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색

하나님의 회복 4편- 축복도 이유가 있어야 한다.

하나님의 회복 4편- 축복도 이유가 있어야 한다.

 

 

 

 

 

 

 

 

하나님의 회복 4-  공의()! 축복도 이유가 있어야 한다.

 

 

 

 

 

 

 

 

 

한번쯤 눈감아 주시면 안되나?

 

한번 용서해 주시면 안되나?

 

이번만 넘어가면 안되나?

 

 

 

 

된다!

 

 

 

 

절대로 된다.

 

그것이 하나님의 ()이다.

 

 

잘못을 절대로 용서하고 넘어가시는 분이 아니다.

 

죄는 절대 죄값을 치러야 하는 것이 하나님이시다.

 

 

 

하나님의 성품 자체가 죄를 용납할 없는 성품이시고 본질이시다.

 

 

 

 

그는 그림자도 없고, 어두움도 없으시다.

 

그분은 빛이시며 정의시며 공의시다.

 

 

 

 

그분의 본성상 어둠과 죄와 불신앙은 용납할 없는 분이시다.

 

 

 

 

 

 

하나님은 공의시다.

 

 

 

 

하나님의 공의, 하나님의 의에 대하여 살펴보자.

 

 

 

하나님은 회복하시는 중이라 했다.

 

 

하나님의 나라, 사단에게 잃어버렸던 하나님의 나라를 회복중이라 했다.

 

 

세상을 만드시고, 사람을 만드셔서 사람에게 힘을 주시고 세상을 다스리고 정복하도록했다.

 

그래서 힘을 주시고 세상을 다스릴 지혜도 주셨다.

 

하나님과 사람의 관계는 오직 믿음으로만 정립된 관계이다.

 

믿음으로만 이야기가 되는 관계가 하나님과 사람의 관계다.

 

 

그런데 하나님의 세상, 하나님의 나라를 사단이 빼앗았다.

 

오직 믿음을 빼앗으니

 

사람도 사단에게 속하여 세상나라에 속하게 되고,

 

하나님 나라도 사람이 넘어가니 사람에게 넘긴 하나님의 나라도 사단에게 넘어간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은 하나님의 나라를 아브라함부터 회복을 시작하시고,

 

구약의 모든 것은 하나님의 나라를 회복하시는 역사이다.

 

아브라함에게 약속한 것이 나라이다.

 

백성과 땅과 주권, 복을 약속하시며 새로운 나라를 약속하셨다.

 

약속을 아브라함은 믿음으로 받았으며

 

믿음의 길로 아브라함이 발걸음을 것이다.

 

길에 자손인 예수님을 통하여 믿음의 길을 여신 것이다.

 

그래서 믿음을 회복 때에만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며

 

하나님 나라는 영생의 나라이다.

 

 

에덴에서 잃어버린 것은 믿음이다.

 

믿음은 영생하도록 하는 이유이다.

 

세상은 영원하게 만드셨다.

 

세상에 영생하며 살도록 사람을 창조하셨으나 믿음을 잃고 겨우 한세대를 사는 존재가 되었다.

 

 

믿음으로 영생을 회복함이 예수를 믿는 것이라 했다.

 

힘의 세상을 이기는 하나님 나라의 지혜는 십자가 죽음, 십자가의 믿음의 길이라 했다.

 

그것을 하나님은 회복하시고 있다.

 

 

 

 

 

 

그런데 오늘은 하나님의 공의이다. 하나님의 의이다.

 

하나님이 어떻게 사단이 불의하게 만든 세상속에,

 

아담과 하와가 망친 불의와 죄와 불법의 세상에 어떻게 그분의 공의를 이루시는가를 살펴보자.

 

 

 

 

 

 

 

하나님의 공의 첫번째는 믿음에 대한 하나님의 공의이다.

 

그것은 죽음이다.

 

 

 

먼저 기억할 것은 하나님은 절대 공의로우신 분이시다.

 

 

 

[신32:4]그는 반석이시니 그가 하신 일이 완전하고 그의 모든 길이 정의롭고

 

진실하고 거짓이 없으신 하나님이시니 공의로우시고 바르시도다

 

 

 

 

 

 

하나님의 본성은 공의다.

 

 

아담과 하와가 죄를 짓고 살짝 눈감아주시고 넘어갈 있다.

 

?

