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령의 법칙2- 소자의 법칙
(부제-큰 것을 하려는 우리와 작은 것을 원하시는 하나님)
누가복음16:10
"지극히 작은 것에 충성된 자는 큰 것에도 충성되고 지극히 작은 것에 불의한 자는 큰 것에도 불의하니라"[눅16:10]
지금은 성령께서 일하시는 시대이다.
아니 구약은 율법을 통해 신약은 예수님을 통해 하나님의 일하심을 보게 되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 하늘로 가시고 난 후에 성령께서 오셔서 지금 우리와 나와 내 안에 함께 하신다.
예수님의 다른 이름인 '임마누엘'의 역사를 성령께서 주관하신다.
하늘로 가신 예수님이 어떻게 우리와 함께 하시는가?
성령이다.
성령의 임재가 내안에 있으므로 성령께서 그리스도를 보게하고
알게하고 느끼게 하신다.
하나님께 우리와 함께 하시는 역사는 성령의 보증, 성령의 확증으로
내 안에서 체험하고 경험하고 확증하는 것이다.
구약의 법은 율법을 통하여 하나님을 찾아가는 것이지만
불완전하고 완성되지 못한 그 법을 이제는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성령의 법,
성령의 인도로 새로운 세계가 열린것이다.
그 성령과 동행하고 성령의 지배를 받을 때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로
백성으로 살게 된다.
그 첫 번째 방법이 성령의 법칙인 온유의 법칙 이라 했다.
온유는 내 고집, 내 생각 내 마음을 내려 놓고 그리스도의 영, 성령의 영을 좇아 가는
마음이 온유이다.
사람에 대해서가 아니라 하나님에 대해서 반응하는 성품이 온유이다.
각자의 마음에 있는 성령께서 주시는 모든 지각을 좇아 따르는 것이다.
그 예로 모세를 들었고,
삼위 하나님의 철저한 하나됨의 관계를 예수님과 하나님에서 볼 수 있었다.
우리가 그 하나님과 하나되고 연합되는 유일한 방법은
성령과 연합하고 하나되는 것인데
그것이 예수님의 하나님에 대하여 온유하심이라 했다.
자신의 생각, 말, 사명이 아니라
철저히 하나님의 생각을 말하고 하나님이 주신 말을 전하고
하나님의 명령을 행하는 하나님 중심적인 삶의 모범이 예수님이신 것이다.
그 모범으로 우리는 성령에 대하여 그렇게 반응하는 것,
온유하는 것,
그것이 성령의 법칙 제 일의 법칙인 온유의 법칙이라 했다.
이 온유의 법칙은 먼저 하나님의 사랑을 충만히 받은 자가 할수 있다.
그래서 세례후에 하늘로부터 사랑하는 자라는 음성이 있었고,
변환산에서 동일한 사랑하는 자라는 음성을 들었다.
이런 확증을 받은 자만이 성령의 온유의 법칙을 따를수 있다.
철저히 자신의 죽이는 겸손함이 여기서 나온다.
하나님의 사랑의 실체를 경험해 보지 못한 자는 이런 온유와 겸손의 마음을 가질수 없다.
우리는 이 온유함으로 성령의 음성에 따를때 하나님께 쓰임 받는 축복의 삶을 살수 있다는 것이
성령의 법칙 1- 온유의 법칙 에서 이야기 한 것이다.
그럼 성령의 법칙 2는 무엇인가?
바로 < 소자의 법칙 > 이다.
예수님이 이땅에서 말씀하신 성령의 법칙 두번째는 바로 소자의 법칙이다.
[눅16:10]지극히 작은 것에 충성된 자는 큰 것에도 충성되고
지극히 작은 것에 불의한 자는 큰 것에도 불의하니라
예수님이 가시고 성령께서 오셔야함을 아시는 예수님께서
앞으로 오는 세대에 하나님의 백성들이 구약의 율법이 아닌
성령의 법, 성령과 어떻게 교제하고
어떻게 그분의 법을, 뜻을 이루어 갈지를 말씀 하신 것이다.
성령의 시대에 그분의 백성의 행동원리를 보여주신 것이다.
작은 것을 행하는 것이
곧 온유와 겸손이 있음을 증명하는 매개체이다.
우리는 늘 큰 일을 하려하고 하나님은 늘 작은 것을 하라 하신다.
왜냐하면 하나님 나라의 원리는 작은 것을 통해서 되어지는 나라이기 때문이다.
아니 좀더 정확히 말하면 하나님이 일하실 구실, 동기를 찾으시는 것이다.
우리는 자격이 되고 능력이 되고 조건이 되야 큰 일을 하려고 한다.
그러나 하나님의 나라는 하나님이 하신다.
