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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 안에서 변해야 할 우리의 가치 7- 주인됨>

<복음 안에서 변해야 할 우리의 가치 7- 주인됨>

 

 

 

 

<복음 안에서 변해야 우리의 가치 7- 주인됨>

 

교회 안에서 다들 주인 되려 한다. 

주도권을 잡기 위해, 주도권을 놓치지 않기 위해 보이지 않는 싸움에

진리를 위한 싸움은 뒷전이다.

 

어디 교회만 그런가?

한국 안에서 살면 모른다.

모두 주인 되려 한다.

모두 주인행세 한다.

조그만 힘만 생기면, 작은 권력만 생기면 다들 주인 행세 한다.

하다못해 조그만 지식만 가져도 지식이 섬김의 기회가 아니라 힘의 기회로 삼는다.

어떻게 하면 섬길까를 고민하지 않는다.

어떻게 하면 힘있는 자리에 앉을까 한다.

주인 되고 싶어서다.

 

힘이 없을 때는 모른다.

능력이 없을 때는 모른다.

그러다 조그만 , 작은 능력, 작은 자리만 생기면 어김없이 마음대로 하려 한다.

목사든 성도든 한국 사람은 기회만 생기면 주인되려 한다.

 

가장 최악의 모습은

주인 되려 하는 사람이 감정적으로 사는 것이다.

주인 되려는 사람이 자신의 감정이 우상이 되어서 감정에 따라 살게 되면

그것은 사람이 속한 조직과 공동체는 최악으로 치닫는다.

 

주인 되려함의 특징이 무엇인가?

 

첫째, 자기 기분, 자기 감정이 우선이다.

둘째, 인격적으로 섬기는 일이 없다.

셋째, 작은 소자들과의 나눔이 없다.

넷째, 예의가 없다.

다섯째, 다른 사람의 말을 경청하지 않는다. 듣는 척은 하지만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여섯째, 시간이 지나서 나는 됐는데 주변 사람들은 힘들다. 

일곱째, 결국 문제로 갈등이 된다. 주인 되려는 자들의 공통점은 결국 돈으로 귀결된다.

여덟째, 개인적인 헌신의 열매가 없다. 

아홉째, 말로 한다.

번째, 시간이 지나 사람이 남지 않는다.

 

사람들이 이런 저런 이야기를 많이 한다.

교회를 위해서 이래야 하고, 일을 위해서 저래야 하고 좋은 논리와 방법을 놓는다.

그러나 나는 사람의 진심을 어떻게 확인하는가?

개인적으로 어떤 헌신을 했는가를 본다.

어떤 섬김의 삶을 사는지를 본다.

그것이 없다면 사람은 어김없이 자신이 주인되려 하는 사람이다.

헌신하지 않으면서, 섬기지 않으면서, 종으로 사는 구체적인 삶이 없으면서 하는 모든 말은,

그냥 말이다. 그것 이상도 이하도 없다.

 

그러나 조심해야 하는 것은 헌신과 섬김을 이용할 때이다.

무슨 말인가?

많이 헌신한 사람, 많이 헌금한 사람, 많이 일한 사람들은 헌신을 자신의 의로 삼는 것이다.

헌신이 자신의 의를 세우는 기회로 삼는 것이다.

헌신을 주인됨의 근거로 삼는 것이다.

 

실은 교회 안에서 갈등은 이런 사람들에게 많이 나타난다.

자신의 헌신의 강도 만큼 자신의 주도권을 요구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많이 헌신한 사람은 끝까지 침묵해야 한다.

가장 헌금 많이 하는 사람은 많이 침묵해야 하고,

가장 봉사 많이 하는 사람은 많이 낮아져야 한다.

자신의 의가 주인 되려함의 기회로 삼아서는 안된다.

 

그래서 성경에서 우리의 주인됨을 어떻게 평가 하는가?

종말장인 마태복음 25장을 보면 마지막 날의 심판의 모습을 보여주신다.

그곳에서 양과 염소를 구분하는,

의인과 악인을 구분하는 평가 기준은 단순하다.

작은 소자를 어떻게 대했느냐로 평가한다.

 

무슨 말인가?

주인되려는 사람들은 작은 자들에게 관심이 없다.

높은 사람, 높은 , 것에 관심이 간다.

그래서 작은 소자들, 외면 당하고, 소외 당하는 고아와 과부들,

세상적으로 소망이 없어 보이는 자들에게 대해서는 관심이 없다.

그것이 주인 되려는 자들의 특징이다.

그것 한가지로 우리의 심판은 이루어진다.

 

"소자에게 것이 나에게 것이다."

 

주인 되려는 자들은 소자에게 마음이 없다.

담임목사에게 잘하는가 아니면 이름 없는 전도사에게도 잘하는가?

내가 사업 잘하는 분에게 하는가 아니면 가난한 성도에게도 잘하는가?

