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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희가 성령을 아느냐?

너희가 성령을 아느냐?

 

 

 

 

 

 

 

 

 

 

 

너희가 성령을 아느냐?

히브리서8:10

 

 

 

 

 

 

 

 

사람들의 기도제목을 보라.

 

말하는 기도 제목을 들어보라.

 

세상에서 어떻게 하는 것이다.

 

 

 

 

 

잘사는 ,

 

잘되는 ,

 

자녀, 남편, 아내, 직장, 사업!

 

그것이 중요하지 않은 것이 아니다.

 

 

 

 

그러나 기도의 본질,

 

성령께서 원하시는 본질의 기도가 아니면 광야생활의 반복이다.

 

이스라엘이 광야에서 구한 것은 먹고 마시는 것이 전부다.

 

 

 

다른 것은 없다.

 

우리가 이것을 구한다면 초보의 도를 따르는 것이다.

 

 

 

 

 

성령이 원하시는 본질을 구하라.

 

예수님께서 땅에 계시다 가시면서 우리에게 주신 유일한 것은 성령이다.

 

그것이 안에 충만하지 않다면 예수님이 오신 의미를 알지 못하는 것이다.

 

 

 

 

 

 

 

 

구약에서의

 

 

 

 

 

불은 성령의 상징이다.

 

 

 

구약에서 하나님은 가운데 임하신 하나님이다.

 

그런데 불의 목적은 기적이 아니다.

 

결국 마음을 돌이키며 생각을 바꾸기 위한 것이다.

 

 

 

 

 

아브라함은 불이 지나가는 가운데 믿음의 언약을 맺었다.

 

모세는 떨기 나무에서 하나님을 만나 백성을 출애굽 하는 사람이 되었다. 

 

기드온은 불이 임하여 미디안을 치는 증표를 얻었다.

 

반석에서 불이 나와 증거를 삼았다.

 

 

 

 

 

 

 

구약에서의 불은 하나님의 임재의 상징이다.

 

모든 ,

 

모든 죄를 사르시는 하나님의 불이다.

 

이것이 신약에서 성령의 역사, 성령의 임재를 상징한다.

 

 

 

 

 

구약에서 반석에서 불이 나오는 사건이 있는가?

 

그리스도 위에 임한 성령의 불을 상징하는 사건들이다.

 

 

 

 

 

구약의 제사에서 제물을 불로 태우는가?

 

드려진 제물의 마지막은 불로 태워 연기를 내고

 

향기를 내야 온전한 제사가 되는 것이다.

 

 

 

 

불이 났다는 것은 제물을 하나님이 받으셨다는 상징이다.

 

 

 

하나님의 역사의 완성은 ,

 

성령의 임재가 나타날 완성이 되는 것이다.

 

 

 

 

 

 

 

신약에서의 성령

 

 

예수님께서 땅에 오셨는가?

 

[눅12:49]내가 불을 땅에 던지러 왔노니 이 불이 이미 붙었으면 내가 무엇을 원하리요

 

 

 

 

 

 

구약에서 그렇게 상징으로 말하시던 , 성령을 주기 위해서 오셨다.

 

십자가 죽음 후에 부활하시고

 

땅에 계시면 되지 하늘로 가셨는가?

 

 

 

 

 

 

간단하다.

 

, 성령이 오셔야 하기 때문이다.

 

 

 

 

 

예수님이 가야 보혜사가 오신다.

 

 

 

 

[16:7]내가 떠나가는 것이 너희에게 유익이라 내가 떠나가지 아니하면

 

보혜사가 너희에게로 오시지 아니할 것이요

 

 

 

 

 

몸을 살리는 것은 육이요

 

영을 살리는 것은 영이다.

 

 

[요3:5]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

 

 

 

 

 

 

사람이 하나님나라에 들어가는 것은 물로 육이 살고,

 

성령으로 영이 사는 것이다.

 

 

 

 

 

 

 

 

복음의 내용이  천국 가는 것이 다인가?

 

 

 

 

인류가 잃어 버린 것이 무엇인가?

 

하나님은 끊임 없이 인간에게 찾아오시고

 

아들을 보내시고 죽으시고 부활하시고

 

성령을 보내셔서 우리와 함께 하시는가?

 

 

 

 

 

오직 하나다.

 

복음이다.

 

복음이 무엇인가?

 

 

 

 

 

복음은 죄를 사하는 것이 복음이 아니다.

 

죄는 예수님께서도 사역하실 사하셨다.

 

그럼 뭔가?

 

 

 

 

복음은 영원히 사는 길이 있다는 것이 복음이다.

 

영원한 생명을 받는 것이 복음이다.

 

 

 

 

아담이 잃은 것은 죄가 들어온 것이 초점이 아니라

 

영원한 생명을 가지지 못한 ,

 

영생을 잃어 버린 것이 그것이다.

 

 

 

 

잃어버린 영생을 찾는 ,

 

,

 

소식이 복음이다.

 

 

 

 

영원한 생명은 그리스도가 내어놓은 길을 가는 것인데

 

길은 성령이 아니면 없고

 

성령이 아니면 죄를 사할 없다.

 

죄를 사하지 못하면 거룩할 없고

 

거룩하지 않으면 하늘의 중보되신 그리스도와 연합할 없어

 

길을 가지 못하여

 

영원한 생명을 얻지 못하는 것이다.

 

 

 

 

 

성령은 영생을 주시는 보혜사이다.

 

 

 

 

 

그리스도가 내신 영생의 길을

 

있는 자격을 가지게 하시고

 

나를 보게 하시고

 

안에 잡히는 영생의 믿음을 얻게 하시는 것이다.

 

 

 

 

 

성령을 단지 병만 고치고,

 

기적을 베푸는 분으로 인식하는 것은 성령의 본질을 이해하고 있는 것이다.