 

하나님 나라가 망하는 일이었다.

 

사람에게 모든 것이 날라가는 일이었다.

 

 

 

그런데 하나님은 용납하지 않으셨다.

 

?

 

그분은 공의로우신 분이다.

 

불법은 용납할 없다.

 

 

 

 

 

 

 

하나님은 아담과 하와가 선악과를 먹고 생명나무를 먹지 못하게 하셨는가?

 

많은 사람은 죄를 가지고 영원히 살면 그것이 저주라서 그렇다,

 

우리를 사랑해서 그렇다라고 한다.

 

아니다.

 

 

그것은 우리를 사랑하시기 이전에 하나님의 본성, 하나님의 성품이

 

그것을 용납하지 않으셔서 그렇다.

 

무슨 말인가?

 

 

 

죄를 범한 사람이 영생을 잃어 버렸다.

 

믿음의 상실은 영생의 상실이다.

 

그런데 믿음을 상실한 사람에게 생명나무를 먹음으로 다시 영생의 길로 가도록 허락지 않으신다는 말이다.

 

 

 

 

[창3:22]여호와 하나님이 이르시되 보라 이 사람이 선악을 아는 일에 우리 중 하나 같이 되었으니

 

그가 그의 손을 들어 생명 나무 열매도 따먹고 영생할까 하노라 하시고

 

 

 

 

 

이것은 사람에 대한 사랑도, 사람에 대한 베려도 아니다.

 

오직 하나님의 공의이다.

 

 

 

믿음을 잃어버림은 영생의 상실이다.

 

그런데 믿음 없는 자들이, 가운데 있는 자들이 거저 생명나무를 통해 영생을 가지는 것은

 

하나님의 본성상 허락할 없는 일이다.

 

 

 

말속에는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고 하나님의 새로운 길을 만드시겠다는 하나님의 의지, 뜻이 들어있다.

 

 

생명나무를 먹지 못하게 것은 불법을 행한 자들에게 사라진 영생을 거저 공짜로 다시 영생을 주지 않겠다는

 

하나님의 강한 뜻이며, 하나님의 성품을 말하는 것이다.

 

 

 

 

그것이 하나님의 공의이다.

 

 

 

 

그래서 하나님은 영생을 잃어버린 세상에 다시 영생을 주시기로 작정하고

 

하나님의 새로운 공의를 이루신다.

 

 

그것이 자신을 죽이셔서 자신의 길로 영생의 길을 내는 것이다.

 

 

 

 

그것이 우리에게 생명, 영생을 주기 위해

 

자신의 생명을 내어 놓는 일이다.

 

 

 

이것이 하나님의 공의이다.

 

 

 

자신의 죽음, 자신을 십자가에 내어 놓음이 하나님의 공의이다.

 

하나님의 의이다.

 

 

 

 

 

하나님의 의는 죽음을 통해서 오도록 하셨다.

 

 

 

 

 

[요16:10]의에 대하여라 함은 내가 아버지께로 가니 너희가 다시 나를 보지 못함이요

 

 

 

 

 

하나님의 의는 오직 죽음이다.

 

죽음으로 인류의 죄에 대한 공의를 이루시는 것이다.

 

 

그것이 사단에 대하여 하나님이 보이시는 공의이다.

 

 

 

죽음으로 새로운 길을 여시는 하나님이시다.

 

 

 

 

 

 

불신앙, 믿음 없음, 죄의 대가는 죽음이다.

 

하나님은 절대 생명나무를 대가 없이 먹고 영생하도록 하지 못하신다.

 

하시는 것이 아니다.

 

그분은 못하시는 것이다.

 

 

 

 

 

 

하나님의 공의는 죽음으로 완성하시는 것이다.

 

 

 

 

 

 

길이 십자가의 ,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이다.

 

죽음이 하나님이 영생을 위하여 다시  놓은 하나님의 공의로 믿는 것이 믿음이다.

 

 

예수 그리스도가, 그분을 믿음이 하나님의 공의이다.

 

 

 

 

죄의 대가는 죽음이요 죽음에 대한 하나님의 용서와 영생의 길을 위한 회복은

 

하나님의 공의 십자가 믿음이다.

 

 

십자가 자체가 예수님께서 하나님께 대한 믿음으로 이루어지니 믿음의 길이요,

 

십자가 예수님을 믿음이 우리의 의가 되는 것이다.