 

예수를 믿는 다는 것은 내가 주인으로 살던 삶을 내려 놓겠다는 것이다.

그래서 교회를 주셨다.

교회는 내가 주인이 아니라 그리스도가 주인임을 고백하는 실제적인 삶의 현장이다.

그래서 예수 믿는 순간 모두에게 은사를 주셨다.

내가 주인이 아니라 나에게 주신 은사로 섬김의 삶을 살아야 함을 역설하신다.

은사가 소자에게도 흘러가지 않으면 결국 내가 주인으로 살았다는 증명이다.

 

다들 주인되려 한다.

교회가 그렇게 많은데,

예수 믿는 사람은 그렇게 많은데,

우리 주변에 소자들이 여전히 아파한다.

여전히 소외 받는다.

 

한번 기억해 보기 바란다.

요즘 내가 언제 소자에게 한그릇, 한잔 대접한적이 있었는지?

? ? 일년 ?

높은 자리에 있는 사람에게 하는 것과 같이

소자에게도 동일하게 대우하고 대접하는지 스스로 돌아봐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나는 여전히 주인으로 살려는 것이다.

 

내가 주인되지 않겠다는 고백으로서의 믿음은,

작은 소자를 먹이고 입혀도 하늘의 새와 백합화처럼 하나님이 먹이심을 믿는 것이다.

 

예수 믿고 비전도 많다.

예수 믿고 놀라운 꿈도 많다.

그런데 이상하다.

하나님의 꿈은 우리와 다르다.

 

하나님은 마지막 날에 우리를 심판 하실 작은 소자 하나에게 것이 나에게 것이라고 하신다.

 

"이에 의인들이 대답하여 가로되

주여 우리가 어느 때에 주의 주리신 것을 보고 공궤하였으며

목마르신 것을 보고 마시게 하였나이까

어느 때에 나그네 되신 것을 보고 영접하였으며

벗으신 것을 보고 옷 입혔나이까

어느 때에 병드신 것이나 옥에 갇히신 것을 보고

가서 뵈었나이까 하리니

임금이 대답하여 가라사대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여기 내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니라 하시고" (마25:37-40)

 

우리의 꿈이 소박해 져야 한다.

우리의 꿈이 작은 소자에게 향해야 한다.

그래야 그때야 비로소 우리는 예수 믿는 것이 무엇인지 알게 된다.

 

 

교회는 많은데 주인도 많다.

 

그래서 갈등이 많다.

 

땅에는 소자들이 많다.

 

우리의 비전이 작아져야 한다.

 

우리의 꿈이 소박해져야 한다.

 

그래야 그때에야 그들 속에 계신 예수님을 만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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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몬스트로노스교회에서 3교회 연합으로 예배를 드렸습니다.

순교한 파니 전도사가 개척할 초기에 병으로 죽은 2 아기 장례를 위해

왔던 곳이 이곳 몬스트로노스입니다.

하나님께서 마음에 감동을 주셔서 교회를 개척했고,

이미 교회는 작년에 배굉호목사님께서 개인적으로 헌금해 주셔서 건축을 마쳤습니다.

그리고 교회를 중심으로 마찌찌교회와 소볼로교회를 개척해서 진행하고 있습니다.

아이의 죽음으로 3교회가 세워진 것입니다.

 

그런데 어제는 3교회 연합으로 예배를 드리는데,

몬스트로노스 교회가 식사까지 준비해서 섬겼습니다.

이렇게 했냐고 물어보니 몬스트로노스 교회가 작은 교회를 위로하고 격려하기 위해

성도들이 헌신해서 식사를 준비했다는 것입니다.

얼마나 놀랍고 감동이 되는지요!

 

아이들까지 인원이 170-180명이 되는데 식사비용이 2-30만원 정도 듭니다.

비용은 직장도 없고 일도 없는 이들에게 엄청난 비용입니다.

마치 예수님께 향유옥합을 깨뜨리는 일과 같은 일입니다.

헌금이 2-3만원도 나오는 교회에서 다른 교회 섬기겠다고 헌신을 해서

자기들 스스로 식사를 대접한다는 것은 귀하고 놀라운 일입니다.

 

마침, 요하네버스그 한인교회에서 추수감사절 선물을 준비해서 함께 나누었습니다.

기저귀도 가정에서 매달 헌신해 주셔서 나누고 있습니다.

 

자신의 주인됨을 내려놓고 자신의 것을 나누며 섬기는 곳에

하나님의 교회는 아름답게 세워질것이라 확신합니다.

 

주인됨 내려놓고

주변에 작은 소자들을 세우고 섬기는 것이 꿈이 되기 바랍니다.

 

땅에서 사는 것은

심판 준비 하는 것입니다.

 

주인됨을 내려 놓는 기준!

심판의 기준!

 

<소자>입니다.

 

 

Pastor Seo

Pastor Se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