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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호수아 11장 <은혜의 파도를 타십시오> 외 3편

여호수아 11장 <은혜의 파도를 타십시오> 외 3편

 

 

 

 

 

1

<은혜의 파도를 타십시오>

(11: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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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하솔왕 야빈을 중심으로 동서로부터 모을수 있는 가나안 나라들을 다 모아서

이스라엘에게 대적을 합니다.

메롬 물가에 진쳤습니다.

그 수가 해변의 모래 같이 많고 말과 병거도 많다고 기록합니다.

 

2.그런데 가장 중요한때 다시 주께서 말씀하십니다.

 

두려워하지 말라 그들을 몰살시키겠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조건이 있습니다.

그것은 말 뒷발의 힘줄을 끊고 그들의 병거를 불사르라는 것입니다.

 

3.이스라엘이 갑자기 그들을 습격해서 이깁니다.

이유는 여호와께서 그들을 이스라엘 손에 넘겨 주셨기 때문입니다.

 

"여호와께서 그들을 이스라엘의 손에 붙이신고로 (11:8)

 

4.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을 하면 반드시 <은혜의 파도>를 타게 됩니다.

한번 승리하는 법을 알면 또 이길수 있는 것이 영적인 법칙입니다.

 

5.안되는 사람은 안되는 길을 늘 다닙니다.

되는 사람은 늘 되는 길을 다닙니다.

한번 실패하면 자신이 가던 방법을 내려 놓고 하나님의 방법을 찾아야 합니다.

 

6.지금까지 하던 방식을 내려놓고 하나님의 방법을 걸어야 합니다.

 

그 방법은 하나님이 원하는 길이냐 입니다.

첫째, 내가 원하는 것과 하나님이 원하는 것을 구별해야 합니다.

 

둘째,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해야 합니다.

 

그런데 내가 이미 정해놓고 기도하면 응답은 내가 원하는대로 옵니다.

이것을 조심해야 합니다.

 

7.내 방법이 맞는지 안맞는지 구분법은 나를 통해 사람이 세워지느냐 입니다.

아무리 좋아도 사람이 세워지고 사람이 힘을 얻고 사람이 용기를 얻고 영혼이 돌아오는 길로 가야 합니다.

 

8.하나님께서 모든 말의 힘줄을 끊으라 병거를 불사르라고 합니다.

이유는 뭡니까?

 

이스라엘을 보호하기 위함입니다.

가장 힘이되는 방법은 힘을 보태는 것입니다.

나라를 세울때 가장 힘이 되는 것은 힘있는 말과 병거 즉 인간적인 능력을 채우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하나님 외에 의지할 것을 제거하라고 하십니다.

 

"왕된 자는 말을 많이 두지 말것이요 말을 많이 얻으려고

그 백성을 애굽으로 돌아가게 말것이니 이는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이르시기를

너희가 이 후에는 그 길로 다시 돌아가지 말것이라 하셨음이며"(17:16)

 

9.은혜를 누구나 받습니다.

그런데 왜 가다가 길을 잃느냐?

하나님 외에 의지할것이 생기면 그렇습니다.

 

10.제가 조건부로 교회를 왔습니다.

제가 하지 않은것이 있습니다.

 

인간적으로 힘이 될만한 것을 위해 정치 하지 않고 뒤에서 사람 만나지 않는 것입니다.

그냥 하나님만 붙들고 가는 겁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도록 듣는것입니다.

하나님의 방법대로 가면 하나도 행하지 아니한 것이 없도록

하나님 기뻐하는대로 가는 것입니다.

 

 

2

<영적인 기준 "0" 이 있습니까?>

(11:1-15)

 

1.모든 사람의 생각이 다릅니다.

그런데 모든 것을 정하는 기준이 있습니다.

그것은 0입니다.

 

2.무엇을 하든 기준은 0입니다.

0이 없으면 다른 어떤 것도 시작이 없습니다.

 

3.모든 일의 시작과 다시 돌아가는 영적인 기준이 있습니다.

그것은 길갈입니다.

애굽의 수치를 물러가게 한 곳이 길갈입니다.

 

4.광야의 끝과 가나안의 시작은 요단강을 건넌후 할례를 받은 길갈입니다.

그곳에서 요단강을 건넌 기념 열두돌을 취합니다.

그리고 할례를 받았던 곳입니다.

 

5.싸움의 출발지, 싸움후 돌아가는 곳은 모두 길갈입니다.

성경은 거듭 싸움의 시작점, 각 싸움의 종착점을 길갈로 언급합니다.

무려 10번이나 언급합니다.

 

6.그곳은 내가 죽은 곳입니다.

죽은 곳이 다시 산 곳이 되었습니다.

 

7.무덤의 돌이 굴려 간곳, 생명이 살아난 곳입니다.

그곳이 우리의 영적인 기준이 되는 것이다.

 

8.늘 돌아가는 곳이 필요합니다.

