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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귀는 \'고쳐 주시니\'까지 가야 합니다 3/3>

<나귀는 \'고쳐 주시니\'까지 가야 합니다 3/3>

 

 

<나귀는 '고쳐 주시니'까지 가야 합니다 3>

 

<나귀의 의미>

 

주님은 나귀를 타신 삶을 어떻게 증명하십니까? 

성전에서 상을 엎으시고 매매하는 자를 쫓아내시고 의자를 엎으셨습니다.

 

첫째, 나귀의 의미가 무엇인지 아십니까? 

 

나귀를 타신 주님이 하신 일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약한 자들, 

아픈 자들, 

나를 필요로 한 자들에게 나의 <손을 내 미는 것> 입니다. 

그들을 <고쳐주는 것> 입니다.

 

"맹인과 저는 자들이 성전에서 예수께 나아오매 <고쳐주시니>"(21:14)

 

세상은 합리와 이성으로 비판합니다. 

온 세상이 교회를 비판하고 성도가 교회를 비판하고 목사를 욕합니다. 

목사도 목사를 욕합니다. 

 

아닙니다. 

주님은 상을 엎으시고 매매하는 자들을 쫓아 내셨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약한 자들과 힘이 없고 도움이 필요한 자들과 함께 하셨습니다.

우리는 나귀도 탑니다. 

겸손한 모습도 보입니다. 

교회의 약한 모습에 비판도 하고 개혁도 외치고 이렇게 해서는 안 된다고 상도 엎어버립니다.

그러나 정작 주님처럼 맹인과 저는 자들의 손을 잡지는 않습니다. 

아프고 외로운 눈물의 인생들의 친구가 되지는 않습니다.

 

<나귀는 탄다는 것의 의미>

 

둘째, 주님의 겸손은 무엇입니까? 나귀를 탄다는 것이 무엇입니까? 

상을 엎는 일, 믿음으로 산다는 것은 무엇입니까?

 

가장 약한 자들 곁에 함께 하는 것입니다. 

나의 필요를 원하는 자들의 손을 잡는 것입니다. 

그들의 눈물을 닦고 그들의 걸음에 함께 동행하는 것입니다. 

세상에서 믿음이 있음의 다른 말은 약한 자들과 함께 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나귀 타는 일이고 그것이 믿음을 증명하는 것입니다.

 

나귀를 타셨습니까? 사람들에게 겸손한 모습을 보이셨습니까? 

잘 하셨습니다. 교회를 향하여 교회가 이래서는 안 된다고 소리도 치시고 고함도 치시고 상도 엎으시고 사람도 내 쫓으셨습니까? 잘 하셨습니다.

그럼 약한 자들과 힘 없고 나의 도움이 아니면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눈물 흘리는 자들과 함께 하셨습니까? 

그들의 친구가 되고 그들을 찾아가고 그들의 눈물을 닦아주셨습니까?

 

세째, <고쳐주시니>의 삶이 없는 나귀를 타는 일과 상을 엎고 소리를 치고 사람을 내 쫓는 모든 것은 아무것도 아닙니다.

 

내 힘을 빼고 높은 자리에서 내려오고 나귀를 타고 성전을 바르게 잡는 의로움은 다른 일이 아닙니다.

나의 필요를 원하는 곳에 그들과 <함께> 있는 것입니다.

 

사람들을 향하여 욕을 하고 교회를 향하여 이렇게 해서는 안되다고 외치며 상을 엎은 사람일수록 더 많이 나를 필요로 하는 곳에 가야 합니다. 그렇지 않다면 아마 그 사람은 대제사장이나 서기관일 가능성이 많습니다.

 

자기의 자리를 확보하기 위해 그 자리를 넘보는 자들 말입니다. 예수를 믿는 것을 그분이 걸어가신 길이 답이라고 믿는 것입니다. 그 길을 걷는 것입니다. 그 길은 나귀를 타는 겸손과 이성과 합리가 아니라 믿음으로 기도하는 일입니다. 

 

그 믿음의 길의 집합체는 바로 나를 필요로 하는 자들과 마음을 같이하고 실제적인 고침의 자리, 실제적인 도움의 자리까지 가는 것입니다.

이것이 없는 신앙! 

하나님의 아픔입니다.여러분의 필요를 원하는 한 사람! 그 사람에게 가셔서 여러분의 나귀를 타는 일을 완성하십시오.

 

나귀를 타는 일은 <고쳐 주시니>의 일까지 가야 합니다. 

여러분을 통해서 말입니다.

그것이 나를 세우신 이유입니다. 

<믿음의 증명>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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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덕교회 이성수목사님 가족입니다.

제가 전도사 1학년 때입니다. 

전도사지만 간사로 일년을 봉사했습니다. 

