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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조심해야 할 것>

<우리가 조심해야 할 것>

 

 

우리가 조심해야 (14:34-36)

 

 

우리가 예수님을 진짜 믿지 않는다는 증거는

다른 사람을 부르지 않는 것입니다.

 

우리가 진짜 예수를 안다면 우리는 반드시 다른 사람을

예수님께 인도하게 됩니다.

그런데 예수를 알지 못하니 자꾸 생각에 머물고 행동하지 못합니다.

 

오병이어로 천명의 사람들이 예수님에 대해서 알아버렸습니다.

제자들이 굳이 알리지 않아도

예수님의 대한 소문이 바다 건너 게네사렛 땅에 퍼졌습니다.

예수님이 땅에 도착하자 이제는 사람들이 알아봅니다.

오병이어를 경험한 사람들,

소문을 들은 사람들이 이제는 자기들이 환자들을 데리고 옵니다.

 

경험은 지식으로 쌓이고

지식은 행동으로 옮겨집니다.

경험되어진 지식이 믿음으로 이어질 기적은 이어집니다.

 

"그 곳 사람들이 예수신 줄을 <알고>

그 근방에 두루 통지하여 모든 병든 자를 예수께 <데리고 와서>

다만 예수의 옷가에라도 손을 대게 하시기를 <간구하니>

손을 대는 자는 다 나음을 얻으니라"(마14:35-36)

 

 

기적은 영적인 단계를 반드시 지나게 됩니다.

 

첫째, <알고> 입니다.

 

소문을 들었습니다.

그리고 사람도 빵과 물고기를 먹고

불쌍히 여기시는 예수님 덕분에 많은 병자들이 고침을 받았습니다.

소문은 지식이 되어 입소문을 통해 이곳까지 전해졌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알고 있는 사람들이 이제는 예수님이 필요한 사람들을 불러옵니다.

 

경험되어진 지식은 확신으로 찾아옵니다.

그러나 경험하지 못하면 결코 다름 단계로 가지 못합니다.

 

반드시 경험되어진 알고의 지식이 우리를 데리고로 나아가게합니다.

 

둘째, <데리고>입니다.

 

우리의 문제는 알기는 압니다.

그러나 내가 경험한 일이 아니기에 데리고 까지 나아가지 못합니다.

 

경험되어진 <알고> 과정을 지난 사람만이

<데리고> 과정을 지납니다.

 

알고를 지나야합니다.

알고를 지나면 14 마지막절과 반대의 결과가

13 마지막 절에 일어나고 있습니다.

 

"저희의 믿지 않음을 인하여 거기서 많은 능력을 행치 아니하시니라"(58)

 

고향 마을에서도 같은 능력을 보았습니다.

같은 기적들을 보았습니다.

그런데 잘못된 지식이 잘못된 열매를 낳습니다.

 

<데리고> 문제는 <알고> 문제에 기인합니다.

 

복음의 선입견,

사람에 대한 선입견은 알고의 문제를 왜곡합니다.

 

한번 왜곡된 지식은 <알고> 나아가지 못하게합니다.

그러나 자기가 경험한 것이 <전부> 알고 그것만 고집하는 것도 문제입니다.

 

 

무리들은 오직 나음에 국한되어 오늘 예수님께 나아갑니다.

이유는 그들이 보고 경험한 것이 그것이기 때문입니다.

 

 

셋째, 우리가 조심할 것들

 

우리가 조심해야할 것은 바른 입니다.

<데리고> 나의 앎에 제한됩니다.

 

내가 어떤 목사님을 좋아한다고 하면 목사님이 세상에서 최고입니다.

내가 책을 좋아한다고 하면 모든 책보다 책이 최고입니다.

자기가 경험한 안에 갇히게 되는 우를 범하게 됩니다.

 

한번 영적인 부흥과 열매를 경험한 사람의 문제는

모든 사람,

모든 교회,

모든 시스템에 자기가 경험한 방법을 의지하고 그것을 적용한다는 것입니다.

 

<알고> 지식은

내가 경험한 방법에 제한을 두어서는 안됨을 전제합니다.

 

무리들은 오늘 오직 자기가 경험한 나음에 제한을 두고 사람들을 데리고 옵니다.

그것이 귀합니다.

주님은 우리를 병나음의 은혜로 나아가게 하시는 분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것만 경험하고 보고 나면 오직 울타리 안에 갇혀버립니다.

 

내가 본것,

내가 경험한 것으로 다른 사람, 다른 일도 동일하게 적용을 한다는데

문제가 생깁니다.

 

예를 들면,

이전 교회에서 어떤 프로그램으로 부흥을 경험했다면

우리를 부흥의 경험으로 교회를 옮기고도 동일한 방법을 적용한다는 것입니다.

 

한마디로

내가 써서 나은 감기약을 모든 증상의 병에 동일하게 적용한다는 것입니다.

 

무리들이 주님을 경험한 것은 치료하시는 하나님!

