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색

<말씀을 들어도 변하지 않는 이유>

<말씀을 들어도 변하지 않는 이유>

 

 

 

<말씀을 들어도 변하지 않는 이유>

 

집사님 분이 저에게 질문을 했습니다. " 사무엘 선지자의 아들들은 그렇게 엉망이 되었습니까?"

저는 순간적으로 엘리제사장들의 아들들은 그렇게 엉망이 되었습니까?라는 동일한 질문으로 들렸습니다.

사무엘의 아들들이나 엘리제사장의 아들들이나 같은 원리이기 때문입니다.

동일하게 가나안 정복을 경험한 이스라엘은 축복을 얻었지만 사사시대는

각자 소견에 옳은 대로 살았습니까?라는 질문과 동일한 이야기 입니다.

 

하나님을 경험하고 아는 사람은 하나님을 떠나지 않습니다.

신앙의 1세대는 목숨을 지키며 믿음을 지키면서 하나님을 붙들게 되고 결과적으로

하나님으로부터 물질적 축복을 경험하게 됩니다.

그렇게 얻은 축복으로 2세대와 3세대는 하나님을 경험하는 것이 아니라 물질적 축복을 누리며 살게 됩니다.

 

첫째, 신앙의 1세대는 그렇게 얻은 물질적 축복을 2,3세대가 누리게 합니다.

보통 말로 1세대는 땅을 개간하고 씨를 뿌리며 믿음을 지키기 위해 죽을 고생을 했다면

2,3세대 이후는 열매를 수확하는 세대입니다.

신앙의 어려움 없이 축복을 누리게 됩니다.

하나님의 이야기는 엄청 많이 합니다.

기도해라, 말씀을 읽어라, 예배를 드려라 합니다.

예배에 빠지면 죽일듯 하지만 정작 그들에게는 이미 하나님이 아니라 물질적 풍요가 손에 쥐어져 있기 때문에

하나님을 경험할 영적인 전쟁이 남아 있지 않습니다.

겨우 남은 것은 어떻게 하면 좀더 세상에서 높아지고 어떻게 하면 좀더 잘사느냐의 문제이지

하나님을 경험하는 영적인 전쟁은 남아 있지 않습니다.

 

둘째, 신앙의 2, 3세대 이후의 열매를 수확하는 세대는 하나님을 경험하는 세대가 아니라

물질적 축복을 경험하는 세대가 됩니다.

세대는 하나님에 대한 경험보다 물질의 편안함, 물질의 축복 속에 살기 때문에

기도를 통하거나 말씀을 통해 하나님을 경험하는 일이 희귀해 집니다.

기도도 필요 없고, 말씀도 자신의 삶에 다가오지 않는 삶의 구조에 있기 때문에

이때부터는 말로는 통하지 않는 세대 입니다.

아무리 말해도 말이 통하지 않는 세대의 이유는 그들의 풍요 입니다.

그들이 누리는 물질적 축복입니다.

하나님을 이야기 하지만 이미 몸에 익어버린 세상적인 편안함과 뭐든 말하면 부모로부터 얻게 되는

물질적 풍요가 하나님을 만날래야 만날 없는 구조가 되어 버린 것입니다. 

 

셋째, 자기 소견에 옳은 대로 사는 시대입니다.

이스라엘이 사사시대로 들어간 이유는 한가지 입니다. 그들이 전쟁을 통해 하나님을 경험하지 못한 것입니다.

여호수아서 마지막에서 그들이 하나님을 섬긴 것은 하나님을 경험한 사람이기 때문이라고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경험하지 못한 세대의 가장 중요한 특징은

자기 스스로 하나님이 되는 것입니다.

사무엘선지자의 아들들이 판관이 되어 이스라엘을 판단할 자기 마음대로 합니다.

이유는 하나님을 경험하지 못한 세대는 스스로 하나님이 되어 모든 것을 판단하고 모든 것을 결정하기 때문입니다.

이미 사사시대가 그것을 보여 주었습니다.

시대는 아무리 하나님의 이야기를 하고 설교를 하고 기도를 해도 이미 스스로 하나님이 되어버린 세대에게 그것은

그대로 귀에 경읽기가 됩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대안이 무엇일까요?

 

넷째, 사사시대에 하나님이 그들에게 주신 은혜는

전쟁을 경험하게 하기 위해 가나안 백성의 일부를 남겨 두신 것입니다.

 

"여호와께서 가나안의 모든 전쟁들을 알지 못한 이스라엘을 시험하려 하시며

이스라엘 자손의 세대 중에 아직 전쟁을 알지 못하는 자들에게

그것을 가르쳐 알게 하려 하사 남겨 두신 이방 민족들은 "(3:1-2)

 

물질적인 축복에서 나오는 하나님의 유일한 방법은 말씀이 아니라

하나님을 경험하는 영적인 전쟁을 남겨두시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물질적 풍요 중에 어느 것이 가까울까요?

물질적 풍요입니다.

이미 전쟁이 없는 시대의 편안함은 하나님도 어떻게 없습니다.

그런 세대에 대한 하나님의 대안은 아직 전쟁을 알지 못하는 자들에게

그것을 알게 하기 위한 <영적인 전쟁>입니다.

 

어릴적 모유는 유전자적으로 면역체계를 강하게 합니다.

그래서 초유다 모유다 합니다.

어릴적부터 하나님을 경험한 아이들은 평생을 하나님을 떠나지 않습니다.

