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군중으로 살아라(제자가 되는 원리)
누가복음14:125-35
법을 이기는 것은 법이 아니다.
법을 이기는 것은 마음이다.
하나님은 법을 아담에게 주었지만,
아담은 그 법을 이기지 못했다.
법은 법이지만 생명을 줄 수는 없다.
법을 이기는 것은 오직 마음이다.
잃어버린 생명을 얻는 것은 오직 생명으로다.
그것이 영의 법칙이다.
구약은 법이다.
신약은 생명이다.
법은 오직 생명으로 치유된다.
법은 울타리이다.
그러나 울타리 속 삶은 생명으로 유지되어야 한다.
제자들을 부르신 것은 법으로 그들을 부르시지 않았다.
제자들은 그분의 마음으로 부르셨다.
지식은 단지 지식이다.
지식이 세상을 바꾸지 못한다.
지식이 사람을 변화시키지 못한다.
지식은 그냥 지식이다.
지식이 능력이 되는 것은
지식에 마음이 담길 때 이다.
육체가 그냥 육체인데
육체에 생령, 생명이 들어갈 때 다스리는 생명이 된다.
지식에 지식은 그냥 지식이나
지식에 생명이 통할 때 지식은 지혜가 된다.
참 생명의 지혜가 된다.
율법의 모든 지식은 그냥 율법이다.
그러나 율법에 그리스도의 생명이 들어가자
율법은 또 다른 생명을 보여주는 지혜가 된다.
성령은 마음의 하나님이다.
성령이 일하시는 곳은 < 생각과 마음 >이다.
율법은 돌판에 세긴 법이다.
성령은 심비에 세긴 법이다.
마음과 생각!
그곳이 성령이 일하시는 장소이자 거주하시는 성전이다.
성령의 증거는 마음과 생각에 세긴 심비이다.
흐린 것도 아니고
잡을 수 없는 것도 아니다.
잡히고
흔들리지 않는 폿대이다.
제자는 그것이 있는 사람이다.
제자는 마음을 받은 자 들이다.
제자는 법으로 살지 않는 생명의 열매들이다.
생명으로 산 생명의 열매들이다.
제자를 지식으로 만들지 못한다.
제자를 마음으로,
생명의 마음으로 그들을 세우셨다.
껍질뿐인 육체에
그분의 마음을 부으시고
본질을 잊어버린 지식에
생명의 성령을 부어 생명을 소유한 지혜로운 자로 만드셨다.
없는 자를 부르셔서
있는 자로 만드시고
가난한 자를 부르셔서
많은 자를 부요케 하는 자로 만드셨다.
고난이 그들에게 영광이 되게 하셨고
십자가의 길이 생명의 면류관으로 변화시켜주셨다.
그 사람들이 바로 < 제자들 > 이다.
제자됨의 동기
제자가 될 때 시작의 마음은
어떤 명예나 자리 등의 누림이
시작의 동기이다.
좀더 직접적으로 말하면
제자가 누리게 될 권력이다.
제자가 받게 될 특권이다.
제자가 얻게 되는 명성이다.
그것이 모든 제자들이 시작할 때 가진 제자됨의 동기이다.
그러나 이 제자됨의 동기는 어김없이
스승과 다른 길을 가게 한다.
언제 진정한 제자가 되는가?
소유이다.
소유의 문제가 해결될 때 진정한 제자가 된다.
이 소유는 자신이 속한 곳으로부터의 떠남,
소속으로부터의 떠남이고
자신의 사상으로부터 떠남,
지식으로부터의 떠남이고
자신의 목적으로부터의 떠남,
자기 비전으로부터의 떠남이고
자신의 자기애,
자기 사랑으로부터의 떠남이다.
모든 자신에서의 떠남,
소속의 떠남,
지식의 떠남,
비전의 떠남,
자기사랑의 떠남이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십자가이다.
십자가가 없으면 제자가 아니라고 한다.
제자와 군중의 차이는 다 버림이라 했다.
그런데 사실은 버림이 아니라 선택이다.
십자가를 지는 것 그것은
다 버림이 아니라
새로운 것의 선택이다.
이 과정을 거치지 않으면 참 제자가 되지 못한다.
아니 제자가 아니라 빛과 소금이 되지 못한다.
소유이다.
소유를 버려야 제자가 된다.
