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음>과 <복> (행14:1 -7)
잘 사는 것이 목적인 사람이 있습니다.
형통한 것이 목적으로 삼고 사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래서 힘들면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지 않는 것으로 생각합니다.
복을 받지 못하면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지 않는다고 힘들어합니다.
오늘 바나바와 바울은 가는 곳마다 핍박을 받습니다.
안디옥을 떠나 바보에 갔을 때 바예수가 그들을 핍박했고,
비시디아 안디옥에서도 그들은 유력자들과 높은 지위에 있는 사람들에게 핍박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이고니온으로 왔습니다.
어김없이 또 핍박을 받습니다.
그래서 돌로 치려고 달려들어 결국 근처로 도망을 갑니다.
그런데 도망을 가서 그들이 한 것은 복음을 전했습니다.
"거기서 복음을 전하니라"(7)
복을 목적으로 하는 사람은 늘 고민에 빠집니다.
세상에서 그리스도인으로 산다는 것은 복으로 채워질 수 없는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참 복음으로 살면 세상은 우리를 가만히 두지 않습니다.
그래서 늘 욕을 먹고 도망 다녀야 하고
좋은 소리를 듣지 못합니다.
이유는 세상이 우리가 싫어서가 아닙니다.
예수님이 싫어서입니다.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면 너희보다 먼저 나를 미워한 줄을 알라"[요15:18]
그런데 그 미움은 이유가 없습니다.
"그러나 이는 저희 율법에 기록된 바 저희가 <연고 없이>
나를 미워하였다 한 말을 응하게 하려 함이니라"[요15:25]
세상은 이유가 있어서 우리를 싫어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냥 존재 자체가 싫은 것입니다.
세상에 속한 자와 하늘에 속한 자는 존재 자체가 반대입니다.
반대로 가는 것입니다.
세상은 악으로,
지옥으로 달려가고
하늘에 속한 사람은 천국,
하나님을 향하여 달려가기 때문에 그냥 두 존재가 만나는 것 만으로도 싫은 것입니다.
그래서 세상은 예수 믿는 사람이 뭘 하든 하지 않든 싫어합니다.
그래서 성경은 늘 그렇게 말합니다.
하나님이 예비한 사람,
하나님이 보낸 사람,
성령께서 믿게 한 자들,
영생 얻기로 작정된 자들이라고 표현하는 사람들을 모으는 것입니다.
우리가 믿게 하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이 예비하고 준비하고 영생 얻기로 작정된 사람들을
우리에게 보내주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과 바나바는 복음을 전하다 그들이 믿지 않는다고
갈등하지 않습니다.
고민하지 않습니다 .
핍박하면 발에 먼지를 털고 떠납니다.
"두 사람이 그들을 향하여 발의 티끌을 떨어 버리고 이고니온으로 가거늘"(51)
우리에게 이런 마음이 필요합니다.
우리는 우리가 고민하고 우리가 죽으라고 애쓰는 마음을 내려 놓아야합니다.
예수를 믿는 것,
교회를 세우는 것,
사람을 세우는 것은 우리의 힘으로 되는 것이 아닙니다.
성령께서 보내셔야하고
성령께서 세우셔야합니다.
성령이 할 일을 우리가 고민하면 아픔이 됩니다.
그것이 부담이 되고
그것이 고통이 됩니다.
참 믿음은 성령께서 허락한곳 까지만 갑니다.
그래서 핍박을 통해 떠나라 하면 그냥 떠나는 것입니다.
올 때도 그렇게 왔고
갈 때도 그렇게 가는 것입니다.
제자들은 머무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어디를 가든지
거기에서도 복음을 전하는 것이 목적이라는 것을 아는 사람입니다.
우리의 목적이 무엇인지 생각해야합니다.
우리의 목적이 세상의 복이면 늘 채워지지 않는 갈등으로 살 것입니다.
세상은 우리를 이유 없이 싫어하기에 잘 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목적이 복음을 전하는 것,
사람을 세우는 것,
기쁨을 누리는 것이라면
일이 되지 않는 다고
내 뜻대로 되지 않는다고 힘들어 할 필요는 없습니다.
