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욕심의 고향!

욕심의 고향!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느니라"[약1:15]

 

 

 

 

 

 

욕심이 잉태하면 죄가 찾아오고

 

죄는 반드시 사망이 따른다.

 

 

 

그럼 욕심은 어디서 왔나?

 

 

 

 

 

욕심의 고향은

 

< 비교 > 이다.

 

 

 

 

세상 모든 욕심의 시작은 비교이다.

 

 

 

 

원래 세상에는 죄가 없었다.

 

죄는 욕심으로부터 왔다.

 

 

 

 

아담과 하와는 하나님이 되고픈 욕심에

 

선악과를 먹었다.

 

그럼 욕심은 어디서 왔나?

 

 

 

 

욕심은 자신과 하나님을 비교하는 것에서 시작된다.

 

모든 죄의 뿌리, 욕심의 모태는 비교에서 온다.

 

 

 

 

 

사단의 시작은 천사이다.

 

천사가 워낙 아름다우니 하나님과 비교하고

 

하나님처럼 되려고 욕심을 가졌고 죄가 되어 죄의 근원이 되었다.

 

 

 

 

사단이 아담과 하와에게 심어준 것은

 

비교이다.

 

하나님과 자신의 비교!

 

 

 

 

 

사단의 죄의 근본이 비교이다.

 

 

 

 

 

근본을 사람에게도 준것이다.

 

 

 

믿음이 언제 잃어버리나?

 

 

비교할 잃어버린다.

 

 

 

 

 

말씀과 세상을 비교하고,

 

말씀과 환경을 비교하고,

 

나와 세상을 비교하고

 

나와 다른 사람의 가진 것을 비교하면 하나님이 보이지 않는다.

 

 

 

 

 

비교는 눈을 멀게 한다.

 

목적을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목적을 이루게 만든다.

 

눈을 멀게 만든다.

 

 

 

 

 

 

 

아니 비교는 눈을 뜨게 한다.

 

하나님은 비교가 눈을 뜨게 하는,

 

선악을 하게하는 것임을 알았다.

 

선악을 안다는 것은 눈을 뜬다는 것이다.

 

무엇에 눈을 뜨는가?

 

 

< 비교 > 눈을 뜨는 것이다.

 

 

 

 

 

 

선만 알던 사람이 악이라는 것에 비교를 하게 된다.

 

이것이 눈을 뜨고 선악을 알게되며 본능적으로 비교하게 되는 것이다.

 

 

 

 

말씀의 절대 기준에 환경이나 상황에 비교하게 되는 본능으로서의 눈뜸이 죄이다.

 

 

 

 

 

< 비교 >

 

모든 욕심의 근원이다.

 

 

 

 

 

비교라는 눈이 찾아오면 다음부터는 모든 것이 문제가 생긴다.

 

 

 

 

 

 

아담과 하와는 벗었음을 알았다.

 

벗음과 벗지 않음의 비교이다.

 

없던 의식이 찾아온 것이다.

 

 

 

 

 

 

가인과 아벨!

 

누구는 제사를 받고 누구는 받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을 따를 것인가 환경을 따를 것인가?

 

구약의 역사이다.

 

비교이다.

 

 

 

 

 

이스라엘이 가나안을 정탐할 그들은 말씀과 그들의 생각을 비교했다.

 

어느 방법이 좋은지 길을 비교하고 결국 열두 정탐꾼을 들여 보냈다.

 

하나님이 원한 방법이 아니다.

 

하나님의 방법은 그냥 말씀대로 가는 것이다.

 

그러나 사람은 비교해서 좋은 길로 가길 원한다.

 

 

 

 

 

비교하기 시작하면 욕심이 온다.

 

욕심이 오면 죄가 오고 죄가 오면 사망이 온다.

 

 

 

 

 

신앙은 비교의 가치가 있는 것이 아니다.

 

신앙은 믿음의 대상만 있는 것이다.

 

 

 

 

 

절대 믿음은 비교로서의 가치를 내재하지 않는다.

 

오직 믿음은 따름이다.

 

 

 

 

우리가 갈등하는 것은 비교하기 때문이다.

 

좋은 ,

 

나은 ,

 

높은 ,

 

나가는 ,

 

편한 ,

 

즐기는 !

 

 

그것에 하나님의 말씀을 비교하면 하나님은 우리를 지킬 없다.

 

 

 

 

 

 

사람들의 이야기를 가만히 들어보면 핵심을 말하지 않고 자꾸 돌려서 말한다.

 

그 핵심은 결국 자기의 공로를 드러내는 것이다.

