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끄심의 법칙(행1:1-5)
(왜 예수님이 하늘로 가셔야 하나?)
- 예수님 사역의 핵심
누가는 예수님의 승천 전까지 일을 기록하여 누가복음을 기록합니다.
누가복음의 주제는 예수께서 행하시고 가르치신 것입니다.
그 내용은 성령으로 사도들에게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가 택하신 사도들에게 성령으로 명하시고
승천하신 날까지의 일을 기록하였노라"(2)
예수님 사역의 핵심은 성령입니다.
성령으로 가르치시고 성령으로 행하신 일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자신이 줄 수 있는 가장 중요한 핵심
"아버지의 약속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성령으로 세례를 받을 것이라 하십니다.
"요한은 물로 세례를 베풀었으나 너희는 몇 날이 못되어
성령으로 세례를 받으리라 하셨느니라"(5)
사도들에게 성령으로 명하셨고
약속하신 것을 기다리라 하셨고
물이 아니라 성령으로 세례를 받을 것이라 하십니다.
성령입니다.
예수님이 아닙니다.
우리에게 주시고 싶은 것은 자신의 죽음과 성령입니다.
성령이 하나님이 약속하신 것입니다.
성령이 아니면 아무것도 아니기에 성령이 오셔야합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가시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승천의 목적은 성령이 오시기 위함입니다.
성령이 모든 사역의 핵심입니다.
하나님 나라의 일을 푸는 비밀,
인간 죄악과 죽음을 푸는 비밀은
바로 성령입니다.
사람에게 떠난 생령이 다시 오시는 유일한 길은
수면위를 운행 하시던 하나님의 신,
성령입니다.
사람을 떠난 하나님의 신이 각 사람에게 다시 찾아오셔합니다.
그래야 그곳이 천국이고
그곳이 에덴입니다.
각 사람 위에 임해야 하는 생기,
떠났던 하나님의 신이 임하여 영원이 되는 유일한 길,
성령입니다.
- 성령의 본질은 이끄심입니다.
성령의 본질은 이끄심입니다.
<아담>의 본질은 이끄심을 받은 자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그 사람을 <이끌어> 에덴 동산에 두사
그것을 다스리며 지키게 하시고"[창2:15]
사람의 본질은 하나님의 이끄심을 받은 존재입니다.
성령이 사람을 이끌어 에덴 동산에 두신 것입니다.
사람은 스스로 할 수 있는 존재가 아닙니다.
하나님의 이끄심으로 세워지는 존재입니다.
그런데 죄는 이끄심을 외면하고 스스로 가려 하는 상태입니다.
이것이 죄입니다.
스스로 결정하고
스스로 판단하고
스스로 걸음을 가는 것이 죄입니다.
사람은 처음부터 이끄심을 받은 존재입니다.
이끄심 안에 있을 때 사람은 안전합니다.
생명입니다.
영생입니다.
세상의 모든 생명체는 이끄심 안에 있는 존재입니다.
자연 만물이 다 하나님의 이끄심 안에 있는 것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흙으로 각종 들짐승과 공중의 각종 새를 지으시고
아담이 어떻게 이름을 짓나 보시려고 그것들을 그에게로 <이끌어> 이르시니
아담이 각 생물을 일컫는 바가 곧 그 이름이라"[창2:19]
세상이 가장 아름다운 상태는 하나님의 이끄심 안에 있는 상태입니다.
사람도,
하늘의 새도,
각종 들짐승들도
<이끄심> 안에 있을 때
아름다운 것입니다.
세상이 물로 파괴되고 다시 세워지는 세상도 이끄심 안에서
방주로 들어오고,
아브라함도 하나님의 이끄심을 따라 존재합니다.
"그를 <이끌고> 밖으로 나가 가라사대
하늘을 우러러 뭇 별을 셀 수 있나 보라
또 그에게 이르시되 네 자손이 이와 같으리라"[창15:5]
"또 그에게 이르시되 나는 이 땅을 네게 주어 업을 삼게 하려고
너를 갈대아 우르에서 <이끌어> 낸 여호와로라"[창15:7]
세상 존재의 의미는 이끌어 낸 존재입니다.
하나님의 이끄심 안에 있는 존재입니다.
하나님의 역사는 이 이끄심의 역사입니다.
이스라엘의 역사는 이 이끄심의 역사 안에 있습니다.
아브라함도,
야곱도 다 이끄는 역사입니다.
자신의 소유를 이끌고 하나님의 뜻 안에 움직입니다.
요셉은 자기가 알지도 못하는 상태에서
이끌려 보디발의 집에 가고
하나님의 은혜로 자신의 가족들을 이끌고 애굽에서 살게합니다.
모세는 이스라엘을 이끌어 출애굽 합니다.
가나안 정복의 역사도 이끄심 안에 있는 역사입니다.
구약의 수 많은 기록들은 바로 이 이끄심 안의 역사를 기록합니다.
에스겔이 이끌려 간 곳이 마른 뼈들이 있는 골짜기입니다.
