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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리고를 무너뜨리는 사람들의 특징

여리고를 무너뜨리는 사람들의 특징

 

 

 

 

 

 

 

 

 

 

 

 

 

여리고를 무너뜨리는 사람들의 특징

여호수아6:1-27

 

 

 

 

 

 

 

 

여리고를 무너뜨리는 사람들은 특징이 있다.

 

하나님의 일하심에는 순서가 있다.

 

난공불락, 철통요새를 무너뜨리는 순서, 영적인 원리가 있다.

 

우리 인생에 무너뜨려야 문제가 있는가?

 

어떻게 행하는가?

 

 

 

 

 

 

 

 

 

첫째, 말씀이 먼저 와야 한다.

 

 

 

 

 

세상에는 가지의 결과 밖에 없다.

 

말씀대로 역사,

 

뜻대로 역사.

 

 

 

 

 

아담의 역사는 뜻대로 역사이다.

 

세상의 모든 악함은 뜻대로의 결과이다.

 

인류의 흐름을

 

오직 그리스도가 바꾸어 놓으셨다.

 

그분의 뜻은 오직 아버지의 마음을 따라 것이다.

 

가장 하나님의 마음을 아시는 예수님이기에 그분은 자신의 뜻이 아닌

 

아버지의 뜻을 행하러 오셨다.

 

언제 우리가 거룩해 지는가?

 

언제 우리가 선한 열매를 맺는가?

 

언제 인생에 가장 행복함을 느끼고 누릴 있는가?

 

 

 

 

오직!

 

 

 

말씀대로 따를 때이다.

 

 

 

 

 

 

어떤 일을 해야 하는데 말씀이 맘에 오지 않는가?

 

그럼 가만히 있으라.

 

시간이 가고 손해가 나는데요?

 

손해가 나면 하나님이 필요해서 손해를 주시는 거다.

 

말하지만 하나님은 우리를 가장 아끼고 가장 위하는 분이다.

 

 

 

 

 

그것이 죽음, 십자가라 해도 예수님께,

 

우리 모두에게 가장 최상의 , 유일한 방법이기에 길을 가게 하신다.

 

 

 

 

 

광야는 말씀을 듣는 시간이다.

 

 

이스라엘은 광야에서 받은 훈련이 그것이다.

 

구름기둥이 움직이고 불기둥이 움직이면 그들은 움직였다.

 

동안!

 

 

 

 

 

 

말이 되는 이야기 그래도 하는 사람들!

 

 

 

오늘 여리고 앞에서 그들은 말도 되는 말씀을 듣는다.

 

난공불락, 철의 요새인 여리고를 점령하는데

 

말도 하지 않고 성을 돌란다.

 

 

 

 

하나님의 말씀도 말도 안되지만,

 

말씀을 듣고 그대로 행하는 이스라엘백성도 말이 된다.

 

 

 

 

 

말이 되는데 그들은 하는가?

 

합리로 시작했던 그들이 광야를 통해 믿음의 세계에 들어 왔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여러 사건들을 주시는가?

 

여러 일들을 주시는가?

 

한가지 밖에 없다.

 

하나님이 살아계시고 그분이 우리를 위하심을 알게 하기 위해서다.

 

 

 

 

내가 믿음으로 어떤 복을 주시는지 알게 하기 위해서이다.

 

 

 

 

그런데 그렇게 많이 보여줬는데 아직도 한다.

 

그럼 광야다.

 

년이 날라간다.

 

 

 

 

 

 

말도 되는 상황 앞에 우리가 해야 한가지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

 

그거 한가지 밖에 없다.

 

 

 

 

홍해 앞에서 모세가 것은 아무것도 없다.

 

것은 오직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지팡이를 것밖에 없다.

 

 

 

 

 

 

 

 

 

하나님은 가장 좋은 것으로~

 

 

 

하나님은 우리를 가장 좋은 곳으로,

 

최고의 길로 인도하기 원하시는 이세상의 유일한 분이시다.

 

 

 

 

하나님이 말씀하게 하라.

 

그러면 그분은 행하실 것이다.

 

 

 

 

말씀을 듣고 왔는가?

 

두려워 말라.

 

두려움은 믿음이 없음에 대한 증표이다.

