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지냐 신랑이냐?
(기념하라!)
여호수아4:1-24
기념품
특별한 날에는 어떤 특별한 물건을 통하여 영원히 기억하고
행복한 순간을 기억하면서 그때의 사랑을 늘 간직하고 싶은것이 사람의 마음이다.
그래서 국가도 특별한 기념일에 공휴일로 정해서 모든 백성이 그날을 기억하고
그 의미를 되새겨 보기를 원한다.
기념물이 중요한가?
기념하는 그 날이 중요한가?
기념하는 날이 너무 엄청나기 때문에 그 기념물이 의미가 있다.
약혼날, 결혼식 날이 두사람에게 너무 중요하기 때문에 함께 나누는
반지가 의미가 있는것이다.
두사람이 헤어지면 그 기념물인 반지는 아무짜게 쓸모없는 아픔의 흔적이 된다.
마찬가지로 기념된 날은 잊은채 가지고 있는 반지만 좋아하고 이뻐한다면
기념일의 당사자는 속이 터질것이다.
이스라엘의 오류
이스라엘이 그랬다.
하나님께서 주신 기념자체 즉 하나님자신은 잊어버리고
율법이나 절기나 날들을 소중히 여기고 거기에 빠져 헤어나오지 못하자
하나님은 그 사람들을 결국 버린 것이다.
바리세인과 서기관들이 다 그런 사람들이다.
정신은 버리고 껍질만 잡은 사람들.
그래서 진짜 정신인 예수님이 오셔도 그 실체를 보지 못하고
영원히 반지만 붙잡고 그것과 함께 목숨을 거는 꼴이다.
자기가 지혜롭다고 슬기롭다고 여기고 진짜 신랑을 맞이 하지 않았던 사람들.
그래서 열 처녀 비유를 통해 맞아야 할 것이 기념품이 아닌
기념 자체인 신랑을 맞으라고 경고하고 계신 것이다.
기념품의 실체를 잡으라
하나님이 주신 기념품들을 붙잡고 실체를 붙잡듯 목숨을 거는 세상을 향하여
[요8:46]너희 중에 누가 나를 죄로 책잡겠느냐 내가 진리를 말하는데도 어찌하여 나를 믿지 아니하느냐
신랑이, 그림자의 실체가 진리를 말해도 그들은 도무지 믿지 않았다.
오늘은 우리가 기념물을 주신,
기념하게 하신 이유를 보고 기념의 실체인 하나님의 마음
그분의 뜻을 분별해 보고자 한다.
먼저,
왜 하나님은 요단강을 건너며 돌 열둘을 취하여 기념을 하라고 하셨는가?
생각해보자.
그것도 그냥 기념이 아니고 '영영한 기념'이 되리라고 하셨는가?
하나님께서 하셨다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하여 일하심에 대한 증거 기념이다.
이것은 이 한번의 사건으로 끝날것이 아니라
신약까지 이어지는 기념적 사건이 된다는 말이다.
언약궤의 행함은 곧 예수님의 행함이다.
구원의 길,
영적 가나안,
영원한 새언약의 길을 내시는 이 중대한 사건을 기억하고
앞으로 그분이 어떻게 그 일을 이루시는지 대대로 알려서 보게 하라는 것이다.
기념해야 할 이유 '열 둘'
열 두 돌을 택해서 세우고 기념하는 이 일이 앞으로 기억되고
기념 되야 할 이유가 있는 것이다.
자 그럼 신약에 와서 예수님께서 어떻게 행하셨는가 보자.
복음서에서 기적과 사건들이 많은데 사복음서 공히 기록하는 사건은 몇 가지 없다.
그 중에 오병이어 사건이 있다.
이 사건은 죽은 사람을 살리거나 무슨 부활 같은 기적이 아닌데도
모두 중요하게 기록하고 있다
왜 그런가?
바로 오늘 사건!
언약궤가 요단강을 건너고 열 두 돌을 취한 사건과 같은 내용이기 때문이다.
왜 돌을 취하고 대대에 영영히 기념이 되게 하려고 하시는가?