 

상대적 우위를 차지하기 위해서 더 나은 공로를 이야기한다.

 

 

 

 

"내가 이전에 뭘했고, 내가 이런 일을 했고, 내가 이런 사람이고, 내가 이런 능력을 가지고 있고"

 

 

 

사람은 이 비교에서 자유 할 수 없다.

 

그래서 우리는 자기를 쳐서 낮아져야한다.

 

물이 흘러가는 것은 하나님이 만드시 자연의 이치다.

 

마찬 가지로 죄의 본성은 자꾸 우리를 비교해서 높은 자리에 앉힌다.

 

그것이 비교의 본성, 욕심의 본성, 죄의 본성이다.

 

 

 

 

 

최근 몇년 목사님들의 설교가 바뀌었다.

 

다른 말로 복음의 본질을 벗어난다는 느낌을 가진다.

 

이유가 뭔가 스스로 고민한다.

 

그래서 내린 결론은

 

 

< 보여주기 위함 > 이다.

 

 

무슨 말인가?

 

인터넷이 발달하고 설교가 그대로 방송을 통해 인터넷을 통해 볼 수 있다.

 

그러니 정말 복음을 전해야 할때 사람들의 눈을 의식하고,

 

잘 보이고 싶고,

 

그럴사한 말로 인기를 누리고 싶고,

 

다른 설교자보다 나아야 한다는 비교 의식이 서서히 밀려온다.

 

 

그래서 성도들도 어떤 목사는 이렇고 어떤 목사는 저렇고 자꾸 비교하고 판단하게 된다.

 

 

 

결국 손해가 나는 것은 복음의 순수성이다.

 

할수만 있으면 인터넷의 설교를 다 내리고 싶다.

 

그래서 모든 목사님들이 자신들의 양떼들에게 오직 필요한 말씀과

 

말씀의 꼴을 먹이는 일이 생기면 좋겠다.

 

 

 

 

우리에게는 늘 비교의 욕구가 있다.

 

그것이 우리를 좋게도 하지만 결국 악함으로 몰고가는 근거가 된다.

 

 

 

 

 

 

 

 

이스라엘 백성에게 가지 재앙 속에서도 지키시고 출애굽 하게하신 하나님이

 

정탐꾼의 잘못된 보고를 막지 못하셨는가?

 

 

 

 

 

비교는 절대 믿음을 지키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들은 그들 자신과 가나안 사람들을 비교하였다.

 

비교는 하나님을 향한 믿음을 보지 못하게 한다.

 

비교는 하나님이 주신 말씀에 대한 절대 믿음이 사라지게한다.

 

 

비교는 망하는 지름길이다.

 

 

 

 

 

 

아담이 선악과를 먹었나?

 

사단의 비교의 작전에 넘어갔다.

 

 

 

 "너희가 그것을 먹는 날에는 너희 눈이 밝아져 하나님과 같이 되어"[창3:5]

 

 

 

 

 

하나님과 사람의 비교~

 

 

 

사단이 가진 근본 악함은 하나님과 타락한 천사들의 비교였다.

 

이 비교의 마음을 동일하게 사람에게도 심어줘서 자신들의 사망의 길로 오게 하는 것이다.

 

 

 

 

 

비교하는 순간 우리는 믿음의 마음을 지키지 못한다.

 

 

 

 

 

 

 

비교는 절대 은혜의 울타리를 지키지 못한다.

 

비교는 믿음의 길을 가지 못하게 한다.

 

 

 

 

 

세상에서 가장 악한 것은 비교하는 것이다.

 

 

 

 

주어진 믿음의 분량대로 사는 그것이 축복이며 마음이 능력이다.

 

 

 

 

 

[롬12:2-3]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

 

내게 주신 은혜로 말미암아 너희 각 사람에게 말하노니 마땅히 생각할 그 이상의 생각을 품지 말고

 

오직 하나님께서 각 사람에게 나누어 주신 믿음의 분량대로 지혜롭게 생각하라

 

 

 

 

 

 

 

비교에서 벗어나는 방법은 없는가?

 

 

한가지 있다.

 

 

나는 원래 없는 자라고,

 

나는 원래 가진것도 능력도, 아무것도 없는 자라고 여겨

 

스스로 낮은 곳에 취하며 가난하고 없으며 주린 자들과 함께 있으라.

 

 

내가 비교할 대상을 자꾸 만나면 비교는 스스로 찾아오게 된다.

 

 

내가 섬길자를 찾고 그들과 함께 있으라.

 

그곳에 하나님의 천국이 있다.

 

 

 

 

Pastor Seo

Pastor Se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