 영원성을 가진다.
그러나 만물이 언제 문제가 생기는가?
사람에게 문제가 생기면 만물이 문제가 생긴다.
노아의 때
그 첫 예가 노아의 방주 때이다.
사람이 그 생각이 악하니 하나님은 세상을 전부 물로 쓸어 버리셨다.
[창6:5] 여호와께서 사람의 죄악이 세상에 가득함과 그의 마음으로 생각하는 모든 계획이 항상 악할 뿐임을 보시고
[창6:12 하나님이 보신즉 땅이 부패하였으니 이는 땅에서 모든 혈육 있는 자의 행위가 부패함이었더라
세상은 사람에게 존속된다.
사람의 선함과 악함에 만물의 가치도 변하게 된다.
세상 만물의 부패는 곧 사람의 마음과 행위가 부패함을 의미한다.
그 악함의 결과로 만물은 병이 들고 문제가 생기고 파멸을 향하여 나아가고 있다.
문제는 이 만물의 주인이 누구냐는 것이다.
이 만물은 원래 하나님의 것이다.
단지 하나님의 것을 사람이 관리하는 청지기의 역할을 하였다.
[신10:14] 하늘과 모든 하늘의 하늘과 땅과 그 위의 만물은 본래 네 하나님 여호와께 속한 것이로되
그러나 사람은 믿음이 사라지고 믿음의 반대인 자기 사랑에 빠지므로
믿음의 대상이 하나님이 아닌 자신이 되고
하나님의 자리에 자신을 놓아 자신을 위해 모든 것을 이용하는 존재가 되었다.
자신의 쾌락과 즐거움과 목적을 위해 세상을 이용하여 세상이 파괴되든 죽어가든 상관이 없게되었다.
하나님은 땅의 부패와 사람의 부패를 같은 맥락으로 이해하신다.
이것은 이해가 아니라 실제로 세상 만물의 고통을 의미한다.
타락 후의 세상
자,
아담과 하와가 타락하고 난 후에 사람은 사람대로 죄의 대가가 임했다.
믿음을 잃고, 영생을 잃고,
남자는 종일토록 수고하여야 먹을 수 있고,
여자는 해산의 고통을 갖게 되었다.
그런데 남자의 벌이 무엇이었나?
[창3:17] 아담에게 이르시되 네가 네 아내의 말을 듣고 내가 네게 먹지 말라한 나무의 열매를 먹었은즉
땅은 너로 말미암아 저주를 받고 너는 네 평생에 수고하여야 그 소산을 먹으리라
18 땅이 네게 가시덤불과 엉겅퀴를 낼 것이라 네가 먹을 것은 밭의 채소인즉
첫째로 땅이 저주를 받았다.
무슨 말인가?
사람이 문제가 생겼는데 왜 땅이 저주를 받는가?
앞서도 말했지만 사람과 만물은 연합되어졌다.
사람은 만물의 영향을 받고 만물은 사람의 영향을 받는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세상과 사람의 연관관계를 그렇게 창조질서로 만드셨다.
그래서 먼저 사람은 만물의 영향을 받는다.
사람은 자연의 원리에 직접적으로 연결되어있다.
사람은 낮이 되면 활동하도록, 밤이 되면 자연스럽게 잠이 오도록 되어있다.
이것은 하나님이 사람의 오장육부를 자연과 하나되어 움직이는 하나의 또 다른 우주로 만드셔서
스스로 자정능력을 가지고 운행하도록 하셨다.
사람의 몸 속의 장기는 저녁 11시부터 간이 잠을 자고,
위가 장을 자고 각기 장기들이 쉼을 가진다.
그리고 새벽 5시부터 7시까지 장이 운동을 한다.
그래서 아침이 되면 화장실을 가야 하는 이치이다.
여자는 달이 움직이는 날에 따라 여자의 몸이 한 달에 한번 반응을 한다.
아기가 배속에 있을 때는 아이는 엄마의 생체리듬에 따라 움직인다.
아이에게 엄마가 자연이고 만물이다.
엄마의 생체 리듬을 따라 움직이고 그 아이의 체질은 엄마의 체질을 닮게 된다.
아이가 태어나면 100일의 시간동안 자연과 하나되는 시간을 가진다.
100일이 중요한 이유는 태어난 아이의 생명과 체질이 자연의 리듬에 자연스럽게 맞추어가는 시간이기 때문이다.
이 모든 원리는 자연을 만드시고 사람을 마지막에 만드셔서
그 사람이 자연의 원리에 맞추어 살도록 하신 하나님의 섭리에 있다.
몸은 반드시 자연이 움직임과 하나되어 움직이도록 하나님은 창조하셨다.
왜?
사람 몸과 자연, 만물의 움직임을 하나의 리듬, 사이클을 타고 움직이고
세상을 다스리는 사람이 만물을 무시하고 서로 상관없이 움직이는 일이 없도록 하신 것이다.
사람은 만물 속에서 하나되어 있고,
만물은 사람에 의해 정의 된다.
그런데 자연의 문제는 어디서 오는가?
하나님은 자연 만물의 대표자로 사람을 세우셨다.
그런데 그 사람의 문제가 곧 만물의 문제가 된다.
하나님은 그렇게 보신다.
[창6:12 하나님이 보신즉 땅이 부패하였으니 이는 땅에서 모든 혈육 있는 자의 행위가 부패함이었더라
[시106:38]무죄한 피 곧 그들의 자녀의 피를 흘려 가나안의 우상들에게 제사하므로 그 땅이 피로 더러워졌도다
땅, 만물의 문제는 사람의 문제로 인식하신다.