단지 우리는 하나님이 일하실 구실을 주면 된다.
그 구실, 이유, 동기가 바로 작은 것을 행하는 것이다.
작은 것을 할 때 하나님이 하나님의 큰 일을 진행 하신다.
모세의 지팡이,
여리고성을 도는 것 등이 그것이다.
작은 마음을 말한다.
작은 생각의 움직임을 말한다.
그 작은 생각과 마음을 잡아서 그것에 충성할 때 하나님은 축복으로 인도하시는 것이다.
그래서 소자에게 한 것이 곧 하나님을 대하는 것이다.
소자를 업신 여기는 것은 하나님 앞에 고발 하는 것이다.
[마18:10]삼가 이 소자 중에 하나도 업신여기지 말라 너희에게 말하노니
저희 천사들이 하늘에서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얼굴을 항상 뵈옵느니라
소자에게 냉수 한 그릇 준 것도 하나님께 드린 것이고 상을 얻을 만큼 큰 것이라 했다.
[마10:42]또 누구든지 제자의 이름으로 이 소자 중 하나에게 냉수 한 그릇이라도 주는 자는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 사람이 결단코 상을 잃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
그리고 소자를 실족케 하는 자는 죽으라고까지 말씀하신다.
[마18:6]누구든지 나를 믿는 이 소자 중 하나를 실족케 하면
차라리 연자 맷돌을 그 목에 달리우고 깊은 바다에 빠뜨리우는 것이 나으니라
성령의 작은 것을 중요하게 여기지 못하는 사람은
결국 생명을 얻을 수 없는 사람이라는 말이다.
그래서 차라리 죽으라는 말이다.
그만큼 성령의 작은 것을 목숨처럼 여기는 마음이 중요하다.
천국의 법칙은 < 소자의 법칙 > 이다.
소자는 눈에 보이지 않는 사람이다.
소자를 대하는 것은 작은 것으로 다가가야 만날 수 있다.
꿈은 크되 마음은 작게 써야한다.
하나님이 만드신 세상을 봐야 하지만 하나님의 마음이 있는 작은 소자에게
우리의 눈과 마음이 있어야 한다.
아니 작은 성령의 마음과 생각을 가장 크고 중요하게 여길 때
하나님도 우리를 크게 여기신다.
하나님은 작은 자에게 마음이 있고
그 작은 자는 우리의 작은 것으로 찾아가야 만날 수 있다.
그래서 예수님은 하늘의 상도 착한 것도 충성된 것도,
냉수 한 그릇, 작은 행동, 작은 마음이
하늘에 맞닿는다 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하나님은 우리를 크게 하고 싶으시다.
그런데 하나님 나라의 원리는 작은 자를 섬기는 자가,
작은 것에 마음을 두고 행하는 자가 큰자라고 이미 못을 박았다.
그래서 작은 것을 행하는 자를 크다 말씀하신다.
[눅9:48]저희에게 이르시되 누구든지 내 이름으로 이 어린아이를 영접하면 곧 나를 영접함이요
또 누구든지 나를 영접하면 곧 나 보내신 이를 영접함이라
너희 모든 사람 중에 가장 작은 그이가 큰 자니라
더 크게 되는 사람은 더 작은 사람에게 마음을 두고 영접하고 섬기는 사람이라는 것이다.
우리는 늘 큰 것에 마음을 둔다.
그래서 작은 것은 무시하고 소멸해 버린다.
성령은 늘 큰 역사로 오지 않는다.
예수님은 날마다 새벽마다 순간마다 작은 하나님의 뜻, 생각을 좇아 사셨다.
그것이 예수님의 위대함이다.
그럼 왜 하나님의 나라는 이렇게 작은 것에 중요성을 두는 것일까?
이유는 간단하다.
예수님, 하나님이 그렇게 하시는 것이다.
하나님 편에서 예수님 편에서 우리는 소자이다.
작은 어린아이이다.
그분이 이 땅에서 하는 모든 것은 그분들의 입장에서 작고, 무의미하며,
마치 소자에게 냉수 한 그릇 주는 일보다 못한 일이다.
말씀으로 하면 되지 일일이 찾아가고 돌보고 고치시는 모든 것이
작은 것, 소자에게 행하는 것이다.
이런 하나님, 예수님께서 사신 삶의 원리
하나님 나라의 원리가 작은 것이기에 하나님은 우리에게도 그렇게 사시기를 원하시는 것이다.
그래서 겨자씨 비유를 말씀하시고 씨 뿌리는 비유를 말씀하셨다.
[막4:31-32] 겨자씨 한 알과 같으니 땅에 심길 때에는 땅 위의 모든 씨보다 작은 것이로되
심긴 후에는 자라서 모든 풀보다 커지며 큰 가지를 내나니
공중의 새들이 그 그늘에 깃들일 만큼 되느니라
이것이 성령의 법칙, 소자의 법칙이다.
