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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랑하십시오>

<자랑하십시오>

 

 

 

<자랑하십시오>(13:1-37)

 

사람 희안합니다. 실패한 역사를 반복합니다.

사람은 끊임없이 자랑할 것을 찾습니다. 그래서 높은 성을 짓습니다.

바벨탑이 그렇고 예루살렘 성전이 그렇습니다.

자신이 세운 것도 아닌데 오늘 제자들이 성전을 나가면서 예수님께 성전과 건물들을 자랑합니다.

만약 자신이 세운 높은 건물과 높은 성을 가지면 얼마나 자랑하겠습니까?

 

예수님은 단호하십니다.

하나도 위에 남지 않고 무너질것이라고 하십니다.

그들이 그렇게 자랑하던 돌들이 무너집니다.

 

높은 건물을 지은 이스라엘만 무너뜨려질까요?

아닙니다.

높은 것을 짓고 자랑하고

내면이 아니라 외형을 자랑하는 인생은 무너지게 됩니다.

그것이 인간 편에서의 반복되는 역사입니다.

 

바벨탑으로부터 예루살렘성전까지 인간은 높은 것을 향한 상향성을 추구합니다.

인간의 본질 첫번째는 <상향성>입니다.

인간의 본성 마지막은 <무너짐>입니다.

 

제자들은 높은 건물을 자랑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높은 건물이 무너질 것이라 하십니다.

 

바벨탑도,

어떤 성전도 무너졌습니다.

왜요?

높음을 향한 인간의 본질은 결국 <자랑>입니다.

 

내가 좀더 높다는 것입니다.

바벨탑의 본질은 인간이 하나님보다 높다는 것입니다.

예루살렘 성전의 본질은 어떤 민족보다 이스라엘이 낫다는 것입니다.

 

모든 것의 본질은 상향성

<자랑>입니다.

 

오늘 종말에 관한 이야기의 시작은 제자들의 자랑입니다.

건물을 자랑하고

높음을 자랑하고

남보다 다름을 <자랑>하는

인생의 본질에 대한 주님의 말씀은

<종말>입니다.

제자들은 결국 예수님과 함께 있는 것도 다른 사람과 다른 자랑으로 삼습니다.

예수님을 따르지 않는 저들을 어떻게 할까요라고 질문하게 됩니다.

인간의 본질인 상향성에서 나온 자랑입니다.

 

자랑하기 위해 사는 인생이 있습니다.

예수 믿는 것을 제대로 알지 못하면 자랑하기 위해 사는 인생이 됩니다. 

남보다 나은 것을 위한 이유는 오직 자랑입니다.

 

자랑과 관련된 오늘 말씀은,

 

첫째, 미혹입니다. (13:6)

 

자랑하려는 인생,

남들보다 나은 인생을 추구하는 인생의 덫은 결국 미혹입니다.

돈을 많이 있다는 것에,

남보다 있다는 것에 대한 미혹이 찾아옵니다.

그러다 속고,

그러다 망하고 그러다 실패하게 되는 것입니다.

 

마지막 때의 징조는 미혹입니다.

예수의 이름으로 옵니다.

사는 방법을 제시하고 축복 받는 다는 것을 통해 미혹합니다. 

나은 인생,

나은 축복을 향한,
나은 상급을 향한 욕심이 미혹의 덫에 걸려드는 것입니다.

 

이단들의 공통점은 믿어야한다는 것이지만

본질은 남들과 다른 축복과 남들과 다른 구원입니다.

남다른 구원과 남다른 축복을 추구하면 결국 미혹의 영에 빠집니다.

 

높은 건물과 높은 인생을 추구하는가?

남다른 인생을 살고 싶고 남다른 축복을 자랑하고 싶어서입니다.

여기서 미혹이 시작되는 것입니다.

 

 

둘째, 기준이 흔들립니다.