 

 

 

 

 

[롬3:22]곧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모든 믿는 자에게 미치는 하나님의 의니 차별이 없느니라

 

 

 

 

 

하나님은 절대 공짜가 없다.

 

죄는 대가를 반드시 치워야 한다.

 

우리의 죄는 믿음을 잃어버림이요,

 

하나님의 대가는 자신의 아들을 죽이심으로 죽음으로 이루는 의니 하나님의 공의이다.

 

 

 

 

먹으면 죽는다 했으니 죽는것이다.

 

영생이 없는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하나님 나라를 회복하기 위해 자신의 목숨을 놓으셨고,

 

목숨과 예수님의 믿음으로 하나님의 공의를 이루신 것이다.

 

공의를 나의 믿음으로 인정하고 믿고 시인하면 그것이 우리의 의가 되는 것이다.

 

 

이것이 믿음이다.

 

 

 

 

 

믿음으로 잃어버린 영생의 길은 오직 죄의 대가, 불신앙 대가인 죽음으로만 의로움이 된다.

 

 

그래서 예수님은 우리의 의로움이며,

 

우리는 예수님으로 의롭게 되는 것이다.

 

 

 

율법으로는 절대 의로움이 없다.

 

율법은 다만 예수님의 죽음에 대한 예표이며 그림자일 뿐이다.

 

진정한 없는 자가 죽어야 의가 되기에 없으신 그분이 우리의 영생을 위해 죽으셔서

 

율법의 마침, 하나님의 의가 되신 것이다.

 

 

 

 

 

 

[롬10:2-4] 내가 증언하노니 그들이 하나님께 열심히 있으나 올바른 지식을 따른 것이 아니니라

 

하나님의 의를 모르고 자기 의를 세우려고 힘써 하나님의 의에 복종하지 아니하였느니라

 

그리스도는 모든 믿는 자에게 의를 이루기 위하여 율법의 마침이 되시니라

 

 

 

 

 

 

 

 

하나님의 공의 번째는 죽음으로 이루는 의이다.

 

 

 

 

 

 

 

두번째 하나님의 공의는 잃어버린 것을 통하여 다시 회복하는 것이다.

 

 

 

하나님은 예수님을 여자의 후손에서 나게 하셨는가?

 

 

 

[창3:15] 내가 너로 여자와 원수가 되게 하고 네 후손도 여자의 후손과 원수가 되게 하리니

 

여자의 후손은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 너는 그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니라 하시고

 

 

 

 

 

 

무슨 말인가?

 

 

,

 

 

믿음이 처음으로 잃어버린 것은 여자이다.

 

 

 

하나님의 공의는 잃어 버린 것을 회복하여 그것을 통하여 다시 회복하시는 것이다.

 

하나님의 창조 질서, 원상태로 회복하는 것을 말한다.

 

 

 

 

사단이 여자에게 접근하여 믿음을 잃고 선악과를 먹었다.

 

하나님의 본성은 잃어 버린 것을 통해서 다시 회복하는 것이다.

 

 

그래서 여자의 후손이다.

 

 

여자가 잃어버렸으니 여자의 후손이 잃어버림을 회복케 하는 것이다.

 

 

예수님은 여자의 후손으로 오셔야만 하셨다.

 

그래서 예수님은 동정녀에게 나셔야만 것이다.

 

 

 

 

[마1:18] 예수 그리스도의 나심은 이러하니라 그의 어머니 마리아가 요셉과 약혼하고

 

동거하기 전에 성령으로 잉태된 것이 나타났더니

 

 

 

 

 

 

이것이 하나님의 공의이다.

 

 

하나님의 속성은 원래 창조질서대로 회복하고,

 

완벽하게 하나님의 지혜로 만든 세상이 그대로 회복되어 운행되길 원하시고,

 

하나님이 정한 법대로 세상우주만물이 운행되기 원하신다.

 

 

 

여자가 잃어버린 믿음, 여자의 후손으로 회복되게 하신다.

 

 

 

예수님이 성령으로 잉태되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믿음은 여자로부터 먼저 잃어버렸다.

 

그래서 여자는 사람의 숫자에도 끼지 못한다.

 

어린아이처럼 사람취급도 받았다.

 

이유가 뭘까?