성령의 작은 것을 심으면 모든 것을 쉬게할 만큼 큰 것으로 얻는것이 성령의 법칙이다.
오병이어도 마찬가지이다.
작은 물고기라고 했다.
[막8:7]또 작은 생선 두어 마리가 있는지라
별거 아닌 것, 보잘것 없는 것을 성령이 원하실 때,
하나님이 원하심을 알 때 순종함으로
놀라운 역사가 나타난다는 것을 보여준다.
(오병이어 역사는 요단강 사건과 같은 맥락이라 이전 글에 썼다)
천국이 어떻게 임하는가?
성경은 명확하게 말씀하신다.
[마13:31] 또 비유를 들어 이르시되
천국은 마치 사람이 자기 밭에 갖다 심은 겨자씨 한 알 같으니
천국은 사람이 겨자씨를 심는 것이다.
성령이 원하시는 작은, 눈에 보이지도, 중요하게도 여기지 않는 작은 것을
행할 때 천국이 이루어 지는 것이다.
왜 천국이 내 안에 오지 않는가?
첫째는 내가 천국에 대한 뜨거운 목마름이 없어서이고
둘째는 성령의 작은 겨자씨 같은 생각과 마음을 듣지 못해서 이고
셋째는 들은 그 음성을 심지 않아서, 행하지 않아서이다.
그러나 우리가 이미 하나님의 백성, 그분의 성령의 음성을 듣는 사람이라면
이미 우리는 성령의 음성을 듣고 있다 하지만 단지 순종,
그 겨자씨를 심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천국을 보지 못하고 느끼지 못하고 세상의 것으로 채울 뿐이다.
모세를 기억해야한다.
왜 모세가 가나안에 못들어갔나?
성령의 음성,
작은 하나님의 명령을 거역했다.
반석을 향하여 명령하라 했지 지팡이를 치라 하지 않았다.
명령하나 치나 별 다른 것이 없는 아주 작은 것이다.
중요한 것은 작은 것이어도 성령의 음성에 순종하느냐 하지 않느냐가 되고
결국 그 결과는 가나안이냐 광야에서 죽느냐를 결정한다.
하나님은 큰 일을 행하시고
성령은 작고 섬세한 마음으로 우리에게 찾아오신다.
성령이 오시면 그냥 지나친 작은 죄도 악함도 생각나게 하신다.
진정한 성령의 역사는 나를 통해 사람들의 작은 것을 채움으로 완성된다.
성령의 일은 내 안의 작은 조각구름을 바라보는 것이다.
성령의 일은 내 안의 작은 마음을 원하시고 그 일을 통해 천국이 임하도록 도우시는 것이다.
그래서 성령의 사람은 다른 사람의 작은 필요를 채우고
그 필요를 채우기 위해 목말라하는 사람이다.
작은 말 한마디,
작은 웃음,
작은 미소,
작은 위로,
작은 나눔,
작고 작으며 섬세하고 눈에 보이지 않는 것들로 하나님 나라가 내 안에 역사하게 된다.
엘리야를 살린 것은 까마귀의 입에 물린 작은 조각의 음식이다.
엘리야를 살린 것은 로뎀나무 아래서 천사가 준비한 한끼도 안 되는 물과 음식이었다.
사마리아 여인이 물 한 모금을 예수님께 드릴 때 그는 영원한 생수를 만났다.
이삭의 아내 리브가는 우물의 물을 떠 줌으로
하나님이 예비하신 이삭의 아내라 확증을 받았고
아이의 작은 도시락이 오 천명을 먹이므로
예수님이 구약에서 예언한 그 메시야임을 증거했고
다윗의 세 용사가 목숨 걸고 베들레헴의 우물물을 다윗에게 떠드릴 때
그 물은 생명의 물이 되는 것이다.
큰 일은 하나님이 하신다.
우리는 단지 작은 것을 드릴 때
그 작은 것으로 하나님의 위대함을 보게 되는 것이다.
홍해는 모세의 작은 순종,
지팡이를 하늘을 향해 드는 것으로 열렸다.
우리는 날마다 홍해를 가르는 것과 같은 위대한 일이
내 인생에 일어나기를 기대한다.
그러나 정작 그 큰 일을 여는 작은 성령의 음성은 무시한다.
그래서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것이다.
순간 순간 내 생각이 아닌
성령의 생각을 듣도록 집중해야 한다.
그 생각이 오게 되면 놀랍고 큰 일은 하나님의 몫이다.
내가 조건이 되었다고 큰 일이 일어나지 않는다.