제자는 자기의 모든 것에서
스승의 뜻,
스승의 사상
그리고 스승의 마음으로 사는 사람이 제자이다.
무엇보다 스승의 마음,
스승의 뜻만이 그에게 존재할 때
그는 빛과 소금,
참 제자가 된다.
제자가 되는 길
오늘 본문 말씀은 누가복음 14장 25에서 35까지 말씀이다.
이 말씀의 시작은 무리가 예수님과 함께 갈 때
갑자기 돌이켜
제자에 대해서 말씀하시는 대목이다.
어떤 자가 제자인가?
어떤 사람이 참 제자인가?
그런데 또 이상한 것은
그 참 제자의 결론을
소금으로 결론을 낸다.
눅14:34 소금이 좋은 것이나 소금도 만일 그 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짜게 하리요
제자와 소금이 무슨 상관이 있는가?
이제 한번 보자.
첫째, 계산해보라 했다.
제자가 어떠해야 함을 설명하면서 두 가지 비유를 말씀하셨다.
눅14:28 너희 중의 누가 망대를 세우고자 할진대 자기의 가진 것이
준공하기까지에 족할는지 먼저 앉아 그 비용을 계산하지 아니하겠느냐
망대를 세우는 자와
임금이 다른 임금과 전쟁하는 것을 말씀하셨다.
눅14:31 또 어떤 임금이 다른 임금과 싸우러 갈 때에 ~대적할 수 있을까 헤아리지 아니하겠느냐
싸움이다.
전쟁이다.
예수님의 제자의 부르심은 전쟁을 위해 부르신 자들이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세상에 화평이 아니라
분쟁케하려고 왔다고 하셨다.
눅12:51 내가 세상에 화평을 주려고 온 줄로 아느냐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아니라 도리어 분쟁하게 하려 함이로라
예수님은 세상,
즉, 세상 영과 싸우러 오신 것이다.
우리를 구원하시기 전에 우리를 묶고 있는
세상의 악한 영과 싸우러 오신 것을 기억해야 한다.
그것이 제자를 부름의 시작이다.
우리는 자리를 위해 왔고
예수님은 싸우기 위해 부르셨다.
우리는 권력을 누리기 위해 복음을 믿고
예수님은 복음 때문에 낮아지게 하기 위해서 부르셨다.
우리는 내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서 제자가 되었고
예수님은 내 자리를 남에게 내어주라고 부르셨다.
우리는 배부르기 위해서 제자가 되었지만
예수님은 배고픈 자와 함께 있으라고 부르셨다.
우리는 예수 믿고 편안한 삶을 위해 제자가 되었지만
예수님은 편안보다 평안을 위해 우리를 부르셨다.
우리는 이 땅을 위해서 제자가 되었지만
예수님은 이 땅에 소망을 두지 말라고 부르셨다.
이것을 먼저 계산해 보라는 것이다.
이 계산이 되면 나를 따르라고 하신다.
먼저 계산해 보고 군중이냐 제자냐를
수많은 군중과 함께 길을 가다 불현듯 물으시는 것이다.
그냥 내가 원하는 제자가 되려면 군중으로 남고
예수님이 원하는 제자가 되려면 잘 계산해서 따르라는 것이다.
예수님은 이 말씀 전에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고 하셨다.
그 좁은 문이 뭔가?
예수님은 예수님의 제자를 위해 친히 부르셨다.
사람을 낚는 어부!
어부는 물고기와의 싸움 전에 어떤 싸움을 해야 한다.
바다와 싸워야 하고
풍랑과 싸워야 하고
자연 환경과 싸워야 한다.
싸움의 본질은 물고기가 아니라
먼저 환경과의 싸움이다.
세상과의 싸움이다.
보이지 않는 세상의 영과의 싸움이다.
세상과 싸울 수 있는 자는 없다.
세상의 영과 싸울 수 있는 무기,
능력 그리고 힘은 나에게 없다.
이미 세상과 나는 싸울 대상이 안 된다.
제자됨의 목적은
그분이 싸우는 싸움,
그분이 추구하던 그 추구의 따름이라 했다.
예수님께서 무엇을 향해 싸우셨는가?
보이지 않는 싸움이 무엇이었나?
망대는 뭐고
싸움은 뭔가?
망대는 적의 동태를 살피는 것이고
싸움은 적과의 싸움이다.
비유는 다 적과의 싸움,
적과의 전쟁이다.
