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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답은 어떻게 오나?

응답은 어떻게 오나?

 

 

 

 

 

 

 

 

 

 

 

 

 

 

응답은 어떻게 오나?

여호수아 12:1-24

14:6-12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부르셨다.

 

부르실 하나님은 그에게 약속하신 것이 있다.

 

 

 

 

민족을 이룸과

 

이름이 창대케하며

 

복의 근원이 되는 것이다.

 

 

 

 

그리고,

 

 

가나안 사람들이 살고 있는 세겜에서 다시 나타나

 

땅을 그의 자손에게 것이라 약속하셨고,

 

그가 그곳에서 단을 쌓고 예배를 드렸고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는 장소가 된다.

 

 

 

 

 

그가 하나님의 이름, 여호와의 이름을 처음 부른 곳이

 

가나안에서였다.

 

이미 아브라함은 가나안을 보았고

 

밟았고,

 

가졌다.

 

 

 

 

후에,

 

 

하나님께서 나타나셔서 자손을 약속하셨고

 

하늘의 별과 같이 많은 자손을 주시겠다 약속하신 것이다.

 

 

 

 

 

그는 하나님으로부터

 

민족을 약속 받았고,

 

복의 근원을 약속 받았고,

 

가나안을 약속 받았다.

 

 

 

 

그리고, 하늘의 별과 같은 자손을 약속 받았다.

 

 

 

 

 

 

그는 그의 아내와 함께 가나안에 묻혔다.

 

그리고 이삭과 야곱 모두 묻힌 곳이 바로 가나안이다.

 

가나안이 그들의 영적 고향인 것이다.

 

 

 

 

 

모두 가나안에 묻히기를 원하여 애굽에 거하다 결국 가나안에 묻혔다. 

 

 

 

 

 

그들은 모두 가나안에 묻히길 원했고,

 

그래서 그들은 그곳에 묻혔다.

 

 

 

 

그들에게 고향은 가나안이다.

 

약속이 있는 그곳이 고향이다.

 

 

 

 

 

 

 

그리고,

 

 

 

그들의 자손이 민족을 이루었을 뿐만 아니라,

 

하늘의 별과 같은 무수한 민족이 되었다.

 

 

 

 

 

오늘 그렇게 바라던 가나안을 약속 받고

 

정복한 땅과 왕들을 열거 하고 있는 것이다.

 

 

 

 

 

 

 

 

 

 

이스라엘은 그들이 오고 싶은 대로 것이 아니다.

 

처음부터 약속을 따라 왔다. 

 

약속으로 민족을 이루었다.

 

약속으로 백년 동안 종살이를 했다.

 

그리고 약속으로 재물을 가지고 나왔고

 

오늘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의 땅을 모두 점령했다.

 

 

 

 

 

 

 

이상하지 않은가?

 

 

 

 

처음부터 대본대로 움직인 것이다.

 

 

 

 

 

아브라함을 처음 부를 때부터 이미 이것은 대본에 있는 것이다.

 

 

 

 

 

민족도,

 

나라도,

 

자손도,

 

재물도,

 

 

그리고 가나안도!

 

 

 

 

 

보는가?

 

 

 

뭐가 보이는가?

 

 

 

그림이 보이지 않는가?

 

 

 

 

하나님은 처음부터 이렇게 가야 함을 알고 그렇게 이끌어 오신 것이다.

 

그분의 정확한 대본대로!

 

 

 

 

 

 

 

구약을 보면 이제는 신약이 보이는 것이 아니라 하늘 나라가 보인다.

 

다시 오실 그리스도가 보인다.

 

 

 

 

그분은 구약에서 보여준 모든 그림자대로 신약에서 이루어지고

 

다시 구약에서 이루지 못한 모든 ,

 

신약에서 이야기하는 모든 것이 앞으로 이루어질 것이 명확하게 보이는 것이다.