사례는 천안까지 가는 차비와 헌금을 내면 딱 맞았습니다. 

부모님 집에 함께 사는 시절, 생활비는 전혀 없는 시절이었습니다. 

 

이목사님께서 하루는 봉투를 주셨습니다. 

10만원이었습니다. 지금도 크지만 그때도 적지 않은 돈이었습니다. 

일 년 동안을 매달 그렇게 주셨습니다. 

자신의 기름값이 교회에서 10만원 올랐다고 오른 그 돈을 저희 가정에 주셨습니다. 

얼마나 큰 은혜 인지요.

2011년 가덕교회에서 가덕교회 선교관을 제일 먼저 사용한 선교사의 선교지로 선교를 온다고 

하시고 처음 가덕교회 선교관을 사용한 저의 선교지인 남아공으로 청년들과 오셨습니다. 

10년 전에 받았던 사랑의 빚을 갚았습니다. 

그런데 생각이 났습니다. 은혜는 평생 갚는 것이다.

 

2012년 안식년을 가기 전에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한국 가서 무엇을 할까요? 

하나님이 주신 마음은 위로하라 였습니다.

이목사님 가정을 위해 기도하다 함께 여행을 가야겠다 생각했습니다. 

목사님 가정을 모시고 전국을 다녔습니다. 

기름값은 한숲교회의 형제가 도움을 주셨습니다. 

일주일 일정을 잡고 여행을 다녔습니다.

 

서울에서 사역을 하셨고 

부산에서도 사역을 하신 목사님의 가족이 가덕도 섬으로 가셔서 목회를 하십니다. 

이 가족들을 위한 일은 온 가족을 모시고 그 섬을 나오는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여기 저기서 주시는 용돈으로 이목사님 가족과 여행을 신나게 다녔습니다.

다니면서 알았습니다. 

수 많은 가덕교회를 찾아오시는 분들 섬기시느라 아이들 옷 한 벌, 

아이들 신발 한컬례 사주지 못하고 먹을 것 제대로 사주지 못했음을.

그때 알았습니다. 

 

10년 전 차비가 올라 여유가 있어서가 아니라 

저희 가정을 향한 사랑과 헌신임을 말입니다.

 

이성수목사님은 나귀를 타십니다. 

그리고 성전의 상을 엎고 이렇게 해서 안된다고 외치시는 분입니다. 

그리고 이 가정은 가난하고 외롭고 인생의 길이 무거운 한 가난한 사역자의 삶에

<고쳐 주시니>의 의미가 무엇인지 알게 해주셨습니다. 

 

약하고 힘든 자들에게 손을 내미는 것이었습니다.

나의 지금의 모습은 바로 이목사님 가정과 같이 

가난한 사역자의 외로운 길에 <고쳐 주시니>의 은혜로 세워진 사랑의 은혜입니다.

 

어디 이목사님 뿐입니까? 

나에게 손을 내미신 수 많은 분들,

그리고 일일이 다 기록하지 못하지만 남모르게 

<고쳐 주시니>의 삶으로 다가오신 수 많은 보석 같은 사람들 때문에

지금의 저로 부족하고 허물 많으나 지금의 저의 모습으로 서있게 된 것입니다.

 

그 10만원은 평신도로 살다가 사역자로 처음 받아보는 섬김이었습니다. 

그것이 예수님의 나귀를 타는 모습이었음을 오랜 시간이 지나서 더 깊이 깨닫습니다. 

안식년 가서도 많은 사랑을 받고 왔습니다. 

나름 한다고 그 <고쳐 주시니>의 빚을 갚는다고 갚지만 그러나 또 기억합니다. 

 

<평생 갚아야 하는 은혜> 란 것을!

저에게 이런 분이 몇 분 더 있습니다. 

평생 갚아야 하는 은혜의 빚을 진 분들이 말입니다.

 

저는 압니다. 

사람은 상을 엎는다고 나귀를 타는 흉내를 낸다고 

매매하는 사람을 쫓는다고 사람이 변하지 않습니다. 

오직 <고쳐 주시니>의 손 내미는 사랑이 있어야 변한다는 것을 말입니다.

 

우리가 회복해야 하는 것은 믿음의 

<고쳐 주시니>입니다.

우리는 누군가의 <고쳐 주시니>로 세워지고 고침을 받고 

회복되고 인간으로서의 아름다운 삶을 살게 되는 것입니다.

 

기회가 되는대로 저에게 이런 <고쳐 주시니>의 은혜를 알게 하신 분들을 소개하려합니다. 

이성수목사님과 그 가정에 또 가슴 깊은 감사의 마음을 전합니다.

 

"사랑합니다."

Pastor Seo

Pastor Se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