 

성령의 목적은 영원한 생명,

 

영원한 기업을 누리게 하기 위함이다.

 

 

 

 

 

세상의 영과 싸우는가?

 

그들은 처음부터 하나님의 자녀가 ,

 

영생의 길을 가지 못하게 만드는 자들이다.

 

 

 

 

 

그리스도가 열어놓은 길을

 

지금도 가지 못하게 막고 서서

 

훼방하는 영이다.

 

 

 

 

 

예수를 믿었는데 영생이 믿어지지 않고

 

부활의 소망이 없다면

 

아직 성령이 안에 없는 것으로 생각해봐야 한다.

 

 

 

 

 

그리스도는 죄를 사함이 최종 목적이 아니요

 

죄를 사하므로 영원한 생명을 주시기 위함이다.

 

 

 

 

 

죄를 사함받았다고 기뻐하지 말고

 

죄를 사함받으므로 영생이 안에 있음을 기뻐해야 한다.

 

 

 

 

 

 

오순절 다락방에 성령이 임하셨다.

 

그들 위에 불이 임하였다.

 

 

그리고 방언을 말하기 시작했는데 무슨 말을 했는가?

 

 

하나님의 일을 말하였다.

 

 

 

행2:11 우리가 다 우리의 각 언어로 하나님의 큰 일을 말함을 듣는도다 하고

 

 

 

 

 

방언의 목적은 하나님의 일을 말하기 위함이다.

 

 

그럼 그들이 말한 하나님의 일은 뭔가?

 

 

내용은 바로 이어 베드로의 설교 속에 있다.

 

 

 

요약하면 구약에서 예언하던 일이 일어났다.

 

성령의 역사를 말한다.

 

 

 

 

 

그리고 예수님이 사망을 이기셨다.

 

예수님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는다.

 

그리고 다윗의 이야기를 인용하며 음부가 이기지 못하고

 

주께서 생명의 길을 여셨다.

 

 

 

 

그리고 결론을 뭐라고 내는가?

 

 

 

그리스도의 부활하심으로 음부가 이기지 못하고

 

너희가 죽인 예수는 하나님이 그리스도가 되게 하셨다 라고 말한다.

 

 

 

 

 

 

부활이다.

 

영생이다.

 

죽지 않음이다.

 

 

 

 

 

일을 위해 그리스도가 오셨고

 

죽으셨고

 

부활하시고

 

하나님의 우편에 앉으신 것이다.

 

 

 

 

그리고는 세례를 받고 성령을 받으라고 베드로는 설교한다.

 

 

 

 

?

 

 

 

그리스도가 열어놓은 영생, 부활을

 

믿는 자에게 주시기 위해서이다.

 

 

 

이것이 복음이다.

 

 

 

천국 가는 것이라는 표현은 명확하게 복음을 설명하지 못한다.

 

영생의

 

부활의

 

영원한 생명을 위해서라고 해야 한다.

 

 

 

 

 

잃어버린 것을 찾은 것이 복음이다.

 

잃어버린 영원한 생명을 그리스도로 다시 찾은 것이 복음인 것이다.

 

 

 

 

잃어버린 것을 찾기 위해 년을 하나님과 그리스도는

 

없는 기적을 통해 보여주셨고

 

예표로 말씀하셨고 마침내 이루셨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루신 길로

 

그분의 사랑하는 자녀들을 이끌어 오는 일이 남았기에

 

보혜사 성령을 땅에 보내셔서

 

구약의 ,

 

불의 상징인 성령의 사역을 통해

 

하나님의 남은 자들을 부르시는 것이다.

 

 

 

 

 

성령이 아니면

 

그리스도로 해결 되어진 죄를

 

내가 깨닫지도 못하고

 

믿음이 오지 않는다.

 

 

 

 

 

하나님께서 가난한 자를 그렇게 불쌍히 여기시는가?

 

고아와 과부를 긍휼히 보시는가?

 

 

 

 

원래 영원한 생명가운데 풍성한 삶을 살아야 그분의 백성들이

 

가난과 병과 아픔가운데 사는 것이 너무 가슴 아픈 것이다.

 

 

 

잃어버린 생명의 풍성함도 마음이 아픈데

 

더욱 생명의 풍성함이 없는 세상의 영속에서

 

유리하고 방황하는 그들이 더욱 가슴 아픈 것이다.

 

 

 

그분의 목적은 성령을 통하여 영원한 생명을 주심이 목적이다.

 

 

 

 

 

 

천년 동안 흩어져있던 언어까지 하나로 통하는 역사를 주셨는가?

 

 하나님의 ,

 

복음을 세상에 알리기 위함이다.

 

그것이 이유이다.

 

 

 

 

기적, 놀라운 성령의 은혜를 주시는가?

 

복음,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하고 믿고 따르기 위함이다.

 

그리고 부활과 영생과 하늘 나라가 있음을 믿고 소망하기 위해서 이다.

 

 

 

 

 

 

성령은 어떻게 일하시는가?

 

 

 

 

바벨탑을 쌓는 사람들을 흩으셨는가?

 

하나님은 물로 심판 하셨는가?

 

소돔과 고모라를 불로 심판하셨는가?

 

 

 

 

 

그들의 생각이 악하여 그렇다.

 

악이 관영 하여,

 

세상이 악한 생각, 악한 마음으로 가득 차서 심판하셨다.

 

 

 

[창6:5]여호와께서 사람의 죄악이 세상에 관영함과

 

그 마음의 생각의 모든 계획이 항상 악할 뿐임을 보시고

 

 

 

 

 

창세로부터 사람은 마음과 생각이 악으로 가득하다.

 

예수님도 악한 생각과 마음을 꾸짖으셨다.