 

다섯째, 그럼 사울 왕은 무엇이고 다윗은 무엇인가?

 

사울 왕은 하나님을 경험해서 왕이 사람이 아닙니다.

자신이 가진 어떤 조건, 환경으로 왕이 사람입니다.

키가 크고, 장사고, 뛰어난 어떤 것이 왕의 조건이 사람은 하나님을 섬기지 않습니다.

별일 없을 때는 섬기는 것처럼 보이지만 결정적인 순간이 되면 스스로 하나님이 됩니다.

 

그럼 다윗은 뭡니까?

다윗은 어릴적 하나님을 경험했습니다.

언제요?

양을 ,

막대기 하나, 맷돌 하나로 곰이나 사자를 양으로부터 지켰습니다.

다윗은 그것을 하나님을 경험하는 앎으로 인식하고 있습니다.

 

지금 교회는 영적인 전쟁을 보여주지 못합니다.

왜냐하면 이전 시대처럼 핍박도 눈물도 없는 교회이기 때문입니다.

이전 시대는 교회에는 함께 기도하며 불신 가정의 아이들을 위한 기도가 있었고

함께 기도하는 기도 제목이 있었고 하나님의 살아 계심을 경험하는 많은 사연들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지금 교회는 그렇게 절박하지 않아도 되는 시대입니다.

 

부탁합니다.

교회에 그것을 전부 맡기지 마시기 바랍니다.

특별한 교회 몇을 제외하면 이제 교회는 하나님을 지식으로 배울 수는 있지만

수련회나 특별한 일이 아니면 그것을 경험하지 못합니다.

 

이제는 부모가 직접 아이들에게 가정에서 그것을 가르쳐야 합니다.

 

여섯째, 그래서 가정적으로 아픔은 그들에게 하나님을 경험하게 하는 영적인 전쟁입니다.

 

하나님이 사랑하는 사람들은 어려움을 주십니다.

그래서 기도하게 하고 말씀을 통해 하나님을 만나고 삶에서 그것이 이루어지는 체험을 하게 됩니다.

신앙의 2, 3세대가 돌아오고 교회에 남아 있는 자들은 하나님을 경험해서 입니다.

그들을 떠나라고 해도 떠나지 않습니다.

지식이 아니라 삶으로 하나님을 경험했기 때문입니다

 

힘듦이 아픔만은 아닙니다.

가정적으로 어려움을 만난 아이들이 신앙적으로 깊이 남아 있는 경우를 봅니다.

그러나 믿음의 1세대를 지난 사람들,

중직자 분들의 자녀들이 하나님을 떠난 경우를 많이 보는 이유는

하나님을 경험하게 하는 시간을 보내지 않은 결과입니다.

물질적 풍요가 아이들을 키운 결과입니다.

 

믿음의 세대들은 본인은 목숨 걸고 믿음을 지켰지만

그렇게 얻은 물질의 축복이 결국 아이들이 하나님을 경험할 기회 조차 잃어버리게 만든 것입니다.

그렇게 신앙의 초창기에는 스스로 믿음을 지키기 위해 눈물로 기도했지만

이제는 떠나버린 자녀들을 돌이키게 하기 위해 눈물로 기도하는 것을 보게 됩니다.

그렇게 눈물로 기도하는 부모라도 있으면 감사한 일입니다.

이미 편안함에 익숙한 물질적 축복에 눈물도 사라졌는지 모를 일입니다.

 

교회 안에 말씀을 듣는 자들이 앉아 있습니다.

믿음의 첫세대는 이미 이룬 축복으로 말씀에 공감은 하지만 다시 첫사랑에 목숨을 매지 않고,

믿음은 2,3 세대 이후는 이미 익숙한 물질적 편안함과 하나님을 만나지 못한 이유 때문에

말씀보다 내가 느낄 있는 찬양만 좋고,

게임이나 놀이에 자신을 맡기는 세대가 되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이일 심각한 이유는 하루 아침에 이루어진 일이 아니라

지난 10 아니 20 이상 걸려서 이루어진 일이기 때문에 하루아침에 바꾸기가 어렵다는 것입니다.

어려운 것은 내가 누리는 물질적 편안함을 포기하고 버리고 자녀들을 살릴 있느냐는 것입니다.

내가 누리고 자녀들이 누리는 물질적 누림을 그대로 가지고서는 아무리 말씀을 들어도 변하지 않는 현실입니다.

 

호흡이 필요합니다.

대안이 필요합니다.

지금부터라도 가정에서 아이들에게 하나님을 경험하는 일들을 해야 합니다.

 

그러나 아픈 것은 그것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살아 본적이 없는 성도들이기에 모른다는 것입니다.

엘리 제사장도, 사무엘 선지자도

그렇게 자신의 축복이 자녀들을 죽일 누가 알았겠습니까?

 

그시대는 사람이 그렇지만

하나님의 놀라운 축복을 경험한 지금은 모두가 그렇게 살고 있는듯하여

아픈 가슴을 치며 주의 도우심을 구하기만 뿐입니다.

말씀을 들어도 애곡하지 않고 피리를 불어도 춤추지 않는 세대를 향한

예수님의 탄식이 마음에 울려 퍼질 뿐입니다.

하나님은 그런 편안한 사사 시대에 가시를 주셨는지

우리는 기억해야 합니다.

 

주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주여 땅을 불쌍히 여기소서!

 

Pastor Seo

Pastor Se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