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리의 전주곡- 마음의 준비
여호수아2:1-14
신명기가 끝나면서 어디 성경을 따라야 하나 고민도 잠깐!
하나님께서 자연스럽게 여호수아서로 길을 여셨다.
길을 여시니 따라가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다.
머리로 오는 영감들을 너무 많이 흘려버린다.
순간순간 꼬리에 꼬리를 무는 말씀의 영감들이 머리 속에서 그냥 날라가 버린다.
글로 옮길 상황이 아닐 때가 있고,
잠깐 묵상해도 수없이 쏟아지는 영감의 조각들을 잡아낼 재간이 없다.
마음 같아서는 어디 혼자 깊은 곳에 쳐 박혀 있으면 싶지만
또 그렇게 한다고 해서 말씀이 온다는 보장도 없다.
주어진 것에 그저 엎드릴 뿐!
폭포수로 내려치는 물줄기에 손바닥으로 그것을 다 잡아내려니
내 가슴만 답답하다.
어떻게 표현해야 좋을지 몰라 늘 고민하지만
그냥 마음 주시는 것 만큼 욕심 부리지 않고 따라감이 내게 축복이라 믿는다.
몇 년 전 한 방송사에서 수입고기의 광우병 문제로 방송을 한적이 있다.
그 방송으로 온 국민이 깊은 아픔과 가라앉지 않는 고함소리에 나라가 힘들었던 적이 있었다.
방송 한번으로, 단 60분의 방송으로 온 나라가 고역을 치른 적이 있다.
나라를 흔들 만큼 중요한 문제는 큰 사건으로 오기도하지만 아주 작은 사건이 되기도 한다.
태풍의 시작은 작은 빗줄기로 시작되고
거대한 전쟁은 한발의 신호탄으로 시작한다.
한 사람의 인생은 아이의 울음소리로 시작되고
연인의 사랑은 스치는 눈길 속에 시작 되기도 한다.
가수의 노래는 반주의 첫 음율로 시작되고
명 지휘자의 웅장한 오케스트라는 보일 듯 말듯 작은 지휘봉에서 시작된다.
미술가의 명품은 작은 붓 놀림에서 시작되고
대 자연의 살아 숨쉬는 생명력은 보이지 않는 땅속 움을 틔우는 새싹에서부터 시작된다.
하나님의 승리는 작은 전주곡으로부터 시작되는데 오늘 이야기가 바로 그 전주곡이다.
하나님의 거룩한 출애굽은 한 아이의 울음소리에서 시작이 되었고,
가나안으로 들어가는 하나님의 대서사시의 아무도 볼 수도 알 수도 없었던 한 여인
볼품없는 기생 라합이라는 여인의 이야기로 시작된다.
하나님의 승리의 전주곡은 오늘 기생 라합을 통하여 시작된다.
마음의 준비
아무리 이스라엘이 광야에서 하나님의 도우심과 기적으로 가나안 앞까지 왔어도
몇 년에 걸쳐 치러질 전쟁이라는 앞에서 그들은 숨을 죽이는 두려움이 있었을 것이다.
그래서 그들은 거듭거듭 강하고 담대 하라는 소리에 귀를 기울였을 것이다.
살아온 것이 은혜이고 수많은 하나님의 기적을 맛보았지만,
막상 거룩한 하나님의 일을 하라고 할 때 우리는 두려울 수 밖에 없다.
더욱이 이 싸움이 승산이 있는지 없는지 확신이 서지 않을 때,
우리의 초라한 모습, 가진 재정, 능력을 보면 뭐하나 될 수 있을지 고민하게 된다.
이때 하나님은 하나님의 준비하신, 마치 땅속에서 봄을 향하여 올라오는 보이지 않는
새싹의 움 같은 사건을 통해 이제 봄이 오구나, 승리가 눈앞에 있구나 확증하게 하시는
사건을 보여주신다.