 

 

 

 

 

 

사실 글을 시작할 때는 이렇게 글을 쓸려고 하지 않았는데,

 

 

 

 

 

왕들의 이름,

 

쳐부순 왕들의 무수한 이름으로 승리의 결과,

 

승리의 흔적들,

 

 

 

믿음의 싸움으로 싸운 결과들을 우리가 가져야 한다고 말하고 싶었는데

 

 

 

 

성령은 그게 아니라고 하신다.

 

 

 

 

 

 

 

결과는 우리의 결과가 아니다.

 

 

 

 

결과는 하나님이 주신다.

 

 

 

 

 

그것에 연연해 하지 말라신다.

 

 

맞다.

 

 

우리가 결과를 들고 나오면 우리는 이스라엘처럼

 

우리가 잘해서,

 

우리가 의로와서,

 

그런 결과를 얻은 것으로 생각할 같아 그런 자체를 염두에 두지 말라신다.

 

 

 

 

 

 

가나안이 우리의 대적이 되고 죽은 것은

 

그들의 강퍅함이라고 성경은 말씀하신다.

 

 

 

 

 

우리의 의가 아니라고 명확하게 못박는다.

 

 

 

 

수11:20 그들의 마음이 강퍅하여 이스라엘을 대적하여 싸우러 온 것은

 

 

 

 

뿐만 아니다.

 

 

 

 

 

신9:4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들을 네 앞에서 쫓아내신 후에 네가 심중에 이르기를

 

 

나의 의로움을 인하여 여호와께서 나를 이 땅으로 인도하여 들여서 그것을 얻게 하셨다 하지 말라

 

 

실상은 이 민족들이 악함을 인하여 여호와께서 그들을 네 앞에서 쫓아내심이니라

 

 

 

 

 

 

 

이미 하나님은 이것을 아시고

 

 

우리의 의로움이 아니라고 명확하게 못을 박고 있다.

 

 

 

 

 

 

 

결과는 하나님께 맡기라 하신다.

 

 

 

약속을 따라 이루신다는 사실을 한번 기억하고 보라 하신다.

 

 

 

 

 

 

모든 것이 대본 대로,

 

다시 말해 하나님의 약속대로 이루신 것이다.

 

 

 

 

 

결과를 보며,

 

이스라엘에게 죽은 왕들과 가나안을 보며

 

우리는 다시 처음 약속으로 돌아가야 한다.

 

 

 

 

 

약속이 없으면

 

결과가 없다.

 

 

 

 

 

그것이 영적 법칙이다.

 

 

 

 

 

 

 

나는 어떤 약속을 받았는가?

 

 

 

 

하나님께서 나를 부르실 분명 약속을 주셨다.

 

 

이곳에 부르실 ,

 

결혼하게 하실 ,

 

사역자로 부르실 ,

 

직분자로 세우실 ,

 

어떤 일을 맡기실 분명히 약속으로 부르셨다.

 

 

 

 

 

 

 

 

 

 

내게 있는 유일한

 

 

 

하지만 우리에게 유일한 의가 하나 있다.

 

 

그것이 무엇인가?

 

 

 

 

 

바로 믿음이다.

 

 

 

[롬5:1]그러므로 우리가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얻었은즉

 

 

 

 

 

성경은 어디서든지 우리의 의로움을 찾지 않으신다.

 

그러나 오직 믿음만은 의로움으로 인정하신다.

 

 

 

 

 

 

 

 

 

시작을 보면 끝이 보인다.

 

 

 

 

 

여호수아 14장에 갈렙의 이야기가 나온다.

 

전쟁이 끝난 시점에,

 

땅도, 가나안 사람도 정복한 마당에 그의 이야기,

 

아니 그의 마음을 움직여 땅을 다시 정복할 있는 기회를 주시는가?

 

 

 

 

 

 

이상하지 않은가?

 

 

 

 

 

이야기를 앞에 수도 있고

 

없앨 수도 있는데

 

거진 전쟁이 끝나가는 시점에 갈렙 이야기를 넣고 있느냐는 것이다.

