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질 3>
주를 위해 죽겠다고 목숨 걸고 살면서
옆에 있는 형제의 허물은 죽어도 용서하지 못한다.
아마 주님도 용서하지 않을거다.
주님은
내가 이룬 일로 평가하지 않고
나의 용서로 평가한다.
* 교회 원로목사님께서 한 목사님을 찾아왔습니다.
그 목사님은 20 여년 전 그 교회 전도사였던 분입니다.
연로하신 목사님께서 이전 전도사였던 그 목사님께 용서를 구하였습니다.
"그때 그일 참 미안합니다 용서를 구합니다" 라고 말입니다.
20여 년 전입니다. 그 목사님이 전도사 시절 중고등부 큰 행사를 준비하면서 연극도 올리셨는데
탕자 이야기였습니다. 연극 내용 중에는 탕자가 타락한 장면도 있었습니다.
400명 가까운 사람이 본당을 메우고 연극을 보고 연극이 진행되는데
탕자의 타락 장면의 막이 올라가자 갑자기 그 담임목사님은 연극을 중단 시켰습니다.
이유는 거룩한 강대상에서 타락한 장면을 올릴 수 없다는 것입니다.
전도사님은 그 막을 그냥 빼고 다음 막으로 다시 진행을 했습니다.
모든 것이 잘 마무리되고 모든 행사도 잘 진행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시간이 20여 년이 흘렀는데 연극을 막았던 담임목사님께서
은퇴를 하시고 그리고 또 수년이 흐른 어느 날 그때 그 전도사님이었던
한 교회 담임목사님을 찾아오셨던 것입니다.
그때 그 일을 용서를 구하기 위해서 말입니다.
그리고 그 목사님은 몇 일 지나지 않아 천국을 가셨습니다.
천국가시기 전에 이 땅에서 용서를 구할 작은 것까지도
원로목사님은 용서를 구하셨던 것입니다.
이 원로목사님은 제 모교의 개척목사님이시고 저의 첫 목사님이시며
교회를 사랑하고 성도를 사랑하셨던 목사님이셨습니다.
그리고 그 연극에서 뺏던 그 막의 중요 인물은 당시 학생이었던 저였습니다.
모두에게 그냥 넘어갈 일,
잊혀진 일이지만
천국을 준비하며 무엇을 준비해야 하는지 영적으로 깊으셨던
그 목사님은 아셨던 것입니다.
천국, 하나님 나라를 외치지만
우리가 하나님 앞에 평가 받는 것은 우리가 이룬 일이 아닙니다.
우리가 이룬 일로 용서하지 않은 일이 묻히지 않습니다.
용서입니다.
천국을 몇 일 앞둔 원로 목사님은 그것을 아셨던 것입니다.
천국에 우리가 무엇을 가져가야 하는지…
10년이 넘은 제 성경책은 그 목사님께서 연로하신 중에
노회에 오셔서 나의 목사 안수를 직접 하시며 주신 성경책입니다.
성경은 저에게 <용서>를 가르칩니다.
글이 아니라 <삶>으로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