 

 

 

 

 

 

바람을 보고 두려워 물에 빠져가는 베드로를 향하여

 

'어찌하여 믿음이 없느냐' 말씀하시는 주님이시다.

 

 

 

 

두려울 우리는 믿음을 놓친다.

 

 

 

 

세상을 보지 말고

 

지금까지 역사하신 신실하신 나의 하나님을 보라.

 

과거의 하나님은 믿음을 가지게 하는 발판이 된다.

 

주신 말씀이 있다면

 

하나님이 하신다.

 

그것을 믿는 것이 믿음이다.

 

 

 

 

 

 

 

 

영적인 싸움은 우리의 싸움이 아니라 하나님의 싸움이다.

 

지난 신명기 여호수아를 보면서

 

발견한 것은 싸움은 우리의 싸움이 아니다.

 

하나님의 싸움이다.

 

 

 

 

'아말렉으로 더불어 대대로 싸우리라'(17:16) 

 

 

 

 

 

 

마지막 심판은 우리의 행위대로 심판이지만 심판의 핵심은 마귀다.

 

에덴동산에서부터 멸하기를 원하셨던 마귀를 심판하는 것이 하나님의 원하심이다.

 

 

 

 

싸움에 하나님은 우리를 통해서 이루어 가길 원하신다.

 

 

 

그분이 싸우신다.

 

 

 

 

 

 

말씀은 나를 움직이지만

 

내가 움직일 말씀은 다시 하나님을 움직인다.

 

 

 

 

이것이 성경의 원리이다.

 

 

 

 

 

 

 

 

 

 

둘째, 경험 지식 방법을 의지 하지 않는다.

 

 

 

 

 

 

 

예수님은 그들을 싫어하셨나?

 

 

 

예수님은 바리세인과 서기관을 그렇게 싫어 하셨는가?

 

그들도 얼마나 열심히 살았는지 모른다.

 

얼마나 열심히 헌금하고 기도하고 예배하고 금식했는지 모른다.

 

그런 그들을 그렇게 싫어하셨는가?

 

 

 

 

이유는 하나다.

 

그들은 하나님의 지혜와 지식을 따르지 않고 그들의 지식과 지혜가 최고로 여겼다.

 

 

 

 

 

 

 

예수님은 어린아이들을 좋아하셨는가?

 

 

제자들을 어린아이라 했는가?

 

 

 

 

눅10:21 그 때에 예수께서 성령으로 기뻐하시며 이르시되 천지의 주재이신 아버지여

 

이것을 지혜롭고 슬기 있는 자들에게는 숨기시고 어린 아이들에게는 나타내심을 감사하나이다

 

옳소이다 이렇게 된 것이 아버지의 뜻이니 이다

 

 

 

 

 

 

어린아이 하고만 일하시는 예수님!

 

 

 

 

말씀은 제자들이 전도하러 갔다가 마귀가 하늘에서 떨어지는 것을 보고 기뻐하였을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하신 말씀이다.

 

그런데 제자들을 향하여 어린 아이라 했다.

 

 

제자들을 어린 아이라 정의하신 예수님이다.

 

 

 

 

 

무슨 말인가?

 

 

 

 

열두 제자인가?

 

 

 

 

제자들의 특징이 무엇일까 한번 생각해 본적이 있는가?

 

많고 많은 사람들 중이 둘을 택하셨나?

 

 

 

 

이유는 한가지이다.

 

이들은 어리석기까지 어린 아이와 같은 사람들이다.

 

 

 

 

화가 나면 칼을 들고 설치고,

 

하늘에서 뭔가 떨어지면 좋아서 어쩔 모르고,

 

평생 물고기만 잡다가 잡히지 않자 실망하고,

 

여종이 몰아 붙이자 저주하고 예수님을 모른다고 시치미 떼는

 

어리석기까지 어린아이들이다.

 

순수함을 예수님은 사랑하셨다.

 

이들을 택한 것도 아버지의 뜻이라 했다.

 

 

 

 

 

도시의 한가운데가 아니라

 

시골, 시골 갈릴리에 사는 사람들!

 

 

 

그러나 그들은 인류를 바꾸었고 세상을 바꾸었고

 

지금 나를 변화시킨 다리의 역할을 사람들이다.