 

[마9:4]예수께서 그 생각을 아시고 가라사대 너희가 어찌하여 마음에 악한 생각을 하느냐

 

 

 

 

 

마귀가 일할 때는 먼저 생각과 마음에 악을 집어 넣는다.

 

[요13:2]마귀가 벌써 시몬의 아들 가룟 유다의 마음에 예수를 팔려는 생각을 넣었더니

 

 

 

예수님은 아신다 우리의 속이 악함을.

 

 

[막7:21]속에서 곧 사람의 마음에서 나오는 것은 악한 생각 곧 음란과 도적질과 살인과

 

 

 

 

마귀는 우리의 마음과 생각을 오염시켰다.

 

마음과 생각이 타락되어 생각과 마음에 악이 가득하다.

 

속에 악이 가득하니 열매도 악이다.

 

 

 

 

 

하나님은 근본치료를 원하셔서

 

구약의 모든 제사의 예를 폐하고 오직 제물로 영원한 중보의 길을 내셨다.

 

 

 

 

그리고 우리 사람에게도 길을 있는 어떤 것이 필요하다.

 

 

 

길을 낸다고 길을 가는 것은 아니다.

 

길을 가게 해야 한다.

 

길을 가게 하는 것이 바로 성령이다.

 

 

 

 

 

 

 

성령은 어떻게 역사하시는가?

 

 

 

 

성령은 마음과 생각으로 역사하신다

 

 

 

 

바로 생각과 마음을 완전히 바꾸는 것이다.

 

 

성령을 통하여 마음과 생각을 완전히 갈아 엎는 것이다.

 

 

 

 

마음과 생각이 바뀌지 않으면 길도 소용이 없다.

 

마음이 열리고 생각이 변해야 길을 보고 믿고 있다.

 

 

 

 

 

먹는것, 마시는 것만 구하는 자들에게 필요한 것은 광야이다.

 

광야는 하나님을 만나게 하는 지름길이다.

 

광야는 성령을 만나게 하는 통로이다.

 

성령이 역사하시게 하는 모판이다.

 

 

 

 

 

광야를 통해 이스라엘이 그들의 생각이 변하고 마음이 변했다.

 

 

 

 

 

모세를 향하여 돌을 던지던 사람들이 광야를 지나자

 

하나같이 여호수아를 목숨처럼 여기고 따랐다.

 

 

 

 

목이 말라 죽겠다고 욕을 하던 사람들이

 

목숨걸 다른 사람보다 앞장서서 섬기겠다고 마음이 변화되었다.

 

 

 

정탐꾼을 보내도 된다고 하던 사람들이

 

사람만 보내도 된다고 생각이 변한 사람이 되었다.

 

 

 

황금송아지를 만들어 섬기던 자들이 변하여

 

오직 여호와의 말씀만을 섬기고 사랑하는 사람이 되었다.

 

 

 

광야는 생각이 변하고 마음이 낮아지게 만든다.

 

 

 

 

마찬가지로 성령은 광야와 같다.

 

우리의 마음과 생각을 일순간 바꾸시기도 하고 시간을 통하여 바뀌시기도 한다.

 

 

 

 

절망의 문턱,

 

죽음의 골짜기를 지나본 사람이

 

하나님을 향하여 목숨을 간구를 한다.

 

생명은 세상에 소망이 없음을 성령이 일하신다.

 

하나님이 일하신다.

 

 

 

 

 

 

 

구약은 법을 돌비에 새겼다.

 

십계명 율법은 돌판, 돌비에 새겨 그들로 따르고 지키도록 했다.

 

 

 

 

 

그러나 그들은 돌비에 새긴 것으로 마음과 생각이 변하지 않았다.

 

따르지 않았다.

 

 

 

[히8:9]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던 날에 저희와 세운 언약과 같지 아니하도다

 

저희는 내 언약 안에 머물러 있지 아니하므로 내가 저희를 돌아보지 아니하였노라

 

 

 

 

 

 

 

 

예수님이 오시기전 세례요한이 먼저 것을 기억해야 한다.

 

길을 내야 한다.

 

 

 

 

길을 낸다는 것은 회개하는 ,

 

땅에 소망이 없다는 것을 아는 것이다.

 

생각과 마음이 낮아지게 만드는 일을 성령은 하신다.

 

 

 

 

환경을 통해서

 

말씀을 통해서

 

사람을 통해서 성령이 일하시기 좋은 토양이 되도록 하셔서

 

그분은

 

생각과 마음의 길을 내신다.

 

 

 

 

 

 

 

 

구약은 아무리 율법으로 축복과 저주를 말해도

 

본성이 죄인 사람은 눈에 보이지 않으면 따르지 않는다.

 

 

 

그래서 하나님은 이스라엘과 언약을 맺든 언약을 맺고

 

십계명을 주시듯 돌비와 같은 비를 주시는데,

 

 

 

그것이 완전한 돌비, 완전한 언약을 맺음이다.

 

 

 

성령이 일을 하신다.

 

어디에 돌비를 새기나?

 

어디에 언약의 확증을 주시나?

 

 

 

 

마음이다.

 

생각이다.

 

마음에 사라지지 않는 언약 심비에 새기셔서

 

영원히 없어지지 않는 언약을 새기신 것이다.

 

 

 

 

성령이 일을 하시고

 

마음과 생각에 확증 하신다.

 

 

 

[히8:10] 또 주께서 가라사대 그 날 후에 내가 이스라엘 집으로 세울 언약이 이것이니

 

내 법을 저희 생각에 두고 저희 마음에 이것을 기록하리라

 

나는 저희에게 하나님이 되고 저희는 내게 백성이 되리라

 

 

 

 

 

 

 

 

 

나에게는 그런 경험이 없나?

