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어야 산다>
인생이 문제가 생길때 우리는 본능적으로 자신의 문제에 함몰된다.
자신의 문제에 함몰되어 사는 인생이 죄 가운데 사는 인생이다.
그런 죄와 죄의 대가의 고리를 끊는 방법은 나를 위해 살지 않는 것이다.
죄에 대한 하나님의 구원의 길이다.
사르밧과부에게 제시한 하나님의 구원의 길은 나를 위한 한끼를 다른 사람을 위해 내 놓는 것이다.
마치 한끼를 위해 사는 인류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모습이다.
그녀와 아들이 사는 방법,
나를 위해 살지 않는 것이다.
살려는 세상에 죽어야 사는 길을 내 놓으신 하나님이다.
마치 죽을 것 같은 그곳에 생명이 있다.
그곳에 인류의 길, 생명의 길, 에덴의 길을 숨겨 놓으셨다.
숨겨 놓은 하나님의 성소를 아무나 찾지 못한다.
구원의 길은 죄의 본성 반대에 있기 때문이다.
늘 본성이 가는대로 가면 오직 종신토록 수고하고 땀흘리는 길이다.
심은대로 거두지 못한다. 그것이 죄의 대가다.
은혜는 심은대로 거두는 것이다.
하나님이 먹이시는 것을 경험하는 길은
함께 먹는 것이다.
함께 나누는 것이다.
함께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이다.
에덴에서 잃어버린 것은 <우리>이고
세상이 주기 원하는 한가지는 오직 <나>를 위해 먹고 사는 것이다.
하나님나라를 위하여 살라는 예수님의 메시지는
나를 위하여 먹고 마시고 입는 것을 넘어서는 것,
함께 먹는 인생으로의 초대이다.
성령이 임하고 그들이 만든 천국은 함께 먹는 인생으로 사는 기쁨이다.
나를 넘어서는 사람,
나를 넘어서는 목사,
나를 넘어서는 사역자를 하나님은 기다리고 기대하신다
나만 먹고 사는 인생을 넘어야 인류의 죄를 넘어선다.
사단의 첫번째 시험은 나만 먹고 사는 것이다.
두번째 시험은 나를 증명하는 것이고,
세번째는 나의 영광이다.
죄는 나만 먹고, 나를 증명하고 나의 영광을 위해 살라한다.
나를 넘어야 하나님의 영광이 보인다.
십자가는 나를 넘어서는 길이다.
죽어야 가능한 길이다.
우리는 죽음을 코 앞에 두고도 여전히 내 안에 갇혀 있다.
죽기 싫어서다.
예수를 믿어도 죄 안에 갇혀 있는 이유다.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는 이유다.
죽어야 산다.
예수님께서 그렇게 말씀하셔도 들리지 않는 이유다.
가장 듣기 싫은 말이다.
내가 듣고 싶은 것만 들리는 이유다.
내가 죽어야 산다.
다들 죽지 않고 더 잘살려 한다.
서로 상처만 받는 이유다.
나에 대해서 죽으라 하시는데
세상은 더 잘살라고 한다.
죽어야 천국을 본다.
죽지
않으면 천국은 없다.이 땅에서도 저 하늘에서도.
그것이 진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