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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은 왜 아픔을 주시나?

하나님은 왜 아픔을 주시나?

 

 

 

 

 

 

 

 

 

 

 

 

하나님은 아픔을 주시나?

창세기3:15-21

 

 

 

 

 

 

 

 

 

세상에서 가장 힘든 것이 뭔지 아는가?

 

사랑하는 사람이 아픈 것이다.

 

사랑하는 아내나 남편이 아플 때 사람들은 정말 아픔을 느낀다.

 

그런데 그것보다 더 아픈 것은 자녀가 아플 때이다.

 

 

 

 

 

 

이것은 세상에서 가장 마음 아픈 아픔이다.

 

고통이다.

 

슬픔이다.

 

 

 

 

 

예수님께서 고치신 가장 많은 병자는 자식이 아픈 경우다.

 

그들은 사랑하는 그들의 자녀들의 고통이 자신의 어떤 아픔보다 크게 느낀다.

 

 

 

하나님은 사람을 만드실 때 하나님의 성품을 심어 놓았다.

 

다른 말로 사람이 아픔을 느낄 때 느끼는 감정을

 

하나님은 아신 다는 것이다.

 

 

 

 

 

 

 

하나님이 언제 가장 마음이 아플까?

 

하나님은 언제 가장 힘들어 하실까?

 

 

 

 

 

 

 

그렇다.

 

그분의 자녀가 아픔을 느낄 때 이다.

 

 

 

 

 

우리는 왜 하나님께서 아픔을 주시는가를 생각해 보고 있다.

 

 

 

 

 

그런데 먼저 생각해 볼 것은 사람이 아픈 것을 하나님도 그대로 아프다는 것이다.

 

 

 

 

 

아담과 하와가 범죄를 하고 영원한 생명을 잃었다.

 

죽음이 찾아오고,

 

깨어진 관계로 살아가야 한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이들에게 주신 벌이 무엇인가 생각해 봐야 한다.

 

 

 

 

 

 

 

 

 

먼저

 

그들에게 어떤 벌이 내려졌나?

 

 

 

 

첫째로 육체적 고통이 찾아왔다.

 

 

 

육체적 아픔이다.

 

여자는 아이를 가지는 것도, 아이를 낳는 것도 엄청난 아픔으로 이루어 진다.

 

그것이 아픔이다.

 

 

 

 

남자는 온종일 수고해야 음식을 먹도록 하셨다.

 

수고하지 않으면 먹을 수 없다.

 

 

 

 

에덴은 하나님이 주신 것을 누리는 곳이다.

 

그런데 죄로 인해 육체적 수고, 아픔이 있어야 생명을 유지 할 수 있는 존재가 된 것이다.

 

땀을 흘려야 땅이 우리에게 식물 즉 음식을 주게 된다.

 

 

 

 

그리고 땅은 우리의 수고를 받아 주지 않는다.

 

땅은 가시덤불과 엉겅퀴를 준다 했다.

 

땅에서 수고할 때 먹는 것을 위해 수고 할 때 늘 가시를 준다는 것이다.

 

 

 

 

육체적 수고가 마음대로 되지 않는 다는 것이다.

 

내가 해놓은 수고에 가시나무 엉겅퀴가 다 망쳐서 육체의 고통은 더 심해진다는 말이다.

 

 

 

세상에서 사는 동안 우리의 수고가 결코 수고대로 열매를 맺지 못한다는 말이다.

 

그것이 아픔이다.

 

 

 

땀 흘린 만큼 먹지 못하고,

 

세상은 우리에게 등을 돌리고 돌을 던지고 가시 즉 아픔을 주게 된다.

 

 

 

 

 

 

둘째로 자신의 실체가 드러날 것에 대한 두려움이다.

 

아픔이다. 고통이다. 슬픔이다.

 

 

 

 

우리는 우리의 본성이 죄다.

 

다 악하고 부끄러운 본성이다.

 

그 본성, 죄성이 드러날 때 아픔을 느낀다.

 

 

 

 

 

언제 아픔이 되는가? 고통이 되는가? 두려움이 되는가?

 

그 부끄러움이 드러날까 두려워하고 그것이 완전히 드러날 때 아픔이 된다.

 

그래서 사람은 본성을 숨기려 한다. 드러나는 것이 두려움이고 그 두려움이 해결 되지 않고

 

완전히 드러나면 아픔이 찾아온다.

