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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 안에서 변해야 할 우리의 가치 2- 상향성>

<복음 안에서 변해야 할 우리의 가치 2- 상향성>

 

 

 

<복음 안에서 변해야 우리의 가치 2- 상향성>

죄의 본질은 <상향성>입니다.

그래서 인간의 본질은 상향성,

높이 오르려는 마음입니다. 

높이 오르려는 마음입니다.

 

사람의 본전은 세상 전부 였습니다.

그래서 세상을 가져도 사람은 만족이 없습니다.

오직 한자리, 높은 한자리,

하나님의 자리를 넘보는 것입니다.

 

사람은 땅에서 살지만 스스로 하나님처럼 살아갑니다.

그것이 죄입니다.

 

예수를 믿는 다는 것은 <상향성> 포기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인간의 본질인 상향성의 반대로 오셨습니다.

구유에서 나셨고, 나귀를 타셨고,

선한 것이 없는 나사렛에서 사셨으며,

죄인들과 창기들과 함께 거하셨습니다.

그리고 왕의 자리를 포기하고 십자가에 못박히셨습니다.

 

세상이 사는 법과 식은 죄의 본질인 상향성입니다.

예수를 믿는 다는 것은 세상의 법과 길을 포기 하는 것입니다.

높이 올라 다스리는 것이 아니라

낮아짐으로 죄의 본성 반대로 사는 하나님의 나라를 보여 주셨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예수를 믿으면서 상향성이 더욱 발동이 되어

하나님을 이용해서 높은 자리를 향한 마음에 불이 켜집니다.

하나님을 이용하여 높은 자리를 위한 간구와 열심과 기도로 채워집니다.

그래서 결국 높은 자리를 오르지만 채워지지 않는 죄의 본질인 상향성으로

끊임 없이 오르려는 마음을 포기할 모릅니다.

 

그래서 <낮아짐>입니다.

그래서 세상을 구원하는 방법은 낮아진 십자가 입니다.

십자가는 낮아짐의 상징입니다.

십자가를 믿고, 예수님이 길이요 진리임을 고백하지만

정작 우리는 상향성의 본성을 포기 하지 않고

겉으로는 십자가를 외치지만 마음을 높은 곳을 향한 상향성에 매여 살아갑니다.

 

예수를 믿는 것은 섬김으로 이루는 낮아짐입니다.

예수님이 길이 되셔서 여신 하나님의 나라는

가장 높으신 하나님이 친히 낮아지셔서 십자가에서 이루신 나라입니다.

 

주여주여 외쳐도 내가 도무지 너희를 모른다고 하신 이유는,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을 하고 귀신도 쫓아 내고 많은 권능도 행하지만

내가 도무지 너를 모른다 이유는 하나님의 뜻대로 하지 않아서 입니다.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천국에 다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마7:21)

 

죄로 물든 세상을 향한 하나님의 대안은

아버지의 ,

상향성이 아니라 <낮아짐>으로 이루는 나라 입니다.

<낮아짐> 다른 이름은 <섬김>입니다.

 

21절의 말씀의 시작은 산상수훈의 결론과도 같은 12절에서 나옵니다.

 

"그러므로 무엇이든지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 이것이 율법이요 선지자니라"(7:12)

 

상향성의 반대되는 율법과 선지자의 강령은

내가 높아지고 싶은 대로 먼저 남을 대접 하는 것입니다.

 

이런 삶이 없는 예수를 믿는 삶은 결국

주여 주여 외쳐도 내가 너를 도무지 모른다는 주의 말씀의 이유입니다.

 

내가 높아지고 싶은 만큼 다른 사람을 먼저 세우십시오.

내가 세워진 만큼 다른 사람이 세워지지 않았다면

아마 나는 아직도 불법을 행하는 사람인지 모릅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십니다.

"불법을 행한 자들아 나를 떠나라"(7:23)

 

죄의 본질인 상향성으로 살려는 세상에

복음의 본질인 낮아짐과 섬김으로 오신 예수님이,

길이요 진리요 생명입니다.

길과 법을 따르는 것이 복음입니다.

우리가 다시금 변화시켜야 복음의 가치입니다.

 

.

 * 선교지에서 가장 힘든 중에 하나는 내가 나서지 않는 것입니다.

내가 슈퍼맨이 되지 않는 것입니다.

내가 박수 받지 않는 것입니다.

모든 것을 내가 아니라 현지 리더쉽을 통해 세워가는 것입니다.

 

내가 하면 빠릅니다.

빠르고 잘하고 칭찬을 받습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 나는 유명해지고 나는 높아지지만,

저들은 나의 꼬봉이고, 나의 시다바리고, 나의 종처럼 여겨집니다.

선교를 오래하고 나서 내가 유명해 졌는지 현지 사역자가 유명해 졌는지 비교해 봐야 합니다.

이것은 한국 선교의 역사를 통해서도 있습니다.

초기 한국 선교를 왔던 선교사님들은 한국 목사님들을 세웠습니다.

그들을 통해 일했고 그들이 높아졌습니다.

 

철저히 저들이 세워져야 합니다.

나의 사역의 현장에 내가 아니라 나와 같은 사람들이 세워져야 합니다.

 

그랬습니다.

나는 광야의 외치는 소리가 되어야 하고

하나님이 주목 하시는 저들이 주인공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선교는 내가 세워지는 것이 아니라 저들이 세워지는 것입니다.

사역은 내가 아니라 그들이 남아야 합니다.

 

선교 현장에서 기록을 위해 사진을 찍습니다.

하다 못해 헌당예배를 드려도 기념 사진을 찍습니다.

그러나 나는 한번도 가운데서 서서 찍은 적이 없습니다.

나의 자리는 한쪽 가장 자리입니다.

 

이유는 하나 입니다.

내가 주인공이 아니라 저들이 주인공이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사역과 삶의 원리입니다.

 

시간이 지나 내가 아니라 저들이 남아야 합니다.

내가 높아지는 , 상향성의 열매가 아니라

내가 대접 받고자 하는 대로 저들을 대접하고 세워가는 삶과 사역이 되고자 하는 것입니다.

시간이 지났는데 사람이 남지 않았다면 아마 나는 불법으로 행한 자일 것입니다.

 

나는 두렵습니다.

마지막 날에 내가 너를 도무지 모른다고 하실 주의 음성이 말입니다.

착하고 충성된 종으로,

불법이 아니라 법과 길대로 살았다고 칭찬 받는 무익한 종이기를 기도합니다.

 

우리의 삶이 죄의 상향성이 아니라

복음의 낮아짐과 섬김으로 우리의 삶이 세워지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그런 사람들이 세워가는 교회가 좋은 소문이 나기를 기도합니다.

 

교회의 가치가 변해야 사회와 나라가 변합니다.

사회와 나라의 변화는 당신의 가치의 변화부터입니다.

 

<상향성> 아니라 낮아짐을 통한 <섬김> 으로 말입니다.

 

 

 

Pastor Seo

Pastor Se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