 

 

여자로부터 잃어버린 믿음,

 

아마 창세로부터 여자는 남자에게 구박을 받지 않았을까? ^^

 

 

 

그러나 하나님은 여자의 자존심, 여자의 위상을 성령잉태를 통하여 회복하신다.

 

여자를 통하여 다시 구원의 길을 여신다.

 

예수님이 나심이다.

 

 

 

이것이 하나님의 공의, 회복이다.

 

 

 

 

 

잃어버린 것을 통하여 다시 회복하시는 하나님의 공의

 

 

세째는 인자이다.

 

 

 

성경에 예수님은 자신을 표현할 인자라 하셨다. 성경은 신약에서만 무려 80여회가 나온다.

 

 

예수님은 자신을 인자라 하셨나?

 

 

구약에서부터 구원은 인자로부터 올것이라 전해졌다.

 

 

그럼 인자가 구원하는 자인가?

 

 

인자는 '사람의 아들'이라는 말이다.

 

 

 

말이 중요한가?

 

 

 

하나님의 공의이다.

 

 

 

사람이 잃어 버린 것은 반드시 사람을 통하여 회복하신다는 것이다.

 

 

사람이 잃어버린 믿음과 영생을 반드시 사람을 통하여 회복하시겠다는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은 사람이 아니어도 열수 있는 영생의 길을 반드시 사람의 아들,

 

사람을 통하여 다시 회복하시는 하나님의 공의를 보여주시는 것이다.

 

 

 

 

 

생각해보라.

 

사람이 믿음을 잃고 영생을 잃었다.

 

그럼 그렇게 사랑이 많으신 하나님께서 사람을 위해서 공짜로 영생을 주시면 되지 않을까?

 

쉬운 길로 영생을 주시면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아니다.

 

하나님은 잃어버린 것을 통해서 반드시 그대로 회복하신다.

 

여자면 여자,

 

사람이면 인자를 통해서 원상복귀 하시는 분이시다.

 

 

생각해보라.

 

 

 

 

 

베드로!

 

 

 

한번 세운 사람, 정한 사람은 다시 원상복귀 해서 일하게 하신다.

 

사명을 회복시키고, 마음을 회복시키신다.

 

부활 후에 예수님은 베드로를 직접 찾아가셔서 그를 회복시키신다.

 

이것이 하나님의 성품이다.

 

 

 

 

 

 

 

 

그래서 심판도 마찬가지다.

 

 

 

 

사단이 사람을 죽음 가운데 몰았다.

 

그래서 인자가 사단의 죽음을 삼일 동안 당했다.

 

 

 

 

그럼 누가 사단을 마지막에 심판 같은가?

 

그렇다.

 

예수님이다. 인자이신 예수님께서 마지막에 사단의 모든 것을 심판하신다.

 

 

 

하나님은 절대 받은 대로 다시 회복하시고 갚으시는 분이다.

 

 

하나님은 절대 공짜가 없다.

 

 

 

 

 

 

 

 

 

마찬가지다.

 

 

하나님은 세상을 사람에게 주시고 주셨나?

 

세상을 다스리고 정복하는 사명을 주셨다.

 

사람은 사명이 있을 행복하다.

 

사명 상실은 행복상실이다.

 

 

사명, 행복이 죄로 인해 상실되었다.

 

 

세상을 다스릴 사람들이 세상에 복종하고 매여서 산다.

 

세상을 정복할 사람들이 세상에 정복 당해서 불행한 가운데 산다.

 

 

 

그래서 하나님은 원래 모습으로 회복하시는 공의의 하나님이라 했다.

 

 

 

 

영생을 믿음으로 회복하셨으니 주시겠는가?

 

그렇다. 원래 모습으로 원상복귀!

 

 

사명의 회복이다.

 

사명이 이전에는 세상을 다스리고 정복하는 것이다.

 

세상인가?

 

하나님의 것이 세상이다.

 

그런데 이제 세상의 영이 세상을 정복하고 다스리니 새로운 하나님 나라를 세우셨다.

 

하나님 나라를 위해 새로운 사명을 주시니

 

예수님이 승천하시며 주신 지상 사명이다.

 

 

 

 

 

[28:18-20]  예수께서 나아와 말씀하여 이르시되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내게 주셨으니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

 

 

 

 

 

 

예수님의 권세는 영생을 위하여 있다 했다.