 

 

 

 

 

예수님은 스스로 똑똑하고 지혜롭고 슬기롭다고 여기는 바리세인이나 서기관보다

 

어리석기까지 순순한 어린 아이 같은 제자들을 사랑하셨다.

 

 

 

 

 

 

그분은 지혜도 지식도 있으신 분이다.

 

 

그분에게 필요한 것은 지혜를 가진 자도 지식으로 똘똘 뭉친 목이 곧은 사람도 아닌,

 

 

 

물고기 잡으면 안에 돈이 있으니 갔다 주라 가는 사람.

 

 

나귀가 있으니 가져 오라 그냥 하는 사람.

 

 

물고기 마리와 다섯 개를 천명의 사람에게 나눠주라 말없이 가는 사람.

 

 

전도하러 주머니도 옷도 신발도 지팡이도 가져가지 말라고

 

 

그저 말씀을 믿고 길을 갈수 있는

 

 

어린 아이와 같은 사람들을 필요로 하신다.

 

 

 

 

 

 

 

나에게는 역사가 없는가?

 

 

 

 

우리가 예수를 믿으면서 가장 조심해야 것은

 

그분의 말씀 듣기를 소홀히 하고

 

말씀이 지식, 생각, 경험에 의지해서 말씀을 무시하는 것이다.

 

 

 

 

나의 삶에 하나님의 역사가 나타나지 않는가?

 

기도를 많이 하지 않아서라고 생각하는가?

 

금식을 하지 않아서라고 생각하는가?

 

예배를 많이 드리지 않아서라고 생각하는가?

 

 

 

 

아니다!

 

 

 

 

이스라엘백성은 여리고 앞에서 기도하지 않았다.

 

그들은 금식하지 않았다.

 

그들은 예배 드리지 않았다.

 

 

 

 

단지,

 

그들은 들은 음성을 말없이

 

정말 말없이 순종했음을 기억해야 한다.

 

 

 

 

인생에 하나님의 역사가 없는가?

 

 

 

듣지 않았고,

 

들었다면 말씀에 말없이 순종하지 않아서이다.

 

 

 

이유는 오직 그것밖에 없다.

 

 

 

 

 

 

요나를 기억하는가?

 

니느웨 백성들이 회개하지 못했는가?

 

말씀을 듣고 전하는 자가 없었기 때문이다.

 

오지 그것 밖에 없다.

 

 

 

 

그들은 말씀을 들을 회개하고 마음을 돌이켰다.

 

왕부터 백성까지 하나님께 돌아왔다.

 

 

 

 

 

 

 

수많은 제사와 예물과 기도와 예배에 하나님은 마음 아파 하신다.

 

 

나는 나에게 많은 이야기하는 사람보다,

 

 

나에게 많은 것을 주는 사람보다,

 

 

나의 작은 한마디에

 

 

말없이 순종하는

 

 

사람을 찾으신다는

 

 

아버지의 마음을 나는 알고 있다.

 

 

 

 

 

많은 것을 행하려 하지 말라.

 

단지 해야 한가지를 행하라.

 

 

 

 

 

그러면 여리고 ,

 

 

인생의 풀리지 않는 여리고의 문제가 풀릴 것이다.

 

 

 

 

[눅10:37]이르되 자비를 베푼 자니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가서 너도 이와 같이 하라 하시니라

 

 

 

 

[눅17:10]이와 같이 너희도 명령 받은 것을 다 행한 후에 이르기를

 

우리는 무익한 종이라 우리의 하여야 할 일을 한 것뿐이라 할지니라

 

 

 

 

[막10:15]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누구든지 하나님의 나라를 어린 아이와 같이 받들지 않는 자는

 

결단코 그 곳에 들어가지 못하리라 하시고

 

 

 

 

 

 

 

진정한 기적은 주로부터 들은 말씀대로 행할 앞에 펼쳐질 것이다.

 

 

 

 

 

 

 

 

 

세째, 나는 심부름꾼임을 안다.

 

 

 

 

 

 

 

우리는 우리가 주체적으로 뭔가를 하려 한다.

 

교회에서도 우리가 뭔가를 계획하고, 준비하고 시도한다.

 

그것이 잘못이 아니다.

