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달란트를 땅에 묻어 둔다는 의미>
한국성도가 가지는 한가지 큰 문제가 있다.
그것은 사람이 하나님보다 크게 보인다는 것이다.
그래서 사람에게 열광 하고 사람에게 실망한다.
내가 보기에 좋으면 간도 쓸게도 다 줄 것처럼 하지만 아니면 죽일듯이 달려든다.
그리스도로 시작했다 사람으로 망한다.
하나님이 나에게 주신 목사가 아니라 더 좋은 목사에 대하여 열광하고
그래서 내가 섬기는 공동체를 향한 마음이 실망과 좌절된 교회가 되어
내 교회는 없고 오로지 인격적인 교통도 전혀 없는
TV 속 혹은 가상의 목사만 많다.
왕을 달라고 외치던 이스라엘의 실수를 그대로 재연하고 있으니
성도들은 결국 내가 좋아하는 가상의 왕으로 인해 길을 잃는다.
예수님의 십자가의 결과로 이 땅에 유일하게 교회를 주신 이유는
내가 속한 공동체 속에서 나 스스로 왕과 주인이 되지 않는 다는 고백으로
스스로 종이 되고 섬기는 지체로서의 교회를 주셨다.
그 교회의 기초는 왕이 되려던 나를 용서하신 그리스도의 십자가이며,
용서의 기초에 세워진 교회는 주인으로 살지 않겠다는 고백이다.
그래서 예수를 처음 믿을 때 성령은 우리에게 은사를 주신다.
섬기기 위해서다.
내가 주인이 아니라는 고백이다.
교회는 예수님의 몸이다.
내가 주인이 아님을 고백하며 함께한 지체를 섬기는 곳이
내 몸이 속한 공동체인 교회다.
그러나 많은 아픔의 교회는 속한 몸 된 교회는 없고
가상의 좋은 목사,
가상에 떠다니는 한번도 만난 적이 없는 목사에게 마음과 생각을 온통 다 주고 산다.
용서 위에 세워진 교회가 누가 잘났느냐라는 사람이 기준이 되니
교회가 길을 잃는다.
내가 속한 교회,
내가 섬기는 교회를 최고로 여기라.
아니 내가 주인이 아니고 내가 왕이 아니며
용서로 구원 받은 구원의 감격을
허물 많은 교회 공동체 속에서 동일하게 용서의 강을 흘러가게 하며
구체적인 인격과 인격의 만남과 기쁨과 슬픔을 함께 하는 것이다.
가상의 목사,
인격적으로 만나본 적도 없는 목사를 사모함이 아니라
몸 된 교회 공동체를 나를 용서하심 같이 그들도 용서하며
나를 사랑하심 같이 그들도 사랑해야 한다.
몸과 몸이 부대끼며 사는 몸 된 교회를 주신 이유다.
가상의 공간에서 내가 발 붙이고 사는 현실과 거리가 먼 꿈의 목사를 바라며
내 몸 된 교회를 사랑하지 못하는 아픔으로 살아가는 현실이 한국 성도의 현실이다.
사랑할만한 자를 사랑하면 이방인들과 무엇이 다르냐고 물으신 예수님의 말씀을 기억해야 한다.
사랑할 수 없는 자를 사랑하고 용서하고 이해하고 용납하는 곳이 교회이다.
내가 속한 교회를 인격적으로 사랑하고
내 몸이 만나는 공동체를 섬기며
인격과 인격이 만나는 만남 속에 하나님의 나라가 있음을 매일 경험해야 한다.
하나님의 나라는 저 멀리 있는 TV속의 목사나
SNS 의 가상의 목사가 아니라,
허물도 있고 실수도 있고
하고 싶지만 능력이 한 달란트 밖에 없어 어떻게 할 줄 몰라
발만 동동 구르는 나의 목사와 성도들 속에 있다.
신앙의 현재성이다.
지금 내가 속한 공동체와
손과 손을 맞잡을 수 있는 그들과의 만남 속이다.
하나님은 늘 그렇게 내가 한끼라도 대접 할 수 있는 그 속에서
하나님의 나라를 세워 가셨다.
내가 날마다 만나는 나의 목사,
내가 날마다 만나는 가까운 성도들과 인격적인 하나님의 나라를 만들어야 한다.
하나님의 나라는 너희 속에 있다 말씀 하셨다.
가상의 어떤 목사와는 그 하나님의 나라를 내 삶 속에 만들지 못한다.
주님은 그것을 아시고 내가 속한 몸 된 교회를 주셨다.
인격과 인격이 만날 수 있고 함께 먹을 수 있는 교회를!
나의 성도, 나의 목사에게 마음을 전하자.
그들의 약함을 내가 채우자.
내가 가진 은사는 그것 하라고 주셨다.
은사가 엉뚱한 곳에 쓰이지 않게 해야 한다.
가상의 목사 때문에 나에게 주신 한 달란트를 땅에 묻어서는 안 된다.
우리는 내가 그리는 가상의 목사 때문에 한달란트를 땅에 묻어 두고 있다.
오늘도 누군가는 나의 인격적인 손길을 기다린다.
그 손길과 나 사이에 하나님의 나라가 있다.
그 사이에 웃음 꽃이 피면 좋겠다.
그 꽃이 하나님의 나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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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요하네스버그 한인교회 청년회인 실로암에서 카페를 열어서 얻은 수익금을
선교지에 사용해 달라고 담당이신 김성진목사님을 통해 전해 주셨다.
여기 돈으로 약 천란드 가까이다. 한국 돈으로 십만원이라 생각하면 된다.
아이들이 몸소 뛰고 수고해서 얻은 값진 것인데 그것을 선교지를 위해 사용해 달라는 것이
얼마나 감사하고 기특한지 모른다.
그것을 받고 몇 일 지나지 않고 순교한 파니 전도사 사모인 조안나에게 전화가 왔다.
집에 꼭 필요한 것이 있는데 도와 달라는 것이다.
평소에 내가 어려운 일이 있으면 언제든지 연락을 하라고 했는데
망설이고 망설인게 역력하다.
좋은 것을 사서 보내려고 이리저리 알아보다 시간이 지나다
직접 사는 것이 좋을 것 같아 어제 돈을 더 보태서 보냈다.
전화 너머로 조안나사모의 웃음 소리가 들린다.
웃음 소리를 통해 하나님의 나라가 그녀와 나 사이에 임한다.
남편을 잃고도 자신의 자리를 지킨 것도 감사하고
이 일들에 자신의 달란트들을 사용하고 헌신하는 청년들이 귀하다.
그렇게 하나님의 나라는 나의 한 달란트를 통해 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