거기서 하나님의 성령의 생기가 들어가자 온 뼈들이 살아나는 역사를 봅니다.
일일이 다 기록할 수 없음이 안타깝습니다.
모든 부분이 다 하나님의 이끄심을 기록합니다.
어느 한 사람도 이끄심 안에 있지 않은 사람이 없습니다.
더더욱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도 이 성령의 이끄심 안에 있습니다.
"그 때에 예수께서 성령에게 <이끌리어> 마귀에게 시험을 받으러 광야로 가사"(마4:1)
하나님의 역사는 곧 이끄심의 역사입니다.
사람을 만드시고 사람을 복되게 하시며
세상의 모든 생물을 이끌어 존재케하십니다.
하나님의 역사는 이끌어 내시고
이끄셔서 하나님의 일들을 완성하시는 역사입니다.
- 성령으로 명하신 이유
성령으로 명하시며
하나님의 약속하신 성령을 떠나지 말고 기다려야 하는
<성령의 의미>는 바로
<이끄심 안에 머물기 위함> 입니다.
사람의 존재의 시작은 이끌어 에덴 동산에 머무는 것입니다.
이끄심 안에 있지 않는 사람은 그냥 흙입니다.
오직 이끄심 안에 머물 때 사람도
세상의 생명들도 의미가 있습니다.
성령은 생기가 떠나 사람,
성령은 하나님의 신이 떠난 흙인 사람에게
다시 주시기 원하시는 하나님의 이끄심의 영입니다.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백성을 그분의 역사 가운에 사용하신
가장 중요한 핵심은 이끄심입니다.
그 이끄심의 개개인적인 충만이 성령의 세례입니다.
성령이 임하면 내가 능력이 많아진다고 생각합니다.
아닙니다.
내가 능력이 많아지는 것이 아니라
능력의 근원이신 하나님의 이끄심에 가장 가까워지는 것입니다.
능력은 오직 하나님입니다.
능력을 행하시는 하나님의 이끄심 속에 그저 자신을 내어 맡기는 것이
성령의 충만입니다.
하나님의 영의 충만은
자신을 이끄심에 맡기는 최고의 상태입니다.
그래서 그분이 나를 완전히 이끌어가는 상태가 성령의 충만입니다.
성령이 충만하다 하는데
나의 의지가 강하고
나의 주도적 삶이 강하다면 그것은 성령이 충만 한 것이 아니라
육체에 충만한 것입니다.
육체도 능력을 냅니다.
성령이 아니어도 능력이 있습니다.
세상의 영도 얼마든지 능력을 보입니다.
그러나 성령의 충만은 예수의 영에 충만한 상태이고
악령의 충만은 자기의 영에 충만한 상태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예수의 영에 충만해야 합니다.
예수의 영이 충만한 상태가 하나님 나라에 충만함입니다.
- 성령의 이끄심의 목적
예수님께서 부활 후에 다시 3년의 시간을 총 정리 하십니다.
무엇을 말씀하셨을까요?
"하나님 나라"입니다.
성령의 목적은 하나님 나라입니다.
성령이 오신 목적은 하나님 나라의 회복입니다.
<하나님 나라의 회복>
그것이 성령이 오신 목적입니다.
성령은 우리를 충만케 하시는 것이 목적이 아닙니다.
우리를 통해 하나님 나라를 회복하심이 목적입니다.
그래서 제자들도,
예수님도 다 하나님 나라를 묻고 말씀하십니다. (3, 6)
성령의 목적은 우리의 충만이 아닙니다.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목적은
오직 하나님 나라의 회복입니다.
성령이 오셔야 하는 이유는
우리를 구체적으로 하나님 나라로 인도하시며
하나님 나라를 세우는 방편이기 때문입니다.
교회는 하나님 나라 회복의 유일한 현장입니다.
성령은 교회를 세움으로 하나님 나라를 회복하십니다.
교회의 본질은 사람입니다.
그래서 사람속에 성령의 충만으로 임재하는 것입니다.
- 성령의 충만, 증인이 되는 것!
그래서 성령이 임하시면 권능을 받고 온 세상 땅끝까지 증인이 되는 것입니다.
증인은 스스로 증인석에 서지 못합니다.
하나님이신 재판장이 증인으로 세우는 곳에 서는 것입니다.
그 증인과 함께 변론하시고
보증하시는
성령께서 함께 하실 때 증인이 되는 것입니다.
증인은 보증이 필요합니다.
증인은 변론해줄 변호자가 필요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우리가 증인으로 살 때 세상 끝날 까지 함께 하시는 것입니다.
증인으로 사는 삶 속에 변호인으로,
보증인으로
보혜사로 함께 하시는 것입니다.
착각하면 안됩니다.
우리를 그냥 이유없이 세우지 않았습니다.
이유 있는 변호입니다.
이유 있는 보증인입니다.
내가 증인으로 서는 조건입니다.
내가 증언자로 서는 조건입니다.