 

예수님이 모든 종말의 징조를 말씀하시고 한가지를 더하여 말씀하십니다.

 

"천지는 없어지나 말은 없어지지 아니하리라"(31)

 

인류의 죄는 기준이 하나님의 말씀이 아니라 사람의 말과 감정과 자신의 생각입니다.

교회에서 가장 무서운 것은 관습입니다.

관례입니다.

해오던 일이 어찌보면 가장 하나님의 말씀의 기준을 흔들게 하는 것입니다.

문제가 생겨서 그렇게 했나고 물어보면 해오던 관습이라고 합니다.

관례라고 합니다.

이것이 무서운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무엇을 원하는지보다 해오던 사람의 습관과 관습이 교회를 망칩니다.

그런 일들이 교회안에 사회안에 많습니다.

 

언제나 기준이 말씀으로 세워져 있으면 힘들어도 하나님의 인도하심은 있지만

기준이 사람의 감정이면 종말이 찾아옵니다.

 

개인의 신앙도 마찬가지입니다.

모든 기준이 말씀이 아니라 감정입니다.

그래서 기분 좋으면 봉사하고 기분이 나쁘면 교회를 옮깁니다.

목사가 좋으면 목사의 잘못도 덮지만

기분이 나쁘면 목사는 죽일 목사가 됩니다.

내가 기준이어서 그렇습니다.

 

설교를 듣고 마음에 감정적으로 채워지면 좋은 설교이고

그렇지 않으면 설교는 외면 당합니다. 

기준이 말씀인데

감정이 기준이 되어 설교를 평가합니다.

 

종말까지 필요도 없습니다.

지금 오늘 하루를 사는 매일이 종말입니다.

종말을 사는 우리의 삶에 자랑하기 위해 사는 인생은

<미혹> 덫에 빠집니다.

 

그리고 모든 기준이 <자신>입니다.

기준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이 기준이 되기 바랍니다. 

 

감정과 생각조차도 기준인 말씀에 쳐서 복종시키는 것이

가장 어려운 일입니다.

어려운 일을 날마다 하지 않으면

결국 우리는 높은 건물과 돌들을 자랑하게 됩니다.

 

각자 가진 돌들이 있습니다.

어떤 이는 높은 학력이 돌이 됩니다.

남들에게 자랑하는 돌들이 학력입니다.

어떤 이에게는 이뤄놓은 많은 사역이 돌들이 됩니다.

그래서 기회만 되면 사람들에게 돌들을 자랑합니다.

주님이 말씀하십니다.

' 하나도 위에 남지 않을 것이다'

 

<코스타- 자랑하는 ?>

 

코스타는 해외에 있는 유학생을 위한 영적 집회입니다.
많은 나라에서 집회를 하며 많은 학생들이 도전과 신앙의 결단을 하는 아름다운 집회입니다.

집회에 참석하는 강사들은 그래도 인정받은 강사들입니다.

그런데 집회를 참석한 많은 성도들과 학생들이 하는 말이 있습니다.

많은 강사분들이 복음은 전하지 않고 자기 자랑만 하다 내려온다는 것입니다.

 

남들 이루지 못한 <돌들> 없이 자랑하다 내려오는 일들이 있다는 것입니다.

물론 남들이 이루지 못한 성전과 돌들이 주님이 하신 놀라운 일이기에 얼마든지 그럴 있습니다.

그러나 복음이 필요한 그들에게 복음이 아니라 돌들만, 성전의 높음만 늘어 놓는다면 신앙의 백지 위에 믿음의 그림을 그리는 그들이 목표하고 기대하는 것은 결국 그들이 전한 돌들과 성전이지 하나님을 위해 자신의 목숨도 내어놓은 헌신과 십자가가 아닐 가능성이 더욱 높아집니다.

 

우리 인생의 목표가 돌들을 자랑하고 높은 성전을 자랑하는 일은 아니어야 겠습니다.