이 사건이 구원의 길을 내는 사건이라 했다.
그럼 앞으로 구원의 길을 내시는 분이 분명 열 둘을 기념하게 되는 일들이 생긴다.
그것이 뭔가?
첫째는 열 두 제자이다.
예수님의 사역에 함께하는 기념이 되는 일은 열두 제자이다.
이들이 바로 언약궤가 지나고 남긴 흔적, 기념물이다.
이 열두 제자가 바로 언약궤되신 예수님 사역의 결과이다.
자 예수님께서 세례를 받으시고 뭐하셨나?
그렇다.
바로 제자들을 부르셨다.
열둘을 부르셨다.
성경을 가만히 보라.
마태복음 3장에서 요단강에서 세례를 받으시고,
하늘이 열리고 음성이 들리고
4장에서 사십일 동안 시험을 받으시고,
그리고 바로 뭐하나?
열 두 제자를 부르시는 이야기를 기록한다.
사역하기 전에 하신 것!
요단강을 나오고 하신 것이 바로 기념물,
대대에 영영히 기억될 표징!
바로 열 두 제자들이다.
이들은 앞을 열 두 지파의 대표로 장차올 세대에 예수님과 함께 심판 할 것이라 했다.
그들이 예수님 사역의 기념물들이다.
그리고 한가지 더 앞서 말했듯
둘째는 오병이어 사건에서 남겨진 열 두 광주리이다.
그냥 먹고 남기고 버리면 된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굳이 남은 것을 모으라 했다.
요6:12 그들이 배부른 후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남은 조각을 거두고 버리는 것이 없게 하라 하시므로
예수님은 구약의 그 언약궤 사건 이후 기념될 돌을 취하듯
자신이 그 언약궤 되신 하나님이시며
그 예수님 자신이 기적을 통하여 앞으로 이룰 영원한 길을 낼 분임을 드러내기 위함이다.
그래서 남겨진 열 두 광주리를 모든 복음서 기자들이 그렇게 중요하게 여기고
기록하고 있는 것이다.
열 두지파, 열 두장로, 야곱의 열 두 아들!
야곱의 죽음 앞에 기도는 열 두 아들에 대한 축복으로 끝이 난다.
모세의 죽음 앞에 기도도 열 두 지파에 대한 축복으로 끝이 난다.
열 둘은 예수님의 사역에서 함께할 나라와 백성의 대표이자 온 영적 이스라엘을 의미한다.
기념물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기념물의 주인,
기념의 날,
기념의 주체가 무엇인지
예수님은 사람들에게 말씀하고 있으신 것이다.
우리가 오병이어 사건으로 예수님 옆에 있으면 먹을 것이 나온다.
작은 아이의 헌신이 사람들에게 먹을 것을 먹게 한다.
작은 것을 예수님께 갖다 드리면 배가의 축복이 온다 등등
수많은 설교를 듣고 하지만
이 본문에서 말씀하시는 것은 예수님께서 바로 그 준비되고 예언되고
하나님의 유일한 구약의 그림자의 실체임을 보여주는 사건이다.
우리를 위하여 생명이 떡이 되시고
영원한 풍성한 삶과
무엇이든지 구하면 받을 수 있는 새 길과
약한 우리와 영원히 함께하시며 우리의 약함을 채우셔서
영원한 후사로 세우시는 영광의 그 길을 예비하시는 분!
바로 예수그리스도의 영광을 드러내는 것이다.
그분이 바로 영영히 기념이 되는 주체이신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우리가 고민하고 구하고 찾는
먹을 것 입을 것에 머물러 있는 신앙에서 벗어나
우릴 위해 모든 것을 완벽하게 예비하시고
수 천 년을 그렇게 준비하고 예비하고 인도하셔서
마침내 우리의 영원한 목자이신 예수님께 나아가야 함을,
그분을 믿고 나아갈 때
그 모든 것을 받을 수 있음을 믿으라고 성경이 이 사건들을 기록하고 있다.