 

 

 

 

 

 

그것은 앞서 살펴본 가나안의 왕들이

 

이스라엘의 손에 죽었는가 하는 이야기를 확증하는 것이다.

 

 

 

 

 

 

 

가나안의 정복은 아브라함의 약속을 따라 왔다 했다.

 

자손이 많아짐도, 민족이 되는 것도,

 

가나안의 젖과 꿀이 흐르는 축복을 받은것도 근거가 모두 약속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적들의 수효와 땅을 보며 우리의 의로움이 아니니

 

절대 목에, 어깨에 힘주지 마라 말이다.

 

 

그래서 오늘 성경 기자는 한번 이야기를 확증한다.

 

 

누구를 통해서?

 

갈렙을 통해서.

 

 

 

 

 

갈렙이 누구입니까?

 

 

 

 

정탐꾼 중에 오직 유일하게 믿음으로 고백한 사람이다.

 

안된다고 할 때,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시면 된다라고 고백한 사람이다.

 

 

 

 

합리와 이성을 좇은 사람이 아니다.

 

눈에 보이는 것을 좇은 사람이 아니다.

 

여호수아와 같은 믿음의 사람이다.

 

 

 

 

 

그런데 그가 모든 전쟁을 마쳐가면서

 

여호수아에게 찾아와

 

45년 전에 당신과 내가 모세에게 보고할

 

다른 형제들은 백성들의 간담이 녹을 만큼

 

불가능을 보고했지만,

 

우리는 온전히 여호와를 좇았다.

 

그때 모세가 우리에게 하신 말씀이

 

' 발로 밟는 땅은 영영히 너와 자손의 기업이 되리라'라고 약속했다.

 

 

 

 

 

그리고 그가 약속을 이루기 위해

 

' 산지를 내게 달라' 요구하고 있다.

 

 

 

 

그것도 당당히!!!

 

 

 

 

여호수아와 갈렙은 처음부터 다른 사람들이다.

 

상황을 사람들이 아니다.

 

환경을지만 환경을 바꾸실 있는 하나님을 더욱 강하게 보는 사람들이다.

 

 

 

시작이 다르다.

 

그래서 나이 비록 지금 85세이나 얼마든지 하나님이 함께 하시면 가능하다고

 

다시 그의 믿음을 고백한다.

 

 

 

 

 

 

믿음이다.

 

 

 

의가 아니라 믿음이다.

 

 

믿음이 바로 의다.

 

 

 

시작이 믿음으로 했으니 마침도 믿음으로 하는 것이다.

 

 

 

 

 

 

 

 

헤브론

 

 

 

 

여호수아가 헤브론을 준다.

 

 

헤브론은 아주 의미가 많은 장소이다.

 

 

모세가 보낸 정탐꾼이 들고 왔던 어깨에 포도송이는 여기에서 가져온 것이다.

 

 

 

예루살렘에서 서남쪽으로 30km 지점에 있는 지역으로 애굽에서 가장 먼저 건설한 도시이다.

 

 

 

 

아낙 자손이 다스리는 지역인데,

 

이곳이 바로 막벨라굴이 있는 ,

 

믿음의 선진들 사라와 아브라함, 이삭, 리브가, 레아, 야곱 등이 묻힌 곳이다.

 

 

 

 

믿음의 조상들이 가나안을 그리워하며 고향으로 여기며 장사 지냈던 진정한 가나안이다.

 

이곳의 일부를 지금 갈렙이 달라고 하는 것이다.

 

 

 

 

이곳은 이후에 다윗이 즉위하여 수도로 정할 만큼 좋은 요새이다.

 

 

 

 

 

 

 

 

 

 

당당한 요구의 근거

 

 

 

 

 

갈렙은 믿음의 사람이다.

 

 

 

그는 믿음으로 진정한 가나안을 보았고

 

조상들이 그렇게 바라던 장소를 믿음으로 지금 달라고 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는 땅을 얻게 된다.

 

 

 

 

 

< 산지를 내게 주소서 >

 

 

 

 

말은 요구이다.

