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이 유지 되지 않는 이유?
여호수아24:1-33
믿음은 약속에 근거한다.
그러나 믿음의 생활은 경험, 체험이 있을 때 뜨거움의 정도가 다르다.
신앙생활을 결혼에 비유
신앙생활, 하나님을 믿는 것을 결혼으로 비유하는 이야기를 성경은 많이 한다.
결혼을 하고 사는데
중요한 것이 뭔가?
남모르는 비밀이 부부 사이에 있는 것이다.
두 사람만 아는 이야기
두 사람만 나누는 것이 있으니 재미가 있는 것이다.
그런데 살다 보니 재미가 없다.
왜?
첫째, 다른 것에 재미를 느끼게 되면 재미가 없다.
결혼의 맛,
부부간의 친밀함의 맛을 느껴야 하는데 다른 곳에서 다른 맛을 느끼면
결혼생활은 말 그대로 창살 없는 감옥이다.
낚시에 맛을 들였다 하면 이 사람은 처자식 눈에 안 들어 온다.
시간만 나면 낚시고 그것도 모자라 밤낚시라는 것을 또 맛봐가지고
정말 밤낮으로 다른 곳에 맛을 보러 다닌다.
둘째, 서로 느낌이 없다.
연애할 때나 결혼 초에는 뭐가 그렇게 좋은지 보기만 봐도 가슴이 두근거린다.
그런데 세월이 가자 그 얼굴이 그 얼굴이다.
그 몸이 그 몸이다.
아니다 그 몸이 아니다.
그 몸이면 좋은데 그 몸이 아니니 더 문제가 된다.
그래서 시간이 갈수록 더 노력하고 서로 지나가면서 손도 잡아주고
스킨쉽도 늘어가야
죽어가는 느낌이 살아난다.
그런데 변해가는 몸처럼 내 마음도 처음 느낌에서 변해가는 것이다.
셋째, 부부간에 사연이 없어서 그렇다.
세월이 갈수록 서로 사연이 많아져야 하는데 서로가 서로에게 별 사연이 없다.
변해가는 몸만큼 서로 노력이 필요하다.
안다던 산책도 하고
같이 요리도하고
같이 여행도 가고 해야 뭔가 된다.
다 노력이다.
다 사연을 만들어야 서로 바라보는 느낌이 다른 것이다.
아프리카 와서 처음으로
나에게도 놀라운 일이 일어 났다.
온 가족이 아프리카 와서 처음으로 동네를 산책했다.
애 둘은 유모차에 태워 집사람과 내가 밀고
은빈이는 옆에서 이야기하고.
그날 밤에 우리는 죽는 줄 알았다.
몸이 천근 만근이다.
혼자 가도 먼 길을 애를 유모차에 태워 3.5km를 밀고 올라갔다 내려갔다 했으니.
그런데 이상한 것은 몸은 피곤한데 집안이 조용해졌다.
집안 분위기가 이상하게 좋아졌다.
한 것이라고는 같이 동네 한 바퀴 돈 것이 전부다.
그런데 참 좋아진 집안 분위기에 나도 놀란다.
이런 서로의 사연들,
함께 했던 사연들이 서로에게 재미로 남고 기분 좋음으로 남는 것이다.
이제 아이들과 집사람은 그 시간을 기다린다.
기다림은 설렘이고
설렘은 사랑의 울타리이다.
신앙생활에서 하나님께서 나와 함께 하셨던
나만이 느끼는 체험과 경험과 사연이 없다면 그것은
정말 재미 없는 삶이다.
여호수아의 마지막 결론
여호수아가 마지막으로 이스라엘에게 남긴 말이 23장 24장이다.
그 말들을 한마디로 요약하면
나와 내 집은 하나님만 섬긴다.
왜냐하면
내가 경험한 하나님,
내가 체험한 하나님은 진짜다.
너희는 이 진짜 하나님을 사랑하고 섬기고
다은 신은 절대 섬기지 말고
다른 신을 섬기는 나라에 가지도 혼인도 하지 말라.
