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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 만나와 가짜 만나

진짜 만나와 가짜 만나

 

 

 

 

 

 

 

 

진짜 만나와 가짜 만나

여호수아5:2-12

 

 

 

 

 

 

 

 

 

 

어느 학생이 가수를 너무 좋아했다.

 

그래서 가수의 노래를 수도 없이 들었다.

 

만날 수는 없지만, 그리움을 좋아함을 마음으로 달래며 노래를 들었다.

 

그런데 어느 가수를 진짜 만나게 것이다.

 

아니 영원히 함께 살게 것이다.

 

눈앞에서 노래를 불러주고,

 

이야기 해주고,

 

함께 먹고 마신다면

 

아이는 그때까지 듣던 노래테이프며, CD 필요가 없다.

 

 

 

 

진짜가 옆에 있기 때문이다.

 

 

 

 

 

만나는 실제가 아니라 모형으로 주신 것이다.

 

우리가 마음으로 그분을 만난다면,

 

실제로 그분이 오셨다면 이제는 만나가 필요하지 않다.

 

 

 

 

그래서 오늘 만나는 이제 그친 것이다.

 

 

 

 

 

 

 

 

 

할례의 실체

 

 

 

 

이말은 구약에서 그렇게 말하고 설명하던 실체,

 

그리스도를 만날 때를 말한다.

 

 

 

 

 

나는 그분을 1 만났다.

 

아니 그분이 찾아오셨다.

 

일을 눈물로 지냈다.

 

주체 못할 성령의 붙들림에 세상과 나는 없고 그분이 안에 존재했다.

 

그분이 오시니 변화된 것이 생겼다.

 

생각과 마음이 변했다.

 

명확하게 느끼는 것은 생각 속이

 

마음이 이상하리 만치 변한 것이다.

 

그것이 무엇인지 오랜 세월이 지나서야 알았다.

 

 

 

 

그것은 할례였다.

 

 

 

 

 

신약의 할례!

 

 

 

구약에서 미리 예언하던 할례,

 

그리스도와 맺은 언약이었다.

 

 

 

 

 

 

신30:6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 마음과 네 자손의 마음에 할례를 베푸사

 

네게 마음을 다하며 뜻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게 하사 네게 생명을 얻게 하실 것이며

 

 

 

 

 

 

신약에서 명확하게 설명하는 할례의 의미!

 

 

 

 

 

히8:10 또 주께서 이르시되 그 날 후에 내가 이스라엘 집과 맺을 언약은 이것이니

 

내 법을 그들의 생각에 두고 그들의 마음에 이것을 기록하리라 나는 그들에게

 

하나님이 되고 그들은 내게 백성이 되리라

 

 

 

 

 

히10:16 주께서 이르시되 그 날 후로는 그들과 맺을 언약이 이것이라 하시고

 

내 법을 그들의 마음에 두고 그들의 생각에 기록하리라 하신 후에

 

 

 

 

 

 

 

우리가 주를 만나면 언약을 맺으시는데 구약은 할례로 맺었으나

 

이제는 마음과 생각에 맺으신다.

 

 

 

 

 

마음에 주를 사랑하는 마음, 생각이 변하여 짐을 알게 된다.

 

성령의 생수의 강이 마음에 배에서 흘러 넘침을 안다.

 

 

 

 

 

 

 

 

 

만나의 필요성

 

 

 

 

만나는 사람이 하나님의 말씀으로 사는 것을 알게 필요가 있을 필요하다.

 

영적 가나안의 삶은 사람이 말씀으로 사는 삶이다.

 

그것에 대한 훈련과 연습과 준비가 광야다.

 

광야를 거치지 않으면

 

우리는 말씀이신 그리스도를 없다.

 

 

 

 

 

 

이스라엘은 광야 40 동안 사람이 가나안의 백성으로,

 

하나님의 백성으로 살려면 하나님의 말씀으로 살지 않으면 된다는

 

사실을 몰랐고, 훈련으로 눈으로 보는 만나를 먹었다.