 

 

 

 

 

 

그래서 우리는 마음을 열지 못한다.

 

우리는 자신의 약함을 솔직히 고백하지 못한다.

 

그래서 마음에 아픔이 찾아오고 두려움이 찾아온다.

 

 

 

 

 

 

 

셋째, 믿던 사람들과 관계가 깨어짐이다.

 

 

 

 

 

관계가 깨어짐은 가장 아픈 것이다.

 

 

 

 

아담이 하와를 보고 뭐라고 고백했는가?

 

이는 내 뼈 중에 뼈요 살 중에 살이라 했다.

 

 

 

 

 

그런데 이제 뭐라고 하나?

 

이 여자 때문에 선악과를 먹었다고 한다.

 

하와 입장에서 가장 믿은 사람이 나를 보호해 줄꺼라 믿었는데

 

자신은 빠지고 하와만 부끄러움 가운데 버려둔다.

 

관계가 깨어짐이 아픔이다.

 

 

 

 

 

그래서 하나님은 하와가 남편을 사모하게 하고 아담은 하와를 다스리라 한다.

 

이 말은 말 그대로 하면 좀 이상한데 히브리 문학적 문장으로 이해하면

 

 

'남자 여자를 다스리기 위해 원하고 여자는 남자를 다스리기 위해서 원한다.'

 

 

한마디로 서로 다스리려고 하고

 

 

창3:16너는 남편을 네 마음대로 하고 싶겠지만 오히려 남편이 너를 지배하게 될 것이다.(현대어성경)

 

 

 

 

 

서로 다스리고 재배하려는 싸움이 계속 된다는 것이다.

 

관계의 회복이 없다는 것이다.

 

 

 

이것이 이 땅에서 우리에게 주신 아픔이다.

 

 

 

가장 사랑하는 사람, 믿던 사람과 이런 관계라 하면 세상의 모든 사람과는 어떻겠는가?

 

 

 

믿지 못하고 지배하려 하고 내 맘대로 휘두르려고 한다는 것이다.

 

이것이 아픔이다.

 

 

 

 

 

 

 

넷째로 사단은 늘 우리와 원수가 되어 싸우게 되는 아픔이다.

 

 

 

이 싸움은 그리스도가 오시고 그리스도가

 

우리 안에서 다스릴 때까지 해결 되지 않는 아픔이다.

 

 

 

 

인류가 있는 동안 이 원수 악한 영과 싸워야 하는 아픔이 있다.

 

이들이 주는 고통과 슬픔과 아픔이 끊이지 않는 것이다.

 

 

 

 

 

 

 

 

다섯째로 흙으로 돌아가는 아픔, 즉 죽음이다.

 

 

 

 

이것이 진정한 아픔이다.

 

영생을 잃어버린 아픔, 그래서 죽음이 사람을 아프게 하는 것이다.

 

 

 

죽음과 관련된 모든 아픔이 사람의 주변에 있다.

 

 

 

 

죽음으로 인한 두려움과

 

죽음으로 사랑하는 사람과 헤어짐에 대한 아픔

 

그리고 죽음이 찾아오면서 일어나는

 

모든 공포와 병으로 인한 불편함과 서서히 죽어가는

 

고통을 느끼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함께 하고픈 사람과 함께 할 수 없는 아픔을 느끼는 것이다.

 

 

 

 

 

 

 

자!

 

여기서 하나님께서 죄지은 인류에게 주신 아픔을 정리해보자.

 

 

 

 

 

첫째로 육체적 고통이 찾아왔다. 수고의 대가가 없다.

 

 

 

둘째로 자신의 실체가 드러날 것에 대한 두려움이다. 죄된 자신의 본성이 드러날 것에 대한 두려움,

아픔이 있다.

 

 

 

셋째, 믿던 사람들과 관계가 깨어짐이다.

 

 

 

넷째로 사단은 늘 우리와 원수가 되어 싸우게 되는 아픔이다.

 

 

 

다섯째로 흙으로 돌아가는 아픔, 즉 죽음이다. 죽어감의 아픔이다.

육체가 병들고 영혼이 병들어가는 아픔이다.

 

 

 

 

 

 

사람이 죄로 인해 하나님께서 직접 주신 아픔들이다.

 

그럼 왜 이런 아픔을 주셨는가를 생각해야 한다.

 

 

 

 

왜 육체적 고통이 있게 하셨는가?