제자의 목적은
그분이 싸우던 싸움을 내가 하는 것이다.
스승의 사상적 적과 싸우고,
스승의 원수와 싸우고
스승의 원리와 싸우는 적과의 싸움이다.
그 싸움에 있어서
내가 가진 것을 돌아 보라는 말이다.
계산해 보라는 말이다.
왜 다 버려야 하는가?
왜 적과 싸우는데 다 버리라고 하는가?
제자는 내 사상,
내 학문,
내 경험으로
스승의 적과 싸울 수 없다.
그래서
내 소유,
내 가진 것,
내 무기,
내 능력과 힘을 버리고
스승이 주시는 학문과
이론과
사상과
힘과
능력으로 무장하지 않으면
스승의 싸움에 참여할 수 없다는 말이다.
가봐야 백전백패라는 말이다.
그래서 계산해 보라는 것이다.
구약은 이 말을 미리 보여준 것이다.
모세가 실패했고,
이스라엘 백성이 실패했고,
여호수아가 했던 방법과
믿음의 선진들이 했던 싸움의 본질
그것이 하나님이 말씀하시고 싶어했던
싸움의 방법이다.
어떤 구약의 승리의 싸움은
백성 스스로 이긴 싸움이 단 한번도 없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방법 하나님의 뜻으로 하지 않는 싸움은
세상의 영에 사로 잡힌 인간으로서는
결코 이길 수 없는 싸움이어서 그렇다.
계산해보라,
예산을 따져보라는 말은
내 것으로 싸울 수 없는 싸움이라는 것이다.
싸움 전에
망대도 내 예산이 없으면 세우지 못하고
전쟁도 내 것이 작으면
화평을 청해야 하는데
어찌 이런 세상과의 영적 전쟁을 하는 사람이
자신의 소유로 싸우려고 하느냐는 말씀이다.
예수님을 기억하라.
어찌 하나님의 아들이 죽어야 했는가?
그만큼 이 전쟁은 세상에서 방법이 없어서 그렇다.
세상에서 찾을 수 없는 방법이어서 그렇다.
그래서 내 것,
내 소유 전부를 버리고
더 나아가
세상의 영이 담보로 잡을 목숨,
마지막 흥정의 대상이자
세상의 영의 마지막 무기인
사망을 포기 하지 않으면
마지막에서 우리가 진다는 것이다.
그래서 베드로에게 주신 사명의 마지막은
그 사망,
그 죽음까지도 미워하고 가야 함을 말씀하셨던 것이다.
요21:19 이 말씀을 하심은 베드로가 어떠한 죽음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것을
가리키심이러라 이 말씀을 하시고 베드로에게 이르시되 나를 따르라 하시니
생명을 주심에 대한 믿음은
내 생명을 거는 것이다.
영생을 믿으면
내 생명을 걸어야 진짜 믿는 것이 된다는 말이다.
그것이 진짜 제자의 모습이라는 말이다.
그래서 나오는 말씀이 다음이다.
둘째, 그래서 참 제자는 자신의 소유를 버림이라 했다.
자신의 소유 전부를 버리라 했다.
이유는 간단하다.
스승이 싸우는 전쟁에는 내가 가진 모든 것이 다 소용이 없다는 말이다.
아담이 가진 것으로 세상의 영을 이길 수 없었다.
세상의 영이 똑같은 방법으로 예수님께 시험을 했다.
동일하게 우리,
참 제자가 되기를 원하는 자,
참 제자들에게도 그렇게 싸움을 걸 것이다.
내 소유,
내 가진 것으로는 결코 이기지 못하는 싸움이다.
아담의 싸움으로부터 인류의 싸움은 소유의 싸움이라 했다.
사단이 시험한 예수님의 세가지 시험도
이 소유를 놓은 한판 승부였다.
자신,
명예 그리고
세상의 영광!
소유권 이전의 싸움이다.
그래서 나의 주인은 내가 따르는 것이 주인이라 했다.
나의 소유는 나의 소유가 아니다.
세상의 소유이다.
나의 것은 나의 것이 아니다.
이미 에덴부터 세상의 영이 장악한 것이다.
그것에 대한 버림,
그것에 대해 미워하기까지 하는
소유권 이전의 싸움에서
유혹의 씨를 말려버리는 것이다.