그 하나님을 사랑하면 복에 복을 더하신다.
그것이다.
나는 하나님만 섬기겠다.
내가 체험하고 경험하고 하나님의 일하심을 봤는데
그분이 진짜 하나님이다.
그분이 말한 모든 것이 내 눈앞에서 이루어졌고,
우리가 그것을 만졌고 가졌고 지금 우리가 이렇게 서있는 것이 그 증거이다.
그래서 하나님이 살아계시니 절대 다른 우상을 섬기지 마라.
섬기면 죽는다. 저주가 온다. 진멸된다 라고 경고한다.
그리고 우리가 경험해보니 하나님께서 가나안에 들어와서 싸울 때 일당백이 아니라
일당 천으로 우리를 만드셨고 우리가 승리했다.
그래서 그 하나님을 사랑하라.
말씀은 이루어 지니까 말씀대로 해서 축복받고 저주는 받지 말라.
우리가 체험이 있다.
절대 하나님만 섬기라 그것이 마지막 유언의 내용이다.
여호수아의 결론은
경험한 하나님에 근거한 호소이다.
누가 하나님을 섬기고 믿음을 놓치지 않고 사는가?
수24:31 이스라엘이 여호수아의 사는 날 동안과 여호수아 뒤에 생존한 장로들
곧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을 위하여 행하신 모든 일을 아는 자의 사는 날 동안 여호와를 섬겼더라
쉽게 말하면
이스라엘은 섬겼다. 하나님이 행하신 일을 하는 자가!
그렇게 되는 것이다.
사사기2:7 백성이 여호수아의 사는 날 동안과 여호수아 뒤에 생존한 장로들
곧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을 위하여 행하신 모든 큰 일을 본 자의 사는 날 동안에 여호와를 섬겼더라
사사기도 마찬가지다
백성이 섬겼다.
언제?
여호와의 큰 일을 본 자들이 살 동안에.
믿음 만으로 되는가?
믿음으로 시작한 백성이 믿음만 가지고 살수 있는가?
물론 어느 정도 명맥은 유지 할 수 있다.
하지만,
그들이 진짜 신앙생활은 다르다는 것이다.
신앙생활이 재미 있기도 하고 재미 없기도 하다는 것이다.
티비도 재미 없으면 채널을 금방 틀어버린다.
책도 조금 읽다 재미 없으면 덮어 버린다.
설교도 조금 듣다 재미 없다 싶으면 주보를 보기 시작한다.
오타도 찾고
누가 왔는지 둘러도 보고
마치고 뭐할지 계획도 한다.
이것이 지금 세대의 모습이다.
그렇다고 이 세대를 뭐라 할 수도 없는 것이 이미 그렇게 문화와 세상이 흘러간다.
방송도 재미 없는 드라마, 쇼 프로는 문을 닫아 버린다.
신앙도 왜 동일한 증상이 나타나는가?
왜 믿음이 유지가 되지 못하는가?
여호수아서의 결론과 사사기서의 서론은 동일한 문장으로 기록되어 있다.
물론 성경저자의 의도가 있다.
하나님을 믿는 절대 신앙의 근본은
하나님의 행하심을 본 자와
보지 못한 자로 구분한다.
두 종류의 사람
여호수아서와 사사기서를 기록한 저자의 입장에서
사람은 오직 두 종류이다.
하나님을 경험한 자와
하나님을 경험하지 못한 자.
경험의 목적은 하나님을 믿게 하고 그분을 경외함이 목적이나
우리의 입장에서 믿음생활이 재미있고 즐겁고 행복하게 하는 것이다.
그래서
사사기 기자는
이스라엘백성의 이 믿음생활을 제대로 안 하면
그렇게 하도록
올무를 만들고
옆구리에 채찍을,
눈에 가시를 두신다 했다.
그래서 근시안적으로 보면
아픔이나 핍박이나 고난은 싫은 것이지만
하나님의 입장에서 우리에게 하나님을 경험하는 남겨둔 방법인 것이다.