 

 

왜 벌거벗음이 왜 부끄러운지 자신이 드러남이 왜 아픔인지?

 

 

왜 관계가 깨어짐으로 아픔을 느끼게 하셨는지?

 

 

왜 원수와 싸우게 되는지?

 

 

왜 죽음의 아픔을 느끼게 되는지?

 

 

 

 

 

 

이 아픔의 본질이 무엇인가?

 

그것은

 

 

 

< 하나님이 느끼는 아픔 >이라는 것이다.

 

 

 

 

그것을 사람이 느껴 보라는 것이다.

 

사람이 하나님이 느끼는 아픔을 같이 느끼며 하나님의 마음을 좀 알아 달라는 것이다.

 

 

 

 

 

물론 저절로 찾아온 아픔이 있다.

 

 

죽음은 선악과를 먹으므로 저절로 찾아왔다.

 

 

선악과를 손대는 순간 죽음이 온다 했으니 이것이 가장 큰 죄의 댓가 이다.

 

 

 

 

 

 

영생을 잃어 버리는 것!

 

죽어가는 !

 

 

 

그것은 죄가 가져온 가장 심각한 아픔 중에 하나이다.

 

문제를 하나님이 해결하기 위해서 인류를 움직여 일하시고 계신다.

 

 

 

 

 

 

 

그러나 나머지는

 

하나님이 주신 것이다.

 

 

 

 

첫째,

 

 

육일 동안 열심히 일해서 공을 들여 창조하고 만들어 놓았더니

 

수고의 결과가 없어져 버렸다.

 

 

 

그 허무함이 어떠한지 한번 깨달아 보라는 것이다. 이것이 얼마나 아픔인지.

 

수고하지 않고 얻은 영생과 천국이 얼마나 귀한 것인지 한번 생각해 보라는 말이다.

 

 

 

하나님이 느끼는 아픔 첫번째는 하나님의 창조의 역사가 하루 아침에 날라가 버렸다.

 

에덴이 날라가고 사람이라가 버렸다.

 

 

 

하나님의 아픔을 보라는 것이다.

 

 

 

 

 

둘째,

 

 

벗어도, 자신의 허물이 드러나도 자신의 모든 것을 용납해 주시는 하나님이

 

얼마나 귀한지 여겨 보라는 것이다.

 

 

 

허물이 드러날 때의 아픔이 얼마나 큰지 한번 생각해보고

 

그 허물도 약함도 모든 것을 용납해주신

 

하나님을 생각해 보라는 말이다.

 

 

 

 

 

 

셋째,

 

 

관계가 깨어질 때 느끼는 아픔이 어떤지 느껴 보라는 것이다.

 

 

 

에덴은 관계가 문제가 없던 곳이다.

 

그런데 관계가 깨어지고 나면 그 아픔이 엄청나다.

 

 

 

좋아도 관계가 깨어지고 관계가 힘들면 세상 사는 재미가 없다.

 

입맛이 없다.

 

 

 

그 아픔을 네가 땅에서 사는 동안 아픔으로 느껴 보라는 것이다.

 

하나님이 어떤 아픔을 느낄 것인가 짐작해 보라는 것이다.

 

 

 

 

 

 

 

 

넷째,

 

 

우리가 사단과 싸우면서 느끼는 아픔이 있다.

 

엄청난 아픔이다.

 

 

 

그런데 하나님은 이 싸움 속에 얼마나 큰 댓가와 희생을 지불해야 하는지

 

어떤 아픔을 지불해야 하는지 느껴 보라는 말이다.

 

 

 

독생자 그리스도가 얼마나 아파해야 하고

 

성령이 얼마나 탄식해야 하는지 알라는 것이다.

 

 

 

 

 

 

 

다섯째,

 

 

죽음의 아픔이다.

 

죽어감의 아픔이다.

 

 

 

죽어 간다는 것이 얼마나 아프고 힘든가?

 

엄청난 고통과 아픔이 있다.

 

 

 

 

그런데 영생하도록 사람을 만드신 하나님의 얼마나 가슴이 아프겠는가?

 

자신의 모든 창조 세계를 맡길 만큼 귀하게 여기고 자녀로 여긴 사람이 죽어간다면

 

그 아버지의 심정이 어떠하겠는가?

 

 

 

 

 

자식이 죽어갈 힘쓸 없는 부모의 마음이 바로 하나님의 마음이다.