승리를 해도 실패를 해도 돌아가는 곳, 영적인 갈갈입니다.

 

9.예수님은 그곳을 기도하는 곳으로 삼으셨습니다.

 

"예수께서 나가사 습관을 좇아

감람산에 가시매 제자들도 좇았더니

그곳에 이르러 저희에게 이르시되

시험에 들지 않기를 기도하라 하시고"(22:39-40)

 

10.어떤 상황이든 영적인 기준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시험에 듭니다.

시험에 드는 이유는 영적인 길갈,

내가 죽었던 곳으로 돌아가지 않기 때문입니다.

 

11.매 전투를 마치고 이스라엘은 길갈로 돌아옵니다.

 

"여호수아가 온 이스라엘로 더불어

길갈 진으로 돌아왔더라"(10:43)

 

12.그곳이 기준이 되어야 합니다.

내가 능력이 있거나 힘이 아니라

하나님이 하셨다는 고백이 길갈로 돌아오는 것이다.

 

13.길갈에서 출발하고 길갈로 돌아옵니다.

내가 죽은 곳이다. 아니 다시 산곳입니다.

하나님이 기준인곳 길갈입니다.

생명이 기준입니다.

구원, 언약이 기준입니다.

 

11.무엇을 해도 기준이 되는 곳으로 와야 합니다.

그래야 그 다음을 향해 갈수 있습니다.

그곳은 내가 죽었고,

내가 살았고,

내가 하나님의 자녀 삼으신 십자가입니다.

 

.

.

*신대원동기목사님들을 만났습니다.

은혜와 감격으로 시작한 신대원 동기 목사님들 입니다.

 

다들 귀하게 사역을 하십니다.

눈물이 있고, 승리가 있고, 감격이 있는 사역 현장이지만

처음 그자리에 모인듯 영적으로 처음 마음을 가지게 됩니다

가슴 뜨겁게 시작하던 그곳에 온듯합니다.

 

영적으로 하나님을 만났던 첫 장소에 가야합니다.

예수님은 그것이 기도라고 보여주십니다

주님을 만났던 곳은 우리의 기도입니다.

그곳이 주님은 영적인 기준이라고 하십니다.

 

 

 

3

<승리의 가장 중요한 이유>

(11:16-23)

 

1.오늘 드디어 가나안 땅을 모두 정복하고 전쟁이 그쳤습니다.

21절에 이스라엘이 처음 광야를 나와서 가나안을 정탐할 때 가장 힘들었던 아낙자손까지 다 정복했습니다.

 

2.왜 이들이 처음에는 실패했습니까?

눈에 보이는 것에 반응했습니다.

눈에 보이는 큰 성, 큰 사람, 큰 족속을 보면 반드시 실패 합니다.

 

믿음은 보는 것으로부터 오지 않고 듣는 것으로 오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10:17)

 

3.우리의 기준은 보는 것이 아니라 듣는것이 될때 이길수 있습니다.

왜요? 세상의 기준은 눈에 모이는 것이 아니라 들리는 말씀이기 때문입니다.

 

4.무엇을 보느냐가 아니라 무엇을 듣느냐가 중요합니다.

왜 이스라엘 백성이 승리했습니까?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대로입니다.

 

23

"이와 같이 여호수아가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신 말씀대로

그 온 땅을 취하여 이스라엘 지파의 구별을 따라

기업으로 주었더라 그 땅에 전쟁이 그쳤더라"(11:23)

 

말씀하신 대로입니다.

 

5.말씀이 왜 중요한가?

말씀이 이 세상의 시작이고 말씀이 태초를 여는 능력이기 때문입니다.

말씀대로 전부가 다 그대로 되기 때문입니다.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하나님이 가라사대 빛이 있으라 하시니 빛이 있었고"

 

6.출애굽후 모세와 백성들의 실패는 말씀에 반응하지 않았고

여호수아와 백성들의 승리의 이유는 말씀에 반응했기 때문입니다.

모든 기준, 모든 가치가 말씀입니다.

 

7.광야를 지나고 힘든 시간을 지나도 말씀에 반응한다면 그것은 축복입니다.

그러나 아무리 좋은 일이 생겨도 말씀에 반응하지 않으면 그것은 아픔의 시작입니다.

 

8.왜 말씀에 반응하는 것이 중요한가?

말씀에 반응해야 그 다음 음성이 들리기 때문입니다.

 

9.원래 오늘 제목은 하나님의 그다음 음성이 들리지 않을때입니다.

우리 인생에 가장 어두울때가 언제인지 아십니까?

하나님의 그 다음 음성이 들리지 않을때입니다.

이때가 가장 고통스러울 때입니다.

 

10.하나님의 그 다음 음성이 들려야 전진할수 있습니다.

언제 그 다음 음성이 들리는가?

그것은 들은 말씀을 반응하고 순종할때입니다.

 

11.오늘 순종해야할 말씀에 오늘 순종해야 전진합니다.