 

내가 받을 하다라는 것이다.

 

그는 자신의 의를 가지고 있다.

 

그의 행동의 , 율법의 의가 아닌

 

진정한

 

 

바로 믿음이다.

 

 

 

 

그는 시작도 믿음이고 이제 마침도 믿음이다.

 

믿음으로 믿음의 조상들의 , 진정한 영적 가나안을 그가 차지하게 되는 것이다.

 

 

 

 

물리친 수많은 업적들이

 

죽어간 수많은 적들의 왕들이

 

차지만 수많은 땅들이 우리의 의로움이 아니라는 것을 성경은 다시 말하여 주고 있다.

 

 

 

오직 약속을 받은 사람.

 

사람이 차지하게 되는 나라가 바로 하늘 나라이다.

 

약속은 어디서 오는가?

 

 

 

 

 

 

 

바로 < 믿음 > 이다.

 

 

 

믿음은 약속을 따라 온다.

 

 

 

 

 

 

 

 

누가 ' 산지를 달라' 외칠 있는가?

 

 

 

 

 

약속을 믿는 믿음의 사람이다.

 

 

 

 

 

우리의 기도는 약속,

 

말씀을 근거할 힘을 발휘 한다.

 

하나님의 말씀이 있는가?

 

그럼 그것을 근거로 기도하라.

 

그럼 이루시리라는 주의 확증을 듣게 것이다.

 

 

 

 

 

다시 한번 정리 하자!

 

 

 

 

 

영적인 길이 어떻게 되나?

 

 

 

 

< 약속 > -  < 약속에 근거한 믿음 > -   < 간구 >  - <  열매와 응답 >

 

 

 

 

간구가 없는 응답은 없다.

 

 

믿음이 없는 간구는 의미가 없다.

 

 

그러나 약속에 근거한 믿음은 반드시 응답을  요구할 있다.

 

 

 

 

 

간구할 약속을 잡고 그것이 정말 이루어질 믿고 기도하라.

 

 

 

 

그러면 반드시,

 

확실히,

 

분명히 응답과 열매는 온다.

 

 

 

 

 

이스라엘 역사는 영적 흐름의 반복이다.

 

 

 

 

 

 

약속부터 잡으라 그러면 산지는 것이 된다.

 

 

성경은 오늘 그것을 말하고 싶은 것이다.

 

 

 

 

 

 

 

 

 

 

 

성령이 무슨 근거로 왔는가?

 

 

 

 

성령이 어떻게 왔는가?

 

 

약속을 따라 왔다.

 

 

 

 

[행1:4]사도와 같이 모이사 저희에게 분부하여 가라사대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내게 들은 바 아버지의 약속하신 것을 기다리라

 

 

 

 

 

이스라엘의 출애굽과 자손의 번성함도 아브라함에게 약속이라 한다.

 

 

 

 

[행7:17]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 때가 가까우매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에서 번성하여 많아졌더니

 

 

[행13:23]하나님이 약속하신 대로 이 사람의 씨에서 이스라엘을 위하여

 

구주를 세우셨으니 곧 예수라

 

 

 

 

 

 

 

약속은 결과를 반드시 낳는다.

 

 

 

 

 

그리고 우리에게 다시 약속하신다.

 

 

[갈3:29]너희가 그리스도께 속한 자면 곧 아브라함의 자손이요 약속대로 유업을 이을 자니라

 

 

 

 

 

구약을 보면 미래가 보인다 했다.

 

 

 

 

 

이제 미래가 보이는가?

 

찬란한 영광의 나라, 나라가 보이는가?

 

 

미래가 보여야 모든 것을 버리고 따를 있다.

 

 

 

 

우리가 땅에서 인내가 필요하다.

 

하나님의 의를 이루기 위해 인내가 필요하다.

 

미래를 보장받을 약속은 인내를 통해서 온다.