오직 한가지에 국한됩니다.

그래서 그들은 예수님을 알아보고 오직 아픈 자들만 멀리까지 가서 불러옵니다.

 

알고는 데리고를 낳게됩니다.

이것이 진짜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알고>에서 <데리고> 과정을 지날

유기적으로 일하시며 사람과 교회와 토양이 다르기에

내가 알고 있는 경험의 울타리에 하나님을 제한해서는 된다는 것을 기억해야합니다

 

오늘 이렇게 말하는 이유는

오늘 본문 이후 문제를 심각하게 다루고 있어서입니다.

 

복음은 생명입니다.

생명은 획일화된 상품이 아니라 살아있는 유기체이고

한가지로 정의되지 않는 다양한 유기체적 배경 안에서 일합니다.

 

자기가 경험한 것으로 사람들을 제한하고

방법만이 전부라고 여기며 사람을 판단하는 일들을 종종봅니다.

 

" 경험에 사람의 행동은 정말 아니더라"

"내가 사람은 이게 문제더라"

 

그렇게 나의 경험과 생각으로 사람을 제한해 버립니다.

아니 나의 경험과 지식으로 하나님을 제한해 버립니다.

그것이 가장 문제입니다.

 

홍정길목사님께서 복음주의 4 인방의 성장지향적 목회를 후회한다고 하셨습니다.

그것이 인줄 알았고

그것이 전부인줄 알았고

그것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인줄 알았다는 것입니다.

후배들이 고백 위에 아름다운 복음적 교회를 세우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진솔한 고백을 하셨습니다.

 

무슨 말입니까?

내가 아는 교회는 성장이 최고라는 것입니다.

내가 아는 교회는 것이 하나님의 기쁨이라는 논리로 교회가 왔다는 것입니다.

 

오늘 무리들도 마찬가지입니다.

병을 고침 받은 경험과 것으로 오늘 다시 그런 사람들만 불러옵니다.

이것이 귀하지 않은 것이 아닙니다.

알고는 데리고를 낳습니다.

그러나 알고와 데리고의 사이에 성령의 자유롭게 일하시는 공간을 만들어야한다는 것입니다.

 

내가 원하는 방향이 아니라

성령께서 친히 이끌어가실 공간을 만들지 않으면

우리는 내가 원하는 곳으로 교회가 가고

사람이 가고 조직이 가는 것이 은혜라고 여긴다는 것입니다.

 

주님의 십자가의 방향은 어디로 향합니다

성령입니다.

성령께서 일하시도록 전부를 의뢰합니다.

제한하지 않습니다.

 

죄지은 자도 세리도 죄인도 간음한 여인도 예수님은 먼저 제한하지 않습니다.

성령께 유기적이고 생명력을 가지고 어떻게 인도하실지 그분게 맡기는 겸손이 있다는 것입니다.

 

알고를 지나 데리고로 나아갈

내가 아는 <알고> 사람과 교회와 앞으로의 일을 제한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성령께서 일하심의 공간을 만드는 ,

그것이 알고의 의미입니다.

 

자칫 잘못하면 교회는 병자를 고치는 병원이 있습니다.

교회의 본질은 병원만이 아니라 군대여야하고

군대 뿐만 아니라 가정이어야하고

가정 뿐만 아니라 학교여야합니다.

 

오늘 주님을 경험한 사람들은 오직 병원에만 국한하여

병자들만 데리고 오는 결과를 낳게 되었습니다.

 

이것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사람은 자신의 경험으로 익힌 <알고> 통해 유일하게 <데리고> 자리로 나아갑니다.

그러나 알고를 지난 사람은 내가 아는 알고의 울타리에만 국한되어서는 안됨을 말합니다.

한가지만 아는 알고는 결국 예수님을 배척하고 고향땅에서처럼 아무 일도 하지 않게 되기도 한다는 것입니다.

 

 

한국교회는 교회하면 한가지만 생각합니다.

목사도 그렇고 성도도 그렇습니다.

오직 <숫자>입니다.

 

지금 시대의 사람들은 모두 숫자입니다.

세상은 얼마나 돈을 많이 버느냐입니다.

한가지로 자신의 경험의 전부를 제한합니다.

 

성령하나님께선 숫자를 일으키시기도합니다.

그러나 때로는 고치시기도하시고

때로는 쉬게도 하시고

때로는 먹게도 하시며

때로는 보이지 않는 40년의 시간을 머물게도 하십니다.

 

숫자라는 <알고> 울타리에 갇힌 사람은 쉬는 것은 죄라고 여깁니다.

그들의 눈으로 보면 먹는 것은 악입니다.

그들의 눈으로 보면 40년의 광야는 허송세월입니다.

 

생각해야합니다.

성령은 때로 고치기도하시고

때로 먹게도 하시고

때로 홀로 광야에 있게도 하시며

때로 목숨을 걸고 하늘의 불이 내리기를 간구하기도합니다.