모세와 여호수아가 다른것!
모세는 열두 정탐군을 보냈다.
이스라엘백성이 합리와 이성을 좇아 보냈다.
그때 그들은 실패했다.
믿음과 합리 사이에서 믿음이 진 것이다.
그때 그들은 돌이킬 수 없는 아픔을 40년 동안 겪게 되었다.
하지만 여호수아는 시작부터 다르다.
모세보다 못하지만,
모세처럼 하나님의 엄청난 기적과 체험으로 시작된 자신이 아니지만
그는 사람들의 눈치가 아니라 하나님의 눈치를 보고 결정한다.
합리와 이성이 아닌 믿음이다.
1절을 보면 그는 열 둘이 아니라 두 명을 정탐군으로 보낸다.
그는 40년이 지난 가나안의 모습을 확인해야 하는 현실에 합리와 이성이 아닌
믿음으로 그저 확인만 하기 위해 두 사람을 보낸다.
이 싸움은 이미 결론이 났다.
정탐군을 보내지 않아도 하나님은 거대한 승리의 대서사시를 이스라엘에게 안겨주실 것이다.
여호수아의 믿음이면 충분하다.
그런데 믿음으로 시작한 발걸음은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준비,
마음의 준비된 사람을 통하여 그들로 마음에 준비하게 하시는 섭리를 볼 수 있다.
이스라엘의 승리의 확신, 하나님의 예비하심은 하나님의 사람, 마음에 준비된 사람을 통하여온다.
기생 라합! 마음에 준비된 여인, 승리를 위해 준비된 여인!
우리가 아무리 강심장이라 해도 사람이라 현실 앞에서는 이것이 맞는지 늘 자신이 없어진다.
이때 하나님은 준비된 여인 기생라합을 만나게 하신다.
두 정탐군이 간 곳이 우연일까 기생집, 라합에게 갔다.
왜 기생 라합의 집에 갔을까?
물론 숨어들기에 편한 곳이 그곳일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우연이 아니다.
하나님은 마음에 준비된 기생라합의 집으로 그들을 인도하고 그를 만나게 하신 것이다.
하나님의 준비- 기생 라합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위해 또 한 사람을 준비 시키셨다.
라합이다.
그녀는 기생이다. 창녀란 말이다.
세상적으로 갈대로 가본여자.
육체의 쾌락과 빠져 나올 수 없는 삶의 굴레에서 헤어나오지 못하는 그녀에게 하나님은
마음에 준비를 시키고 계셨다.
쾌락으로 죽어가는 자신의 몸둥아리와
밤마다 일을 마치고 홀로 있는 그녀의 마음속에서
어딘지 알지 못하는 외로움과 허무함의 끝을 향하여 떨어지는
자신의 영혼을 본 것이다.
그리고 그는 이것이 아니라는 결정을, 이렇게 살아서는 안 된다는 마음을 가진 것은
소문을 통해서이다.
하나님이 그에게 나타난 것도 아니다.
그렇다고 말씀을 들은 것도 아니다.
들은 것은 하나님에 대한 소문이다.
'애굽에서 행한 일과 광야에서 행한 일과 두왕, 시혼과 옥에게 행한 일'을 단지 들었을 뿐이다.
어디서 들은 이야기가 아닌가?
누가 한 말이 아닌가?
모세가 이스라엘을 향하여 그렇게 이야기하던!
늘 기억하라고, 과거에 역사하신 하나님을 잊지 말라고 그렇게 당부하던 그 당부를
기생라합이 듣고 그 말씀을 잡은 것이다.
라합은 마음에 준비를 하고 있었다.
하나님을 잡을 기회, 하나님을 붙들 기회가 오면 내 목숨을 내어 놓고라도 잡을 거라는 결심을
라합은 벌써부터 하고 있었던 것이다.