 

 

 

 

어떤 이는 나는 그런 경험이 없다 한다.

 

폭발적인 어떤 것을 보지 못했다 한다.

 

 

 

걱정 마라.

 

 

 

성령이 파워풀 하게 임함을 경험하지 못했다 해도

 

마음과 생각이 하나님으로 채워지고

 

하나님에 대해서 알아가며

 

죄와 말씀과 의에 대하여 자각증상이 생긴다면

 

그것이 성령께서 역사하시는 증거라 보면 된다.

 

 

 

 

 

성령의 현상은 파워이기도 하고,

 

고침이기도 하고,

 

조용한 가운데 내적 성숙인 변화이기도 하며

 

어떤 강력한 임재기도 하다.

 

 

 

 

그러나 성령의 목적은

 

하나님의 구원과 영원한 생명에 대해서 증거하시기에

 

구원의 확증과 생명으로 미래에 대한 소망이 있다면

 

성령의 임재가 있음으로 안심해도 것이다.

 

 

 

 

다만,

 

그분은 내가 아는 ,

 

나만 인식하는 것으로 만족하는 것이 아니라

 

나로 인해

 

복음, 영원한 생명을 증거하며

 

하나님 나라가 증거되는 것이 목적이기에

 

성령의 충만을 통해서 강력하게 복음이 증거되기를 사모해야 한다.

 

 

 

 

 

구약이나 신약의 모든 기적을 보여준 곳에서 나타나는 특징은

 

기적을 통해 하나님의 영광이 드러나고

 

그분의 이름이 높여짐을 기억해야 한다.

 

 

 

 

 

하나님은 우리의 모든 성령의 현상,

 

신앙의 모습을 통해서

 

그분의 이름이 먼저

 

나에게 높여지고

 

나로 인해 사람들에게 높여지기를 원하심이 목적이다.

 

 

 

 

시간 동안 차근히 성령의 인도하심이 있는 것은

 

일반적인 성령의 일하심이지만,

 

강력의 복음의 증거와

 

하나님 나라를 드러내야 필요가 있을

 

그분은 개인과 공동체에

 

성령의 충만, 폭발적 파워를 통해서

 

일하신다.

 

 

 

 

그래서 성령의 충만을 받는 것이다.

 

 

 

 

 

 

 

 

 

성령이 언제 임하시는가?

 

 

 

 

성령은 회개할 오기도 하고

 

[행2:38]베드로가 가로되 너희가 회개하여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 사함을 얻으라 그리하면 성령을 선물로 받으리니

 

 

 

말씀을 들을 오기도 하고

 

[행10:44] 베드로가 이 말 할 때에 성령이 말씀 듣는 모든 사람에게 내려오시니

 

 

 

 

기도할 오기도 한다.

 

[행8:15]그들이 내려가서 저희를 위하여 성령 받기를 기도하니

 

 

 

특히 성령의 충만을 받은 사람이 기도해 임하는 경우가 많다.

 

 

[행8:17] 이에 두 사도가 저희에게 안수하매 성령을 받는지라

 

[행19:6]바울이 그들에게 안수하매 성령이 그들에게 임하시므로 방언도 하고 예언도 하니

 

 

 

 

 

 

 

성령의 충만한 임재는

 

회개와

 

말씀과

 

기도와

 

성령 받은 자의 간구를 통해서 임하게 된다.

 

 

 

 

회개는 예수를 죽인 우리의 죄를 하나님께 자복하는 것이다.

 

말씀은 하나님의 구원의 말씀 , 죄와 예수그리스도로 말미암는 의와 심판과 부활에 대한 것이다.

 

 

 

 

기도는 성령을 간구하며 구하며 찾고 두드리는 직접적인 기도가 성령의 임함을 체험하게 하며

 

특히 성령의 임재를 체험한 사람이 뜨겁게 중보 다시 사람에게 임하는 것이다.

 

중보에 대해서는 말이 많으나 각자가 찾아야 한다.

 

 

 

 

 

회개는 도덕적인 죄가 아니다. 하나님에 대하여 근본적인 ,

 

예수님을 십자가에 죽일 밖에 없었던 인간의 죄가 포함되며 물론 개인의 죄도 포함된다.

 

 

 

 

말씀은 도덕적이며 윤리적이며 교훈적 말씀으로는 절대 성령의 임함을 경험할 없다.

 

말씀가운데 죄와 심판과 의와 부활에 대한 것이 반드시 포함되어야 하며

 

그리스도 중심적 말씀이 아니면 성령의 역사는 어렵다.

 

 

 

 

물론 교훈적 말씀을 통해 마음에 위로와 힘은 있지만,

 

생명의 역사는 나타나지 않는다.

 

 

기도는 사함을 받는 회개가 있어야 하며 성령 받기를 간절히 기도하면 성령의 역사가 있다.

 

 

 

 

 

 

이렇든 성령의 역사는 회개와 기도와 말씀과 중보의 방법을 통해서 온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 인간의 생각에 매이시는 분이 아니시니

 

방법과 과정을 우리가 이해할 없다.

 

 

 

 

중요한 것은 반드시 성령의 임재를 경험해야 하며

 

성령이 아니고는 그리스도를 주라 없고

 

그것으로 만족 해서는 된다는 것이다.

 

 

 

 

성령의 능력이 아니고는 세상의 악한 영과 싸울 없기에

 

하나님의 전쟁을 위해서라도 반드시 구하고 얻어야 하는 것이

 

성령의 능력, 성령의 충만이다.

 

 

 

 

 

 

 

 

 

성령의 충만이란 무엇인가?

 

 

 

성령의 충만은?

 

물론 인격적 충만과 능력의 충만이 있다.