양이 목자의 음성을 듣고 가다가 목자의 음성이 들리지 않으면 멈추어야 합니다.

그런데 움직이면 망황이 됩니다.

목자의 음성이 들릴때까지 일을 절이면 안됩니다.

 

12.음성은 관계입니다.

음성이 들리지 않는다는 말은 관계가 되지 않았다는 말입니다.

음성이 순종으로 이어질 때 관계가 지속됩니다.

 

13.소리에 생명이 역사하는 것은 음성에 반응할때입니다.

유일하게 반응하지 않는 것이 사람입니다.

 

어떻게 승리하나요?

오늘도 들리는 음성에 반응하는 것입니다.

 

14.내가 가장 두려운 것이 이것입니다.

하나님의 음성듣기 입니다.

말씀을 보는데 개인적인 말씀을 듣고, 교회를 향한 말씀을 듣는 것입니다.

신앙은 듣고 반응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신앙의 본질입니다.

 

  4

<감정적 변화에서 공간적 변화가 가나안입니다>

(11:16-23)

 

1.은혜는 감정적 충만이 아니라 공간적 변화입니다.

즉 관계적 충만입니다.

음성에 반응한 결과는 반드시 공간적 충만으로 나타납니다.

 

2.하지 않으면 무슨 일이 일어나는가?

숨바꼭질입니다. 최초의 숨바꼭질은 에덴동산 하나님과 사람의 숨바꼭질입니다.

음성을 외면할 때 나타납니다.

 

3.음성을 반응으로 나타날 때 관계로 이어집니다. (많은 사람을 만남)

전쟁이 그친 이유는 하나님의 음성에 반응하는 인생이었기 때문입니다.

그것을 믿음이라 합니다.

 

4.듣는 것을 관계로 반응할 때 정복의 역사가 시작됩니다.

언제 음성에 반응 하셨습니까?

아무런 일이 일어나지 않았습니까? 

아니 내 안에 감정적 변화는 있지만 공간적 변화는 일어나지 않습니다.

 

5.가나안 정복은 감정적 변화에서 공간적 변화의 완성입니다.

우리는 본능적으로 감정적으로 반응합니다.

그러나 음성에 반응하면 공간적 반응이 나타납니다.

 

6.공간적 반응입니다.

내면적 반응은 실제적인 공간속에서 변화가 일어날 때 주의 역사가 일어납니다.

 

7.사울왕의 문제는 다윗왕과의 문제가 아니라 하나님의 음성에 대한 반응의 문제입니다.

 

8.스데반을 치려던 사람들입니다.

듣지 않으려 합니다. (7:57)

 

"저희가 큰 소리를 지르며

귀를 막고 일심으로 그에게 달려들어"

 

9.바로왕의 문제는 강퍅의 문제입니다.

듣지 않음이 문제 입니다.(7:13)

 

"그러나 바로의 마음이 강퍅하여

그들을 듣지 아니하니 여호와의 말씀과 같더라"

 

"그러므로 성령이 이르신 바와 같이 오늘날 너희가

그의 음성을 듣거든 노하심을 격동하여 광야에서 시험하던 때와 같이

너희 마음을 강퍅케 하지 말라"(3:7-8)

 

10.음성을 따를때 행복이 찾아옵니다.

행복의 정의는 음성을 따를때 찾아오는 영적인 <자신감><평안함>입니다.

 

대초원의 누우떼 이동은 계절의 음성에 공간적 이동이 생명입니다.

 

11.아담과 하와의 문제는 음성에 반응하지 않는 것입니다.

 

"그들이 날이 서늘할 때에 동산에 거니시는

여호와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아담과 그 아내가 여호와 하나님의 낯을 피하여

동산 나무 사이에 숨은지라"(3:8)

 

12.회복의 길은 음성에 공간적으로 반응하는 것입니다.

 

"볼찌어다 내가 문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로 더불어 먹고

그는 나로 더불어 먹으리라"(3:20)

 

 

 * 남아공에서 한태철 집사님과 딸 아원이가 왔습니다.

남아공에 계시다가 미국 워싱턴에 사시는 양권사님과 백집사님께서 오셨습니다.

 

공간을 넘어 사연을 만든다는 것은 하나님의 축복입니다.

각자의 삶속에서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순종하며

이렇게 먼곳까지 와주시는 사랑이 감동입니다.

 

만남이 축복입니다.

음성에 순종하며 살아가는 가장의 삶속에

이렇게 만나게 하시는 은혜가 그저 큰 위로입니다.

 

주님을 음성을 듣고 공간속에서 만나야 합니다.

말씀이 순종이 되는 공간에서의 변화는

하나님의 일들을 이루어가시는 축복의 시작입니다.

 

귀한 걸음으로 먼 거제까지 와주신 여러분들이 그저 감사할 뿐입니다.

감사의 마음을 전합니다.

 

 

Pastor Seo

Pastor Se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