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음의 시작 (행17:1- 9)
복음의 시작은 무엇일까요?
복음의 시작은 성경의 뜻을 풀어주는 것입니다.
성경이 무엇을 말하는지, 성경에서 말하는 것이 무엇을 말하는지 그것을 풀어줘야합니다.
우리는 자꾸 우리의 말을합니다.
우리는 자꾸 우리의 생각을 전합니다.
아닙니다.
복음의 시작은 성경을 풀어주는 것으로 해야합니다.
우리의 말이 힘이 있는 것이 아니라 성경의 참 뜻이 힘이 있습니다.
"바울이 자기의 관례대로 그들에게로 들어가서 세 안식일에 성경을 가지고 강론하며 3 뜻을 풀어 그리스도가 해를 받고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야 할 것을 증언하고 이르되 내가 너희에게 전하는 이 예수가 곧 그리스도라 하니"
(2-3)
바울은 자신의 체험, 자신의 생각을 말하지 않습니다.
성경이 그리스도에 관하여, 예수에 관하여 말하고 있는 것을 풀어주고 있습니다.
성경이 아니고는 성령이 역사하지 못합니다.
우리는 자꾸 세상에서 교훈을 좋아합니다.
감동 있는 이야기,
마음이 뭉클하는 이야기를 전합니다.
아닙니다.
생명,
능력,
힘은 오직 성경의 참 뜻을 발견할 때입니다.
바울은 가는 곳마다 성경을 강론하고 풀어줄 기회를 찾습니다.
그래서 그는 회당을 찾았습니다.
그리고 성경이 무엇을 말하는지 그 뜻을 풀어주고 있습니다.
시대가 발달하고
세상이 발전하고
신학과 학문이 발달할 수록 사람들은 성경이 무엇을 말하는지 보다
세상의 학문과 논리와 교훈과 이야기에 마음을 둡니다.
성경보다 세상 책에 목숨을 걸고
성경의 뜻보다 세상의 사는 길과 뜻에 마음을 다합니다.
그래서 거기에는 무엇이 남을까요?
시기입니다.
세상의 논리와 학문에 눈이 열릴수록 사람은 더 높은 차원의 영성에 들어가는 것 같지만 실은 시기심과 질투와 경쟁에 빠집니다.
"그러나 유대인들은 시기하여 저자의 어떤 불량한 사람들을 데리고 떼를 지어 성을 소동하게 하여 야손의 집에 침입하여 그들을 백성에게 끌어내려고 찾았으나"(5)
학문 발달의 문제는 자신의 것,
자신의 생각,
자신의 철학,
자신의 논리와 다른 사람은 받아들이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자신이 배운 것이 전부이고 자신이 아는 것이 진리라고 여긴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학문의 끝입니다. 그래서 자신과 다른 생각의 사람들은 결코 용납하지 못합니다.
그래서 그들이 잘 하는 것은 사람을 선동하는 것입니다.
사람을 선동해서 자신의 생각과 다른 사람을 모함하고 몰아내는 일에 빠릅니다.
우리는 늘 조심해야합니다.
성경보다 더 귀하게 여기는 복음,
성경이 아닌 사람의 생각을 전하는 교회,
성경이 아닌 다른 교훈과 예화나 뜻을 전하는 사람을 조심해야합니다.
우리의 피 속에 성경의 참 뜻이 흐르게 해야합니다.
그래서 성경을 알고 성경을 풀어야합니다.
늘 저의 고민은 성경이 말하는 것이 무엇인가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왜 이 말씀을 하시고 왜 이 비유를 하시고 왜 이 말과 이 말 사이에 이 비유를 하고 있느냐는 것을 고민하고 성령의 뜻을 묻습니다.
성경에는 하나님이 있습니다.
성경에는 하나님의 길이 있습니다.
성경에는 하나님의 모든 지혜가 있습니다.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깊음이 있습니다.
바울은 오직 그 성경을 사람들에게 풀고 있습니다.
자신의 실수를 알기 때문입니다.
자신은 성경을 너무 잘 아는 학문의 끝을 경험했다 여겼습니다.
가말리엘의 문하에서 공부하고 배울 만큼 배웠다 여겼습니다.
그런데 그가 예수를 핍박했습니다.
이유는 한가지 입니다.