 

 

 

 

 

 

그러나 이미 말씀 안에 들어온 백성,

 

할례를 행한 백성은 교육적, 상징적 만나가 아닌

 

말씀의 실체 안에 거한다.

 

그래서 유월절을 지난 백성에게 만나는 의미가 없기 때문에

 

광야에서 필요했던 만나는 내려 오지 않았다.

 

 

 

 

 

 

 

유월절!

 

피로 죽음에서 생명으로 옮겨진 자들은 이미 가나안에 있다.

 

이상 광야의 만나가 필요치 않다.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믿는 자는 영생을 가졌나니

 

내가 곧 생명의 떡이로다

 

너희 조상들은 광야에서 만나를 먹었어도 죽었거니와

 

이는 하늘에서 내려오는 떡이니 사람으로 하여금 먹고 죽지 아니하게 하는 것이니라

 

나는 하늘에서 내려온 살아 있는 떡이니 사람이 이 떡을 먹으면 영생하리라

 

내가 줄 떡은 곧 세상의 생명을 위한 내 살이니라 하시니라(6:47-51)

 

 

 

 

 

 

 

 

 

하나님은 요단강, 사람이 건널 없는 길에 들어온 사람,

 

영적인 세상에 들어온 사람은 이제 진정한 영적 가나안에 들어가야 함을 말씀한다.

 

그래서 그들이 진정으로 각오하고 결심한다는 ,

 

언약을 맺는 표로 할례를 행하라고 하셨다.

 

 

 

 

할례는 언약이다.

 

내가 너를 하나님의 백성으로 언약의 백성으로 삼을 건데 너도 그것에 동의 하는가?라고

 

확인하는 것이다.

 

할례가 없으면 하나님과 상관없는 백성이다.

 

이방인이라도 할례를 받으면 그분의 백성으로 인정하셨다.

 

가나안의 삶은 언약의 백성이 사는 곳이다.

 

할례를 받은 백성이 사는 곳이다.

 

 

 

 

 

그래서 가나안에 본격적으로 들어가기 전에 할례를 통하여 언약적 관계를 맺으려 하신 것이다.

 

 

 

 

 

 

 

만나가 그쳤는가?

 

 

 

 

 

유월절이 지난 첫날,

 

소산을 먹음은 영적으로 진정한 구원의 백성이 되었다는 말이다.

 

유월절로 진정한 그리스도 안에 있는 우리는 말씀 자체이신 그분 안에

 

거한다는 말이다.

 

우리에게는 그분으로 만족한 삶이고

 

그분으로부터 오는 영생으로

 

이상 우리를 시험하시고 훈련하시는 것이 필요하지 않다.

 

 

 

실체 안에 들어오면 들어오기까지의 모든 훈련과 시험은 필요치 않은 것이다.

 

우리는 지금 실체 안에 거하기에 그분으로 말미암아 영원한 생명의 말씀을 먹고 마신다.

 

그것이 가나안의 삶의 시작이요 전부이다.

 

그분으로 먹고 마시는 !

 

그곳이 가나안이다.

 

 

 

 

 

영생이신 그분 그리스도가 안에 있고

 

내가 안에 있으면 이상 내가 믿는 것이 아니다.

 

이미 나는 믿음의 실체 안에서 자유 한다.

 

믿음은 들어오기 전의 세상이요 인식이요 의식이다.

 

믿음 안에 들어오면 평안과 기쁨과 영생으로서의 세상에 있음을 알게 된다.

 

 

 

 

그래서 무교병을 먹었다는 말은 새로운 백성이 그리스도의 부활 안에 들어옴을 의미한다.

 

 

 

 

 

 

무교병은 누룩이 없는 것을 의미한다.

 

누룩은 외식, , 죽음으로 비유한다.

 

유월절은 십자가 죽음, 무교병 무교절은 죽음의 고난 그리고

 

무교절 안식일인 초실절에 예수님이 부활하셨다.

 

초실절은 추수를 기념하는 날이다.

