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도의 끝>
적어도 내 경우는
기도의 끝은 늘 사람에 대한 관심으로 끝이 난다.
그래서 선교사라 참고 참다 안부를 묻고
연락을 하고 그리고 그 사람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대안을 찾는다.
기도의 끝은 하나님의 응답이 아니라
누군가의 기도에 <내가 응답>이 되는 것이다.
기도는 늘 그렇게 하나님의 일하심에 내가 동참하는 것이다.
기도하기 전에는 나의 필요가 크게 보이지만
기도할수록 내 형제들의 필요가 더 크게 보인다.
그래서 예수님의 사십일 금식기도의 끝은 자신을 주심이고
제자들의 오순절 기도의 끝은 자신의 소유를 나눔이다.
기도의 충만은 능력의 충만이기 보다 나눔의 충만이다.
기도할수록 이미 내 안에 계신 하나님의 크심을 만나기 때문에
그들은 누군가의 기도의 응답으로서의 삶을 산 사람들이다.
기도는 누군가의 기도에 대해 하나님을 대신해 내가 응답함으로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진다.
내가 누군가의 기도에 응답하면
하나님은 그들을 통해 내가 경험하지 않은 새로운 은혜를 주신다.
<기도의 끝>은
늘 누군가의 필요를 채우는 것이 먼저이다.
기도에 대한 하나님의 응답은 내가 누군가의 응답이 되는 것이다.
한 시간 기도를 하고, 철야를 하고, 새벽기도를 했는데
하나님이 보여주시는 내가 응답해야 할 사람이 생각나지 않는다면
아마 나는 하나님의 나라가 아니라 나의 나라를 위해 기도한 것이다.
성령은 늘 사람을 세우기 원하신다.
우리의 기도의 끝이 바뀌어야 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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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주일 베레나교회를 방문하고 일주일 내내 기도하며 앓았다.
하데베전도사가 사모와 함께 6개월 된 아이와 교회 뒤편 작은 사무실에서 추운 겨울을 지나고 있다.
베레나교회 사택이 20년이 됐는데 지반이 무너져 철거한 상태기 때문이다.
그런데 천장도 없이 그 추운 예배당 한 켠에서 아프리카의 긴긴 겨울 밤을 보낸다는 것이
내 마음을 너무 힘들게 했다.
물론 나는 훈련의 과정을 지나는 동안 그들의 필요를 전부 채워주지 않는다.
그들 스스로 일어서는 법을 늘 훈련하게 한다.
적은 사례에 난로 하나 전기장판하나 이불 하나 살 돈이 없어 떨고 지내는데
힘들다 표정하나 내지 않고 훈련의 시간을 감사하게 보내고 있었다.
일주일 내내 기도할수록 전기장판, 이불, 난로만 생각이 났다.
하데베 전도사가 사모와 함께 얼마나 기도했을까?
이 훈련을 빨리 지나가게 해 달라고! 추운 입김 내가며 얼마나 기도를 했을까?
정해진 훈련의 시간을 기다려야 하고 정해진 테스트를 지나야 하지만 어린 애기가 있어
결국 이것저것 준비해서 전달을 했다.
하나님은 그들의 간절한 기도 소리에 내가 응답하기를 바라신다.
나는 늘 그들의 기도에 대한 하나님의 응답이다.
오늘도 나의 기도의 끝은 누군가의 기도의 응답이 되기 위해 바쁘다.
내 기도의 중심에는 늘 이 말씀이 있다.
"그러므로 무엇이든지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 이것이 율법이요 선지자니라"(마7:12)
기도의 끝은 남을 대접 하는 것이어야 한다.
기도의 끝은 내가 누군가의 응답이 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