 

 

 

 

[요17:2]아버지께서 아들에게 주신 모든 사람에게 영생을 주게 하시려고

 

만민을 다스리는 권위를 아들에게 주셨음이로소이다

 

 

 

 

 

 

 

하나님 나라는 믿음으로 영생의 확신을 가진 사람으로 이루어진다.

 

 

 

 

 

 

사람이다.

 

 

 

 

사람으로 잃어버린 하나님 나라를 다시 사람으로 회복하시는 것이다.

 

 

 

 

 

 

 

일보다 사람이 중요하다 한다.

 

그럼 일보다 사람이 중요한가?

 

 

 

 

사람이 하나님 나라의 핵심이다.

 

사람을 잃어 버리니 하나님 나라가 세상 나라에 넘어갔다.

 

 

세상 나라의 사람들을 다시 하나니 나라의 사람으로 바꾸어야 하는 사람을 우리가 받았기 때문이다.

 

 

우리의 행복, 우리의 능력이 어디에 있나?

 

사람을 세우고, 사람을 영생의 사람으로, 믿음의 사람으로 세우는 것이다.

 

 

 

 

 

한마디로 제자가 되는 것이고,

 

제자를 삼는 것이다. 그리고 가르쳐 지키게 하는 것이다.

 

가르쳐 지키게 하는 것에 대해서는 

 

하나님의 회복 2편에 있다. < 믿음! 모르면서 믿는다 하지마라 >

 

 

 

 

 

 

하나님은 심은 대로 거두시고,

 

 

행한 대로 갚으시는 분이시다.

 

 

말이 정말 무서운 말이다.

 

 

 

 

 

[롬2:6]하나님께서 각 사람에게 그 행한 대로 보응하시되

 

 

 

 

[마16:27]인자가 아버지의 영광으로 그 천사들과 함께 오리니 그 때에 각 사람이 행한 대로 갚으리라

 

 

 

 

[계22:12]보라 내가 속히 오리니 내가 줄 상이 내게 있어 각 사람에게 그가 행한 대로 갚아 주리라

 

 

 

 

 

 

하나님은 공의를 이루기 위해 어떤 대가도 치루신다.

 

자신을 죽이시기까지 하시며

 

홍해도 가르시고,

 

요단강도 마르게 하시며,

 

여리고도 무너뜨리시고,

 

하늘의 해와 달도 멈추시는 분이시다.

 

십자가는 하나님의 공의이다.

 

 

 

 

 

 

 

사단에게도 하나님의 공의를 행하신다.

 

 

 

하나님의 공의를 이루기 위해 하나님은 어떤 대가도 치르시는 분이시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지혜와 하나님의 뜻으로 세워진 나라가 사단에게 넘어갔다.

 

그러나 하나님은 사단에게도 공의를 가지고 대하신다.

 

 

 

 

 

 

 

무슨 말인가?

 

사단은 원래 하나님의 천사였다.

 

그들이 아마 사람을 시험할 하나님도 아셨을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사단의 시험의 방법은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셨을지 몰라도

 

결과에 대해서는 정당함을 인정하셨다.

 

그리고 공의로 문제를 해결하신다.

 

 

 

그래서 사단에게도 정당한 방법으로 죄를 심판하고, 믿음을 회복하고,

 

하나님 나라를 회복하시는 것이다.

 

한마디로, 하나님은 사단에게도 흠이 없는 논리와 원칙으로 하나님의 의를 이루시는 분이시다.

 

 

 

사단에게도 말이 있게하셨다.

 

정당한 방법으로 잃어버린 것을 회복하시고,

 

사단도 심판하시는 것이다.

 

이것이 하나님의 공의 이다.

 

 

 

사단에 대한 공의 이다.

 

 

 

 

 

욥을 기억해야한다.

 

하나님은 사단에게 욥의 의로움을 보여주고 싶으셨다.

 

하나님이 그에게 복을 주는 이유와 그의 의로움을 하나님은 자랑하고 싶어하셨다.

 

 

누구에게?

 

사단에게!!!

 

 

 

사단에게 조차도 하나님은 공의로운 분이시다.

 

복을 주면 복을 주는 이유가 반드시 있어야 하는 분이 하나님이시다.

 

축복을 하면 축복을 하는지 사단에게 정당함이 있어야 하는 분이시다.