그래서
< 자기 > 가 붙는 모든 것을 버리라 했고
눅14:26 무릇 내게 오는 자가 자기 부모와 처자와 형제와 자매와
더 나아가
< 미워하라 > 고 까지 했다.
눅14:26 더욱이 자기 목숨까지 미워하지 아니하면 능히 내 제자가 되지 못하고
미워해야만 된다.
우리는 본능적으로 내 것,
내 소유를 잡으려는 본성이 있다.
내가 잡으려는 죄성이 있다.
롯의 아내를 기억하라.
다 망해가는 것을 향해서도 돌아보고 싶은 죄의 뿌리가 있어서
망해가는 것도 얼굴을 돌아보고 싶은 욕망이 내 안에 있다.
본성은 죽은 것,
죽어가는 것임을 알면서도
잠시 잠깐의 쾌락을 위해
얼굴을 돌리는 것이 우리의 본성이다.
이것을 미워하지 않으면
결코 제자가 되지 못하고
스승의 싸움에 참여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아니 스승의 싸움이 아니라
스스로 멸망하게 될 것을 아시는 우리를 향한
주님의 배려와 사랑임을 기억해야 한다.
그러나 걱정 마라.
우리가 우리 소유를 버리면
이 땅에서 뿐 아니라 저 하늘에서 비교할 수 없는 것으로
주신다는 보장을 해주신다.
18:28 베드로가 여짜오되 보옵소서 우리가 우리의 것을 다 버리고 주를 따랐나이다
18:29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하나님의 나라를 위하여
집이나 아내나 형제나 부모나 자녀를 버린 자는
18:30 현세에 여러 배를 받고 내세에 영생을 받지 못할 자가 없느니라 하시니라
현세의 축복과 내세의 영생과 영원한 기업이 보장 된다.
그래서 믿음이 필요하다.
믿음이 없다면 다 버리지 못하고
얼굴을 안 돌리지 못하고
나의 목숨까지 미워하지 못한다.
영생을 받은 자는 생명으로 믿음을 증명한다.
그것이 우리 인생이 넘어야 할 마지막 십자가 이다.
마지막 소유권 이전이다.
셋째, 하늘의 것을 받은 자이다.
제자의 가장 중요한 것은 세상의 것이 아니라
하늘의 것으로 사는 사람이다.
하늘의 것을 받아서 사는 사람이 제자이다.
이상한 것은 왜 제자의 결론을 소금으로 하는가 이다.
소금과 제자가 무슨 상관이 있는가?
소금은 맛이다.
소금이 좋은 것이지만
맛이 잃으면 아무 쓸데없어 어떻게 짜게 하겠냐는 것이다.
땅에도 거름도 쓸데 없는 것이 소금이어서
그 맛을 잃으면 어디도 쓸모가 없다는 것이다.
놀라운 말씀이다.
세상에 정말 쓸모 없는 것이 짠맛을 잃은 소금이다.
어디 쓸 데가 없다.
소금은 맛과 몸체가 결합된 것이다.
몸체는 몸체일 뿐 그 의미는 맛으로 결정된다.
앞에서 이야기 했던 것을 다시 읽고 와라.
서두의 파란 글자를 다시 읽고 오라.
안 읽으면 이해가 힘들다^^
읽었는가?
나도 다시 읽고 왔다.
소금은 맛이 없으면 아무것도 아니라 했다.
아니 밖에 버려져 밟힌다 했고
쓸모가 없다 했다.
소금의 생명은 맛이다.
맛이 어디서 오는가?
제자는 어떻게 참 제자가 된다 했나?
마음이라 했다.
생명을 받음이라 했다.
제자는 스스로 소유가 없다.
받음이다.
하나님의 마음을 받고,
성령의 생명
성령의 지혜,
성령의 지식을 받아야 그 안에 참 생명이 있다 했다.
소금의 생명은 맛이다.
그 맛은 스스로의 것이 아니라 주어지는 것이다.
주어지는 맛
그것이 소금의 능력이다.
제자의 능력은 스스로의 것이 아닌
주어지는,
하늘로부터 주어지는 것으로의
능력이며 생명이다.
소금은 스스로가 아니라
주어진 맛으로 그 소금의 힘이 발휘 된다.
맛이 없어진 것!
소금이 맛이 없어지면 소금은 아무것도 아니다.
소금과 같이 맛이 없는 것은
소금이 물질과 맛으로 이루어져있는데,
육신에 성령이 임할 때 생명,
지식,
능력이 임하는데
그것은 자기의 소유가 아닌
하늘로부터 공급 받아 나타나는 능력이다.