 

죽음의 열매인 예수님의 부활을 의미한다.

 

없는 그리스도가 죽음을 이기고(무교절) 부활함을(초실절) 의미한다.

 

그래서 무교병은 그리스도의 고난을 상징하고 죽음을 이기고 나오심을 의미하는 것이다.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들과 애굽에서의 마지막 밤에 1년된 양을 잡아

 

유월절을 지켰던 그 시간에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살과 피를 상징하는 떡과 포도주를

 

제자들에게 나누어 주셨다.

 

 

 

 

그리스도께서는 유월절에 마지막 만찬을 드시고 무교절에 십자가에서 운명하셨다.

 

 

 

 

그리고 구약시대 때 첫 열매를 드리던 초실절(무교절 후 첫 안식일 다음날 지금의 주일)에는

 

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로서 부활하셨다.

 

 

 

 

 

고전15:20 그러나 이제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사 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가 되셨도다

 

 

 

 

 

 

그래서 초실절의 다른 이름은 칠칠절, 맥추절, 오순절이다.

 

유월절 2일부터 시작하여 50일째이다.

 

 

 

 

 

구약의 지키는 모든 절기들은 신약에서 이루어질 일들의 그림자들이다.

 

이것을 설명할 없다.

 

구약의 절기 속에 신약의 이루어질 일들이 숨어있다.

 

예수님은 추수라는 표현을 자주 쓰셨다.

 

기억해야 한다.

 

 

 

 

 

이스라엘의 3 절기는 유월절, 칠칠절이라고 하는 초실절 또는 맥추절이다.

 

그리고 남은 것이 초막절이라고 하는 수장절이다.

 

 

 

앞의 절기는 이미 역사적으로 지나갔다.

 

남은 것이 이제 수장절이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백성을 곡식으로 비유했다.

 

그리고 추수해야 함을 말씀하셨다.

 

 

 

 

 

 

 

 

주님을 기다림!

 

 

 

 

 

 

구약을 보면 볼수록 드는 생각은

 

반드시 이루어진 신약을 본다.

 

모형과 그림자 그리고 예표가 정확하게 맞아 떨어짐을 보면서

 

 

확신이 드는 것은 내일에 대한 소망이 온다.

 

 

 

 

 

수천년 전에 되어진 말씀들이 정확하게 수천년 후에 이루어지고

 

이루어진 신약의 역사가 놀랍지만,

 

신약의 이야기들이 어떻게 이루어질지 기대함이 온다.

 

 

 

 

하늘과 땅의 역사는 반드시 이루어진다.

 

 

 

 

 

하늘 나라가 너무 기대되고 소망되고

 

모든 것이 설렘으로 다가온다.

 

 

 

 

구약을 알수록 신약이 놀라우며

 

신약을 볼수록

 

장차오실 그리스도의 왕국과 본향이 소망이 되는 것이다.

 

 

 

 

성경을 알수록,

 

신앙생활을 할수록

 

말씀을 들을수록 내일이 기대되는 것이 신앙이 자라는 것임을 발견한다.

 

 

 

 

 

초대교회가 그렇게

 

'주예수여 어서 오시옵소서'하며

 

'마라나타' 외쳤던지,

 

하늘을 기대하고

 

하나님의 나라가 오기를 고대했는지 같다.

 

 

 

 

세월이 갈수록 말씀을 알수록 '마라나타' 절로 나온다.

 

 

 

영광된 나라.

 

예수님께서 예비하신 나라가 정말 소망이 된다.

 

 

 

 

 

 

 

 

 

군대장관의 요구

 

 

 

 

 

거룩하고 신성함의 상징이 그리스도다.

 

예표로 여호수아가 요단강을 건너 이제 본격적으로

 

가나안을 정복하는 시점에

 

군대장관이 그에게 거룩하라고 신을 벗으라고 한다.

 

역시 여호수아는 그리스도가 이룰 언약,

 

영적 가나안의 예표로 그리스도의 그림자로 세워진 자이다.