높은 돌들을 보라고 제자들에게 주님은 돌들이 돌위에 하나도 남지 않는다 했습니다.

그것이 비단 예루살렘 성전만을 말할까요?

 

우리 인생의 돌들을 자랑하지 않는 인생이 되기를 바랍니다.

나의 돌들이 아니라 다른 이들의 돌들을 자랑하기 바랍니다.

다른 이의 높음을 자랑하기 바랍니다.

그것이 영적인 원리입니다.

 

성부의 영광은 성자가 돌리시고

성자의 영광은 성령이 돌리십니다.

자신의 영광을 자신이 돌리지 않습니다.

 

주변에 다른 이의 돌들을 자랑해주는 사람이 없으니

내가 나를 자랑합니다.

다른 이의 돌들을 자랑해 주시기 바랍니다.

다른 이의 선한 일을 칭찬해 주시기 바랍니다.

그것이 서로를 세움입니다.

 

흠만 잡으려는 교회에서 살다보니

자신을 방어하기 위해 자기를 자랑하는 일들이 너무 많이 발생합니다.

아닙니다.

자기를 자랑하지 말고 그럴수록 서로의 영광을 자랑하기 바랍니다.

자기의 돌들을 세우기 위해 달려가는 것이 아니라

서로의 돌을 세우고 자랑하는 인생이 되면 얼마나 아름다운 영적인 천국이 되겠습니까?

 

아무것도 없어도

나를 향한 누군가의 격려와 사랑과 자랑과 섬김이

나를 천국으로 살게합니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누군가를 섬기고 자랑하고 격려하는 일을 찾는지도 모릅니다.

그것이 삼위일체 하나님의 영적인 원리입니다.

 

오직 자기를 자랑하는 돌들은 하나도 위에 남지 않습니다.

그러나 서로를 자랑하면 천국의 거룩한 성이 완성되는 것입니다.

삼위일체 하나님의 서로를 채우는 원리입니다.

 

 

.

 * 지난 세월 사역을 돌아보니 자랑할 것이 없습니다.

내가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가 것입니다.

 

나는 자랑할 높은 성전도 돌들도 없습니다.

이뤄놓은 업적도 자랑할 것도 없습니다.

그런데 나에게 자랑할 돌들이 있습니다.

그것은 사람입니다.

나에게는 자랑하고픈 사람들이 있습니다.

 

천준혁선교사님입니다.

저와 함께 남천교회 파송으로 7 동안 함께 사역하시다가 2010 총회로 가셔서

러스턴버그 백인 개혁교회에서 선교목사로 사역을 하고 있습니다. 

 

제가 남아공에 때에 하나님이 주셨던 마음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함께 하는 선교사와 아름다운 관계를 유지하는 것입니다.

천목사님과 사모님이 얼마나 귀하게 저희를 섬겨주셨는지 모릅니다.

덕에 지금껏 함께 생활하고 있습니다.

 

저에게도 천목사님에 대한 사명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천목사님을 자랑하고 위로하는 일이 었습니다.

귀한 분을 귀한 분으로 인정하고 자랑하는 것이 저의 사역중에 하나였습니다.

홀로 사역하며 힘겨운 시간을 보냈기에 하나님이 저에게 주셨던 마음입니다.

어딜 가든지 저는 저에게 주신 사람들을 자랑합니다.

 

선교를 나올 선교사님과 관련된 몇가지 원칙을 세웠습니다.

 

 

첫째, '우리 가정으로 인해 천목사님 가정이 힘들면 짐싸서 한국 간다' 입니다.

 

그렇습니다.

나중에 사람은 원래 있던 분들의 수고와 섬김으로 정착하고 배웁니다.

그런데 나중온 선교사가 먼저온 선교사를 무시하고 수고를 인정하지 않는 경우를 많이 봅니다.

어떤 형태로든 먼저 온분들의 수고로 뒤에 선교사들이 정착을 하고 도움을 얻어 생활하는 것입니다.