 

그러나 충만의 본질은

 

하나님을 높임이다.

 

 

 

 

부활에 대한,

 

영생에 대한 충만한 확신이다.

 

 

 

 

성령은 부활의 영이다.

 

부활이 있어야 오는 영이 성령이다.

 

부활의 소망을 부어 넣어주는 영이다.

 

 

 

 

물론 이것이 오기 전에

 

죄에 대한 각성과 회개가 일어난다.

 

그리고 사람을 구원하는 일에 쓰임 받게 된다.

 

 

 

 

다른 기적, 은사 능력 모든 것이 성령의 충만으로 오기도 하지만,

 

결국 가장 중요한 것은

 

잃어버린 영혼을 구원함으로 나타난다.

 

 

 

[눅1:15-16] 이는 저가 주 앞에 큰 자가 되며 포도주나 소주를 마시지 아니하며 모태로부터

 

성령의 충만함을 입어 이스라엘 자손을 주 곧 저희 하나님께로 많이 돌아오게 하겠음이니라

 

 

 

세례요한의 목적은 영혼들이 하나님께 돌아오는 목적으로 것이다.

 

 

 

[행9:17]아나니아가 떠나 그 집에 들어가서 그에게 안수하여 가로되 형제 사울아 주 곧 네가 오는 길에서

 

나타나시던 예수께서 나를 보내어 너로 다시 보게 하시고 성령으로 충만하게 하신다 하니

 

 

 

사도바울도 안수하니 눈에 비늘이 벗어지고 성령의 충만을 받는다.

 

사도바울은 우리가 익히 하는 이방을 위한 그릇으로 쓰임 받는다.

 

 

 

 

 

 

성령의 충만의 목적은

 

영혼이 돌아오고

 

사람이 하나님께 세워지고

 

하나님과 죄와 영생이 명확하게 인식이 되면서

 

사람들이 주께 돌아오는 것이다.

 

 

 

 

 

성령은

 

변화된 나를 통해서,

 

안의 성령의 능력을 통해서

 

하나님 나라

 

, 사람을 세우시는 것이다.

 

 

 

 

 

 

 

 

 

 

 

 

 

성령 충만의 특징이 무엇인가?

 

 

 

 

성령은 말하게 하는 영이다.

 

 

 

 

베드로가,

 

스데반이,

 

모든 제자들이 언제 담대하게 복음을 말하였는가?

 

성령이 임할 때이다.

 

성령은 본질을 보게 한다.

 

성령은 말할 것을 말하게 한다.

 

성령은 말이 무엇인지 명확하게 알게 한다.

 

 

 

 

[요14:26]보혜사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시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시리라

 

 

 

 

 

 

 

성령은 그리스도를 증거하는 영이다.

 

 

 

 

 

[요15:26]내가 아버지께로서 너희에게 보낼 보혜사 곧 아버지께로서 나오시는

 

 진리의 성령이 오실 때에 그가 나를 증거하실 것이요

 

 

 

 

[행4:31] 빌기를 다하매 모인 곳이 진동하더니 무리가 다 성령이 충만하여 담대히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온전히 전하는 것이 성령충만의 목적이다.

 

말씀을 전하지 않은 기적, 이적, 표적은 거짓이다.

 

 

 

그리스도가 드러나지 않고,

 

하나님의 나라가 증거되지 않는 뜨거움은 가짜다.

 

 

 

 

성령은 말씀을 충만하게 하시고,

 

말씀을 통해 그리스도의 하신 일과 하실 ,

 

그리고 하나님 나라의 확실성을 증거하게 하셔서

 

사람들로 복음 안에 하나되게 하신다.

 

 

 

 

성령이 충만한 곳에는 하나됨의 축복이 따라온다.

 

 

[행4:32] 믿는 무리가 한 마음과 한 뜻이 되어

 

 

 

 

성령이 임하면 명확하게 예수님이 안에 각인되며

 

그분의 속죄와 용서와 생명을 느끼게 된다.

 

 

 

그래서 성령이 충만한 곳에는 사람이 모이게 되어있다.

 

 

성령이 충만한데 사람을 싫어하고

 

사람을 분리하며 관계를 깨는 일은 절대 없다.

 

아니 사람들을 하나되게 하고 관계를 회복하는 역사가 나타난다.

 

 

 

 

 

바벨탑 사건을 아는가?

 

하나님을 대적하다 언어를 혼잡케 하셨다.

 

흩으신 것이다.

 

성령이 임하면 방언을 말하는데 다들 알아듣고 하나님의 일을 듣게 되었다 했다.

 

성령의 역사는 흩어진 인류를 하나로 묶는 영이다.

 

흩어진 인류가 하나되고

 

흩어진 교회가 회복되고

 

깨어진 관계가 회복되는 은혜가 있다.

 

 

 

 

 

사도행전에서 성령이 충만한 역사의 가장 중요한 특징은 그리스도를 증거한 것이고

 

증거로 마음을 가지게 되고

 

결과로 사람이 모이게 되는 것이다.

 

 

 

하나되지도 않았는데 교회가 부흥한다?

 

뭔가 이상한 교회다.

 

마음이 아니면 교회가 부흥하고 성장하는 것은 어렵다.

 

 

 

그리스도를 증거하라.

 

그러면 성령이 함께 일하신다.

 

 

그리스도와 성령은 함께 움직인다.

 

 

 

 

 

 

 

 

 

성령은 영원을 사모하게 하며 부활을 소망하게 한다.

 

 

 

 

 

[벧전1:3]찬송하리로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 하나님이 그 많으신 긍휼대로

 

예수 그리스도의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우리를 거듭나게 하사 산 소망이 있게 하시며

 

 

 

 

소망이 없는 복음은 반쪽이다.

 

복음은 소망이 맘에 있게 한다.

