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조용기목사님 밑에는 큰 사역자가 나오나
여호수아10:16-27
큰 인물 밑에는 큰 사람이 나올 가능성이 많다.
이것은 모든 상황에 적용되지 않지만,
거의 모든 부분에 적용된다.
명문 가문이란 것이 있다.
영적인 명문 가문도 있고 세상적으로 명문 가문도 있다
첫 대가 힘들지 한번 이루어 놓은 판은 몇 대가 가도 사라지지 않는다.
보고 자란 것!
이것이 무섭다.
해보지 않아도 보고 자란 것 그것이 무섭다.
목사님들도 보면 전부는 아니지만 거의 대부분의 한국교회를 이끌어가는
영적 거장들의 대부분은 믿음의 가정 3-5대쯤 된다.
일대에서 큰 인물이 나오는 것은 말 그대로 하나님의 강권적인 선택이다.
뭔지는 모르지만 영적인 좋은 토양에서 보고자란 것은
결국 자신의 삶 속에 그대로 녹아 있는 것이다.
위대한 음악가는 부모가 거의 반드시 음악에 평생을 전념해온 부모님에서 나온다.
위대한 정치가는 부모의 정치그늘아래서 또 정치를 보고 배운다.
무리의 법칙이다.
의사가 많은 집안은 의사가 저절로 많이 나오게 된다는 법칙이다.
한번 영적인 거목이 나오면 그 밑에서는 저절로 큰 나무들이 자라게 되어있다.
여호수아의 이상한 행동
오늘 성경은 여호수아가 태양과 달, 그리고 우박과 칼을 통해
전적 하나님이 싸우심을 통해 잡은 다섯왕을 잡아와서
그들을 처단하는 장면이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모든 백성을 모으고 군장들 보는 앞에서 이상한 일을 한다.
모든 백성이 보고 있는 앞에서
그리고 특히 군장들, 군대 장교들 앞에서
왕들을 쓰러뜨리고 그 목을 밟으라 한다.
완전한 수치이다.
왕들은 엄청난 수치이다.
완전히 밟히는 것이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이 군장들, 군 장교들에게
두려워 말라, 놀라지 말라 마음을 강하게 하라 담대히 하라는 말을 한다.
이미 죽음 앞에 있는 왕들이다.
힘을 쓸 수 없다.
거의 죽은 사람이다.
그런데 여호수아는 그들의 목을 밟고 칼을 높이 쳐들고(내 생각)
목을 밟게 하면서
강하고 담대하며 놀라지 말고 두려워 말라고 하는 것인가?
여호수아는 알았다
그는 알았다.
힘을 쓸수 없는 적들이지만 그들에게 얼마나 두려운 존재인지를!
엄청난 가나안의 위용과 광야에서만 보고 들었던 무서운 나라의 이야기를!
감히 누구도 쳐 부술수도,
쳐다 볼 수도 없었던 그 왕들,
적군의 왕들을 내가 발로 밟고 있다는 것,
아니 가까이 있다는 것 만으로도 그들은 두려운 것이다.
그들을 향하여 완전 죽은자,
힘을 쓰지 못하는 자!
그들을 발로 밟게 하면서 두려워할 대상도,
무서워 할 대상도,
이기지 못할 대상도 아님을 모든 백성 앞에서 확인시켜주고 있는 것이다.
오직 여호와께서 우리 손에 붙이셨음을 말씀하고 있다.
우리가 하나님의 편이면,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시면 그들은 우리의 밥이라고 했던
여호수아와 갈렙의 고백의 믿음의 증거,
믿음의 열매를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뭘 말하고 싶은가?
너희도 한다는 것이다.
너희가 했다는 것이다.
'자기와 함께 갔던 군장들, 장교들이다'(24)
너희가 했다는 것이다.
함께 하는 자라면 누구나 한다는 것이다.
누구나 발로 밟을수 있음을 확인시켜주고 스스로 경험해 보라는 것이다.
할 수 없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이 우리 손에 붙이시면
얼마든지 가능하다는 것을 그들로 알게 하는 것이다.
여호수아는 이것을 노렸는가?
그 이후의 28절부터 여호수아가 죽인 총 왕이 31왕이다.
31개 나라를 멸하고 부쉈다.
마귀는 이미 힘을 잃었다.
우리는 한번도 본적이 없으니까 두려워한다.
한번도 싸워보지 않았으니까 피하려 한다.
무엇보다
다 죽은 왕도 그 목을 밟기를 무서워서 가까이 가지도 못했다.
그것이 영적인 세계이다.
본적이 없어서 두렵다.
해보지 않아서 두렵다.
기도의 역사,
마귀를 물리쳐 본적이 없으니 더더욱 두렵다.
우리의 싸움은 세상에 보이는 싸움이 아니다.
모세가 손을 올리면 이기고 내리면 진다는 싸움이 바로 이것이다.
보이는 싸움은 보이지 않는 싸움의 결과일 뿐이다.