 

모세와 마찬가지로 그에게 요구되는 것은 그리스도의 상징,

 

거룩함이다.

 

 

 

 

 

모세에게도 그러했듯이 여호수아에게도 동일하게

 

신을 벗고 거룩을 요구한 것은 모두 동일한 목적,

 

거룩한 자만이 길을 여시는 그리스도의 모형이기 때문이다.

 

 

 

 

가나안 정복이 그냥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라면

 

하나님께서 굳이 모세와 여호수아에게 요구,

 

신을 벗고, 땅은 거룩하니 거룩 하라고 하실 이유가 없다.

 

 

 

 

그냥 주기 원하시면 땅을 정복하게 하면 된다.

 

하지만, 동일한 상황에서 동일한 요구를 하는 것은

 

미래 이루어질 그리스도의 사역을 미리 보여주기 위한 것이다.

 

 

 

 

 

거룩은 하나님의 속성이다.

 

그리스도의 속성이다.

 

거룩한 만이 영적 가나안의 길을 열수 있다.

 

 

 

 

거룩하신 그분이 우리에게도 동일하게 거룩을 주신다.

 

우리가 그분 안에 있을 우리는 거룩하여 진다.

 

 

 

내가 거룩하게 되는 것이 아니다.

 

나는 그분 안에 있을때 만이 유일하게 거룩하여 진다.

 

 

 

 

 

내가 거룩하려 하지 말라.

 

오직 그분으로 말미암아 거룩하여 진다.

 

 

 

 

 

 

 

 

 

애굽의 수치

 

 

 

 

5:9 여호와께서 여호수아에게 이르시되 내가 오늘 애굽의 수치를 너희에게서 떠나가게 하였다 하셨으므로

 

그 곳 이름을 오늘까지 길갈이라 하느니라

 

 

 

 

 

 

할례를 받으므로 진정한 하나님의 백성이 된것이다.

 

그럼과 동시에 애굽의 수치를 떠나게 했다고 하신다.

 

 

 

 

길갈의 뜻은 굴러가게 하다라는 의미이다.

 

뭐가 굴러갔는가?

 

애굽의 수치이다.

 

애굽의 수치가 뭔가?

 

수치라는 것은 자신의 몸이 벗겨진 상태로 부끄러운 것을 말한다.

 

 

 

 

 

이스라엘백성이 애굽에서 하나님의 백성이 아닌 것처럼 살았던 삶의 부끄러움이다.

 

 

 

 

하나님의 자녀가 아닌 온통 옷이 벗겨져 부끄럽기 짝이 없는 모습으로

 

살았던 삶이 우리의 삶이다.

 

 

 

죽은 자처럼,

 

힘도 쓰지 못하고

 

겨우 목숨을 부지하며 살았던 죄의 종으로서의 모습이

 

부끄러움이다.

 

 

 

 

백성으로,

 

하나님의 자녀로서의 존재가

 

세상의 종이 되어

 

고통하고

 

방황하고

 

신음하던 수치스럽던 애굽의 삶을 하나님께서 오늘

 

물러가게 하셨다는 말이다.

 

최고의 수치는 죄에 죽음이다.

 

수치를 오늘 물러가게 하셨다는 말씀이다.

 

 

 

 

 

 

하나님께서 그의 자녀들이 세상의 신이라 여기고 있던 당시 애굽사람들을 치셨다.

 

특히 장자를 치셨다.

 

장자를 쳤다는것은 모든 권력, 지식 세상의 이론의 대표이다.

 

뿐만 아니라 세상의 모든 신을 벌하신다는 의미가 있다.

 

 

 

 

출12:12 내가 그 밤에 애굽 땅에 두루 다니며 사람이나 짐승을 막론하고

 

애굽 땅에 있는 모든 처음 난 것을 다 치고 애굽의 모든 신을 내가 심판하리라 나는 여호와라

 

 

 

 

민33:4 애굽인은 여호와께서 그들 중에 치신 그 모든 장자를 장사하는 때라

 

여호와께서 그들의 신들에게도 벌을 주셨더라

 

 

 

 

 

 

출애굽의 9가지 기적은 모세의 손으로 했다.