 

 

 

 

 

신약에서 나오는 소망 이라는 단어는 거의 모든 것이 부활과 관련된 내용이다.

 

 

소망은 영원한 나라에 대한 내용이다.

 

 

 

 

 

성령은 부활의 영이라 했다.

 

그리스도의 부활로 우리도 부활의 길을 여셨다.

 

이것을 증거하는 것이 최종 결론이다.

 

그래서 우리에게 땅에서 환란이나 핍박을 받아도 소망이 있는 것은

 

하늘 나라와 부활 영원한 생명을 약속 받았기에

 

소망으로 그것을 기다린 다는 것이다.

 

 

 

 

[롬15:13]소망의 하나님이 모든 기쁨과 평강을 믿음 안에서 너희에게 충만케 하사

 

성령의 능력으로 소망이 넘치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성령이 안에 있는데 영원한 나라에 대한 사모함이 없고

 

부활에 대한 소망이 없다면

 

그건 가짜다.

 

 

 

 

 

믿음은 죄에 대한 영원한 해결과 영원한 나라에 대한 확신과

 

부활에 대한 믿음이 포함되는 것이 믿음이다.

 

 

 

 

모든 것을 한마디로 예수그리스도이다.

 

그리스도 안에는 하나님께 나아감과 거룩한 영적 가나안에 들어감과

 

나라에서 부활하게 되는 것을 믿는 믿음이 있다.

 

내가 믿음을 가지는 것이 예수를 믿음이다.

 

 

 

 

땅만 본다면 아직 복음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복음은 성령충만으로 생명과 하늘나라와 영육간의 부활을 소망한다는 믿음이다.

 

 

 

 

 

완전하며 거룩한 복음을 복음으로 만들지 마라.

 

거룩한 언약을 구약의 완전하지 못한 언약으로 여기지 말라.

 

 

 

 

 

성령은 예수가 내신 영원한 길의 마지막인 영원을 사모하며 부활을 소망하게 한다.

 

 

 

 

 

 

 

 

성령은 우리를 도우시는 영이다.

 

 

 

 

성령의 가장 강력한 충만은 우리의 약함을 도우심으로 나타난다.

 

 

 

롬8:26 이와 같이 성령도 우리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우리가 마땅히 빌 바를 알지 못하나

 

오직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느니라

 

8:27 마음을 감찰하시는 이가 성령의 생각을 아시나니

 

이는 성령이 하나님의 뜻대로 성도를 위하여 간구하심이니라

 

 

 

 

 

성령의 충만이 어떤 강력한 파워를 느껴야 성령의 충만이 아니다.

 

성령의 임무는 우리의 약함을 도우셔서 간구하시고 도우셔서

 

우리가 하나님의 사람으로 세워지도록 하신다.

 

그래서,

 

약할 여러 모양으로 위로하시고 환경을 인도하시고 하나님께도 인도하심이

 

성령충만의 강력한 증거이다.

 

 

말씀을 통해서,

 

찬양을 통해서,

 

기도를 통해서,

 

주변의 사람들 통해서 위로하게 하시고

 

격려하게 하시는 모든 것은 성령의 강력한 충만인 것을 잊어서는 된다.

 

 

 

 

 

 

예수님도 우리를 위해 간구 하신다 했다.

 

 

 

[롬8:34]누가 정죄하리요 죽으실 뿐 아니라 다시 살아나신 이는 그리스도 예수시니

 

그는 하나님 우편에 계신 자요 우리를 위하여 간구하시는 자시니라

 

 

[히2:18]자기가 시험을 받아 고난을 당하셨은즉 시험받는 자들을 능히 도우시느니라

 

 

 

 

하나님은 예수님이 마음을 알고 성령님은 예수님의 마음을 안다.

 

같은 마음이다.

 

 

예수님께서 간구 하시니 성령도 함께 우리를 도우시고 간구하시므로

 

우리는 담대하므로 그분께 나아가야 한다.

 

 

그분께 나아갈 성령은 말할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해 간구하시고

 

마음에 평강에 평강으로 인도 하신다.

 

 

[롬14:17]하나님의 나라는 먹는 것과 마시는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 안에서 의와 평강과 희락이라

 

 

 

 

성령이 주시는 것은 능력뿐 아니라

 

우리 안에 평강과 희락과 의를 주신다.

 

이것이 안에 있다면 성령은 안에 충만한 것이다.

 

 

 

 

 

 

 

 

 

지금은 성령의 충만이 없나?

 

 

 

이것은 성령이 나라와 민족, 시대와 시대에 특별하게 일하실 때가 있다.

 

사도행전은 하나님 나라가 급격하게 확장되게 하기 위해 하나님께서 특별하게

 

수많은 기적을 베푸신 기록들이다.

 

교회나 나라에 교회가 복음으로 들어갈 성령의 강력한 역사가 있다.

 

그래서 놀라운 기적들이 일어나게 된다.

 

중국이 그렇고,

 

북한이 그렇고

 

오지의 선교사들이 일하는 곳이 그렇다.

 

 

물론 교회가 세워지는 그곳에 성령의 강력한 기름부음이 있다.

 

복음이 전파되며 하나님의 말씀이 전파되며 그리스도가 증거되게 하기 위해서 이다.

 

 

 

 

하지만, 이미 복음이 보편화된 교회나 나라나 공동체에는

 

성령은 다르게 역사한다.

 

한국교회는 복음의 보편성이 편만해 있다.

 

 

 

 

개그콘서트에서 권사님 장로님을 흉내 내서 노래하는 코너에서 사람들이 웃고

 

즐길 만큼 복음은 편제해있다.