성령이 가장 강력함으로 나타나는 상황은
우리가 증인으로
증언하는 곳에서 입니다.
그것이 성령이 이 땅에 오신 목적입니다.
병도 고치고
능력도 주시고
권능도 주시는 목적은
우리가 증인으로 사는 삶입니다.
하나님 나라를 증언 하는 것입니다.
증인의 삶이 사라집니다.
증언의 삶이 희미해집니다.
그런데 성령의 운동은 활개를 칩니다.
능력은 자꾸 많이 받으려합니다.
증인과 상관없는 능력입니다.
그래서 소리는 무성한데 증인의 삶을 통한 하나님 나라의 회복은 적습니다.
한가지 다짐해야합니다.
증인이 되는 것입니다.
증인은 본인이 된다고 되는 것이 아닙니다.
성령 즉
보증인이 오셔서 함께 해 주셔야합니다.
그래서 기다림이 필요합니다.
증인은 절대 혼자 서지 못합니다.
보호된 보증인,
변호인이 함께 서야합니다.
세상에 우리의 증언으로 이기지 못합니다.
세상이 그만큼 무섭고 두렵습니다.
아니 우리가 그만큼 약합니다.
그래서 우리를 강하게 하시는 권능의 본질인
성령께서 오셔서 함께 하셔야합니다.
성령이 오지 않으면 우리는 증인이 되지 못합니다.
말은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말은 말이지 다 증언이 되지는 못합니다.
능력의 권능의 주체이신
성령께서 우리의 말고 입에 힘을 주셔야합니다.
증인이 아닌 성령의 충만,
증언이 아니 성령의 세례는 의미가 없습니다.
증인이 되기를 소원해야합니다.
증언하기 위해 살아야합니다.
그리고 증인의 자격인 성령의 충만을 구해야합니다.
예수님께서 성령을 기다리라고 하신 이유는 하나입니다.
증언의 삶을 제대로 사는 가장 강력한 하나님의 힘입니다.
성령을 구하지 않는 사람은
하나님 입장에서 이유는 하나로 생각합니다.
증인의 삶을 살기 싫어서입니다.
그러나 성령을 구하면서 증인의 삶을 구하지 않는 모든 것도
가짜입니다.
성령을 구하는 가장 중요한 이유는
증인입니다.
우리가 뜨겁게 성령을 구하지 않는 이유는 뭘까요?
살아나신 그리스도를 만나지 못해서입니다.
그리스도의 부활을 믿지 않아서입니다.
믿음이 성령을 일하게 합니다.
그래서 믿음이라 했습니다.
믿음이 성령으로 가는 유일한 길입니다.
성령을 기다리는 사람의 공통점은 믿음입니다.
살아난 주님이라는 것을 믿어야 성령을 기다립니다.
살아 났음을 보고 믿기에 성령을 기다리는 것입니다.
믿음입니다.
성령을 체험하는 길은 믿음입니다.
믿음만이 성령을 경험합니다.
믿음 그리고 성령 그리고 증인입니다.
성령이 임하면 그때부터는
이끄시는 대로 가는 것입니다.
문제는 우리는 믿음도 모르고 성령도 모르며 증인의 삶도 살지 않으며
이끄심 안에 거하지도 않는 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 시대에 복음이 희미하며
악이 가득한 것입니다.
죽으심과 부활을 믿는 믿음부터 다시 해야합니다.
이것이 안되면 기다리지 못합니다.
기다리지 못하니 성령이 경험하지 못합니다.
성령이 충만하지 못하면 증인이 되지 못합니다.
주님은 우리에게
그리고 하나님 나라의 회복을 위해 무엇이 가장 필요한지 아십니다.
그것은 바로 성령입니다.
마르지 않는 샘물로서의 성령과
증인의 삶을 살게 하는 권능의 모체로서 성령입니다.
성령 없이 사는 것은
사람이 흙이 되는 것과 같습니다.
믿으면 구하십시오.
그리고 기다리십시오.
주님이 우리에게 주시기 원하시는 유일한 것!
성령입니다.
성령의 충만을 느끼고 계십니까?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오직 성령의 충만입니다.
증인이 되지 못하는 가장 큰 이유?
성령입니다.
성령은 이끄심의 영입니다.
이끄심 안에 머물게 하는 영입니다.
흙으로 살 것인가
영원으로 살 것인가의 갈림길은
성령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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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란수사모 가족이 천목사님 가정과 만났습니다.
내 힘을 빼고, 아니 힘을 쓸 수 없는 상황과 환경에 있게 하시고
그리고, 이끄셔서 그 다음 사명으로 가게 하기 위해 보게 하시고 만남을 이어가십니다.
내 힘을 뺄 수 밖에 없는 환경에 나를 두시는 것은 주의 사명으로 부르시기 위함입니다.
이끌려 가는 것은 축복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쓰시기 위해 이끌릴 수 밖에 없는 곳으로 나를 이끄십니다.
그것이 내 인생을 향한 성령의 이끄심의 법칙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