그냥 성령께서 허락하시는 시간까지
성령께서 허락하시는 과정까지 최선을 다하는 것입니다.
비록 떠나지만 제자들은 기쁨과 성령이 충만합니다.
"제자들은 기쁨과 성령이 충만하니라"(13:52)
우리가 놓치지 말아야 하는 것은 기쁨입니다.
기쁨이 떠난 그리스도인,
기쁨이 떠난 삶은 예수님과 아무 상관이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어떤 상황에서도 포기 해서는 안 되는 것은
우리 안에 있는 기쁨입니다.
이 기쁨이 떠나면 우리는 정말 아무것도 아닙니다.
그래서 바울은 항상 기뻐하라고 말씀합니다.
기쁨은 세상과 우리의 존재를 구분해 내는 가장 근본적인 모양이고
가장 특별한 다른 모습입니다.
핍박속에서도,
일이 잘 안 풀리는 속에서도
내 뜻대로 되지 않는 상황가운데서도 우리가 스스로 그리스도 안에 있음을
증명해 내는 것은 기쁨입니다.
스데반의 일로 온 교회가 슬픔이지만 그 일로 복이 전파되는 곳마다
기쁨이 충만했습니다.
"그 성에 큰 기쁨이 있더라"(행8:8)
그리고 오늘 바나바와 바울이 비시디아 안디옥에도 핍박으로 도망을 가지만
그 성에는 기쁨이 충만합니다.
"제자들은 기쁨과 성령이 충만하니라"[행13:52]
복음의 특징은 환경의 형통이 아닙니다.
복음의 특징은 내면의 형통입니다.
복음의 특징은 환경과 반대로 가는 우리의 마음입니다.
영원히 잃어버린 줄 알았던 영생의 기쁨이 우리안에 찾아오니
환경은 우리를 묶어둘 수 없습니다.
그래서 복음이 전해지고
복음안에,
하나님의 은혜 안에 있는 인생은 기쁨안에 있습니다.
내가 내 인생을 사는 사람의 특징은 오직 하나입니다.
첫째, 기쁨이 없습니다.
요즘 현대인은 하루에 1분 30초만 웃고 평균 3시간을 염려한다고 합니다.
그리스도인의 가장 큰 특징 한가지는 기쁨입니다.
그런데 내 인생을 사는지 하나님의 시간을 사는지 가장 분명한 구분은
내 안에 기쁨입니다.
어떤 환경에서도 기쁨이 유지 된다면 우리는 내 인생을 내가 사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기쁨이 없는 삶은 내 인생을 내가 산다는 증명입니다.
둘째, 안되는 것에 자꾸 미련을 가집니다.
바울과 바나바는 사람들이 핍박을 하자 미련없이 그 곳을 떠납니다.
그들은 환경을 성령의 인도하심으로 여겼습니다.
복음을 더 이상 전할 상황이 아니면 그냥 떠납니다.
복음을 전하는 것이 목적인 인생은 한 곳에,
복음을 전하지 못하는 것에 미련을 두지 않습니다.
지금껏 쌓은 경력과 지금껏 쌓은 나의 공로가 아무 의미가 없습니다.
다만 내가 복음을 전할 수 있는 곳으로 발길을 옮깁니다.
그런데 내가 내 인생을 사는 사람은 복음이 목적이 아니고
복이 목적이기에 자꾸 안되는 것에 미련을 가집니다.
그래서 안되는 상황으로 나를 자꾸 밀어 넣고 주께서 이런 아픔을 주셨다고 하소연합니다.
바보입니다.
떠나면 됩니다.
복음이 전해지지 않으면
복음 전함을 허락하지 않으면 그냥 버리면 됩니다.
우리의 기준은 복음이면 모든 것이 쉽습니다.
복음이 전해지기 위해 내 인생이 존재하지
내 인생을 위해 복음을 이용할 수는 없는 것입니다.
