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늘 내가 문제다>
세상적으로 좋은 조건의 목사를 구하려다 교회가 세상에 빠져버렸다.
세상보다 더 세상적인 교회가 되었다.
그곳에서 빠져 나오기 위해 더 세상적인 조건의 목사를 찾는다.
교회가 늪에서 헤어나오지 못하는 이유다.
좋은 조건의 목사가 아니라 어떤 조건에도 전부를 드리는 목사여야 한다.
세상은 좋은 조건을 채우라 속삭인다.
조건이 좋으면 잘 될 것이라 속이고 착각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좋은 조건보다 어떤 조건에도 전부를 드릴 수 있는 목사이어야 한다.
좋은 조건보다 하나님만 의지 하는 목사여야 한다.
환경이 아니라 성령의 이끄심에 순종하는 목사여야 한다.
그것이 믿음의 본질, 사역의 핵심이다.
계산 보다 믿음이,
조건 보다 정직이,
수단보다 관계를 더 중요하게 여기는 목사여야 한다.
나는 그런 목사인가?
하나님 앞에 부끄러움이다.
성도들을 그렇게 만든 것은 다 목사다.
더 계산적이게 만들고
더 좋은 조건 따지고
더 좋아 보이는 것 따르게 만든 것이 다 목사들의 문제다.
그러고 보니 내가 목사다.
목사에다 선교사다.
나는 어딜가도 문제다.
리더가 회개해야 소망이 보인다.
늘 내가 문제다.
감동 프로젝트가 진행되고 있다.
기다렸다는 듯이 마음으로 함께하는 분들이 연락을 주신다.
생활비도 없는 사모가 남편 강사료로 받은 봉투를 보낸다.
공부하는 학생이 자기 한달 생활비보다 많은 돈을 보낸다.
부모님을 모시고 임신 중 입덧 때문에 자기 먹을 것도 먹지 못하면서
어려운 여건중에 계신 목사님 귀한 것 대접하라고 마음을 담아 물질을 보낸다.
자기 아이 병원에 입원해 있으면서 소식을 듣고 선듯 한끼 식사라고 마음을 전한다.
기독교인이 아닌데도 어려운 목사님 도운다니 선듯 마음을 보낸다.
제자였던 선교사 부부가 지구 반대편에 자기들보다 한국에서 더 힘들게 사역하는 목사님 섬기라고
생활비를 보내왔다. 내가 보기에는 자기들이 오지에서 고생하는 선교사들인데…
어떤 부부는 우연히 만나게 된 선교사님 부부, 선교사님 자신은 머리가 금이가고,
사모님은 암으로 오늘 내일 하고,
사모님의 언니는 요양중이시며 앞날을 알지 못하며 고민하시는 분들에게 나의 글을 읽고
위로의 시간을 보냈다고 연락이 왔다.
암 수술을 한 자매가 앞으로 인생을 어떻게 살지 고민하면서도
감동 프로젝트에 함께 하고 싶다고 물질을 보낸다.
다들 마치 기다렸다는듯이 마음을 담아 한끼 식사, 감동을 전한다.
작은 섬김으로 시작했는데 하나님은 나에게 더 큰 감동으로 인도하신다.
주께서 그들의 삶에도 동일한 감동으로 채우시기를 기도한다.
하나님은 늘 우리의 작은 드림을 기억하신다.
그래서 천국에서 양과 염소를 나누는 기준은 한끼 식사다.
하나님이 천국과 지옥을 나누는 기준이다.
생각해보니 목사가 문제다.
아니 내가 문제다.
성도들은 더 잘 섬길 준비,
더 하나님 뜻대로 살 준비가 되었는데
목사는
나만 잘 살고
나만 더 높아지고
나만 생각하고 산것은 아닌지
오늘은 또 회개다.
목사가 문제다.
아니 내가 문제다.
나만 잘하면 성도는 늘 잘한다.
늘 내가 문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