 

 

 

 

 

하나님은 아무리 사람을 사랑해도 사람이 사랑 받을 이유가 없으면 사랑을 주실수 없는 분이다.

 

다시 말해,

 

하나님은 우리를 전부 사랑하신다.

 

그러나 사랑을 받을 이유가 있어야 사랑의 복을 받는 것이다.

 

 

이유는 하나님의 속성은 공의이다.

 

사단이 하나님을 찾아가서 하나님의 복의 이유가 뭐냐고 물으면 하나님은 말이 있어야 하는 것이다.

 

 

욥과 같은 이야기이다.

 

 

욥이 축복을 많이 받았다.

 

욥은 의로운 자였다.

 

그런데 사단이 그가 그렇게 하는 것은 하나님이 복을 많이 주셔서 그렇다고 한다.

 

하나님은 한번 시험해 보라고 허락한다.

 

 

물질도 건강도 가족도 친구도 배신한다.

 

마음을 지키던 그가 자신을 원망하고 하나님의 뜻을 몰라 원망한다.

 

 

 

하나님은 그에게 하나님의 깊은 뜻들을 네가 아느냐고 하시고 하나님의 깊음을 말씀하신다.

 

욥은 말을 잃는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그런 욥을 하나님은 마지막에 축복하신다.

 

 

?

 

 

친구들을 향하여 제사를 드리고 그들을 용서하는 욥을 하나님이 보고 나서 그에게 갑절, 정확하게

 

배의 축복을 주신다.

 

 

 

 

[42:10] 욥이 그의 친구들을 위하여 기도할 때 여호와께서 욥의 곤경을 돌이키시고

 

여호와께서 욥에게 이전 모든 소유보다 갑절이나 주신지라

 

 

 

이것이 사단을 향한 하나님의 공의이다.

 

 

하나님은 우리를 축복하시기 원하신다.

 

그런데 축복의 이유가 있어야 축복하신다.

 

 

 

 

 

 

욥은 자신이 없는 상황에서 자신을 욕하고 있다 친구들을 향하여

 

화목제를 드리므로 그의 의로움을 증명하였다.

 

 

 

 

 

이것이 하나님이 사단에게 보여준 마지막 증명이다.

 

축복의 이유이다.

 

 

 

 

 

하나님은 사단에게 하나님의 의로움, 정당함, 공의를 보여줄 증거가 필요하다.

 

 

 

 

예수님은 사십일 광야 금식을 통해 아담이 넘지 못했던 시험을 넘음으로

 

사단에게 십자가의 길을 자격 있음을 보여주었다.

 

증명해 보였다.

 

공의를 보여주었다.

 

 

그리고 없는 예수님이 죽으시고 부활하시게 했고,

 

그를 하나님의 공의로 사단에게 증명해 보이신 것이다.

 

 

 

 

이것이 하나님의 공의, 의가 되었다.

 

 

 

 

예수님의 하나님을 향한 철저한 사랑과 믿음으로 사람이 잃어버린 믿음의 ,

 

영생의 길을 여신 것이다.

 

사단이 손을 들었다.

 

그래서 사단이 아무리 우리를 송사해도

 

우리는 예수님의 , 하나님의 믿음의 공의가 사단에게 증명이 되었기에

 

우리를 송사할 없고,

 

우리를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없는 것이다.

 

 

 

사단까지도 하나님의 공의로 말을 못하게 막으시는 것이다.

 

 

욥의 이야기는 사단을 향하여 하나님의 공의를 보여주시고 증명하시는 이야기이다.

 

 

 

 

 

 

사단도 못하고 사단이 펼치는 논리로 속이는 말로도 항변 못할

 

하나님의 공의로 하나님은 승리하신 것이다.

 

 

 

 

 

우리는 하나님께 축복을 간구한다.

 

하나님은 우리를 축복하기 원하신다.

 

간절히 바라던 바며, 하나님의 소원이며 하나님의 뜻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축복할 이유를 찾으신다.

 

 

축복의 이유 없이는 하나님은 공의로운 분이어서 축복을 주실 없는 분이시다.

 

 

 

 

사단을 향하여서도 공의를 증명해야 하나님의 본성상 우리에게 하나님의 축복의 이유를 찾으신다.

 

 

그래서 하나님은 우리에게 축복의 이유를 주셨다.

 

 

 

 

 

 

 

축복의 첫번째 이유는 십자가이다.