자기 중심적 인생을 사는 사람은 늘 자기 뜻을 위해 복음을 이용합니다.
복음을 통해 자신의 목적을 이루려 하기 때문입니다.
자기의 인생의 목적을 위해 늘 방편을 찾습니다.
그래서 하나님도 이용하고
예수님도 이용하고
교회도 이용합니다.
그래서 인생의 기준이 <복음>이 아니고 <복>입니다.
복이 기준인 인생은 늘 내가 잘 되는 길만 찾아갑니다.
복음이 기준인 인생은 성령의 길만 찾아갑니다.
그래서 복이 기준인 인생은 성령이 떠난 곳도 미련을 두고
복음이 기준인 인생은 성령과 함께 가는 것입니다.
사는 게 사는게 아니란 말이 있습니다.
살아도 산 인생이 아니란 말입니다.
그런 인생은 안되는 것에 미련을 잡고 사는 인생입니다.
성령이 가는 방향과 반대로 가는 인생이 그런 인생입니다.
복음이 목적이 아니고
복이 목적인 인생은 늘 그렇게 성령과 반대로 가는 인생입니다.
복을 좀 받았다고
복을 좀 받을 수 있을 것이라고
그렇게 가다가 안 되는 곳에 머물다 망한 사람이 허다합니다.
인생의 기준은 복음 이어야합니다.
내가 복음을 전할 수 있다면 그곳이 하나님이 기뻐하는 곳이고
그곳에서는 기쁨이 충만할 수 있는 곳입니다.
셋째, 환경으로 인생을 평가합니다.
환경이 잘 풀리면 인생이 잘 된다고 생각하는 인생입니다.
그리스도인은 환경에 매이는 사람이 아닙니다.
환경이 우리의 기준이 되면 우리는 늘 세상을 좇아가게 됩니다.
환경이 아니라 사람이 기준이 되어야합니다.
비록 세상적인 복은 아니어도
주를 믿는 믿음의 역사가 풍성한 것이 축복입니다.
우리의 기준이 환경이면 늘 실망합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인도하시는 목적이 좋은 환경이 아니라
좋은 복음을 전하는 것입니다.
복음을 전하는 것이 목적인 인생으로 부르셨는데
복에만 붙들려 살면 늘 환경에 매이게됩니다.
환경에 매이면 성령에 매일수 없고
성령에 매이지 못하면 성령의 기쁨을 누릴 수 없습니다.
성령이 임하는 가장 중요한 특징은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는 것입니다.
그것은 목마르지 않는 기쁨입니다.
엎드릴 때 마다 주시는 하나님의 마르지 않는 기쁨입니다.
우리의 기쁨은 성령이지 환경이 아닙니다.
성령 안에 거하지 못하면 늘 환경을 바라보게 됩니다.
그러면 가장 중요한 성령의 열매인 기쁨을 잃어버립니다.
그것이 자기의 인생을 사는 사람의 가장 중요한 특징입니다.
세상은 무조건 믿는 자를 싫어합니다.
그런 세상에서 기쁨을 잃지 않는 것이 우리의 싸움의 본질입니다.
기쁨을 잃어버리면 전부를 잃어버립니다.
성령의 임재는 결국 환경이 아니라 나를 기쁨 가운데 거하게 하는 것입니다.
세상은 돌로 치려 할 것입니다.
"이방인과 유대인과 그 관리들이 두 사도를 모욕하며 돌로 치려고 달려드니"(5)
환경은 우리의 뜻대로 이루어지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 삶의 목적은 어디서든지 복음입니다.
그래서 제자들은 거기서도 복음을 전하고 있습니다.
"거기서 복음을 전하니라"(7)
인생의 목적이 무엇입니까?
환경입니까?
아니면 복음입니까?
환경이라고 여기지는 않았지만 내 안에 기쁨이 없다면
내가 환경을 목적으로 살아온 것입니다.
그러나 환경은 좋지 않지만
내 안에 기쁨이 있다면 우리는 복음을 위해 살아온 것입니다.
기쁨!
끝까지 지켜야 할 우리의 능력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