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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하고싶은이야기! 성경이하고싶은이야기! 라합

내가 하고싶은이야기! 성경이하고싶은이야기! 라합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 성경이 하고 싶은 이야기! 라합편

여호수아3:1-17

 

 

 

 

 

 

 

 

누구나 라합의 축복을 누린다

 

 

 

 

어제 '승리의 전주곡'이라는 제목으로 글을 2시에 마쳤다. 

 

쉬기도 잠깐,

 

이내 3장의 내용들이 밀려오는데, 새벽2시까지 이어진다.

 

 

 

 

 

3장의 내용이 거의 끝나는데 내용에 내가 놀란다.

 

이걸 어떻게 설명하고 풀어야 하나?

 

 

 

 

 

 

모세부터 히브리서까지 연결이 된다.

 

히브리서가 이제 마음에 온다.

 

남들은 아는데 나는 이게 이제야 마음이 오는지!

 

내가 소경이었다.

 

 

 

 

무지하게 살았다.

 

 

 

 

 

3장의 내용으로 2장의 라합의 이야기를 보니 다른 의미가 있다.

 

 

 

 

 

 

 

 

2장에서 올린 것은 '마음의 준비'였다.

 

 

 

 

 

이것은 하나님 편에서 준비이고

 

우리 편에서 준비라 했다.

 

아무리 어려운 삶이고 형편이어도

 

우리가 마음의 준비,

 

하나님만 잡기로 결심하면

 

하나님의 축복의 자리에 설수 있다는 이야기를 했다.

 

 

 

 

 

 

 

그것이 맞다.

 

그러나 그것에 나아가는 의미가 있다. 

 

원래 성경이 말하고 싶은 의미가 따로 있다.

 

 

 

 

 

 

 

깊은 의미가 3장을 보고 2장을 보면 더욱 선명하게 나타난다.

 

라합이 그토록 하나님의 복을 받게 되는가 하는 것이다.

 

라합이 살던 당대와 후대가 그토록 복의 복을 누리는가?

 

단지 라합이 정탐군을 구해준 만으로 당대와 후대가 그렇게 복을

 

누리게 것에는 깊은 의미가 없을까?

 

 

 

 

 

 

 

하나님을 보지도,

 

하나님을 체험도 못했는데,

 

그런 가운데 하나님을 잡은 것으로

 

하나님은 축복해 주시고

 

은혜를 베푸셨다는 것은 나의 이야기이다.

 

 

 

 

 

 

오늘 성경은 다른 이야기를 하고 싶으시다. 

 

아니 깊은 의미가 있음을 말씀하시고

 

말씀을 다시 조명하여 주신다.

 

 

 

 

 

 

 

결론적으로 이야기하면

 

라합은 상징이다.

 

우리가 누리고 받게 축복의 상징이 라합이다.

 

 

 

 

 

 

아니 구약의 모든 것이 상징이다.

 

요단강도 상징이고

 

홍해도 상징이고

 

모세도 상징이고

 

여호수아도 상징이다.

 

 

 

 

 

언약궤 ,

 

십계명, 아론의 싹난 지팡이 그리고 만나 항아리도 상징이다.

 

언약궤가 들어가야 물이 멈추는지 그것도 상징이다.

 

 

 

 

애굽도 광야도 상징이다.

 

할례도 상징이고

 

가나안도 상징이다.

 

 

 

 

 

 

모세가 지팡이를 밀어야 홍해가 갈라지는지

 

모세에게 거룩하라 하고 신을 벗으라 하고

 

모세는 가나안에 못들어 가는지,

 

여호수아에게도 동일하게 그것을 명령했는지!

 

 

 

 

 

 

물을 지나야 하는지!

 

물로 세례를 받아야 하는지!

 

 

 

 

 

 

 

히브리서 기자가 하나님 말씀의 초보를 버리라 했는지

 

이제야 알겠다.

 

 

 

 

 

모든 것들이 이제야 명확하게 보인다.