 

 

 

 

[히10:36-37] 너희에게 인내가 필요함은 너희가 하나님의 뜻을 행한 후에 약속을 받기 위함이라

 

 잠시 잠깐 후면 오실 이가 오시리니 지체하지 아니하시리라

 

 

 

 

 

 

그리고 히브리서 기자는 믿음에 대해서 말씀하신다.

 

 

 

믿음이다.

 

 

 

[히10:38] 오직 나의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우리가 알고 있는 믿음이 아니다.

 

이것은 마지막 약속에 대한 믿음이다.

 

그리스도가 오셔서 주실 약속에 대한 믿음이다.

 

 

 

 

 

단지 예수를 믿는 믿음이 아니라

 

영원한 나라가 오실 받는 약속을 믿는 믿음이다.

 

땅에서의 믿음에 대한 약속이 아니라.

 

영원한 약속,

 

영원한 하늘과 땅에서의 보장받는 약속이다.

 

 

 

 

 

그래서 믿음이 있는 ,

 

다가올 나라를 믿는 자만이 모든 것을 포기하고 버릴 있다.

 

 

 

[벧후3:13]우리는 그의 약속대로 의의 거하는 바 새 하늘과 새 땅을 바라보도다

 

[요일2:25]그가 우리에게 약속하신 약속이 이것이니 곧 영원한 생명이니라

 

 

 

 

주님은 오신다.

 

 

 

 

너무 선명하게 보인다.

 

 

 

그리고 약속하신 생명의 면류관이 보인다.

 

 

 

[약1:12]시험을 참는 자는 복이 있도다 이것에 옳다 인정하심을 받은 후에

 

주께서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에게 약속하신 생명의 면류관을 얻을 것임이니라

 

 

 

 

 

약속이 있는 자는 세상에 미련이 없다.

 

매이지 않는다.

 

오직 나의 달려 길을 달려갈 뿐이다.

 

 

 

왜 우리가 믿음에 모든 것을 걸지 않는가?

 

 

솔직해지자!

 

하늘이 안믿어지는 것이다.

 

 

정말 믿어지면 우리는 이렇게 살지 않는다.

 

정말 믿어지면

 

포기 하라고 할 때 포기가 된다.

 

내려 놓으라 하면 내려 놓게 된다.

 

 

미련이 있으면 그렇게 되지 않는다.

 

 

하늘이 믿어지고

 

다가올 내 나라가 있음을 믿는 사람은

 

제자들처럼 모든 것을 버려두고 주를 좇을 수 있다.

 

 

그 믿음이 우리에게 없는 것이다.

 

 

 

 

 

 

사도 바울의 고백이 이제 나의 고백이 된다.

 

 

 

[딤후4:7-8] 내가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으므로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 날에 내게 주실 것이니 내게만 아니라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에게니라

 

 

 

 

 

 

 

 

 

뿐만 아니라

 

 

 

땅에서 약속하신 성경의 약속들이 명확하게 보인다.

 

 

 

 

 

약속들은 반드시 이루어지고

 

기도의 응답들은 명확하게 이루어지고

 

성경의 일점일획도 틀림없이 이루어 짐이 보이는 것이다.

 

 

 

 

[마21:22]너희가 기도할 때에 무엇이든지 믿고 구하는 것은 다 받으리라 하시니라

 

 

 

 

 

 

 

하나님은 신실하신 분이다.

 

 

 

 

 

 

 

오늘 수 없이 늘어져 기록되어진 점령 당하고 죽임 당한

 

삼십 왕과

 

모세가 점령한 요단 이편 땅의 기록을 보면서

 

 

약속에 신실하신 하나님을 있는 것이다.

 

 

 

 

 

 

하나님은 반드시 이루시는 것이 가지 있다.

 

 

 

첫째는 약속이요

 

 

둘째는 믿음의 기도이다.

 

 

 

 

 

 

 

 

 

 

 

하나님은 살아 계신다.

 

 

그리고 약속은 반드시 이루신다.

 

 

또한 믿음으로 기도 하는 것은 받는다.

 

 

 

 

 

Pastor Seo

Pastor Se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