 

하지만 장자죽음은 하나님 자신이 직접 하셨다.

 

사람이 있는 것이 있고 사람이 못하는 것이 있다.

 

세상의 사상이나,

 

세상의 이론이나,

 

세상에서의 일들은 사람이 어떻게 할수 있다.

 

 

 

그러나 세상의 영적권세를 바꾸고,

 

빼앗긴 영적장자의 자리,

 

영원한 생명의 문제는 사람이 할수 없다.

 

 

 

 

그것을 하나님이 하신 것이다.

 

나는 여호와라고 말씀하신 것은 하나님만이 하신 일이라는 것이다.

 

 

 

 

세상의 모든 신들의 상징,

 

애굽의 장자.

 

세상 모든 권력의 상징 애굽 나라를 박살내시면서

 

그리스도로 말미암는

 

권능과 위엄을 나타내시는 것이다.

 

 

 

 

 

 

 

마귀에게 노릇하던 모습이 하나님 입장에서

 

하나님의 자녀된 우리의 입장에서 부끄러움이다.

 

부끄러움, 수치가 이제 굴러갔다는 의미이다.

 

하나님께서 직접 길을 여시고 사탄을 물리치므로 우리의 영광이 드러난다는 것이다.

 

 

 

 

 

 

 

 

돌이 굴러감은 죽음을 이겼다는 의미이다.

 

 

 

 

굴러갔다는 단어를 보면 생각나는 것이 없는가?

 

그렇다.

 

무덤의 돌이다.

 

무덤에 막혀있던 돌이 굴러갔다는 것이다.

 

예수님의 죽음!

 

결코 사람의 힘으로 걸어나올 없는 죽음의 무덤에서

 

부활하신 주님이 돌을 굴려 나오신 것이다.

 

부활, 열매가 되셨다는 상징이다.

 

 

 

 

 

[마28:2]큰 지진이 나며 주의 천사가 하늘로부터 내려와 돌을 굴려 내고 그 위에 앉았는데

 

 

 

 

[눅24:2]돌이 무덤에서 굴려 옮겨진 것을 보고

 

 

 

 

 

 

 

죽음의 수치,

 

세상의 종으로서 수치,

 

에덴동산에서 영원히 생명을 누리고 우리가

 

죄의 종으로

 

죽음 안에 갇힌 수치를 그분은 이기신 것이다.

 

그래서 그분은 오늘 초막절,

 

추수를 하는 날에 만나를 그치고 소산으로 먹었다고 기록한다.

 

 

이스라엘 백성이 여리고 평지에서 유월절을 지켰다고 기록한다.

 

소산을 먹었다고 말한다.

 

 

 

 

 

 

 

할례를 행하며,

 

유월절을 지키며

 

무교병을 먹은 모든 것은

 

그분의 죽음과 부활을 의미하며

 

열매, 부활에 동참하는 하나님 백성의 삶을 보여준다.

 

 

 

 

 

그분이 길을 내셨고,

 

반드시 이루시고 마시는 하나님의 집요한 열심을 보게 된다.

 

 

 

 

 

구약부터 신약까지

 

그리고 신약부터 오실 그분까지,

 

하나님은 아직도 일하시고 쉬지 않으신다.

 

 

 

 

신실하심으로

 

나를 영광스럽게 하시고

 

수치를 당치 않도록 원수의 목전에서 상을 베푸시며

 

수치를 당할 자가 아니라

 

그분의 상에서 함께 먹고 마시는 영광을

 

오늘 시간 함께 하기를 원하시는

 

하나님의 뜨거운 사랑에

 

그저 나는 오늘 눈물만 흘릴 뿐이다.

 

 

 

 

 

나는 영광의 날이 가슴 뜨겁게 기다려진다.

 

 

 

 

 

 

 

 

'마라나타'

 

' 예수여 어서 오시옵소서'

 

 

 

 

 

 

Pastor Seo

Pastor Se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