 

 

그러나 무슨 일이든지 때는 그분께 묻고 진정 그분의 뜻이라면

 

우리는 단지 심부름을 해야 한다.

 

 

 

 

그래야 영광을 내가 가로 채지 않는다.

 

다해놓고 영광 내놓으라는 소리는 한다.

 

권리 놓으라고 떼쓰지 않는다.

 

지분 놓으라고 고발하지 않는다.

 

그저 무익한 종이라고

 

해야 일을 했을 뿐이라고 고백할 있다.

 

 

 

 

 

[눅17:10]이와 같이 너희도 명령 받은 것을 다 행한 후에 이르기를

 

우리는 무익한 종이라 우리의 하여야 할 일을 한 것뿐이라 할지니라

 

 

 

 

 

 

 

 

 

나는 종이다.

 

 

 

 

 

예수님의 일하시는 원리는 아버지께서 하신 말을 하고

 

아버지께서 허락하시는 일을 하셨다

 

 

 

 

 

보내신 자를 받았고,

 

가라는 곳을 갔다.

 

 

 

 

 

 

스스로 일이 하나도 없다.

 

 

 

 

[마11:30]이는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벼움이라 하시니라

 

 

 

 

평안한가?

 

 

짐이 가벼운가?

 

 

멍에가 쉬운가?

 

 

 

 

 

 

일의 주체가 내가 아니다.

 

단지 보냄을 받은 자임을 안다.

 

 

 

 

 

 

 

 

 

내가 키우는 자식은 망한다.

 

 

 

 

 

내가 자식을 키울 아픔이 많은가?

 

사실 정직히 보면 내가 맘대로 키우려고 해서 그렇다.

 

 

 

뜻대로 하려고 하는데 안되니까 갈등이 생기는 것이다.

 

 

아이의 장점과 잘할 있는 것보다

 

 

내가 만들어서 나의 공로를 한번 높여보고 싶고

 

 

아이의 잘함으로 내가 세상에서 떳떳해 보고 싶은 것이다.

 

 

 

 

 

맞다.

 

 

 

누군들 자식 되는 것을 원치 않는 부모가 어디 있는가?

 

하지만 마음이 함정이다.

 

내가 이러는 것은 자식 잘되라고 하는 거야~

 

맘이 함정이다.

 

 

 

 

내가 자식을 키운다고 키워 지는가?

 

 

내가 돌보고 지키면 아이가 보호되고 지켜지고 건강하게 자라는가?

 

 

내가 잘하면 아이가 아이의 타고난 장점과 능력이 최고로 발휘 되는가?

 

 

내가 하면 최상이 되는가?

 

 

 

 

 

한번 생각해보라?

 

 

 

누가 아이를 가장 되기를 바라는?

 

 

누가 아이를 지킬 있는가?

 

 

누가 아이의 미래를 열수 있는가?

 

 

 

 

그렇다!

 

하나님이다.

 

 

 

 

 

손에 잡고 있는 힘을 풀어야 하나님이 하신다.

 

하나님께 아이를 맡길 아이는 가장 귀하게 자란다.

 

 

 

 

 

모세를 기억하라.

 

사무엘을 기억하라.

 

부모를, 손아귀를 떠날 수도 있다.

 

내가 어떻게 하지 못할 수도 있다.

 

하지만, 내가 놓아야 하나님이 잡으신다.

 

길이 광야라 해도

 

시간이 이별이라 해도 하나님이 잡으시면 최고의 리더,

 

최고의 영적 사람이 있다.

 

 

 

 

 

 

 

나는 심부름꾼이다.

 

나는 세상에서 하나님 대신해서 맡아보는 자이다.

 

그저 하나님께서 아이에게 어떤 장점을 주셨고 어떻게 키우면 가장

 

귀하게 자랄지 기도하고 음성을 따라가라.

 

그것이 아버지의 마음을 따라가는 것이다.

 

 

 

 

 

 

 

 

 

심부름!

 

 

 

 

우리가 세상을 사는 것은 아버지의 뜻을 이루는 것이다.

 

여리고가 무너지는 것은 내가 원하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가 원하는 것이다.

 

마찬가지이다.

 

우리 인생의 문제는 나보다 나를 사랑하시는 아버지가 더욱 되기를 원하신다.