맛을 모르는 사람들
왜 신앙생활 믿음이 더욱 깊어지고 재미 있지 않은가?
맛을 모르기 때문이다.
성경을 읽어도 하나님을 만나지 못하고 ,
기도를 해도 뭔가 느낌이 없고
설교를 들어도 남의 이야기 같고
다 귀에만 맴맴 거리고
내 머리,
내 가슴이 뜨거워지지 않는데 문제가 있다.
광야가 고난이나 축복인 것은 광야의 고난을 통하여 더욱 하나님을 경험케 된다는 것이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말고
하나님을 경험케 해야 내가 산다.
결혼은 했는데 정말 재미 없는 결혼 생활을 할거인가?
연애를 하는데 봐도 좋고 안 봐도 좋고 그렇게 할 것인가?
살았으나 죽은 것처럼 살지 않아야 한다.
신 마귀의 전략
이 시대의 마귀의 전략은
다른 맛을 자꾸 보게 한다.
하나님이 아니라 다른 세상의 맛을 보게 해서 그것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게 한다.
또 다른 전략은
하나님과 사연을 만들지 못하게 한다.
그래서 하나님에 대한 느낌, 하나님에 대한 감각을 죽여 버린다.
여호수아서에서 그렇게 놀랍도록 체험하는 신앙의 일대들이
사사기서에 와서는 믿음의 후손들이 바로 하나님을 버리는 것을 본다.
이유는 간단하다.
체험이 없다.
하나님을 느끼지 못하고
다른 어떤 재미 있는 맛을 찾아 다닌다.
망하는 가정교육
신앙을 가진 부모가 자녀들에 대해 가장 안 좋은 교육방법,
자녀를 믿음으로 죽이는 가장 좋은 방법은
부모가 경험한 하나님에 대해서 이야기 하지 않고
말하지 않고
전하지 않는 것이다.
이전에 하나님을 이렇게 만났고,
이렇게 경험했고,
이런 체험을 해서
하나님께서 이렇게 은혜를 베푸셨다는 이야기를 끊임 없이 해야 한다.
그리고 가정의 어려움이 있을 때
함께 그 제목을 가지고 기도하고
기도의 응답을 가지는 경험을 하게 해야 하는데
일체 말하지 않고
혼자 다하고 마는 신앙생활이다.
신앙이 교회를 다니는 신앙에서
체험하는 신앙으로
경험하는 믿음으로
느끼는 신앙으로 바뀌지 않으면
우리의 자녀는 세상의 맛을 따라 죽어가게 될 것이다.
아니 자녀가 아니라
내가 얼마 가지 않아
은혜 안에 감격하고
기뻐함으로 간증하고 찬양하는 것이 아니라.
판단하고 정죄하고
머리만 남은 조둥아리 신앙이 될 것이다.
나는 어떤 신앙족
조둥아리 신자라고 아는가?
물에 빠지면 머리는 물속에 들어가고 엉덩이는 하늘을 보는 자세가 되는 것!
머리가 물속에 있는 이유는 물고기 하고 이야기 하려고!
말만 남는 건조하고 비판적이고
머리로는 다 아는데 가슴도 느낌도 감격도 없는 신앙!
다음이 곰탕신앙이다.
늘 하는 이야기는 십 년 전 이 십 년 전 경험했던 그것 우려 먹고 사는 곰탕족이다.
옛날 신앙 우려먹는 신자!
아니면 맹탕족 이던지!
맹탕 물처럼 아무것도 할 말이 없는 사람!
경험도 없고 체험도 없고 그냥 내 의지로 믿는 사람.
믿어야겠기에 믿기는 하는데 뭐 아무것도 없다.
그러다
교회를 비방하고 외면하고
급기야 세상으로 달려가버리는 신앙이 되는 것이다.
성경은 이런 신앙생활은 반드시 망하고
멸절되고 자손이 죽을 고생 한다고 경고한다.
여호수아가 힘이 없어진 가운데 죽어라고 말하는 이야기가 그것이다.