라합은 자신의 구차한 몸 둥아리가 나락으로 떨어지는 영혼가운데
들은 소문을 통해 이스라엘과 동일한 신앙고백을 하고 있는 것이다.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는 위로는 하늘에서도 아래로는 땅에서도 하나님이시니라'(수2:11)
내 삶이 어떠 하든지가 중요하지 않는,
우리가 들은 하나님!
하나님의 하신 일을 들을 때 우리는 마음에 준비를 해야 한다.
라합은 그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래서 하나님은 보지도 않고 체험도 없는 그녀의 그 믿음을 귀하게 여기시고
'내가 이만한 믿음을 본적이 없다'라고 하셨던 예수님의 놀라운 고백처럼
하나님은 그녀에게 축복의 길로 두 정탐군을 보내신 것이다.
우리가 어떤 형편이든지 하나님의 이야기를 듣거든,
하나님의 역사를 알게 되거든
마음에 준비를 해야 한다.
마음에 준비할 때 하나님은 축복의 기회를 주신다.
라합이 죽을 각오로 하나님이 기회를 주시면 목을 내 놓는 한이 있어도
내가 그 기회를 잡을 것이라고 마음의 준비를 했음을 알 수 있다.
마음에 준비를 되야 하나님은 축복의 기회를 만나게 하신다.
축복은 기회가 있어야 온다.
축복은 기회가 올 때 잡아야 축복이 되는 것이다.
아브라함은 믿음의 조상으로 설 기회가 왔을 때 잡았다.
왜냐하면 아브라함은 마음의 준비를 이미 아들을 기다리는 동안
아들이 자라는 동안 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 기회를 잡았다.
라합은 아브라함보다 모세보다 더 나은 믿음이다.
어떤 의미에서 라합은 아브라함보다 믿음이 더 좋다.
모세보다 더 낳다.
아브라함도 모세도 현현하시는 하나님을 만난 사람들이다.
그들은 하나님을 만나기라도 했다.
음성을 듣기도 하나님을 보기도 했다.
천사를 만나기도 했다.
하나님의 예비하신 체험이라도 했다.
그러나,
라합은 소문만 들었다.
하지만, 그녀는 허무한 인생의 굴레에서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었다.
하나님을 잡아야지!
기회가 온다면 내 반드시 잡을거야!
하나님이 나와 내 가족을 구원하실 수 있다 반드시 있다.
그래서 그녀는 자신만 아니라 온 가족을 구원해 달라고 약조를 하게 된다.
어려움이 있다.
살다 보면 답답한 일도 만난다.
두려운 일도 얼마나 많은지 모른다.
세상은 나를 허무하게 만들고
나의 육체를 쾌락으로 자꾸 빠져들게 만든다.
하지만 그때 마음의 준비를 해야 한다.
축복의 기회를 줄 때,
하나님께서 이런 인생이 아닌 축복의 대열에 서게 할 기회를 주실 때
내 잡아야지 하는 마음의 준비!
그것이 하나님께서 우리를 외롭게, 아프게 하시는 유일한 이유이다.
마음이 준비된 자에게 기회가 보인다.
내 형편이 어떠하든지 저주에서 축복으로 바꿀 기회가 주어진다.
아브라함은 멜기세덱에게 그렇게 했다.
롯은 두 천사에게 그렇게 했다.
[마13:49]세상 끝에도 이러하리라 천사들이 와서 의인 중에서 악인을 갈라 내어
천사는 우리를 죽이러 오는 천사도 있고
살리러 오는 천사도 있다.
모세는 죽이는 천사를 만났다.
야곱은 마음이 변하므로 축복의 천사를 만났다.
또 어떤 이는 살리는 천사를 만났다.
예수님께서 고난의 길을 가기로 결정할 때 어떤 일이 벌어졌나?
광야 40일 금식 후 마귀에게 시험 받으시고 난 후
천사들이 와서 수종을 들었다.
축복의 천사이다.
마음의 준비된 자!