 

이런 곳에서는 특별한 역사가 아니면

 

특별히 말씀과 기도의 인도하심이 있는 곳이 아니면

 

눈이 띄는 성령의 폭발적 은혜는 증거들은 찾아보기 힘들다.

 

 

 

 

평양 부흥 100주년을 맞아 한국교회가 국가적, 민족으로 부흥을 갈망하며

 

수많은 이벤트를 열었는데 의도는 좋기는 하지만

 

이것은 성령을 잘못 이해하고 있는 것에서 오는 일이다.

 

 

 

 

 

이미 복음이 편만한 곳에서,

 

더구나 회개도,

 

말씀의 충만도,

 

그리스도의 영으로 충만하지도 않는 곳에서는 성령은 절대 역사하지 않으신다.

 

회개를 하든지

 

성령으로 인한 말씀의 충만이 있든지 해야 한다.

 

 

 

 

 

그러나 개인적, 교회적 성령의 일하심이 역동적으로 나타나는 경우는 너무 많다.

 

민족적, 나라적으로 부흥, 성령의 충만이 아니지만

 

교회와 개인은 얼마든지 복음의 역동성을 위해

 

그분은 일하시고 역사해 가심을 기억하고

 

개인의 삶과 교회에 성령의 충만으로

 

그리스도가 증거되고 사람이 세워지는 역사가 있음을 소망해야 한다.

 

성령의 충만한 역사를 기도하고 소망해야 한다.

 

 

 

 

 

 

 

그럼 일반적인 상황에서

 

성령은 우리에게 어떻게 역사하시는가?

 

 

 

 

우리가 성령의 충만을 간구하고 소망해야 한다.

 

그래서 하나님의 복음, 그리스도가 드러나고 구원받는 사람의 수가 더해지기를 소망해야 한다.

 

그러나 평소에 성령은 어떻게 역사하시는가?

 

 

 

 

 

성령이 어떻게 일하시는가에서도 말했지만

 

성령은 마음과 생각으로 역사하신다.

 

 

 

그리스도를 믿는 모든 자에게 성령이 임재한다.

 

우리가 성령의 전이라 했다.

 

 

하나님만 거하시는 성전을 구약에서 그렇게 소중히 여겼는데

 

신약에서 성전이 우리가 되고

 

우리 안에 생각과 마음에 거하셔서

 

마음과 생각을 주장 하신 다는 것이다.

 

 

 

 

 

[빌4:7]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

 

 

 

말씀은 빌립보서의 유명한 말씀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고 항상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라는 말씀 뒤에 나오는 구절이다.

 

 

 

그렇게 기도하고 간구하고 하나님께 아뢰었는데

 

하나님이 주시는 응답이 뭐라고?

 

 

 

 

마음과 생각을 지키신단다.

 

 

 

 

 

상식적으로 기도하고 간구하면 우리환경을 바꾸신다거나

 

기도 응답을 주신다거나 해야하는데

 

마음과 생각을 지키신다는 것이다.

 

 

 

 

 

?

 

 

 

 

성령이 거하시며 성령의 일하시는 장소가 마음과 생각이다.

 

 

 

 

 

마음과 생각이 잘못되면 사람은 악해진다.

 

사람의 뿌리가 마음과 생각이다.

 

마음과 생각을 지키지 않으면 우리 자신이 무너진다.

 

 

 

 

하나님은 사람의 악한 생각때문에 세상을 심판하셨다.

 

예수님은 악한 생각과 선한 생각이 그 사람의 나무라 했다.

 

나무에 좋은 혹은 악한 열매를 맺는다 했다.

 

생각과 마음을 말한다.

 

 

 

 

 

기적은,

 

응답은 마음과 생각을 지키는 수단이다.

 

능력이 나타나고

 

초자연적 은혜를 경험해도

 

마음과 생각을 지키면

 

사람은 끝이다.

 

 

 

 

역사는 내마음에 확증으로 온다.

 

 

 

 

기도 응답을 어떻게 받는가?

 

마음이다.

 

응답이 오면 마음에 확증이 온다.

 

 

미래를 위해 기도할 때,

 

어떤 문제를 위해 기도할 때 어떻게 하나님의 응답임을 확신 하는가?

 

마음으로 온다.

 

생각이 분명하고 선명한 확신이 온다.

 

평안이 오고

 

하나로 집중되며

 

하나님과 나만 아는 마음 상태가 된다.

 

 

 

 

 

 

그래서 하나님은 어떤 기적을 주시기 전에,

 

혹은 어떤 축복으로 인도하시기 전에 마음을 주신다.

 

문제는 내 마음과 생각이 무시하고 외면해 버리면

 

하나님의 그 축복은 온데간데 없다.

 

 

성령은 마음과 생각에 거주하시고

 

그분이 움직이면

 

마음과 생각의 작은 조각들이 먼저 느껴지고

 

밝고 긍정적인 미래의 파편들이 찾아온다.

 

 

우리는 우리가 일하고 열심히 해서 어떤 일이 이루어 지는 것이 아니다.

 

다만

 

성령이 주신 그 마음과 생각의 약속을 아멘으로 인정할 때

 

하나님은 그 아멘의 믿음을 인정하사

 

길을 여시는 것이다.

 

 

 

홍해가 갈라지고

 

요단강이 멈춘 것을 늘 기억해야한다.

 

우리의 노력으로 바다를 연것이 아니다.

 

우리의 힘으로 요단강을 멈춘 것이 아니다.

 

단지,

 

마음이 오고,

 

생각이 오면 (말씀은 마음과 생각으로 온다)

 

그냥 부정이 아닌

 

긍정,

 

즉, 하나님이 하실 것이라는 분명한 확신으로 인정하기만 하면 역사는 일어난다.

 

그 인정이 바로 믿음이다.

 

 

 

생각과 마음은 성령의 일하시는 일터이다.

