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익숙한 것으로부터의 이별>
어제 대한민국 역사상 최고의 강도(5.8)로 지진이 일어났다.
아무리 권세와 힘을 가져도 떠오르는 태양을 막으려 해도 막을 수 없다.
오는 여름, 가는 계절을 막을 수 없다.
그것이 변하지 않는 하늘의 이치다.
변하지 않는 하나님의 법칙이다.
하나님은 사람에게 두 가지 변하지 않는 이치를 정하셨다.
하나는 죽음이고 또 하나는 심판이다.
아직은 경험하지 못해서 사람들은 인식하지 못한다.
그러나 변하지 않는, 해가 뜨고, 계절이 오듯이
반드시 오는 하나님의 약속은 죽음과 심판이다.
죽음과 심판의 징조는 전쟁과 기근과 지진이다.
일어나지 않을 것 같은, 한번도 경험하지 않은 일이 일어났다.
성경에서 지진은 심판의 징조와 함께 하나님의 역사가 나타날 때 일어난 징조다.
예수님의 무덤이 열릴 때 지진이 먼저 일어났고,
바울과 실라가 감옥에 있을 때 지진으로 옥문이 열렸고,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실 때 땅이 진동하고 바위가 터지는 지진 현상이 일어났다.
문제는, 이 일을 보고 백부장과 지키던 자들은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고백했다.
"백부장과 및 함께 예수를 지키던 자들이 지진과 그 되는 일들을 보고
심히 두려워하여 가로되 이는 진실로 하나님의 아들이었도다 하더라"[마27:54]
지진은 심판이 있다는 하나님의 징조로 보여주신 엄연한 성경의 말씀이다.
"번개와 음성들과 뇌성이 있고 또 큰 지진이 있어 어찌 큰지
사람이 땅에 있어 옴으로 이같이 큰 지진이 없었더라"[계16:18]
어떤 이는 노아의 홍수의 때와 같이 무방비로 심판을 당하기도 하고
어떤 이는 방주로 피했던 것 같이
어떤 이는 늘 그랬던 것처럼 무방비로 살아가 갈 것이고
어떤 이는 죽음과 심판을 준비하는 삶을 살 것이다.
예수님은 말씀하셨다.
"아침에 하늘이 붉고 흐리면 오늘은 날이 궂겠다 하나니
너희가 천기는 분별할 줄 알면서 시대의 표적은 분별할 수 없느냐"[마16:3]
시대를 보면 분별할 수 있는 지혜가 필요하다.
그 지혜는 죽음을 준비하고 심판을 준비하는 지혜이다.
해가 뜨고 지듯 지진을 통해 다가올 죽음과 심판을 볼 줄 아는 지혜가 필요하다.
그러나 똑 같은 지진을 보고도 어떤 이는 예수님을 저주했고
어떤 이는 진실로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고백을 했다.
지진은 죽음과 심판에 대한 하나님의 징조다.
천기를 보고 분별할 수 있는 지혜가
죽음과 심판, 하나님의 살아계심과 예수님의 다시 오심을 준비하는 인생이 되어야 한다.
그래서 이제 늘 익숙하던 것들로부터 이별을 고해야 한다.
첫째, 복음은 영적으로 평강이고 은혜지만 그 은혜를 담는 그릇은 불편함을 의미한다.
그것을 너무 잘 아는 영악한 현대 교회 성도들은
겉으로는 아멘을 외치지만 실은 꼼짝도 안하고 앉아 있다.
움직이고 변화 되는 것은 결국 자신들의 불편함을 의미함을 누구보다도 더 잘 알기 때문이다.
불편하지 않으려는,
이미 편안함에 익숙한 우리의 몸은
천국의 복음을 살아내기에 너무 편안함에 깊이 빠져있다.
아무리 외쳐도 아멘만 외치지 움직이지 않는 이유다.
불편함이 없는 아멘에 교회는 침몰하고 있다.
익숙한 편안함으로부터 이별을 고해야 한다.
불편하지 않으면 몸은 편하지만 영혼을 멸망이다.
둘째, 불편한 이야기를 들어야 한다. 불편한 이야기가 나를 살린다.
심령이 가난하지 않으면 사람들은 들으려 하지 않는다.
그래서 우리 안에 있는 천국을 보지 못한다.
천국을 담기에는 우리는 너무 부하다.
그래서 예수님의 산상수훈의 첫 말씀은
천국이 임하는 심령의 가난함이다.
가나안 땅에 살아가는 종 되었던 이스라엘에게 가나안은 살기에 너무 좋은
하나님만 붙들고 살기에 너무 좋은 곳이다.
누구나 할 것 없이 가난한 사람이 부해지면 어김없이 몸은 교회 안에 있지만
마음은 이미 먹고 배부른 곳에 있다.
페북에 시시한 세상 이야기는 '좋아요'가 난발하고 댓글이 나무하지만,
조금만 부거운 영적인 이야기는 외면한다.
불편한 복음의 말씀이 내 마음에 쌓여야 영혼의 길이 열린다.
셋째, 죽음과 심판을 준비 해야 한다.
"임금이 대답하여 가라사대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여기 내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니라 하시고"(마25:40)
그럼 그 준비가 무엇인가?
늘 익숙하던 삶으로부터 이별이다.
그것은 사람이 본성적으로 걸린 병인 큰 것, 높은 것에 대한 익숙한 마음을 버려야 한다.
그래서 심판의 징조인 마24장에 대한 준비로 마태복음 25장을 말씀하셨다.
그 준비의 핵심은 <소자에 대한 마음>이다.
천국을 준비하고, 죽음을 준비하며 심판을 준비하는 사람은
이 땅에서 익숙한 높아지고 커지는 것이 아니라
저 땅을 준비하는 소자에 대한 삶으로 변화 되는 것이다.
소자에 대한 것으로 하나님은 죽음과 심판을 결정하신다.
지진은 징조다.
지진은 준비다.
이 땅의 익숙한 것들로부터의 이별!
죽음과 심판에 대한 준비!
불편함을 감수하며 소자에 대한 마음,
소자에 대한 삶으로 변화 되는 것!
그것이 우리를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경고로서의
지진에 대한 마음이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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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파 본 사람은 내가 가진 것이 얼마나 부질 없는 것인지 안다.
내가 가진 것이 아무런 소용이 없다는 것을 알면 욕심 부리지 않는다.
하늘의 징조 앞에서 이 땅의 삶은
잠깐이면 사라지는 안개요
피었다 지는 꽃이다.
남는 장사 해야 한다.
익숙한 나 중심의 삶을 버리고
저 땅에서 남는 소자에 대한 삶으로 체질의 변화가 있어야 한다.
땅들이 심판을 준비한다.
아니 준비하라고 아우성이다.
우리의 체질이 하나님 나라를 준비하는 체질로의 변화가 절실한 이 때다.
꽃이 아무리 화려하고 이뻐도
계절이 바뀌려면 꽃도 떨어지고 잎도 떨어지고 씨앗도 떨어져야 한다.
그래야 다음을 생을 기약할 수 있다.
떨어지지 않는 꽃,
떨어지지 않는 인생은…
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