성경을 안다 했지만 성경을 가장 몰라서입니다.
성경을 모르면 하나님을 위한다고 목숨을 걸고 살지만 그것이 결국 예수님을 핍박하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나의 논리와 학문과 지식이 성경을 알지 못하면 사람을 죽이고 억압하고 핍박하는 사람이 됩니다.
"발견하지 못하매 야손과 몇 형제들을 끌고 읍장들 앞에 가서 소리 질러 이르되 천하를 어지럽게 하던 이 사람들이 여기도 이르매"(6)
성경을 알지 못하면 열심이 사람을 죽입니다.
성경의 뜻을 알지 못하면 열심이 사람을 핍박합니다.
성경의 참 뜻을 찾지 못하면 열심이 사람을 괴롭게 합니다.
성경을 알지 못하면 나의 잘못된 지식이 교회를 망하게 합니다.
어설픈 성경의 지식이,
성경이 아닌 어설픈 교훈과 세상의 이야기가 사람을 망하게 합니다.
잘하고 있는 것처럼 착각하게 하고
잘 살고 있는 것처럼 스스로 자위하게 합니다.
그러나 거기에는 생명의 역사는 없습니다.
사람을 살리는 역사는 없습니다.
사람을 살리는 역사에는 반드시 시기가 있습니다.
참 복음을 전하면 세상이 싫어합니다.
참 말씀을 전하면 갈등이 있습니다.
집안에 싸움이 있습니다.
시부모와 며느리가 싸우고 부모와 자녀가 싸우게 됩니다.
알만큼 알고 배울 만큼 배운 사람이 자신의 부족함을 고백하고 겸손하지 않으면
성경을 받아들이기 어렵습니다.
세상의 모든 것이 의미 없다 여겨질 때 복음, 즉 성경의 뜻이 찾아옵니다.
성경은 내가 풀고 싶다고 풀어지지 않습니다.
내가 죽고 예수님이 찾아 오셔야합니다.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박혀야 성경의 의미가 성령과 함께 알게 됩니다.
우리의 문제는 내가 죽지 않고 성경을 읽으면 결국
내 뜻을 이루기 위한 절의 염불이 되고
내 목적을 이루기 위한 부적이 됩니다.
성경을 안다면,
성경을 제대로 이해한다면
우리의 삶은 지금과 완전히 다른 삶을 살게됩니다.
내가 살지 않고 성경이 나를 이끌어갑니다.
내의 생각과 논리와 뜻이 아니라 성경의 뜻과 길과 마음을 발견하게 됩니다.
바울이 전한 것은 바울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성경의 뜻과 길입니다.
그곳에 감동과 생명과 사람을 살리는 길이 열립니다.
그리고 그곳에는 시기와 핍박과 조롱이 함께 찾아옵니다.
그러나 참 성경의 길을 깨닫는 사람은 그것을 감수하고
생명의 길을 선택합니다.
그것이 성경의 힘입니다.
우리가 알아야 하는 것은 성경입니다.
우리가 전해야 하는 것은 성경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아니고는 사람이 변하지 않습니다.
* 한국을 오면서 홍콩 엘림교회 선교관에 머물렀습니다.
조윤태목사님께서 사역하시는 교회입니다.
기도와 찬양과 영성이 살아있는 성령이 일하시는 교회입니다.
홍콩을 거쳐가는 모든 사역자들에게 선교관을 통해 섬기는 아름다운 교회입니다.
조윤태목사님의 아름다운 섬김과 마음을 통해 너무나 귀한 하나님의 일하심을 봅니다.
말씀의 현장,
배움의 현장,
섬김의 역사를 보는 현장이었습니다.
깊은 감사의 마음을 전합니다.
목요일에 한국에 도착했습니다.
목, 금요일 이틀 동안 기본적인 것들을 정리하고 한국에서 지낼 준비를 했습니다.
노트북도 이제야 가동이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준비한 은혜가 많습니다.
하나님의 위로가 풍성합니다.
하나님은 늘 그렇게 우리가 생각한 것보다 좋은 것을 주시는 분입니다.
한국에 있는 동안 하나님의 예비하신 은혜와 일들을 기대합니다.
아니 하나님은 이미 특별한 은혜를 시작하셨습니다.
하나님은 늘 좋으신 나의 아버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