하나님의 뜻을 좇기로 하나님의 방법만을 가기로
그분이 기회를 줄 때
내가 죽어 목 베임을 당하고
화형을 당하고
몸이 톱으로 잘릴지라도
내가 그 하나님의 길을 가겠다고 마음에 결심하고
각오하고 준비하는 자에게
하나님의 축복의 문이 열리는 것이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이 축복의 사람, 축복의 천사가 늘 있다고 말씀하신다.
마18:10 삼가 이 작은 자 중의 하나도 업신 여기지 말라 너희에게 말하노니
그들의 천사들이 하늘에서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얼굴을 항상 뵈옵느니라
[마10:42]또 누구든지 제자의 이름으로 이 소자 중 하나에게 냉수 한 그릇이라도 주는 자는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 사람이 결단코 상을 잃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
누가 소자를 보는가?
누가 축복의 기회를 잡는가?
마음의 준비가 된 자이다.
예수님은 늘 우리에게 축복을 주시기 원한다.
그래서 이 땅에 소자들이 많다.
문제는 우리의 마음이 하나님 뜻대로 살 준비가 되지 않아서 보이지 않을 뿐이다.
무엇이 다른가?
마음이 준비된자는 축복의 기회를 잡는다.
준비되지 않은 자는 모세처럼 죽을 기회
가나안처럼 죽음 앞에 놓이게 된다.
가나안 땅에서 오직 한 사람 기생라합 만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었다.
세상에 사람들이 수없이 많다.
그러나 축복의 기회를 잡는 사람은 많지 않다.
하나님께서 그렇게 성경에 말씀을 통해서 말해도 보고도 보지 못하고
들어도 듣지 못한다.
축복의 길,
영광의 길은 생각보다 간단하다.
이 기생 라합이 얼마나 하나님께서 기뻐하셨나?
그 후에 어떤 축복의 길을 가게 되었나?
라합의 후손에서 룻기의 주인공 룻의 남편인 보아스가
라합의 후손이다.
베들레헴의 지주이다.
뿐만 아니다.
보아스는 다윗의 아버지인 이새의 아버지가 보아스이다.
다윗의 고조부가 보아스이다.
라합의 후손이 다윗이다.
어디 그뿐인가?
예수님의 거룩한 족보의 대열에 이름이 올라간다.
이 엄청난 영광이 어디 있는가?
거기서 끝이 아니다.
보아스는 솔로몬 성전의 두기둥인 야긴과 보아스 중 한 기둥의 이름이
보아스가 된다.
성전을 떠 받치는 한 기둥이 보아스이다.
그것이 라합을 통하여 나온다.
라합은 비로 기생이나 그는 기생의 삶 가운데, 아픔의 삶 가운데
아픔을 주신 하나님의 의도를 발견했다.
아픔은 하나님만 붙잡는 유일한 지름길이다.
하나님은 우리가 마음속에 하나님만 붙잡겠다고 결심하지 않을 때,
축복의 준비로 마음이 준비 되지 않을 때,
축복을 누구에게나 주시기 원하시는 하나님은
그 축복의 지름길인 아픔을 주신다.
그때 불평하고 원망하고
하나님을 등지고 세상으로 간다면 그곳에는 정말 방법이 없다.
라합은 유일하게 하나님의 뜻을 알고 잡은 사람이었다.
아픔은 하나님께서 때로 허락하신다.
아니 이 세상은 아픔이다.
그 아픔 속에 하나님은 축복을 향한 마음의 준비로 그 아픔을 허락하시는 것이다.
아픔은 축복을 위한 마음의 준비이다.
라합은 그 누구도 그 마음을 가지지 않을 때 가나안에서 유일하게 혼자 그 준비를 한 것이다.
그 귀함을 하나님은 보시고 그녀만 아니라 온 가족이 구원을 받고
영원토록 이름이 남는 축복의 관문을 통과하게 하셨다.
