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모든 것이 괜찮은 이유(행8:1-8)
이상합니다.
예수님이 십자가를 졌다고
예수님이 부활했다고 모든 것이 끝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회복의 역사는 참 길고도 깁니다.
단 한번에 뭔가를 이루시면 되는데 너무 긴 역사,
너무 긴 기다림을 가야합니다.
스데반이 죽음으로 길고 긴 핍박이 이어집니다.
성령이 임하면 세상을 이기고
성령이 충만하면 세상을 정복하고
성령이 임하면 세상이 감당하지 못하는
힘있는 사람이 되어야 하는데
전혀 반대의 일들이 일어납니다.
성령이 강하게 역사할 수록
세상이 더 강하게 역사합니다.
스데반이 죽자 예루살렘 교회에 큰 핍박이 일어납니다.
사도 외에는 모든 사람들이 사마리아로 흩어집니다.
이유는 한가지입니다.
주님이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곧 시행을 뜻합니다.
사람이 전도를 하고 안하고
사람이 일을 하고 안하고에 상관없이
주님이 하겠다고 하시면 그렇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복음의 주체,
우리는 하나님 나라의 회복의 주체가 아닙니다.
하나님 나라 회복의 주체는 하나님입니다.
하나님이 말씀하고
하나님이 언약하고
하나님이 회복하시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찾아서 아브라함이 아브라함이 되지 않았습니다.
모세가 모세가 되고 싶은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모세를 건져내셨고
하나님이 모세를 떨기나무 불꽃 가운데 부르셨습니다.
모세가 여호수아를 세운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여호수아를 세운 것입니다.
요셉이 꿈을 꾸고 싶어서 꿈을 꾼 것이 아닙니다.
그냥 하나님이 주신 꿈입니다.
어떤 선지자도 자기가 하고 싶은 말을 전한 적이 없습니다.
하나님이 주시니 하나님이 말씀하시니 그들이 전하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끝까지라고 하셨기에
그 말씀을 하나님이 이루어가십니다.
그들이 전도를 하고 복음을 전하지 않아서가 아닙니다.
사람은 원래 어떻게 가야할지를 모르는 처음가는 길입니다.
그 길을 하나님은 하나님의 방법으로 쓰십니다.
세상의 악도
세상의 핍박도
세상의 거짓도 선으로 바꾸시는 분은 하나님입니다.
원수의 길을
의의 길도 바꾸시는 분이 하나님입니다.
사도들도 아닙니다.
스데반을 통해 복음이 확장됩니다.
빌립을 통해 사마리아에 복음이 전해지고 그 성에 큰 기쁨이 있습니다.
"그 성에 큰 기쁨이 있더라"(8)
어떤 사람은 초대교회가 전도하지 않아서 그런 일이 일어났다고 말합니다.
아닙니다.
전도를 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핍박은 당연히 일어나는 것입니다.
다만 하나님이 그 핍박을 통해 일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성도를 죽이려고 작정하고 그 일을 하는 것은 아닙니다.
세상이 핍박하고 세상이 의인을 죽이지만
다만 하나님은 하나님의 뜻을 위해 허락할 뿐입니다.
그러나 기억할 것은
어떤 상황에서도 해야할 일이 뭔냐는 것입니다.
핍박이 오고
아픔을 겪고
병이 나고
슬픔을 당하는 가운데
그들의 사명을 잊어서는 안된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바로 복음을 전하는 것,
하나님의 말씀을 증거하는 것입니다.
"그 흩어진 사람들이 두루 다니며 복음의 말씀을 전할새"(4)
스데반이 죽고 장사를 했습니다.
사울이 교회를 잔멸하고 옥에 가둡니다.
그러나 흩어진 사람은 또 흩어진 곳에서 복음의 말씀을 전파합니다.
그것입니다.
모이든지 흩어지든지
평안하든지
핍박이 있든지
건강하든지 아프든지 우리의 사명은 복음입니다.
그것이 우리 삶의 존재 목적이고
세상이 우리를 못살게 구는 이유입니다.
복음의 말씀을 증거하는 싸움입니다.
때를 얻든지 못얻든지 복음을 전파하는 것!
그것이 복음을 받은 자들의 사명입니다.
하지만…
지금 교회는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잘 사는 것에만 목표가 되어진 것 같습니다
오직 잘 사는 것,
오직 복 받는 것,
오직 세상에서 이름을 내는 것,
그것만이 삶의 이유처럼 보입니다.
하나님이 일부러 아픔을 주고 핍박을 주지 않습니다.
악한 세상이,
악한 영이 우리를 힘들게 하지만
그러나 우리의 존재가 존재로서의 자리매김하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
복음의 말씀을 증거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없는 인생은 예수를 만나기 전 사울입니다.
내가 어디에 있든지
학교에든지
직장에든지
한국이든지
아프리카든지
다른 어떤 곳에 있든지
우리의 존재 목적이 복음의 말씀을 증거하는 사람이라는 것을
기억해야합니다.
그것을 잃어버리는 순간
우리는 편안할지 모르지만
세상과 같은 존재가 되는 순간입니다.
단 한번이라도
입을 열어 복음의 말씀을 증거하십시오.
그것이 우리가 이 땅에 사는 존재 이유입니다.
복이 아닙니다.
증인의 삶입니다.
성령이 오신 이유,
증인의 삶,
복음의 말씀을 믿지 않는 자에게 전하는 것입니다.
흩어져도,
매를 맞아도
아파도
핍박을 받고
눈물이 있어도
모든 삶이 괜찮은 이유는
어떤 상황에서도 복음을 전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 아프리카에서 시작된 선교사역에 처음부터 함께한
저의 차입니다. 이차로 아프리카 구석구석을 누비고 다닙니다.
저의 발이고 저의 걸음입니다.
벌서 40만 키로를 달렸습니다.
저와함께 복음이 전해지는 모든 곳에 함께 합니다.
감사하게 아직 별탈이 없습니다.
주인을 닮아서 힘 좋고 다니기 좋아합니다. ^^
교회 갔다 오는 길에 기념으로…
복음을 위해 달리고 달리고~~
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