그럼 우리가 어떻게 이런 체험적 신앙,
하나님을 경험하는 신앙,
믿음이 뜨겁게 유지되는 신앙생활을 할 수 있는가?
첫째는 먼저 하나님만 잡겠다 결심해야 한다.
세상에 소망이 없음을 알아야 한다.
우리가 왜 자꾸 세상을 향하여 달려가는가?
하나님이 재미가 없어서이다.
그런데 사실 세상은 당장 단 맛을 주지만 결국 패망이다.
롯을 기억해야 한다.
보기 좋은 곳을 택하고 갔더니 결국 불과 유황으로 망했다.
세상에 목숨을 거는 자,
세상에 맛을 잡고 있는 자는 결코 믿음이 유지 되지 않고 재미 없는 신앙생활을 한다.
내가 세상이 아니라 하나님께만 집중하고
하나님과 함께 사연을 만들고 경험을 만들겠다는 결심이 필요하다.
그래서 여호수아는
너희는 오늘날 결정하라.
나와 내 집은 하나님만 섬기고 하나님만 택하겠다고 결심하고 각오하고 다짐한다.
그리고 너희도 오늘 먼저 결정하라고 요구한다.
이 결정이 없으면 어떤 일이 와서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좋은 것은 오지 않는다.
둘째, 진정한 재미와 행복은 하나님께 있다고 믿어야 한다.
우리가 왜 하나님을 위해 전부를 버리지 못하는가?
믿어지지 않기 때문이다.
왜 우리가 하나님께 전부를 걸지 못하는가?
내가 좀 노력해야 행복이 온다고 믿고
내가 그래도 수고해야 축복이 온다고 믿는다.
아니다 진정한 행복은 전부 하나님께로 온다.
그분께 인생의 재미와 행복이 있다고 믿으라.
축복을 주시는 분도,
저주를 보내시는 분도 오직 하나님이다.
그분이 주실수도 가져 가실 수도 있다.
그래서,
셋째로 그분과 사연을 만들어야 한다.
하나님과 사연을 만들어 보라.
하나님 때문에 뭔가 하는 일을 만들어보라.
교회가 하는 대로 끌려가지 말고
스스로 결정해서 하나님 때문에 뭔가 일을,
남을 돕는 일을,
하나님을 은밀히 만나는 일을 계획하고 실행해보라.
우리는 안다.
성령께서 지금 나에게 원하시는 것이 뭔지를!
그것을 하라.
그 사연을 만들고 시간을 드리고 몸을 드리고 물질을 드릴 때,
이전에 알지 못하던 재미
행복이 솔솔 올라올 것이다.
여호수아서와 사사기를 넘어가면서 확실히 아는 것은
하나님을 경험하지 않으면 반드시 고통이 온다.
고통이 오기 전에 나오는 증상은
믿음생활,
신앙생활이 재미가 없다는 것이다.
재미가 없는가?
그럼 알아야 한다.
얼마 가지 않으면 고통이 오겠구나!
빨리 하나님만 잡겠다 각오하고
참 재미와 행복이 하나님께 있다 믿고
그분과 사연을 만들어라.
하다 없으면
서 목사에게 전화라도 해라.
교회 교역자와 국밥이라도 먹으라.
옆 친구에게 이런저런 이야기라도 해보라.
그럼 하나님께 무엇을 더 해야 할지 말씀하실 것이다.
그때 주시는 음성에 따라가면 그 다음 발걸음이 보인다.
그분은 우리가 고통으로 가는 것을 제일 원치 않으시는 분이다.
그분은 언제나 우리가 그분을 만나 남다른 사연을 통하여
하나님을 경험하기 원하신다.
그것이 여호수아서를 마치면서 내리는 나의 결론이다.
이스라엘을 이렇게 놀랍게 경험케 하고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보고
그 하나님만 섬기겠다 각오하고!
그 하나님이 지금 나를 만나고 싶어 하신다.
그것이다.
< 내가 너를 만나고 싶다 그리고 네게 복주고 싶다 >
그것이 하나님의 진정한 마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