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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백성을 위로하라 3>

<내 백성을 위로하라 3>

 

 

 

 

 

 

< 백성을 위로하라 3>

 

살아야 하고 , 말씀대로 살아야 하고,

기도해야 하고, 말씀도 봐야 하고, 예배도 헌금 생활도 해야 하고

세상에서 싸워서 믿음으로 이겨야 한다는 것을 압니다.

 

그런데 가만히 보니 예수님은 그분의 사람들을 직접 찾아 가셔서 위로 하십니다.

낙망한 자들을 위해

불을 피우고,

조반을 준비 하시며,

폭풍 한가운데 물위를 걸어가셨습니다.

그들이 위험했기 때문입니다.

나귀를 타고 오신 예수님의 의미는

말로만이 아니라

그들의 삶에 현장에 찾아가시고 함께 그들의 눈물의 의미를 이해하고

배고픈 그들에게 식사를 준비하고

폭풍 치는 인생의 가운데 함께 있어 준다는 것을 의미 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목자는 양들의 필요를 구체적으로 돌보는 것이지만

그들과 함께 있는 다는 것을 의미 합니다.

 

너무 말로만 합니다.

너무 틀에 박힌 정답만 이야기 합니다.

 

그들이 몰라서가 아닌데,

그들이 어떻게 사는지 알지 못해서가 아닌데,

알아도 용기가 없고,

알아도 힘이 없고

알아도 혼자인 외로움에 힘들어 하는데,

친히 불을 피우고,

조반 한번 먹여주지 못하면서 전부 다하는 것처럼 착각하고 살아서는 안되겠습니다.

 

하나님께서 백성을 위로하라 하십니다.

동안 너무 정답만 말하고 산 것은 아닌가 합니다.

위로는 말만 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삶의 곤고함을 알아주고 이해하고

그들의 식사 한끼라도 함께 하는 마음을 들어주고 공감하는

시간과 공간의 추억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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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뇌수막염으로 재활을 하고 있는 푸구쉐전도사님을 오라고 해서

한집사님이 전해 주신 기저귀를 나누면서,

동안 모아놓은 옷이며 가방이며 신발 아이들 장난감까지 차에 채워 보냈다.

 

샘목사와는 통화를 하며 삶의 이야기를 오랫동안 나누면 필요한 것을 보냈다.

어머니를 잃은 조안나사모에게 장례에 필요한 것들에 쓰라고 조의금과 격려금을 따로 보냈다.

 

병원에 입원한 토고자니 목사를 아침에 병문안을 가서 말씀을 전하고

함께 기도하고 작은 정성을 전달했다.

말씀을 듣고 기도하고나니 덩치에 같은 눈물을 흘린다.

사역자로 헌신하며 전도사 시절에는 깡통 같은 집에 조카까지 여섯 식구가 살았고,

목회 하느라 성도들 눈치보고 알게 모르게 밀려오는 스트레스에

힘든 누구에게 말도 못하고 끙끙 앓아오다 육신이 병이 들어 병실에 누워있는 자신이 얼마나 안타까울까!

 

어디 토고자니목사님만 그렇겠는가!

답답한 , 억울 한일, 어디 가서 하소연도 못할 일들이 가지겠는가!

사역자의 삶이 고단하고, 성도들의 삶은 고단하다.

위로가 필요하다.

말씀으로 힘을 얻고, 기도로 용기를 얻고, 나눈 격려에 눈물을 흘린다.

그들에게 정작 필요한 것은 정답이 아니라

손수 피운 불에, 손수 만든 밥이 필요 하다.

 

절망하고 세상에 등을 제자들에게 것은 정답이 아니라

그들을 위해 피우는 목자다.

 

피우는 목자가 되기를 기도해 본다.

 

 

Pastor Seo

Pastor Se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