성경은 기록한다.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요단 물을 너희 앞에서 마르게 하사
너희를 건너게 하신 것이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우리 앞에 홍해를 말리시고
우리를 건너게 하심과 같았나니
이는 땅의 모든 백성에게 여호와의 손이 강하신 것을 알게 하며
너희가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를 항상 경외하게 하려 하심이라 하라(수4:23-24)
우리가 요단강 사건, 언약궤의 기록을 통하여 세가지를 기억하라고 한다.
첫째는 '우리를 건너게 하사'
우리의 구원은 우리가 아니라 하나님이 하셨다.
그래서 우리는 겸손히 하나님 앞에 엎드려야 한다.
늘 우리는 좀 잘하면 내가 한 것처럼 어깨에 힘이 목에 힘이 들어간다.
철저히 겸손함을 잊지 말아야 한다.
바울은 그래서 나의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라고 한다.
능력도,
은사도,
물질도 다 하나님이 주신것이다.
구원이 아니면 그런것들이 다 무슨 유익이 있는가?
창고에 재물을 쌓아 놓고 죽은 부자와 같지 않은가?
하나님은 구원이 이유가 하나님 임을 기억하고
그분 앞에 겸손하기를 원하신다.
둘째로 여호와의 손이 강하신 것을 알게 하며
우리를 구원하신 이는 능력이 강하신 영원한 하나님이다.
어떤 것도 우리를 그분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고
우리의 앞길에 어떤 것도 막을 수 없다고 설명한다.
왜냐하면 그분은 우리의 하나님이시다.
그분이 온 땅의 사람들 앞에서
우리를 높이시고 세우시기 원하시는 하나님이시다.
염려와 걱정으로 사는 우리에게 내 손이 강해라고 말씀하신다.
내가 너의 염려와 걱정을 내려놓을 수 있어,
세상을 내가 능히 이길 수 있어라고 말씀하심을 들어야 한다.
두려움은 내가 나를 볼 때 두렵다.
두려움은 내가 세상을 볼 때 두렵다.
사람들을 볼 때 나는 자신이 없어진다.
말 못할 두려움이 밀려온다.
그러나 오늘 말씀은 우리가 그분 앞에 있을 때
우리가 여호와의 손에 있을 때 우리는 세상을 이긴다라고 말씀하신다.
셋째로 여호와를 항상 경외하게 하려하심
기념품은 기념의 주체를 기억하는 것이다.
시편135:13 여호와여 주의 이름이 영원하시니이다 여호와여 주를 기념함이 대대에 이르리이다
시편기자는 광야와 가나안정복의 모든 것을 우리가 기억해야 하지만
기념물이 아닌 주 여호와 하나님을 대대에 이르도록 기념해야 한다고 찬양한다.
우리가 추구할 것은 세상이 아니라 하나님자신을 구해야 함을 말씀한다.
나를 구원의 대열에 있게 하시고
세상 염려 걱정 모든 것을 책임지시며
가야 할 걸음에 소망이 있게 하시는 하나님!
내 미래와 내 가족과
해야 할 모든 일에 강하고 능한 편 팔로 인도하시는 하나님임을 알고
그분만 경외하기를 소망한다.
경외함은 두려움이다.
하나님이 내편이 아닐 때 우리는 세상과 같이 하나님과 원수가 되는 것이다.
그것이 두려움, 경외함이다.
그러나 우리는 하나님께서 내편임을 알기에 그분의 하실 일을 소망하고
오늘 지금 나에게 잠잠히 성령의 음성으로 말씀하시는 그 음성에
순종하는 것이 참 경외함이 될 것이다.
좀더 생각할 것은 '기념하라'는 단어이다.
이단어가 사용된 성경의 몇 가지 예를 한번 살펴보자.
첫째, 유월절을 기념하라는 것이다.
죽음에서 살아난 것을 기념하는 것.
모든 세상이 다 죽을 수 밖에 없는 가운데 하나님의 백성을
친히 구원하시고 생명을 보존하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기념하라는 것이다.
예수그리스도의 죽음을 예표한다.
예수님이 오심으로 모든 것이 종결되었다.