 

 

 

하나님의 공의이자 하나님의 지혜인 십자가는 우리를 의롭게 만드시는 하나님의 의이다.

 

 

하나님의 의로 우리는 의롭게 되고

 

의로움으로 하나님께서 처음 우리에게 주셨던 모든 축복으로 회복하신다.

 

이유 있는 축복이다.

 

 

 

 

 

 

 

둘째는 사명이다.

 

 

 

사명이 있어야 한다.

 

그리고 사명대로 살때 하나님은 축복하신다.

 

사명이 없는,

 

하나님 나라를 위해 일하지 않는 에덴의 사람은 에덴에서 축복의 열매를 먹을 없다.

 

사명으로 감당하는 사람이

 

땅과 오는 세상에서 백배의 복을 누리고 영생을 누린다.

 

 

 

 

 

 

셋째는 하나님의 공의를 이루기 위해 당하는 고난과 환란을 당하는 것이다.

 

 

 

 

 

[살후1:5]이는 하나님의 공의로운 심판의 표요 너희로 하여금

 

하나님의 나라에 합당한 자로 여김을 받게 하려 함이니 그 나라를  위하여 너희가 또한 고난을 받느니라 

 

 

 

 

 

[딤후1:8]그러므로 너는 내가 우리 주를 증언함과 또는 주를 위하여 갇힌 자 된 나를 부끄러워하지 말고

 

오직 하나님의 능력을 따라 복음과 함께 고난을 받으라

 

 

 

 

 

쉽게 말해 하나님 때문에 당하는 아픔이 있느냐는 것이다.

 

 

 

복음, 하나님의 의를 위해 당하는 고난이 있느냐는 것이다.

 

 

 

고난은 하나님의 의를 이루는 세상에서 당하는 당연한 결과이다.

 

 

축복이 먼저 있고 고난이 있지 않다.

 

복음 때문에 당하는 고난이 있고 그리고 하나님의 축복이 있다.

 

 

 

 

하나님은 공의로우신 분이라 했다.

 

 

사단에게 축복할 근거를 먼저 제시할 있는 정도가 되여 축복하신다.

 

축복의 교회,

 

축복의 가정,

 

축복의 사람,

 

축복의 나라는 하나님의 공의 앞에 말이 있어야 한다.

 

 

 

 

 

축복의 이유가 있어야 한다.

 

욥과 같은 증명을 우리는 가져야 한다.

 

그것이 하나님께서 세상을 향하여 보여주고 싶은 하나님의 공의이다.

 

 

 

 

 

 

 

우리는 다윗의 이야기를 알고있다.

 

 

다윗은 위대한 왕이었고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사람이었다.

 

 

그럴까?

 

그의 성품때문이다.

 

 

솔로몬은 왕이 되고 하나님 앞에 기도 자신이 다윗과 같이 나라를 다스리는 사람이 되기를 기도했다.

 

그러면서 다윗의 어떤 모습을 말했는가?

 

아들에게 비친 아버지의 모습은 어떤 모습인가?

 

 

 

바로 정의와 공의와 성실이다.

 

 

 

 

 

 

[왕상3:6]솔로몬이 이르되 주의 종 내 아버지 다윗이 성실공의정직한 마음으로

 

주와 함께 주 앞에서 행하므로 주께서 그에게 큰 은혜를 베푸셨고

 

주께서 또 그를 위하여 이 큰 은혜를 항상 주사 오늘과 같이 그의 자리에 앉을 아들을 그에게 주셨나이다

 

 

 

 

[대상18:14]다윗이 온 이스라엘을 다스려 모든 백성에게 정의공의를 행할새

 

 

 

 

 

하나님이 다윗을 마음에 합한자로 칭한 이유는

 

오직 정의와 공의와 성실이다.

 

 

특히 정의와 공의이다.

 

 

 

그는 공의를 행하는 왕이었다.

 

 

 

성품이 하나님과 닮았다.

 

 

 

하나님의 의를 드러내는 사람이 다윗이었다.

 

 

그는 자신의 죄에 대하여 대가를 지불했고,

 

 

앞에 회개했고,

 

 

공의로 나라를 다스린 왕이며,

 

사울과의 싸움에서 하나님의 공의를 앞세웠고

 

자신의 , 자신의 생각을 절대 앞세우지 않았다.