 

이유를 막론하고 우리 가정 때문에 힘들면 한국으로 돌아간다는 원칙을 세웠습니다.

감사하게 천목사님 가정이 많이 섬겨주셔서 지금껏 형제처럼 지내고 있습니다.

한번도 이렇게 해라 저렇게 해라 말한 적이 없는 분입니다.

많이 몸소 실천하고 섬겨주시는 분들입니다.

 

어떤 목사님께서 그렇게 말씀하십니다.

'목사님은 사역 성공하셨습니다'

왜그러냐고 물으니

'두분이 지금껏 형제처럼 지내는 것만으로도 성공한 사역자입니다'

저는 아무것도 내세울것이 없지만 성공한 사역자가 맞는것 같습니다.

감사한 일입니다. 

 

둘째, '천목사님이 없는 것은 산다' 입니다.

 

선교사들에게 가장 힘든 갈등은 바로 옆에 있는 선교사가 나보다 사는 것입니다.

서로 경쟁적인 마음으로 사는 것입니다.

 

그런데 늦게 선교사가 좋은 것을 사고 좋은 것을 먹고 누린다면 먼저 선교사에게 그것은 마음을 힘들게 하는 일입니다. 그래서 천목사님이 가지지 않은 어떤 것도 사지 않는 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천목사님이 없었던 카메라는 제가 그렇게 좋아하지만 사지 않았습니다.

천목사님 집보다 티비를 사지 않았고

아이들이 가지지 않은 것들은 우리 아이들에게게 사주지도 가르치지지도 않았습니다.

만약 먼저 시작하면 권해서 같이 하도록 했습니다.

 

셋째, 받은 것은 반드시 반으로 나눈다는 것입니다.

 

사람은 것에 마음 상하지 않습니다. 작은 것입니다.

작은 것이 우리의 마음을 상하게 합니다.

누군가 두부 모에,

누군가 반찬 하나에 마음이 상합니다.

누군가 뭔가를 주고 봉투를 줘도 반드시 반으로 나누었습니다.

 

그것을 내가 가지고 먹어도 나의 형편이 나아지지 않고

내가 건강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작은 것에 가장 귀한 형제를 잃어버립니다.

 

사도바울은 우리 인생의 자랑과 면류관은 형제라 했습니다.

우리는 작은 반찬, 작은 봉투 하나에 형제의 마음을 힘들게 합니다.

 

그렇게 지낸 세월 동안 저희보다 귀하게 섬겨주셨던 천목사님 가정으로 인해 지금껏 지내고 있습니다.

물론 사역의 스타일 삶의 스타일이 다릅니다.

그러나 서로의 마음을 안다면 약함도 허물도 안아주고 덮어주는 관계속에 아름다운 신뢰가 생기는 것입니다.

 

지금껏 나에게 남은 자랑은 사람,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를 나눈 사람입니다.

 

허물 많은 저희들을 지금껏 사랑으로 안아주신 두분께 깊은 사랑을 전합니다.

형제보다 진한 관계로 함께한 시간이 행복이었습니다.

누구를 만나든 천목사님의 귀함을 자랑하고 높이는 것이 저의 사명이었습니다.

귀한 분을 귀한 분으로 아는 , 그것이 행복의 시작입니다.

 

사역을 돌아보고 감사할 분을 생각하는데

지난 과거의 글이 올라오는데 오늘 글입니다.

 

사도 바울은 말씀합니다.

부득불 자랑한다면 자신의 약함을 자랑하라고,

그리고 자랑은 주안에서 사람이라고 말입니다.

 

하나님 앞에 남길 것은 오직 사람입니다.

나도 누군가에게 자랑이 되는 인생이 되기를 소망해 봅니다.

 

천목사님 사모님 감사합니다.

사랑하고 축복합니다.

 

Pastor Seo

Pastor Se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