만물의 문제는 사람의 깨끗함이냐 부패함이냐로 결정된다는 말이다.
사람들이 돈이 선하냐 악하냐를 묻는다.
돈은 돈이다.
선함과 악함은 오직 사용하는 사람의 마음이다.
마음이 악하여 사용하면 그 물질은 악한 것이요
마음이 선하여 선으로 사용하면 그 물질은 선하다.
소돔과 고모라
아브라함 당시 소돔과 고모라도 마찬가지다.
그 도시가 악에 차있으니 그 성들이 결국 심판을 받게 된다.
[창18:20] 여호와께서 또 이르시되 소돔과 고모라에 대한 부르짖음이 크고 그 죄악이 심히 무거우니
세상 만물은 사람의 악함이나 선함에 따라 선하게도 악하게도 되고 결국 심판을 받는다.
가나안 땅
하나님께서 가나안을 이스라엘의 안식처로 주셨다.
그런데 가나안 땅의 사람들 입장에서 불만을 제기 할 수 있다.
왜 우리냐고?
그런데 하나님은 그들의 땅을 제하고 이스라엘에게 그 땅을 주신 이유를 다음과 같이 말씀하신다.
[신9:5] 네가 가서 그 땅을 차지함은 네 공의로 말미암음도 아니며 네 마음이 정직함으로 말미암음도 아니요
이 민족들이 악함으로 말미암아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들을 네 앞에서 쫓아내심이라~
땅과 만물은 사람에 따라 결정되어진다.
북한 땅
전 세계에서 가장 가난하고 독재가 심한 나라,
백성들이 굶어 죽어가는 나라가 어디인가?
바로 북한이다.
왜 그럴까?
지도자를 잘 못 만나서 그렇다.
그럼 왜 지도자를 잘못 만났는가?
백성들이 문제라서 그렇다.
백성들이 무슨 문제인가?
하나님 앞에 악, 죄를 행해서 그렇다.
북한은 백 년 전에 평양에 대 부흥을 경험했다.
1903년 원주에서 부흥운동을 시작으로
1906년 평양 대부흥 운동이 일어났다.
그런데 그 후 일제에게 나라를 빼앗기고 결국 1936년부터 교회들은 일본의 신사에 절하고
예배전에 일장기에 절하는 것이 합당하다고 결정을 하게 된다.
감리교를 시작으로 모든 교단들이 신사참배를 결정하게 되었다.
그러나 그 당시 가장 막강한 교단이었던 장로교단중에 평양노회가 1938년 신사참배가 합당하다는 것을
결정하게 되어 결국 한국의 예루살렘 평양은 이후 공산당에게 나라가 빼앗기고
모든 목사들은 남한으로 내려오게 된다.
부산 삼일교회에 모인 목사들이 자신들의 죄를 사죄하고 회개하므로 다시 전쟁이 역전되어 지금의
38선을 중심으로 남과 북이 나뉘게 된것이다.
세상의 역사는 하나님의 역사이다.
사람들이 하나님을 섬기고 따를때 하나님은 그들에게 선하게 복을 주시며 그 땅이 복을 얻으며
시절을 좇아 과실을 맺는 복을 누린다.
하지만 사람들이 악을 행할 때 그 사람들이 있는 땅은 죽음의 땅, 저주의 땅, 아픔의 땅이 된다.
하나님은 노아때로부터 아브라함의 소돔과 고모라,
그리고 가나안 땅과 애굽,
그리고 북한에 이르기까지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역사만 보아도
땅, 만물은 사람의 선함과 악함에 영향을 받는다.
이 세상이 어떻게 될 것이라 생각하는가?
나는 이 세상이 없어질것이라 생각한다.
이 세상은 악이 만연하여 하나님의 선함을 찾을 수 없는 때가 온다.
'이 세상에서 믿음을 보겠느냐?'라고 하신 예수님의 말씀처럼
온 세상이 선을 찾아보기 힘든 때가 온다.
그 결과 이 세상 만물은 고통하고 새로운 하나님의 나라, 새 하늘과 새 땅을 바라게 된다.
이미 하나님은 노아의 때를 기준으로 볼 때 이 세상은 악이 만연하다.
그러나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하나님의 사람들을 세우시고 준비하시며
그분의 나라에 맞는 때가 차기까지 기다리신다.
그리고 이 세상을 불로 쓸어 버리시고
새로운 땅, 새로운 나라를 준비하셔서 오실 것이다.
온 세상이 볼 수 있는 모습으로 예수님은 다시 재림 하실 것이다.
그것은 우리의 육체가 다시 살수 있는 새로운 땅,
새로운 모습으로 올 것이라 기대한다.
부활은 육체의 부활이다.
지금 우리가 입고 있는 몸이 살 수 있는 모습으로 부활이다.
다른 말로 우리가 다시 사는 나라, 새 하늘과 새 땅은 부활한 우리의 신령한 육체가
살 수 있는 땅과 만물이 있는 곳이다.
예수님이 예비하러 가신다는 처소가 어떤 것인지 상상이 가는가?
나는 그 완벽한 만물과 나라가 너무 기대가 된다.
그것은 모든 인류가 눈으로 보고 확인할 수 있는 그런 나라로 오실 것이다.
그때에 우리는 이제 사람으로서가 아니라,
백성도 아니고,
그분의 자녀로 후사를 이을 자로
왕노릇하는 자격으로 그 나라에서 살게 될 것이다.
그것은 현재 고난으로는 도저히 도저히 비교할 수 없는 영광된 모습으로 우리가 보게 될 나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