오직 큰 일을 위한 조건은
작은 것,
성령의 작은 생각과 마음을 따르는 것 뿐이다.
성령의 상징은 구름과 불기둥이다.
이스라엘이 광야에서 받은 훈련은
오직 구름이 움직이면 가고 서면 서는 것!
오직 그 훈련만 받았다.
그날 먹을 만나만 거두는 것!
내일이 아니라 단지 오늘 주시는 대로 가서 거두는 것이다.
그때 그때 성령이 주시는 구름기둥과 불기둥인 성령의 생각과 마음을 순종하라.
그때 하나님의 위대한 일은 시작된다.
[갈5:18]너희가 만일 성령의 인도하시는 바가 되면 율법 아래 있지 아니하리라
왜 우리가 아직도 율법에 메이는가?
성령의 인도를 따르지 않아서이다.
그 따름은 마음과 생각으로 온다.
그 생각과 마음을 듣고 따름이 축복이다.
그 생각과 마음은 작은 것으로 온다.
작은 것을 따를 때 우리 안에 능력이 찾아오고 두려워하는 마음이 사라지고
하나님의 큰 일을 목격하게 될 것이다.
이 비밀을 아는 자가 많지 않도다.
성령의 능력을 극대화하라!
그것은 작은 성령의 음성을
삶으로
발걸음으로
나눔으로
섬김으로 나타날 때 일어난다.
기억하라.
왜 냉수 한 그릇인지!
하루를 사는 동안 내가 행할 성령의 냉수 한 그릇을 찾으라!
그러면 하늘이 열리는 것을 볼 것이다.
작은 것에 대한 충성은 성령에 대한 순종이다.
작은 것을 듣고 작은 것을 순종한 것이
곧 성령의 음성을 따르는 것이다.
성령을 따르지 않으면 어떻게 되는가?
악령을 따르게 된다.
우리는 둘중 하나를 따른다.
성령 아니면 악령~
사울왕을 기억하라.
성령의 흐름을 거역하니 결국 악령을 불러 좇았다.
성령의 음성을 따르는 사람!
그 사람이 곧 큰 일을 맡을 수 있는 사람의 자격이다.
남자의 자격이 아니라 큰 일을 할 사람의 자격이다.
하나님의 아픔이나 고난은
하나님께 집중하기 위한 방편이다.
고난이나 아픔이 목적이 아니다.
그것을 통해 하나님께 민감하기 위함이다.
민감함은 이전에 들리지 않던 소리가 명확하게 들리게 한다.
큰 소리,
천둥이나 번개나 폭풍이나 바람속에 하나님의 말씀이 있지 않다.
엘리야에게 임하셨던 하나님을 기억하라.
하나님은 잠잠한 가운데
세미한 소리 가운데 임하셨다.
이것이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방법이다.
엘리야의 생각을 바꾸어 주신다.
하나님과 대화하는 법을 이제야 깨달은 것이다.
큰 아픔을 통해서 엘리야는 하나님이 말씀하시고 듣는 방법을
터득한 것이다.
하나님의 사람은 성령의 폭발적 은혜를 먼저 체험하고 움직인 것이 아니다.
이미 그들은 하나님과 예수님과 친밀한 교제를 한 사람들이
그 교제의 결과로 폭발적인 능력을 받은 것이다.
큰 일을 하려 하지 말라.
큰 일은 하나님이 하신다.
단지 우리는 작은 일에 충성할 때 하나님의 큰 일을 볼 뿐이다.
그 작은 일은 성령의 법,
성령이 주시는 작고 세미하고 보일듯 말듯 하는 마음과 생각의 겨자씨를 심을 때
천국이,
하나님의 놀라운 일이 일어 날게 될 것이다.
소자의 법칙이 성령의 법칙이다.
소자의 법칙을 모르는 자는 천국을 모르는 자이다.
단지 자기의 권력과 자기의 성을 쌓으려는 사람이다.
하나님 나라는 누룩과 같이 작은 곳에 있고,
하나님 나라는 작은 겨자씨를 심을 때 있고,
하나님 나라는 작은 물고기 두 마리를 드릴 때 있고,
하나님 나라는 작은 어린아이 하나를 대접하는 곳에 있고,
하나님 나라는 작은 소자 하나에게
냉수 한 그릇을 대접하는 곳에 있음을 결코 잊어서는 안 된다.
큰 것을 하려 하지 말라.
단지 죽을 만큼 의에 목마르고 작은 것에 마음을 두라.
이것이 하나님 나라의 원리이자 성령의 법칙이다.
[마25:21]그 주인이 이르되 잘 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가 작은 일에 충성하였으매 내가 많은 것으로 네게 맡기리니
네 주인의 즐거움에 참여할지어다 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