이것을 구약에서 기념하라고 하며 오실 예수님의 사역을 기억하고 기념하라고 했다.
둘째, 아말렉과의 전투에서 이긴 것을 기억하라. (출애굽기 17장)
이 사건은 모세가 손을 들고 있을 때 백성들이
아말렉과 전쟁에서 싸워 이긴 사건이다.
이것을 왜 기념하라고 하셨을까?
이것이 그렇게 중요한가?
엄청 중요하다.
이 사건이 시작되는 것은 '그때에'라는 말로 연결이 된다.
그때가 언제인가?
이스라엘 백성이 출애굽 해서 르비딤에 왔다.
광야고 사막이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이 잘 기다리면 알아서
모세를 통해서 물을 주실건데
기다리지 못하고 모세를 향해 우리를 죽이려 하느냐
물을 내라 라고 원망하고
하나님이 계신지 아니 계신지 시험하려 한다.
이때 하나님께서 반석에서 물을 주셨다.
모세가 지팡이를 쳐서 물을 내게 하셔서 물을 주셨다.
17:7 그가 그 곳 이름을 맛사 또는 므리바라 불렀으니 이는 이스라엘 자손이 다투었음이요
또는 그들이 여호와를 시험하여 이르기를 여호와께서 우리 중에 계신가 안 계신가 하였음이더라
그런데 그때에 갑자기 아말렉이 쳐들어 온 것이다.
17:8 그 때에 아말렉이 와서 이스라엘과 르비딤에서 싸우니라
우연인가?
우연치고는 기가 막히지 않는가?
성경은 우연이 없다.
하나님께서 보내신 것이다.
내가 너희를 애굽에서 불러내어 열 가지 기적가운데 남들 자 죽는데,
씨를 말리는데 너희는 유월절을 통해서 구원해 낸 하나님이다.
그런데 물이 없다고 나를 시험하고
목이 마르다고 나와 다투느냐?
나를 어찌 그래 모르느냐?
그래 한번 봐라 그러고 아말렉을 보내셔서 전쟁하게 하신 것이다.
모세는 반드시 이긴다.
그리고 모세가 손을 올리면 이기고 내리면 지는 사건을 통해
결국 승리하게 된다.
물론 모세는 예수님을 상징한다.
그분이 우리를 영원한 싸움에서 이기게 하시는 예표로 모세를 사용하신 것이다.
아무튼 하나님은 이 사건을 이기심으로 이스라엘 백성,
영원한 하늘 나라 백성 된 우리가,
그분의 친 자녀 될 우리가 먹고 마시는 것으로 하나님을 시험하고 다투고 할 정도로
살면 안 된다고 말씀하시고
먹을 것 입을 것 시와 때를 좇아 공급할 뿐 아니라
너를 해하는 모든 대적들을 내가 결코 보고 있지 않고
네 앞에 이름도 기억나지 않도록 멸하겠다는 말씀을 하고 싶으신 것이다.
그래서 그곳에 단을 쌓고
'여호와 닛시'라 이름했다.
17:15 모세가 제단을 쌓고 그 이름을 여호와 닛시라 하고
승리의 상징 깃발!
전쟁 승리의 마지막은 깃발을 꼿는 것이다.
그분이 우리를 위해 영원히 싸우시고 이기시겠다고 상징으로 보여주시는 것이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맹세하여 말씀하시기를
17:16 이르되 여호와께서 맹세하시기를 여호와가 아말렉과 더불어 대대로 싸우리라 하셨다 하였더라
맹세하여 이르시기를 앞으로 대대로 싸우시겠다고 말씀하신다.
우리가 얼마나 소중하고,
우리를 얼마나 위하시는지 스스로 맹세하심으로 각오를 다지시는 것이다.
너희가 내 마음을 어떻게 그렇게 몰라주냐?
내가 너희를 위해서 얼마나 많은 것을 준비하고
예비하고 보호하고 인도하여 엄청난 나라를 줄 것인데
물이 없어 나를 의심하고
목이 말라 나를 향하여 다투면
내 마음이 얼마나 아프고 답답한지 모르겠냐?