 

그래서 모든 대가를 지불 하고 서라도

 

하나님은 죽음에서 영생으로 아픔에서 생명으로 이끄시는 것이다.

 

 

 

 

 

 

 

 

 

우리가 느끼는 아픔은 거의 대부분

 

이 다섯 가지 아픔에 속한다.

 

 

 

 

그런데 하나님께 이 아픔을 주신 것은 하나님 자신,

 

하나님이 느끼는 아픔을 느껴 보라는 것이다.

 

 

 

 

 

그리고 하나님이 얼마나 아파하시며 고통 하시며

 

우리에게 자유하게 하시며 평안을 주시며

 

영생을 주시기 원하시는지 생각해 보라는 것이다.

 

 

 

 

 

 

 

이 세상에는 각자가 처한 얼마나 많은 아픔이 있는지 모른다.

 

그것을 다 열거 할 수는 없다.

 

 

 

 

 

그러나 우리가 아픔을 당하면서 생각 할 것은

 

하나님도 동일하게 같은 아픔을 느끼신 다는 것이다.

 

 

 

 

 

 

함께 아파하고

 

함께 눈물 흘리며

 

함께 그 고통과 아픔을 지나고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분은 우리의 아버지 하나님이시다.

 

 

 

 

 

우리가 느끼는 아픔은 우리가 느끼기 전에

 

하나님이 먼저 느끼고 깊이 느끼고 많이 아파하는 마음이라는 것이다.

 

 

 

 

 

 

죄가 오면서 자연스럽게 들어온 인간의 아픔 속에

 

하나님께서 그 아픔에 공감하고

 

함께 아파하시는 하나님을 기억해야 한다.

 

 

 

 

 

그리고 하나님은 아픔의 본질을 해결하기 위해서

 

그분 스스로 모든 것을 해결 오신 것이다.

 

그분이 우리에게 해결책을 주신 것이다.

 

 

 

 

 

 

 우리가 이 세상에 사는 동안 아픔이 있을 것이다.

 

 

 

 

세상 자체가 아픔의 순례이다.

 

그러나 아픔을 느끼며 기억해야 하는

 

가장 중요한 한가지는

 

하나님도 동일하게 그 아픔을 아시고

 

나의 아픔에 함께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 분은 그 아픔으로부터 영원히 자유롭게 하기위해

 

우리에게 생명과 자유인 그리스도를 주셨다.

 

 

 

 

 

 

우리를 향한 그 하나님의 마음이 느껴지는가?

 

세상을 위해 흘리신 그분의 피와 눈물과 가슴저리는 탄식이 느껴지는가?

 

 

 

 

 

세상은 아픔이다.

 

 

세상은 고통이다.

 

 

세상은 눈물이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우리의 눈물을 닦으시고

 

영원한 한번의 웃음을 주시기 위해

 

몸소 눈물과 고통과 아픔의 길을 가셔서

 

영원한 웃음을 준비하고 계신다.

 

 

 

 

 

하나님을 믿음으로 아픔을 이겨 있어야 것이다.

 

 

 

 

 

 

 

 

사람들이 아픔이 정말 두려운 것이 뭔지 아는가?

 

 

 

 

그것은 < 아픔의 이유를 알지 못하는 아픔 > 이다.

 

 

 

 

 

이것이 죄에 대한 아픔인지,

 

다른 이유가 있어서 오는 아픔인지 안다면 차라리 아픔이 덜하다.

 

 

 

 

아픔의 이유를 알면 이유를 해결하면 된다.

 

 

그런데 정작 아픔은 이유를 알지 못함으로 인한 아픔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생각한다.

 

 

 

'내가 하나님께 죄를 지어 심판을 받는 것은 아닌가?'

 

 

'내가 범죄하여 하나님이 나를 완전히 버린 것은 아닌가' 하는 불안함이다.

 

 

불안함은 아픔보다 더한 아픔으로 다시 찾아온다.

 

 

 

 

 

 

 

 

욥이 아픔을 당하면서

 

가장 힘들었던 것은 그의 아픔의 이유를 몰랐기 때문에 더했다.

 

 

 

 

 

친구들의 이야기와 다른 사람들의 조롱이 더욱 아팠던 것은

 

아픔의 이유를 명확하게 알지 못하는 아픔이다.

 

그래서 알지 못하는 이유로

 

주변의 어떤 말도

 

위로가 아니라 아픔이 되어 버리는 것이다.

