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령이 임하면>
초대교회가 분쟁도 없고 갈등도 없던 지상천국이 아니었습니다.
구제 하나 제대로 못해 사도들이 뒤로 빠져야 하는 어려움에 처했습니다.
성령이 임한다고 해서 교회가 완벽해 지는 것은 아닙니다.
성령이 임하면 어려움이 생기지 않는 것이 아니라
어려움이 생길 때 겸손히 하나님의 뜻을 구하고 가장 좋은 길을 위해
자신의 생각을 내려놓고 공동체의 유익을 위해 내 것을 내어줄 수 있는 사람이 된다는 것입니다.
더 좋은 길과 방법 앞에 자신의 손해를 감수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이 땅에서 가장 성령에 충만한 곳은
십자가 위 입니다.
자신을 위한 시간이 아니라 다른 사람을 위해 절정의 고통을 감내하는 시간입니다.
그것이 성령충만의 의미입니다.
교회는 아무 일이 없는 곳이 아닙니다.
분쟁도, 진리문제도, 갈등도 아픔도 있는 곳입니다.
그러나 교회가 교회가 되는 것은
성령으로 말미암아 내 것을 손해보고,
다른 사람을 위해 내 자리를 내어놓고,
내 생각을 내려놓고,
손해 나는 일을 택하는 곳이기 때문입니다.
아무도 손해를 보지 않으려는 마음이 문제입니다.
그곳에는 성령의 임재 하심도,
성령의 일하심도 없습니다.
성령의 길이 맞는지 확인 하는 길은
내가 손해를 보는 길인지 보면 됩니다.
나의 손해를 통해 공동체가,
또는 다른 사람이 유익이 되는지를 보면 됩니다.
아무리 그럴싸한 명분과 논리가 있을 지라도
내가 손해보지 않는 길은 성령의 길이 아니라 그냥 나의 길입니다.
다들 손해 보지 않고 성령충만의 길을 가려 합니다.
다들 자기 것은 내려놓지 않으면서 하나님 나라를 위하려고 합니다.
가롯유다의 길이 다른 것이 아닙니다.
자신은 손해 보지 않으면서 하나님 나라를 위하려는 것입니다.
성령 충만의 길은 내가 손해 보는 길입니다.
성령이 임하면 영원에 대한 확신 때문에
더 중요한 것을 깨달아 자신이 손해보고 자신을 내려놓는 것입니다.
잘되고 잘나가는데 내어주지 않는 사람은 결국 지나가는 바람이 됩니다.
사람이 당장 모이고 성령이 충만한 것 같은데 손해보지 않고 달려가는 교회는
세월이 가면 결국 교회는 아픔이 됩니다.
성령이 임하면 완벽한 교회가 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을 내어주는 교회가 되는 것입니다.
다들 교회의 회복을 위해 기도하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성령이 임하면 내어주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내어주는 사람이 많아지면 교회는 성령 충만한 교회가 됩니다.
참 성령이 임하는 교회들이 많이 나타나면 좋겠습니다.
내어주지 않으면서 성령만 충만하면 교회는 괴물이 되고
교회는 아픔이 됩니다.
성령이 충만하면 돌을 맞아도 자신을 내어주는 스데반이 되고
성령이 충만하면 자신의 것을 다 내어주는 초대교회가 되고
성령을 경험하니 평생을 복음을 위해 고통도 아픔도 문제가 되지 않는 사도 바울이 됩니다.
성령의 충만의 마지막 자리는 온 세상을 위해 자신을 내어주는 십자가입니다.
날마다 성령 충만한 성도, 그런 교회가 되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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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꽃의 영광은 자랑하는 것이 아닙니다.
꽃의 영광은 <내어줌>입니다.
꿀이든 열매든 내어주지 못하는 꽃은 <다음>이 없습니다.
성령의 꽃은 자기 영광이 아니라 <내어줌>입니다.
예수님의 영광은 자신을 주심이고
성령님의 영광은 <내어주심>입니다.
현지 교회를 세우며 가장 중요한 마지막 열매는
자신들의 교회를 통해 다른 이들을 세우는 것입니다.
내 교회만 세우고 내 것만 세우면 그 세대로 교회는 끝입니다.
사역자들이 훈련되어지면서 자신의 사례의 십의 일, 혹은 십의 이를
어려운 사역자들을 위해 나누며 그들을 세우도록 격려합니다.
사역자는 그래야 합니다.
교회의 영광은 복음의 확장을 위해 자신의 것들을 나누며 보내는 것입니다.
현지 교회들의 사역자들은 자리가 잡히면 대부분 스스로 헌신해서
새로운 교회를 개척하며 사역자들을 지원합니다.
교회는 그래야 합니다.
그것이 예수님의 성령 하나님의,
성부 아버지의 본성입니다.
성령이 임하면 그렇게 되는 것,
그것이 성령이 임할 때 나타나는 모습입니다.
성령은 임했는데 방향을 모르면 내일의 기약이 없습니다.
이제부터라도 내어주는 성도, 내어주는 교회가 되기를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