 

 

 

 

 

 

 

 

 

 

[히4:12]하나님의 말씀은 살았고 운동력이 있어 죄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감찰하나니

 

 

 

 

 

말씀도 유명한 히브리서 말씀이다.

 

 

 

 

하나님의 말씀이 그렇게 예리하고 혼과 영과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는데

 

결국 하신다고?

 

 

 

 

마음과 생각과 뜻의 정체를 드러낸다는 말이다.

 

 

 

 

말씀은 정체를 드러낸다.

 

말씀은 구별하고, 분별해 낸다는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이 하는 것은 마음과 생각을 분별하고

 

성령은 마음과 생각을 변화시키시고 지키시고 인도하신다.

 

 

 

 

광야는 생각과 마음을 준비하는 자리라 했다.

 

하나님의 음성이 들리고

 

성령의 소리가 들리는 곳이다.

 

 

 

 

 

그래서,

 

성령은 일하실

 

마음과 생각으로 온다.

 

생각이 변하게 하시고

 

마음이 움직이게 하시고

 

기도 중에 생각지 않은 일들이 생각이 들고

 

말씀을 듣는데 마음에 감동이 오고

 

가슴에 어떤 영감들이 오는 것이다.

 

 

 

 

마음으로 생각으로 오는 것을 쉽게 여기지 말라.

 

 

 

 

빌립 집사와

 

베드로와

 

사도바울과

 

외의 초대교회 인물들이 성령의 특별한 기록된 역사가 아니면

 

이렇게 마음과 생각의 성령의 인도를 따라 갔던 사람들이다.

 

 

 

 

 

 

성령의 일하시는 장소는 마음과 생각이다.

 

 

 

[히10:16]주께서 가라사대 그 날 후로는 저희와 세울 언약이 이것이라 하시고

 

내 법을 저희 마음에 두고 저희 생각에 기록하리라 하신 후에

 

 

 

 

 

 

성령을 받은 사람은 명확하게 내가 그리스도인 임을 안다.

 

그리고 내가 해야 할지 알고

 

내가 하지 말아야 할지 안다.

 

일반 양심과는 다르다.

 

 

 

 

 

그리스도가 명확하게 안에 있음을 본인 스스로 안다.

 

 

 

 

안에 새겨진 말씀, 계명이 있음을 안다.

 

 

 

그래서 말씀을 따르지 않고

 

그리스도를 부인하면

 

영혼과 마음과 생각이 어둠 가운데 있음도 안다.

 

 

 

 

 

어떤 경우에라도

 

마음과 생각에 주시는 것들을 따라가야 한다.

 

 

 

 

 

마음의 감동을 따라가고

 

생각의 영감들을 따라가야 한다.

 

그리고 순종해야 한다.

 

 

 

 

 

마음과 생각의 음성을 따르면

 

그것이 순종이 된다.

 

 

 

 

순종은 제사가 되고

 

제사는 완전한 제물로 순종을 받으신다.

 

 

 

 

온전한 순종은 완전한 거룩을 낳고

 

완전한 거룩은

 

완벽한 은혜를 낳는다.

 

 

 

 

그리고 순종의 자리를 지나면

 

보이지 않던 다음 세계가 확실히 보인다.

 

 

 

 

순종하기 전에는 깨달아 지지 않던 것이

 

순종의 언덕을 넘으면

 

명확하게 있다.

 

 

 

 

 

 

성령은 과정을 통해서 우리에게 역사 하신다.

 

 

 

 

성령의 역사를 어렵게 생각지 말라.

 

 

 

 

 

기도할 ,

 

예배를 드릴 ,

 

찬양을 드릴 ,

 

묵상을

 

안에 주시는 작은 음성을 따를

 

성령이 주시는 충만을 만날 있을 것이다.

 

 

 

 

 

성령은 안에 있다.

 

 

다만 내가 음성을 듣는 훈련이 되지 않았을 뿐이다.

 

 

지금도 성령은 날마다 말씀하시며 말할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해 간구하고 있다.

 

 

 

 

 

 

성경은 간곡히 말한다.

 

 

 

[살전5:19]성령을 소멸치 말며

 

 

 

 

 

현대어 성경은 이렇게 번역한다.

 

 

 

 

[살전5:19]성령의 불을 끄지 마십시오

 

 

 

 

 

현대인의 성경은 이렇게 번역한다.

 

 

[살전5:19]성령님의 활동을 제한하지 말며

 

 

 

 

 

 

 

성령을 소멸하지 않는 ,

 

성령의 불을 끄지 않는 ,

 

성령의 활동을 제한하지 않는 것은

 

과연 무엇인가?

 

 

 

 

 

그것은 더욱 강력한 단계로 나아가는

 

정말 작은

 

안의 음성,

 

마음의 음성,

 

생각의 영감들을 따라가는 것이다.

 

 

 

 

 

 

순종하는 것이다.

 

 

 

 

일단 가보는 것이다.

 

 

 

 

 

정말 뜬금 없는 일이라 할지라도

 

성령이 주실 때는 일을 위해서 그렇기도 하지만

 

단지 나를 믿음으로 세우기 위해서 이기도 하다.

 

 

 

 

 

 

예수님께서 시험을 받으러 광야로 이끌리셨음을 기억하라.

 

이런 일이 있느냐고 거부 했다면

 

과연 땅에 영원한 생명과 부활과 하늘나라의 복음이 있을 있었겠는가?

 

 

 

 

 

 

 

 

바랄 없는 중에 마음과 생각 속에서 역사하시는 

 

성령의 음성을 따르는 !

 

 

 

 

 

그것이 믿음이다.

 

 

 

 

 

 

 

 

 

 

 

 

Pastor Seo

Pastor Se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