 

 

 

 

 

 

그래서 제자들도 때부터 소경된 자를 보고 그것이 궁금하여

 

예수님께 이자의 아픔이 자기의 문제인가 아니면 아비의 문제인가를 묻는 것이다.

 

 

 

 

[요9:2] 제자들이 물어 가로되 랍비여 이 사람이 소경으로 난 것이 뉘 죄로 인함이오니이까

 

자기오니이까 그 부모오니이까

 

 

 

 

그래서 예수님이 뭐라고 하시는가?

 

아픔이 하나님의 하시는 일을 나타내고자 한다고 말씀 하셨다.

 

 

 

 

[요9:3]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이 사람이나 그 부모가 죄를 범한 것이 아니라

 

그에게서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나타내고자 하심이니라

 

 

 

 

 

 

하나님이 하시는 일이 뭔가?

 

 

 

우리의 아픔을 통해서 어떤 하나님의 일을 하려고 하시는가?

 

 

 

 

[요6:29]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하나님의 보내신 자를 믿는 것 하나님의 일이니라 하시니

 

 

 

 

 

그렇다.

 

 

 

아픔을 통해서 하고자 하는 일은 하나님의 일을 하고자 함이고

 

하나님의 일은 바로

 

예수그리스도를 믿게 하려는 것이다.

 

 

 

 

아픔의 이유가 많고

 

아픔의 사연이 많다.

 

 

 

 

그러나 하나님께 아픔을 주실 한가지 이유는

 

우리가 아픔을 통하여

 

예수그리스도를 더욱 믿게 되고

 

더욱 하나님께 가까이 나아가기 원하는 것이다.

 

 

 

 

 

 

 

 

욥이 많은 이야기로 그의 아픔의 이유를 말하지만

 

결국 하나님께서 욥에게 뭐라고 하시는가?

 

 

 

 

사람이 아무리 지식이 있다 해도 하나님의 깊은 뜻을 모른 다는 것이다.

 

 

 

 

자연 만물 속에 하나님의 능력을 부어 놓았는데

 

네가 그것을 어떻게 있느냐는 말이다.

 

 

 

하나님의 지혜의 책인 만물에서

 

그분의 깊은 지혜를 조금이라도 있느냐는 것이다.

 

 

 

 

 

사람은 하나님의 뜻들을 없다는 것으로 결론을 낸다.

 

깊고 오묘한 하나님의 섭리를 인간인 우리는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욥기의 결론은

 

하나님께서 다시 그에게 복을 주시고 회복시키심으로 결론을 맺는다.

 

 

 

 

 

 

 

아픔을 생각하며 기억해야 중요한 결론은

 

 

 

 

하나님은 어떤 경우에라도

 

하나님의 자녀가 영원한 아픔을 소유하길 원치 않으시고

 

그들의 아픔이 제한적이고

 

일시적이기를 원하신다.

 

 

 

아픔은 하나님의 아픔이고

 

하나님의 고난이다.

 

자녀의 아픔은 곧 아버지의 아픔이다.

 

그분을 결코 우리의 아픔이 길지 않기를 바라신다.

 

 

 

 

그것을 가장 아시는 분이 바로 예수님이다.

 

그리고 성령께서 말할 없는 탄식으로 함께 하신다.

 

 

 

모든 아픔의 이유는 그리스도를 더욱 믿게 하기 위함이고

 

하나님과 더욱 하나되는 자리로 나아감임을 기억해야 한다.

 

 

 

 

 

 

 

땅에서의 모든 아픔은 하나님을 알아가게 만든다.

 

하나님의 아픔을 같이 느끼고

 

아픔을 통해서 예수그리스도를 더욱 믿게 하기 위함이다.

 

 

 

왜냐하면

 

예수그리스도가 위로와 평강과 생명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아픔을 당할

 

혹은 아픔을 느끼는 사람을 위로할

 

어떤 마음과 위로의 말보다 중요한 말은

 

 

 

 

 

하나님께서는 아직 나를 사랑하시고

 

하나님이 함께하신다는 소망의 말씀으로 위로를 주어야 한다.

 

 

 

 

< 하나님은 당신을 변함없이 사랑하신다 >

 

말씀은 어떤 아픔가운데에서도 힘과 소망을 주는 위로의 말씀이 것이다.

 

 

 

 

 

 

 

 

하나님은 당신을 사랑하십니다.

 

 

 

 

Pastor Seo

Pastor Se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