이런 축복은 개인에게만 주어지지 않는다.
개인의 마음의 준비는 천대까지 이어지는 가문을 위한 승리의 전주곡임과 동시에
공동체를 향한 위대한 승리의 전주곡이기도 하다.
무슨 말인가?
마음의 준비는 축복의 시작이자 반이자 전부이다.
이스라엘 입장에서 숨을 죽이고 정탐군을 맞았다.
그런데 그 둘의 보고가 놀라왔을 것이다.
우리의 하나님을 알고 있고,
우리와 같은 하나님을 고백하고 있고,
같은 마음으로 우리의 일에 동참함을 보면서
이스라엘이 생각한 것은
이것은 승리를 위한 확신으로 느꼈을 것이다.
한 개인도 마음의 준비가 될 때 놀라운 축복의 기회가 오는 것처럼
우리도 이제 이 가나안의 전쟁 앞에 마음으로 준비를 하자고 결심하게 된다는 말이다.
개인이나 공동체 모두
하나님을 위해 살겠다는,
말씀대로 살겠다는 굳은 결심은
축복의 기회가 된다는 확증, 확신을 가질 수 있다.
우리가 잘하고 싶다고 잘되지 않는다.
우리가 뭔가 높은 곳에 올라 가고 싶다고 가지 않는다.
잘할 기회,
잘 될 수 있는 기회가 와야 한다.
그 기회는 오직 하나님으로부터이다.
내가 만드는 것은 기회가 아니다.
기회는 하나님,
축복은 하나님이 주시는 것이다.
그래서 마음의 준비가 되는 사람에게
라합의 입장에서처럼
만날 수 없는 사람을 만나게 된다.
일어날수 없는 놀라운 기적이 일어나는 것이
마음의 결심과 준비된 자에게 찾아온다.
소돔성을 하나님께서 멸망 시키실때 아브라함은 죽음을 각오하고
오 십명,
사 십명,
삼 십명,
이 십명,
열명!
열명의 의인이 있으면 소돔성을 멸하지 말아달라 했다.
하지만 의인 열명이 없었다.
라합과 같은 믿음을 가진,
마음이 준비된 사람 열명이 없었던 것이다.
그래서 소돔은 멸망했다.
이 사실을 이스라엘 공동체는 라합을 통하여 확증하게 된다.
하나님이 공동체를 위해 준비한 축복의 대 서곡이다.
개인의 마음의 준비는
공동체가 마음의 준비를 하게하는 서문이다.
공동체가 한 방향을 향해 각오하고 준비하지만
우리는 약해서 자주 두려워한다.
하지만 하나님은 이 준비된 세상에서 버림받은 한 여인을 통해
공동체가 믿고 따라온 이 말씀이 하나님의 정확한 뜻이며 길인 것을
확증하는, 확신하는 계기가 되었던 것이다.
이제 이 이스라엘 공동체도 마음의 준비를 할 차례이다.
여호수아는 이 사건을 통해 하나님의 뜻이 명확함을 보고
우리도 마음의 준비를 하자고 공적으로 선포한다.
수3:5 '여호수아가 또 백성에게 이르되 너희는 자신을 성결하게 하라
여호와께서 내일 너희 가운데에 기이한 일들을 행하시리라 '
이스라엘도 하나님 앞에 스스로 마음을 준비하며
하나님이 하실 일을 준비하라고 하신다.
기적을 체험할 마음의 준비를 하라는 것이다.
이제 대 서사시가 시작된다.
세상의 모든 만물의 지휘자 되시는 그분의 오케스트라가
연주를 시작할 것이다.
요단강이 갈라지고,
성들이 무너지며,
하늘의 해와 달이 멈추어서는 우주적 연주가 시작될 것이다.
이 연주의 시작은 단지
우리의 마음의 준비가 전부이다.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원하지 않으신다.
마음의 준비!
오직 그것으로 오케이다.