얼마나 보이지 않는 싸움에 고지를 점령했느냐가
보이는 싸움의 결과가 나타난다.
보지 않은 것으로 두려워 말라는 말이다.
내가 감히 가까이 갈수 없는 사람, 적군의 왕이라도
하나님이 붙이시면 내가 그의 목을 밟을 수 있다는 확신을 가지라는 말이다.
여호수아는 큰 장수이다.
그는 그 밑에 함께 했던 자들에게 그가 했던,
영적 걸음을 보게 하고
그 결과를 발로 밟게 해보고
눈으로 확인 시켜주면
자신의 싸움의 결과를
모두의 것으로 나누는 것이다.
조용기목사님은 다른 것을 내가 잘 알지 못한다.
하지만 그는 영적으로 적들을 완전히 발로 밟아본 사람이다.
남들이 해보지 않은 영적인 은혜를 입고
하나님께서 원하시고 그렇게 기뻐하시는
영적 전쟁에서 그는 먼저 가본 사람이다.
그래서 그와 함께 해본 자라면 누구나 그 길을 가게 되는것이다.
더욱 명확해 졌다.
우리가 해야할 일은
겨우 내집 넓히고
겨우 좋은차 바꾼거에 기뻐하고 몇날 몇일 행복해할것이 아니다.
내 자식 공부좀 잘하고 좀 좋은 직장 다닌다고
좀 똑똑하고 남들보다 잘한다고 기뻐하는것보다
하늘의 권세로 적들을 발로 밟아 두손들고 주를 찬양함이 진정한 행복이며 기쁨이다.
그 일을 하나님은 무엇보다 기뻐하신다.
하나님이 만드신 에덴을 그들에게 빼앗기셨으니 얼마나 분하고 원통하겠는가?
그런 그들을 우리가 함께 싸우고 빼았고 이기고
발로 밟는다면
하나님은 정말 춤을 추실것이다.
피리를 불어도 춤을 추지 않고
곡을 해도 눈물을 흘리지 않는 백성!
하나님이 기뻐서 피리를 불어도 왜 좋은지 모르고,
하나님이 슬퍼서 곡을 해도 눈하나 깜짝하지 않는 우리들이다.
그러나 우리가
그분의 이 마음으로 나아간다면
모든 적들을 우리의 손에 이미 붙이 셨으니
우리는 단지 대장되는 그리스도와 함게 가기만 하면 된다.
내가 말하노니 좋은 리더 밑에 있어라.
큰 나무 밑에 있어라.
그래야 내가 큰 나무가 될 가능성이 많아진다.
이것은 축복이다.
본 자 만이 또 그렇게 왕들을 발로 밟게 된다.
큰 리더가 가는 길을 함께 가본 자가 또 그 일을 하게 된다.
이런 이야기를 하면 우리 목사님은 어떤가?
내가 따르는 사람은 어떤가 생각하게 되는데^^
그 사람을 보지 말고 당신을 보라.
당신 밑에 얼마나 많은 사람이 있는가?
당신의 식솔들,
당신이 리더로 있는 수많은 자리들!
아이들,
가족들,
친지들!
다 당신이 데리고 가야 할 사람들이다.
당신이 발로 밟는 것을 기다리는 두려워 떨고 있는 사람들이다.
그것을 하라.
해보지 않은 것이 아니다.
이미 그리스도께서 가신 길!
그분이 이미 밟은 적들의 목을
나에게 다시 한번 밟아 보라고 하시는 것이다.
그분의 전쟁이다.
그분의 싸움이다.
우리는 단지 따르는 자이다.
그분을 따르면 그분처럼 되고 그보다 더한 일도 하신다 했다.
[요14:12]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나를 믿는 자는 나의 하는 일을 저도 할 것이요 또한 이보다 큰 것도 하리니
큰 믿음의 일대가 되라
믿음의 일대가 대라.
큰 나무가 되라.
큰 인물이 나오게 하는 선구자적 믿음의 용사가 되라.
그것이 여호수아가
가나안 왕들의 목을 밟고
나에게도 밟아보게 하며
오늘 나에게 원하는 메시지는 그것이다.
하나님이 말씀하신다.
'누구누구에게 행한 것이 그 왕들에게 행한 것과 일반이라'
계속 이어지는 31왕에게 했던 말씀이 똑같은 반복이다.
우리 앞에 우리가 밟을 적의 왕들이 무수히 많다.
여호수아를 통하여 하나님은 우리에게 말씀하신다.
네 앞에 적들의 목을 밟을 것이다.
두려워 말며
놀라지 말며
강하고
담대하라.
'우리가 앞으로 싸우는 모든 대적에게 여호와께서 다 이와 같이 하시리라'(25)
가보지 않았지만,
믿음으로 이 땅을 점령한 여호수아가 우리의 증인이다.
믿는가?
그럼 이기리라.
< 보이는 싸움은 보이지 않는 싸움의 결과일 뿐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