그렇게 말씀하시는 거다.
그래서 내 맘을 증명해 볼께~
하고는 아말렉을 불러와서는 완전히 박살을 내 보이시는 것이다.
그리고 이것처럼 앞으로도 내가 너를 위해 모든 것을 줄 것이지만
너를 힘들게 하는 모든 것은 내가 끝까지 싸워서 너의 길이 평탄하도록 하겠다
그렇게 역설하고 계신 것이다.
우리가 살 때 먹고 사는 문제로 고민을 많이 한다.
예수님도 그것을 아시고
먹고 마시는 것은 다 이방인이 구하는 것이라 정의했다.
이미 하나님은 아신다 했다.
세상을 보라 다 하나님이 움직이고 먹이고 입히는 것들뿐인데
왜 그것으로 고민하고 갈등하느냐고 화가 난 목소리로 말씀하신다.
'이 믿음이 적은 자들아 어찌하여 믿음이 없느냐 나를 좀 믿어라'
그러시면서
'그의 나라와 의'를 구하라고 하시는 것이다.
그래서 산상보훈 후에 예수님의 사역
마태복음의 기록은 믿음 없는 백성을 향하여
'믿음'을 좀 가져보라고 말씀하시는 것이다.
마태복음 8-10장에는 무려 믿음과 관련된 이야기가 8번이나 나온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우리의 먹고 마시는 것뿐 아니라
아픈 것 약한 것을 고치시고
우리의 고생하며 여기저기 팽개쳐져 방황하는 자들을 위하여 오셨음을 말씀하신다.
의인이 아니라 죄인을 구원하시러 오심을 말씀하신다.
그분은 우리를 위해 이기시고 우리를 위해 싸우시고
우리의 앞 길을 여신다.
셋째, 제사장의 옷에 열 두 지파의 이름을 기록하라고 했다.
앞서도 말했지만, 예수님의 사역.
앞으로 영원한 큰 제사장이신 예수님의 사역과
열 두 지파가 앞으로 올 세상을 주관함을 기록한다.
모든 백성이 포함된 거국적 나라가 될 것을 상징한다.
넷째, 요단강의 열 두 돌이다.
이것이 오늘 앞서 말씀으로 나눈 것이다.
기념물이 아닌 기념의 주체를 기억하고 하나님의 하실 일을 소망하는 것이다.
그리고 마지막
다섯째가 성찬식에서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단어이다.
'나를 기념하라'
몸과 잔을 기념하라.
그리고 이 잔은 피로 맺은 새 언약이다라고 하셨다.
잔이 언약이다.
열 두 돌을 남겨서 영원히 기억하는 것이 아닌
이제 그림자의 실체인 예수그리스도를 기념하는 것!
그분의 우릴 위해 죽으신 몸과
영원한 길을 내시고 더러운 몸과 영혼을 거룩하게 하신 그분의 피를
이제 우리가 기억하고 기념해야 하는 것이다.
그래서 성찬식은 죽은 우리의 몸이 그분과 함께 죽고
그분의 몸이 요단강을 건너 하늘을 여셨고
십자가의 길을 가심으로 죽으셨다가 다시 부활하셔서
영원한 나라를 가게 된 것을 기념 하는 것이다.
그리고 잔은 그분의 피가 우리를 거룩하게 하며
옛 언약이 무너지고 새 언약의 보증으로 그분의 피를 기념하라는 것이다.
성찬식은
예수그리스도안에서 나에게 주어진 새로운 생명과
새로운 언약을 기억하고 감격하고 감사하는 천국잔치이다.
수많은 기적가운데 말씀하시는 하나님!
내가 너희와 함께 할것인데
여호와의 강한 손이 얼마나 능력이 있는지 알게하며
우리의 삶을 가장 좋은곳으로 인도하시며
영원토록 하나님을 경외하는 삶을 살도록 하시겠다는 하나님!
우리는 눈에 보이는 물질이나,
우리가 가진것,
나의 약함을 내려놓고
하나님의 하나님 되심을 증거하는 소망의 백성이 되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