 

 

 

 

히브리서가 이제야 읽혀진다.

 

난 너무 무지하게 살았다.

 

 

 

 

 

 

눈이 열리고 보니 무서움이 밀려온다.

 

하나님의 치밀함과 반드시 이루고야 마시는 거룩하신

 

하나님의 위엄과 영광이 나를 두렵게한다.

 

 

 

 

 

 

장차올 심판과

 

새하늘과 새땅에서의 영광앞에 나는 오늘 두려움이 앞선다.

 

수천년을 그토록 치밀하고

 

섬세하게 인도하시며

 

인내하고 오래 참으신 하나님의 위대하심앞에

 

나는 한낱 못할 죄인이다.

 

 

 

 

 

문제는 이것들을 어떻게 풀어서 설명을 해야 하나?

 

어디서부터 어떻게 풀어야 하는지 모르겠다.

 

 

 

 

 

 

 

라합의 상징

 

 

라합은 구약의 모든 그림자에서 살아남은 자이다.

 

새로운 실체,

 

새로운 나라가 임할때,

 

우리가 어떤 축복을 누릴 것인가에 대한 모형이 라합이다.

 

 

 

 

 

 

하나님이 예비해 놓으신 길을 가면

 

우리는 라합과 같은 동일한 축복을 누림에 대한 상징이다.

 

 

 

 

 

 

앞서 말함과 같이 동일하게 마음의 준비가 있는 만이 가지는

 

하늘의 축복을 주시는 하나님의 상징이 라합인 것이다.

 

그래서 히브리서는 라합의 행위를 '믿음으로'했다고 기록한다.

 

그것이 행위가 아니고 믿음으로 설명하는가?

 

 

 

 

 

 

언약은 행위이다.

 

언약은 믿음이다.

 

옛 언약은 불완전하다.

 

그러나 언약은 완전한 길이며 완전한 나라이다.

 

침범하지 못하며,

 

해하지 못하며,

 

사라지지 않을 영원한 하늘과 땅이다.

 

 

그 길을 여는것의 샘플, 그림자가

 

홍해였고,

 

요단강이였고,

 

지팡이였고,

 

맛나였고,

 

십계명 즉 언약궤이다.

 

 

 

 

 

 

 

 

그래서,

 

언약이 라합처럼 믿음고백으로 하나님을 고백하면

 

누구든지 누릴 영광과 축복을 설명하고 있는 것이다.

 

 

인간중에 가장 소망없고 가치없는 삶을 사는 죄인같은 사람도

 

누나 대접받고

 

인정받고

 

누리게될 영광의 나라!

 

그것을 누리는 첫 샘플로 라합을 삼으신것이다.

 

 

 

마음이 준비된 .

 

하나님께만 소망을 두는 .

 

믿음으로 고백하며 나아가는 자가 받아 누리게

 

영광스런 축복을 주시는 하나님의 마음을 라합을 통해서 보라는 것이다.

 

 

 

라합안에 내가 있고,

 

라합속에 나의 죽어가는 영혼이 있다.

 

처절한 몸부림속에 소망없는 인생을 사는,

 

세상으로부터 놀림받고,

 

버림받은

 

모든 죄인들과 세리들과 창기들과 함께 먹고 잡수시던 예수님!

 

 

세상의 손가락질 받는 모든 죄인들과 함께 지내며

 

죄인들의 친구라 놀림받는 예수님!

 

그 예수님의 사랑을

 

라합의 모습에서 오늘 보게 되는 것이다.

 

 

 

 

 

 

 

 

 

 

 

이제 이야기가 같다.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

 

나의 관점에서의 이야기가 아니라

 

성경자체가 말하고 싶은 이야기

 

하나님께서 모형을 통해 말씀하시는

 

실체에 관한 이야기를 시작해야 한다.

 

 

 

우리는 너무 우리가 하고 싶은 이야기만 하고 살았다.

 

 

 

 

 

 

Pastor Seo

Pastor Se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