 

알고와 데리고 사이에 성령이 일하실 공간을 만들어야합니다.

내가 아는 알고는 오직 한가지 경험만으로 이야기 해서는 안됩니다.

 

그런 관점에서

우리는 너무 많은 죄를 짓습니다.

성령이 일하시는 쉬고, 먹고, 기다리고, 치료하고, 훈련하시는 것은 부질 없다고 여깁니다.

내가 원하는 교회가 되지 않으면

목회자는 죄를 짓는 사람으로 치부해 버립니다.

내가 원하는 목회자는 숫자를 많이 불리는 목회자인데

쉬고 있으면

훈련하고 있으면

기다리고 있으면

사람은 목사도 아니라는 것입니다.

 

알고의 오류를 조심해야합니다.

우리가 열심이 없어서가 문제가 아니라

열심의 근거가 <제한된> 나의 <> 이어서 문제입니다.

 

 

넷째, touch입니다.

 

알고 그리고 데리고 오며 그리고 손을 대는 과정을 가게됩니다.

 

이것은 실제적인 믿음에 근거한 행동입니다.

예수님의 옷에 손을 대면 낫는다는 믿음이 있었습니다.

믿음에 의해서 옷에 대기를 간구했습니다.

그리고 손을 대자 나았습니다.

 

우리의 행동의 근거는 내가 믿는 믿음대로입니다.

옷에 손을 대면 낫는다고 믿으면 그렇게 허락하시는 분이 예수님입니다.

 

예수님의 일하심의 근거는 우리의 믿음입니다.

믿음대로 되라~

그것이 주님이 일하시는 방법입니다.

 

내가 제한하면 그곳에는 결코 일하지 않으십니다.

그러나 내가 제한하지 않으면 하나님도 제한하지 않으시고 제한 받지 않으시고 일하십니다.

 

믿음이 있음의 증명이 바로 옷에 손을 대는 것입니다.

우리는 데리고까지 나아갑니다.

이것도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손을 대는 믿음,

믿음에 근거한 어떤 행동이 있을 주님을 경험합니다.

 

그것이 바로 touch입니다.

믿음은 touch 만듭니다.

손을 대는 행동은 믿음에서 나옵니다.

믿음이 있기에 손을 대기를 간구합니다.

손을 대면 나을 있다는 믿음이 있기에 손을 댑니다.

 

우리에게 마지막으로 마음이 없습니다.

내가 이렇게 하면 주님은 이렇게 하실 것이라는 기대가 없다는 것입니다.

 

Touch 기초는 <기대>입니다.

 

기대함 없는 인생은 믿음의 열매가 없습니다.

말씀을 따라가는 사람은 기대감이 풍성합니다.

 

내가 믿는 바에 따라 주님은 이루어주십니다.

믿는 대로 되는 인생 시리즈( 7)에서 없이 이야기를 했습니다.

 

주님은 우리를 우리가 믿는 대로 인도하십니다.

그것이 주님이 일하시고 일하지 않고의 근거입니다.

 

그러나 우리에게 믿음에 근거한 touch 없습니다.

알고도 있고 데리고 와서도 있습니다.

그런데 기대함으로 나아가는 touch 없습니다.

 

마지막 주님의 주님 되심을 다시 경험하게 하는 마지막 단계입니다.

 

모세에게 지팡이를 미는 것이 touch 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에게 여리고 성을 도는 것이 touch입니다.

엘리야에게 그릿 시냇가에 앉아 있는 것이 그것입니다.

 

믿음이 있으면 우리는 반드시 touch 해당하는 삶의 수고가 있습니다.

기대하는 마음으로 주님께 행하는,

사람에게 행하는 마지막 !

 

거기까지 가야합니다.

그래야 하나님의 일하심을 보게 됩니다. 

 

 

 * 홍정길목사님께서 최근 인터뷰에서 말씀하시길,

한국교회는 성경공부에 숨지 말라고 하십니다.

좋은 말이 좋은 목사가 아니라고 하십니다.

앎은 데리고를 지나 touch가지 가게 됩니다.

진정한 영혼의 감동, 삶의 진동은 touch 경험할 때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길을 돌아 사마리아 한가운데 우물가의 여인을 touch하셨습니다.

 

옆집에 사는 이슬람 친구 스티브가 그집 딸아이를 통해 봉투를 전달합니다.

한국돈 15만원정도가 들었습니다.

이유가 없는 상황이라 왜그러냐고 물으니 '그냥'이랍니다.

한동안 마음이 힘든시간을 지날때 전해주는 그의 봉투는

하나님을 믿지 않는 다를 통해 전하시는 하나님의 위로의 음성입니다.

우리의 영혼이 감동하고 진동하는 것은

앎고 데리고는 지난 touch 손길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이렇게 터치하시고 감동케하시고 힘을 주십니다.

우리의 인생이 터치까지 가야 하는 이유입니다.

 

 

Pastor Seo

Pastor Se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