내가 처참게하 깨어지고,
비참한 과거가 있다해도
하나님이 우리에게 원하시는것은
내가 과거에 어떤 삶을 살았는지를 보지 않으신다.
예수님은 세리아 창기들과 죄인들과 함께 먹고 마셨음을 기억하라.
바랄 수 없는 중에 바랄수 있는 마음만 있다면
우리의 형편과 위치와 능력은 아무 의미가 없는것이다.
성경은 그것을 '바랄수 없는 중에 바라는 믿음'이라고 한다. ]
라합은 그것을 가졌다.
마음의 준비가 된 자는 믿음이 있다.
히브리서 기자는 믿음장인 11장에서 그렇게 말한다.
히11:31 믿음으로 기생 라합은 정탐꾼을 평안히 영접하였으므로
순종하지 아니한 자와 함께 멸망하지 아니하였도다
마음의 준비가 되면 믿음이 온다.
하나님이 주신다.
그러면 우리는 세상이 줄 수 없는 평안을 가지고
세상을 향하여 다시 평안을 줄 수 있다.
[눅8:48]예수께서 이르시되 딸아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으니 평안히 가라 하시더라
믿음은 평안으로 인도한다.
[요14:27]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 같지 아니하니라
너희는 마음에 근심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
광야를 통해 마음이 준비된 자에게 주시는 축복은
믿음이고 평안이다.
그것은 세상으로부터 오는 것이 아닌
세상이 이기지 못하는, 죽음도 이기지 못하는 평안으로 인도한다.
라합은 험악한 세상에서 광야를 통해 이 마음의 준비를 했고,
죽음을 넘어서 평안으로 두 정탐군을 대접했다.
이 사건은 개인에서 공동체에게 놀라운 기적을 낳게 하기에 충분한 사건으로
하나님은 만들어 주셨다.
하나님은 이 마음의 준비만 있다면
얼마든지 그분의 천사와 세상의 만물을 통하여
놀랍고 장엄하며 우렁차며 높고 위대하신
하나님의 연주를 누구나 볼 수 있을 것이다.
어리석음은 광야를 지나면서,
아픔을 맛보면서
하나님께로 마음을 열지 않는,
마음의 준비 하지 않는 사람이다.
세상의 재물을 쌓아놓고 평안하다 평안하다 하며
하나님을 향한 마음의 준비를 못한
부자는 하나님 소망이 없어 그날 그의 목숨을 거두었다.
참 지혜는 평안할 때 말씀 앞에 서서 하나님을 위해
작은 소자 하나를 섬기고 사랑할 마음의 준비를 하는 것이다.
아픔이 오면 그 아픔은 죽을 만큼 아프니 좋을 때 잘하는 것 그것이 참 지혜이다.
설령 아픔의 광야,
어둠의 터널을 지나는 자라 할지라도
라합처럼
하나님께서 기회를 주시면 잡아야지,
하나님이면 내 인생 목숨을 걸어도 충분하다라고
마음의 결심을 한다면
우리 인생은 그때부터 수많은 기회가 찾아 올 것이다.
이전에는 라합이 한번의 믿음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하나님은 한번의 믿음은
수 천 번의 마음의 결심으로부터 온다는 사실을 오늘 다시 깨닫게 하신다.
아브라함의 믿음의 결단은
그가 지낸 수 없는 세월의 결과이다.
허송세월 했다고 고민하지 말라
그 세월이 다 믿음의 결단을 위한 준비였다.
마음의 준비였다.
기회가 올 때 그 준비된 마음을 표현한다.
축복은 기회를 통해서 온다.
그 기회는 마음의 준비에서 온다.
하나님은 우리의 모든 상황을 마음의 준비를 위해 사용하신다.
그러나 준비 되지 않으면 기회는 오지 않는다.
하나님의 축복의 전주곡은 라합을 통하여
그렇게 시작이 되었다.