맛을 잃는 것은
하늘로부터 맛을 공급받지 못할 때 맛을 잃는 것이다.
참 제자의 능력은 비어진 자신의 소유의 공간에
하늘의 것으로 채워질 때 참 제자가 되는 것이다.
참 제자는 예수님으로부터 어떤 하늘의 것을 받을 때
참 제자로서 삶을 산다는 말이다.
우리는 빛이 아니다.
우리 안에 생명의 빛이 들어와야 빛이 된다.
우리 안에 소금의 맛이 없다.
그 맛을 공급 받아야 우리는 소금의 일을 한다.
소금은 그 맛이 없으면 전혀 쓸 곳이 없다 했다.
예수님의 참 제자들은 누구인가?
하늘로부터 어떤 것을 받아서 사는 사람이다.
받지 아니하고 스스로 하는 자는 제자라 할 수 없다.
그래서 예수님은 우리에게 어떤 것을 주셨다.
첫째는 제자는 하늘의 생명을 받은 사람이다.
[요20:31]오직 이것을 기록함은 너희로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믿게 하려 함이요 또 너희로 믿고 그 이름을 힘입어 생명을 얻게 하려 함이니라
[요6:33]~하늘에서 내려 세상에게 생명을 주는 것이니라
제자는 그리스도의 생명을 받은 사람이다.
생명을 받지 아니하면 우리는 아무것도 아니다.
둘째, 성령을 받은 사람이 제자이다.
[행2:4]저희가 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아버지의 주시고자 한,
예수님께서 기다리라고 한 성령을 받아야 참 제자가 된다.
생명과 성령은 하늘 백성의 기본이며
참 제자의 자격이다.
성령은 하나님의 복음을 전하며,
하나님 나라를 확장하는 영이다.
성령이 임할 때 모든 것을 깨닫게 되고
성령이 내 안에 있을 때 모든 것을 명확하게 보게 된다.
허물뿐인 육체에 생명을 부여하며,
껍데기 육체에 의미를 부여하는 것이 성령이다.
성령이 임할 때 변하는 것은
마음과 생각이다.
성령이 거하시며 일하는 곳은
내 마음과 생각이다.
성령이 임해야 내 소유의 전부를
제어할 수 있다.
생각이 제어되고 마음이 제어된다.
성령은 우리의 마음과 생각에 하나님의 뜻,
하나님의 마음을 받게 하신다.
오직 성령이 임할 때
제자로서의 그분의 참 일을 할 수 있는 것이다.
셋째, 능력을 받아야 한다.
[눅10:19]내가 너희에게 뱀과 전갈을 밟으며 원수의 모든 능력을 제어할 권세를
주었으니 너희를 해할 자가 결단코 없으리라
제자는 세상의 영과 싸우는 자다.
내 소유를 버리고
하늘의 능력을 소유해야 세상의 권세 잡은 자를 대적하며 싸울 수 있다.
왜 버려야 하는가?
버리지 않으면 성령이 임하지 않는다.
세상의 미련을 가지면 능력은 오지 않는다.
능력이 임할 때
제자들은 세상의 영과 대적 할 수 있다.
그래서 예수님은 제자들을 파송 하시며
그들에게 능력을 주셨다.
예수님도 아신다.
우리의 싸움이 혈과 육에 대한 싸움이 아님을.
[엡6:12]우리의 씨름은 혈과 육에 대한 것이 아니요 정사와 권세와 이 어두움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에게 대함이라
그래서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반드시 이 능력을 주셨다.
[눅9:1]예수께서 열 두 제자를 불러 모으사 모든 귀신을 제어하며
병을 고치는 능력과 권세를 주시고
제자로서 필요한 것을 계산해야 한다.
자기 소유의 모든 것을 버림과 동시에
이 능력, 성령의 능력을 구해야 한다.
성령의 능력이 없으면 우리는 무조건 패하게 된다.
그래서 예수님은 우리가 잘아는 말씀으로 성령을 주시겠다 약속하셨다.
눅11:10 구하는 이마다 받을 것이요 찾는 이는 찾아낼 것이요 두드리는 이에게는
열릴 것이니라 ~ 13 너희가 악할지라도 좋은 것을 자식에게 줄 줄 알거든
하물며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성령을 주시지 않겠느냐 하시니라
'구하라' 이 말씀은 우리의 어떤 필요를 구하는 것이지만,
그의 나라와 의를 구하는 말씀이다.