 

그것을 먼저 믿어야 한다.

 

 

 

 

 

그래서,

 

직장의 문제와

 

사업의 문제와

 

가정의 문제를 그분께서 원하시는 대로 해보라.

 

 

 

 

 

나는 심부름꾼이다.

 

것이 아니다.

 

내가 잡으려는 순간 나는 이미 바리새인과 서기관이다.

 

내가 잡은 것을 놓아야

 

하나님이 주시는 것을 잡을 있다.

 

 

 

 

 

 

이스라엘백성은 광야에서 훈련을 받은 것이다.

 

내가 잡지 않으려는 훈련!

 

하루에 먹을 만큼만 모으는 훈련!

 

쌓지 않는 훈련!

 

 

 

 

 

하나님이 원하시는 대로 행하는 심부름꾼으로서의 훈련!

 

 

 

 

그것이 우리를 가장 부요 하게 만드는 비결이다.

 

내가 쌓아서 높아지려 하지 말라.

 

내가 스스로 높아지려 하지 말라.

 

 

 

 

 

하나님께서 길을 여시고

 

그분이 높여 주실 때까지 나는 그저 심부름만 하라.

 

 

 

 

6:27 여호와께서 여호수아와 함께 하시니 여호수아의 소문이 그 온 땅에 퍼지니라

 

 

 

여호수아가 온 나라와 사람들 앞에 높여진다.

 

소문이 난다.

 

여호수아의 이름과 명성이 높아진다.

 

여호수아가 한것이 뭐있는가?

 

오직 심부름이다.

 

시킨것을 한것밖에 없다.

 

내가 전쟁을 한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하라니까 했다.

 

그러니 어려울때 떼라도 쓸수 있다.

 

 

내 손을 놓고

 

잡은것을 놓고

 

그분이 원하시는것을 단지 심부름하는 심정으로 살아라.

 

그러면 하나님이 모든 길을 열어 주실것이다.

 

 

 

 

 

오직 제사장들의 양각나팔 소리만 나게 하고

 

소리에 내가 따르는 것이지

 

소리를 내지 않은 것이다.

 

 

 

 

 

말씀이 오면 소리를 내지 말라!

 

그냥 말도 되는 길이지만,

 

매일 똑같은 일상이지만,

 

그것을 말씀이 드러나고

 

내가 높여지고 승리하게 된다.

 

 

 

 

 

 

 

 

진정한 부흥은

 

 

 

 

첫째 말씀이 와야 하고

 

둘째 말씀을 따르는 따름이 있고

 

셋째 말씀에 의지한 기도가 오게 되고

 

그리고 성령의 역사가 온다.

 

그런 후에 부흥이 온다.

 

부흥이 뭔가?

 

부흥은 말씀을 따라 가는 것이다.

 

부흥의 마지막은 하나님의 이름이 세상에 높여지는 것이다.

 

 

 

 

 

기도만도 안되고

 

말씀만도 된다.

 

말씀으로 시작한 힘이 기도로 이어지고 기도가 차야 부흥이, 성령의 역사가 온다.

 

 

 

 

 

 

 

 

 

 

 

예수님께서 부활 40일동안 무엇을 하셨는지 아는가?

 

말씀 사경회를 했다.

 

 

 

 

행1:3 그가 ~사십 일 동안 그들에게 보이시며 하나님 나라의 일을 말씀하시니라

 

 

 

 

 

 

그리고 제자들이 40 동안 기도에 집중했다.

 

 

 

행1:14 ~ 더불어 마음을 같이하여 오로지 기도에 힘쓰더라

 

 

 

 

 

 

시간이 차야 한다.

 

 

그리고 성령의 능력이 임했다.

 

 

그제야 눈으로 보는 부흥이 온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일을 하시기

 

 

그분의 사람들에게 말씀을 주신다.

 

 

이해되지 않는 말씀이어도 그냥 말없이 행할

 

 

그분은 그분의 일을 하신다.

 

 

그리고 진정한 하나님의 이름이 영광을 얻으신다.

 

 

 

 

 

 

 

 

 

 

그것이 하나님을 통해 내가 누릴 최고의 축복의 길이다.

 

 

 

 

 

 

 

Pastor Seo

Pastor Se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