 

 

그것이 하나님 보시기에 마음에 합한 이유였다.

 

 

여기서 다윗의 일대기에 나타난 공의를 일일이 설명할 없다.

 

한숲교회의 목사님 설교 속에 너무 나타나 있다. (http//www.Hansoop.org)

 

 

하나님께서 다윗을 그렇게 마음에 들어 하셨는지

 

깊은 이야기들을 있을 것이다.

 

 

 

 

 

다윗은 예수님을 닮았고,

 

하나님의 성품을 닮았고,

 

철저히 하나님의 손에 자신을 맡긴 믿음의 용사요 왕이요 신앙인이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공의,

 

의를 앞세우는 자를 마음에 합한 자로 인정하신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공의를 세우기 위해

 

년을 기다렸고,

 

수많은 선지자를 통해 예언하셨고,

 

실오라기 같은 역사를 퍼즐처럼 맞추어 오셨으며,

 

자신의 목숨을 죽이면서까지 공의를 이루신 분이시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공의를 회복하라.

 

 

하나님께서 그렇게 하신 것처럼!

 

 

 

 

 

[암5:24]오직 정의를 물 같이, 공의를 마르지 않는 강 같이 흐르게 할지어다

 

 

 

 

 

 

삭개오는 오직 공의를 자신의 삶에 펼치므로 구원을 받은 사람이다.

 

그는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루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렀으며

 

공의를 행하므로 축복의 반열에 올랐다.

 

 

 

 

 

[눅19:8-9]삭개오가 서서 주께 여짜오되 주여 보시옵소서

 

내 소유의 절반을 가난한 자들에게 주겠사오며 만일 뉘 것을 토색한 일이 있으면 사 배나 갚겠나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오늘 구원이 이 집에 이르렀으니 이 사람도 아브라함의 자손임이로다

 

 

 

 

 

 

하나님의 공의를 행할 우리는 믿음의 축복의 대열에 선다.

 

 

 

삶에서 공의를 하나님처럼 행하라.

 

 

죄를 버리고, 하나님의 뜻을 행할 그때 구원과 축복이 찾아온다.

 

 

믿음은 마음이 아니다.

 

믿음은 공의를 행함이다.

 

 

너희는 세상의 빛이고 소금이라.

 

너희의 착한 행실을 통해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했다.

 

 

 

착한 행실이다.

 

삭개오는 말씀의 뜻을 행한 사람이며 공의를 이루는 사람이었다.

 

 

 

 

 

 

 

 

우리는 그분의 자녀이다.

 

그분이 온전하심 같이 우리도 온전하라했다.

 

그분이 공의로우시니 우리도 공의로와야 한다.

 

 

 

 

죄에 대하여 정리하고

 

세상에 대하여 공의를 선포하는 행함, 착한 행실이 필요하다.

 

 

 

축복은 축복의 이유가 있어야 축복이 찾아오다.

 

 

축복을 찾으러 구하러 다니지 말라.

 

축복은 공의를 행하며

 

하나님의 원하시는 것을 자연스럽게 찾아오는 하나님의 함께함의 증거이다.

 

 

 

 

 

 

 

 

전쟁은 하나님의 것이라 했다.

 

그러나 하나님은 전쟁에 우리를 회복시키셔서 우리로 인해 잃어버린 하나님의 나라를

 

우리를 통해 회복하셔야 하는 숙제가 있다.

 

그것이 하나님의 공의이다.

 

 

 

 

 

 

하나님의 공의에 당신은 무엇을 것인가?

 

겨우 죄로 인한 감정으로 우울한 삶을 보내며

 

허무한 것에 인생을 맡기며

 

겨우 감정의 조각들에 인생이 좌지우지되는 것을 언제까지 반복할 것인가?

 

 

거룩한 하나님의 공의를 위하여 삶을 드리라.

 

하나님의 거룩한 회복,

 

하나님의 공의를 가운데 이루라.

 

그것이 하나님께서 공의를 통해 이루시는 회복의 거룩한 역사에 동참하는 것이다.

 

 

 

 

 

 

 

 

[사61:8]대저 나 여호와는 공의를 사랑하며 불의의 강탈을 미워하여

 

성실히 그들에게 갚아 주고 그들과 영영한 언약을 세울 것이라

 

 

 

 

 

 

 

 

 

 

 

 

 

 

Pastor Seo

Pastor Se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