그것이 우리의 필요를 넘어선
제자로서 하나님 나라를 위하여 구하는
성령의 능력을 말씀하시는 것이다.
다 버렸는데
이 성령의 능력이 없다면 우린 정말 아무것도 없는 자이다.
반드시 이것을 구하고 찾고 두드려 하늘로부터 능력을 받아야 한다.
넷째로 평안이다.
[요14:27]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 같지 아니하니라
너희는 마음에 근심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
제자는 평안을 전하는 사람이고
자신이 평안을 누리는 사람이다.
예수님은 이적을 베푸시고 반드시 하신 말씀이 평안히 가라 하셨다.
이것은 세상이 주는 것이 아니다.
하늘로부터 오는 참 평안이다.
이 평안이 우리의 환경과 아픔과 핍박을 넘은 천국의 평안으로 인도한다.
싸우는 자가 담대함이 없으면 어찌 하리요.
몸은 싸우나 마음에 하늘의 평안이 있을 때 우리는 세상에 매이지 않는
참 제자가 되는 것이다.
참 평안은 성령 안에서 그리스도와 함께 함이다.
그리스도는 어떤 많은 것을 주셨고 제자가 받았지만
다른 어떤 것보다
그리스도 자신을 받았다.
이것이 평안의 핵심이다.
세상 끝날까지 내가 너희와 함께 하시겠다고 하신
< 자신을 주심 > 은 우리에게 함께함으로 세상을 넉넉히 이기는 힘이 된다.
마지막으로 새 계명이다.
[요13:34]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제자는 스승의 삶을 따라 사는 것이다.
예수님께서 사신 삶의 모범은 사랑이다.
서로 사랑하는 것이다.
그것이 우리가 군중과 가장 다른 받음이다.
사랑하지 않는 자는 제자가 아니다.
[요13:35]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이로써 모든 사람이 너희가 내 제자인 줄 알리라
그러나 우리는 계명, 서로 사랑함의 계명을 받았으나
그보다 먼저 우리는 그분의 사랑을 받은 자이다.
[요일4:19]우리가 사랑함은 그가 먼저 우리를 사랑하셨음이라
사랑을 받은 사람이 사랑 할 수 있다.
받아야 가능한 것이 사랑이다.
사랑은 내 안에 없다.
사랑은 오직 하늘로부터 온다.
예수로부터 온다.
그 받은 사랑으로 우리는 우리에게 주어진 새 계명을 따를 수 있다.
그 계명이 나의 심비에 새겨있지 않는 사람은 제자가 될 수 없다.
내 마음과 생각에 돌비에 새긴 십계명처럼
우리의 심비에 새겨
명확하게 보고
느끼고
만질 수 있는 계명이 있는 자가
그리스도의 참 제자이다.
제자는 자신의 소유로 사는 자가 아니라
하늘의 것으로 사는 자이다.
이 이해하고 계산하고
헤아리지 않으면 어찌 제자가 된다 할 수 있는가?
이 모든 것이 어려운가?
그럼 그냥 군중으로 살아라!
좁은 길이 그냥 좁은 길이 아니다.
예수님은 말씀하신다.
계산해 보지 않고
내 소유를 내려놓지 않고
예수님의 것으로 채우지 않으면
차라리 군중으로 살라고 하신다.
오늘 결정해야 한다.
내가 군중이 될 것인가?
제자가 될 것인가?
세상의 영에 잡혀 살 것인가?
세상을 이기신 영원한 나라의 기업 받을 자로 살 것인가?
영원한 생명을 소유한 자로 세상을 이기며 살 것 인가?
세상이 주는 잠깐의 쾌락으로 미래와 영원한 나라 없이 살 것인가?
우리가 무엇인데 이런 엄청난 기회를 주시는가?
우리가 무엇인데 이런 놀라운 하늘의 영광을 주시는가?
구하여도 받지 못하는 자가 있다 했다.
거저 주시는 이 은혜를 받아 누리자.
아는 자만 아는 이 하늘의 영광을
그분으로 함께 즐거워하자.
그분이 주시는 영광은 세상과 족히 비교할 수 없는 영광된 것이다.
믿음으로 그 영광을 이제 누리자.
주님!
제자되기 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