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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오해 하는 것들2- 잘 사는 것>

<우리가 오해 하는 것들2- 잘 사는 것>

 

 

 

<우리가 오해 하는 것들2- 사는 >

 

돌이켜 보면 가장 예수를 믿을 때는 가장 힘든 시간을 보낼 입니다.

이스라엘이 가장 하나님과 가까운 때는 광양에서 입니다.

날마다 만나를 먹고 구름기둥과 불기둥이 이끄는 대로 살았던 최고의 영적 충만은

광야에서 하나님만이 소망이 입니다.

 

삶이 가난하고 곤고하니 하나님의 축복으로 부함을 구합니다.

그렇게 하나님은 우리의 기도에 신실하게 응답하셔서

먹고 살만하고

마음만 먹으로 뭐든 먹을 있고,

준비만 하면 어디든 여행을 있는 부유한 시대입니다.

그런데 우리의 부함과 반대로 우리는 영적인 상태는 더욱 공허해 갑니다.

 

우리는 부함을 구하고

예수님은 심령이 가난한 곳에 천국이 임한다고 말씀하십니다.

 

심령이 가난해야 말씀이 들립니다.

그런데 우리는 말씀을 듣고 순종하기에는 너무 부합니다.

아무리 말씀이 좋아도 변하지 않는 이유입니다.

 

가나안 땅에서 하나님이 능력이 없어서 이스라엘이 타락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손이 짧아 구원하지 못함도 아닙니다.

다만 하나님의 능력과 구원을 받을 심령의 가난함이 없기 때문입니다.

이미 돌이키기에 너무 많이 가졌기 때문입니다.

 

몸이 편안함에 익숙하면 심령의 가난함의 샘물이 말라버립니다.

몸은 편하지만 영혼속에 하늘의 샘물이 깃들지 못합니다.

편안하면 기도하지 않습니다.

부하면 불편한 말씀을 듣지 않으려고 합니다.

 

신앙의 성숙은 가짐에 상관없는 마음의 가난함입니다.

그래서 가난할 밖에 없는 현실에서의 풀리지 않는 숙제들,

자녀 문제, 경제문제, 질병의 문제, 관계의 문제는

나를 영적인 가난함으로 인도하는 광야와도 같은 것들입니다.

 

심령이 가난하지 않는

첫번째 증상은 <예의없음>입니다.

갑질이 난무한 한국입니다.

 

물질의 부함이 다른 사람에게 나타나는 현상은

<무례함> 입니다.

선교지에서 현지인들에게 가장 많이 듣는 한국 사람에 대한 이미지,

선교사에 대한 이미지는 무례함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주신 물질의 축복으로

어느사이 우리보다 열악한 삶을 사는 자들에게 갑질을 행하고 있습니다.

어느 대기업 딸의 땅콩 갑질을 우리는 다른 형태로 드러내고 있는 것입니다.

 

어찌보면 이건 당연합니다.

심령이 가난하지 않은 곳에 나타나는 영적인 현상입니다.

 

다들 살고 싶어 열심히 일합니다.

그래서 그에 대한 대가를 얻어 우리는 형편이 나은 사람들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기억해야 합니다.

사는 것은

가나안이 물댄 동산이어서가 아니라,

형편이 나아진 물질의 축복이 있어서가 아니라

갑질할 있는 장소에서 을로 사는 가난함입니다.

 

그래서 주님이 거듭 거듭 말씀하십니다.

 

"너는 애굽에서 종 되었던 것을 기억하고"[신16:12]

 

아무리 살아도 우리는 종이었습니다.

그것을 기억하고 그때 가졌던 소망,

그때 느꼈던 모멸감,

그때 가졌던 내가 살면 힘들고 어려운 자들을 기억하고

그들을 도와주고 섬기는 삶을 살겠다는 다짐들입니다.

 

잘사는 것은,

내가 부해지고 넉넉해지는 환경의 넉넉함이 아닙니다.

 

사는 것은 나의 형편과 상관없이

나의 종되었던 것과 종들을 구원하신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이것이 나보다 남을 낫게 여기며 대접을 받고자 하는대로 남을 대접하는

율법과 선지자 가르침이고 복음의 핵심입니다.

 

그런 종들을 위해 자신의 일처럼 독생자를 보내셔서 우리를 구원하신 하나님처럼,

동일하게 우리에게 고아와 과부와 나그네와 연약한 자들을 섬기라고 하십니다.

 

우리가 사는 !

물질의 축복이 아니라 물질의 축복 속에서도

애굽의 종되었던 시절을 기억하고 그들의 약함을 함께 지는 것입니다.

그것이 사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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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토고자니 목사님을 오시라고 했다.

 

양철집에 양철교회를 오래 목회하고 건축하고 이제 형편이 나아지나 했더니

이라크 개척에 버퍼존 개척에 몸이 많이 상했다.

아이둘 대학 보내고 성도들 어려운 일들 해결하느라 당뇨에 고혈압에 스트레스로 고생을 한다.

거기다 몇주전 강도를 당해 사모님 학비와 핸드폰 모두를 잃어버려서 위로를 하기도 했지만, 

감사하게 한인교회에서 설교 초청을 해서 위로를 많이 받았다.

오늘 집에 있는 물건들을 챙겨서 보냈다.

아내는 어느 집사님께서 보내주신 과일이며 음식들을 따로 챙겨준다.

 

나는 저들의 삶이 애처롭다.

이것밖에 못하느냐고 말할 수있지만,

주어진 삶에 자기들이 아는 만큼 최선을 다해 사는 삶이 존경스럽다.

그런 어려운 선교 현장에서 첫번째로 자립한 교회로 목숨걸고 사는 것을 나는 안다.

 

저들을 보며 다짐한다.

살아야지!

나는 저들 보다 못한 사람인것 잊지 말아야지!

갑질 안해야지!

섬겨야지!

 

나머지는 주께서 성령으로 일하심을 믿는다.

나는 오늘도 주님을 믿기에

가난한 마음을 지키려 한다.

그것은 저들이 길이 아니라 내가 길임을 알기 때문이다.

 

살아야 한다.

부함을 구하지 않고

심령의 가난함을 지켜야 한다.

그래야 내가 산다.

그래야 내가 영적으로 사는 것이다.

 

 

 

 

 

Pastor Seo

Pastor Se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